All Chapters of 사모님의 입술을 적시는 셰프: Chapter 21 - Chapter 30

33 Chapters

21화. 남편 서태우의 추악한 비리

“이거 놔! 당장 손 떼!”서태우의 고함이 펜트하우스 거실을 울렸다. 수사관 두 명이 그의 팔을 뒤로 돌리고 수갑을 채웠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현관문을 걷어차고 들어오던 기세는 금속이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꺾였다.“내가 누군 줄 알아? 태광홀딩스 해외영업 총괄 상무야. 내 변호사 오기 전에는 한마디도 안 해!”수사팀장은 흔들림 없이 체포영장을 펼쳤다.“서태우 씨.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횡령·배임, 사문서위조 및 행사, 외국환거래법 위반 혐의입니다. 변호인 선임권과 진술거부권은 이동 중 다시 고지하겠습니다.”태우의 눈이 소파 쪽으로 돌아갔다. 정장을 차려입은 채린은 찻잔을 내려놓은 채 그를 보고 있었다. 도혁은 그녀보다 반걸음 뒤에 서 있었다.“백채린, 네가 꾸민 짓이지?”“내가 꾸민 게 아니라, 당신이 한 일이 드러난 거야.”태우의 얼굴이 낯설게 일그러졌다. 채린은 그 표정을 보면서도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당신이 나한테 숨긴 서류도, 아버지 회사에서 빼돌린 돈도 전부 기록으로 남았어.”“입 닥쳐. 네가 뭘 안다고 회사 일을 떠들어?”“이제부터 알 거야. 내가 직접 확인할 테니까.”채린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수사팀장이 압수수색 영장을 든 직원들에게 손짓했다. 서재와 업무용 태블릿, 홈캠 서버, 개인 금고가 차례로 봉인됐다.태우는 압수 봉투에 자신의 노트북이 들어가는 것을 보며 처음으로 말을 잃었다. 평소 채린의 휴대폰과 동선을 통제하던 사람이 제 물건 하나 건드리지 못한 채 서 있는 모습이었다. 도혁은 루미에르 감사팀이 정리한 자료 목록을 수사팀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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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아내를 제물로 바치려는 흉계

서태우가 체포되기 20분 전.평택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차 안에서 태우는 강만호에게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오늘 정오까지 내가 취소 연락을 하지 않으면 백채린을 데려와. 선우물산 계약서에 도장부터 받게 해. 수단은 상관없어.]메시지에는 선우물산 지하 주차장 동선과 채린의 차량 번호까지 붙어 있었다. 월요일 오후 4시, 성수동 선우물산 본사. 체포 소식이 퍼진 뒤 회사는 하루 종일 전화와 기자 문의로 뒤집혀 있었다. 채린은 임원들에게 추측성 답변을 금지하고 계약 원본부터 잠그게 했다. 마지막 회의를 끝냈을 때는 점심도 거른 뒤였다.채린은 부친의 입원 서류와 비상 이사회 자료를 가방에 넣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루미에르 경호팀이 건물 외곽을 확인하고 있었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바닥에 쓰러진 회사 보안요원이었다.채린은 걸음을 멈췄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 비상 버튼을 누르려 했지만 사내 하나가 문틈에 발을 넣었다. 휴대폰 신호는 약했고, 지하 주차장 끝의 경비 부스는 불이 꺼져 있었다. 채린은 가장 가까운 기둥과 소화기 위치부터 확인했다. 기둥 뒤에서 검은 옷을 입은 남자 다섯이 나왔다. 출구 쪽에는 번호판을 가린 승합차가 시동을 켠 채 서 있었다.“백채린 씨 맞죠? 강 회장님께서 모셔오랍니다.”앞장선 남자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그쪽으로 갈 일 없어요.”채린은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 가방 안에서 차량 키의 비상 버튼을 눌렀다.삐이익—! 삐이익—!주차장에 경보음이 터졌다. 동시에 휴대폰 화면의 긴급 신고가 전송됐다.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손 많이 가게 하지 말고 타.”그가 채린의 손목을 잡으려 달려들었다. 채린은 기둥 뒤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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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도혁의 정체와 숨겨진 칼날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한남동 레지던스. 주차장 습격이 끝난 뒤, 채린은 경찰 조사를 마치고 도혁의 집으로 옮겨왔다. 창밖의 야경은 평온했지만 손끝에는 아직 소화기 손잡이의 차가운 감촉이 남아 있었다. 오픈 주방에서 칼이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가 일정하게 이어졌다.도혁은 껍질을 바삭하게 구운 오리 가슴살을 얇게 썰었다. 오렌지 제스트와 타임을 넣은 소스는 기름기를 눌러줄 만큼만 가볍게 졸였다.“지금은 많이 먹지 않아도 됩니다. 한 점 먹고 속이 괜찮은지 보죠.”그는 포크를 건네려다 채린이 손을 내미는 것을 보고 접시 옆에 내려놓았다. 채린은 제 손으로 작은 조각을 집었다. 바삭한 껍질 뒤로 촉촉한 육즙이 퍼지고 오렌지의 산미가 짧게 남았다.“소스가 전보다 덜 달아요.”“놀란 뒤에는 단맛이 무겁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내 상태에 따라 레시피가 계속 바뀌네요.”“먹는 사람이 바뀌는데 접시가 그대로면 요리사 잘못입니다.”도혁다운 대답이었다. 채린은 두 번째 조각 대신 따뜻한 물을 마셨다. 그는 더 권하지 않았다.“이제 말해줘요.”채린이 거실 벽면의 사진과 증서를 바라봤다. 라 루미에르 재단 창립식 사진 속 노신사 옆에 어린 도혁이 서 있었다.“출장 셰프가 전부는 아니었잖아요.”도혁은 맞은편에 앉았다.“셰프는 위장이 아닙니다. 제가 고른 직업입니다.”“그 말은 믿어요. 음식 앞에서만큼은 한 번도 거짓말한 적 없으니까.”“나머지 일에서는 숨긴 게 있습니다.”“그래서 지금 묻는 거예요.”&ldquo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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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주방에서 시작된 반격의 레시피

다음 날 오전, 검찰청 조사동 면담실. 면담 전 수사관은 상대를 몰아붙일 필요가 없으며, 위협을 느끼면 즉시 수화기를 내려놓으라고 설명했다. 변호인도 옆방에서 실시간으로 상황을 확인했다. 채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우를 자극해 영웅처럼 이기려는 자리가 아니라, 그가 스스로 드러내는 말을 기록하는 자리였다.수사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채린과 태우가 투명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태우는 구치소 수의가 아니라 체포 당시 옷을 입고 있었지만, 넥타이는 사라지고 셔츠 깃은 구겨져 있었다. 채린은 수화기를 들기 전 도혁의 말을 떠올렸다.‘처음부터 전부 내놓지 마십시오. 간을 볼 때도 한 번에 소금을 붓진 않습니다.’도혁은 면담실 밖에서 변호사와 기다렸다. 채린은 혼자 들어가겠다고 직접 정했다. 태우가 먼저 수화기를 낚아챘다.[네년이 감히 날 여기까지 끌고 와? 당장 진술 뒤집어. 네 아버지 회사가 무사할 것 같아?]채린은 가죽 서류철에서 붉게 가린 문서 사본을 꺼냈다. 제목만 보였다.[청담동 개인금고 관련 자산 목록]태우의 눈이 커졌다.[그걸 어디서 났어?]“당신 금고에서.”실제로는 수사팀이 계좌 흐름에서 찾아낸 금고 임대료 자료뿐이었다. 구체적인 위치와 보안 방식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태우가 비웃었다.[허세 부리지 마. B동 지하 9번 금고는 내 지문이랑 6자리 비밀번호가 없으면 못 열어. 보조키도 김 실장한테만 있어. 네가 어떻게 들어가?]채린은 대답하지 않고 수화기 옆의 녹화 표시를 바라봤다. 빨간 불이 켜져 있었다. 태우의 얼굴에서 혈색이 빠졌다. 그 표정은 채린이 잘 아는 것이었다. 자신이 쥔 정보가 새나갔을 때만 나타나는 공포였다. 아내가 아파도, 장인이 쓰러져도 보이지 않던 감정이었다.“내가 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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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법정에 오른 만찬의 증거

서울중앙지방법원 영장심사 법정.구속 전 피의자 심문은 공개되지 않았다. 방청석도 기자도 없었다. 판사와 검사, 태우와 변호인단, 법원 직원만 자리를 지켰다. 태우는 수의가 아닌 구겨진 셔츠 차림이었다. 손목에는 수갑 자국이 붉게 남았고, 앞에 놓인 이름표에는 직함 없이 ‘피의자 서태우’라고만 적혀 있었다. 태우의 변호인은 두꺼운 의견서를 펼쳤다.“피의자는 주거와 직업이 일정하며 해외 사업을 책임지는 임원입니다. 문제의 자료는 이혼 분쟁 중인 배우자와 경쟁 회사가 수집한 것으로, 위법 수집 가능성이 큽니다.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도 없습니다.”판사는 서류에서 눈을 들었다.“체포 직전 피해자 납치를 지시한 음성 메시지는 어떻게 설명합니까?”변호인의 말이 잠시 막혔다.태우가 끼어들었다.“그건 합성 음성입니다! 요즘 목소리 복제가 얼마나 쉬운데요. 백채린과 그 셰프가 제 돈을 노리고 꾸민 겁니다.”검사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1차 감정서와 통신사 서버 기록을 제출했다. 메시지가 태우의 단말기에서 그의 생체 인증을 거쳐 전송됐다는 기록도 포함돼 있었다. 음성 파일의 생성 시각, 원본 해시값, 클라우드 전송 기록이 한 표에 정리돼 있었다. 단순히 목소리가 닮았다는 감정만으로 버티기 어려운 자료였다.이어 만찬 날 채린의 동의로 켜둔 드레스 안쪽 녹음 핀의 원본이 재생됐다.[오늘 밤 네 친정아버지 회사 어음 전부 부도 처리할 거야.][장뤽 부사장이 너한테 호감을 보이니까 계약서 도장 찍을 때까지 살살 기어. 넌 내 사업을 위한 트로피야.]홈캠 서버에서는 그날 밤 채린의 휴대폰을 부수고 안방을 밖에서 잠근 영상과 잠금 로그도 복구됐다. 태우는 의자 팔걸이를 움켜쥐었다. 검사는 루미에르 감사팀이 제출한 거래 원장과 은행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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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무너져 내리는 가짜 성채

구속영장이 발부된 직후, 법원 정문 앞은 취재진으로 붐볐다. 태우는 고개를 숙인 채 호송차에 올랐다. 조금 전까지 고함을 치던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카메라 셔터음이 쏟아지는 사이 변호인들이 그를 둘러싸고 빠르게 이동했다. 채린은 별도의 출입구로 나왔지만 기자들이 곧 알아봤다.“백채린 위원장님, 선우물산 담보권 위조에 대해 알고 계셨습니까?”“루미에르와 독점 계약이 확정됐습니까?”“서태우 씨와 이혼 절차도 진행하십니까?”도혁이 앞을 막으려 하자 채린이 그의 팔을 가볍게 눌렀다.“제가 말할게요.”그녀는 마이크 앞에 섰다.“선우물산 담보권과 관련된 형사 절차는 수사기관에 맡기겠습니다. 회사는 오늘부터 외부 회계법인과 함께 재무·계약 전수조사를 시작합니다. 루미에르와는 긴급 물류 유지 협약만 체결했고, 본계약은 실사 결과를 토대로 이사회가 결정할 겁니다.”“피해 사실에 대해서는요?”채린은 짧게 숨을 골랐다.“사적인 폭력도 사업상 불법도 더는 숨기지 않겠습니다. 필요한 진술은 법정에서 하겠습니다.”기자 하나가 도혁과의 관계를 물었지만 채린은 고개를 저었다.“오늘 답할 내용은 회사와 수사에 관한 것뿐입니다.”사생활로 시선을 돌리려는 질문을 잘라낸 뒤, 그녀는 법무팀과 함께 차로 향했다. 채린은 질문이 끊길 때까지 같은 원칙을 유지했다.그날 오후 태광홀딩스 본사에는 압수수색이 이어졌다. 루미에르는 문제 거래의 지급을 중단하고 손해배상 청구를 예고했다. 주가는 급락했고, 이사회는 서태우를 직위 해제했다. 총괄회장도 출국금지 조치를 받고 참고인에서 피의자로 전환됐다.하지만 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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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남편의 파멸과 완전한 이혼

6주 뒤, 서울가정법원 조정실. 채린은 변호사와 나란히 앉아 화면을 바라봤다. 구치소 화상실에 연결된 서태우가 푸른 수의를 입고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은 수척해졌지만 눈에 남은 소유욕은 그대로였다.조정위원이 확인했다.“백채린 신청인은 혼인관계 해소와 재산분할, 위자료를 청구했습니다. 자녀는 없으며 친권·양육권 쟁점도 없습니다. 양측 입장을 듣겠습니다.”태우가 마이크에 바짝 다가왔다.[난 이혼 못 합니다. 저 여자가 불륜을 저질러 놓고 내 재산까지 빼앗으려는 겁니다!]채린은 화면 속 태우를 똑바로 봤다.“혼인 중 폭언과 폭행, 감금, 친정 회사 담보권 위조, 제3자에게 저를 넘기려 한 지시까지 수사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더 이상 혼인을 유지할 이유가 없습니다.”[네가 그 셰프랑 붙어먹은 건? 그건 사랑이야?]예전 같았으면 그 말에 죄책감부터 느꼈을 것이다. 채린은 잠시 생각한 뒤 담담히 답했다.“내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내가 져. 그렇다고 당신 폭력과 범죄가 없어지지는 않아.”[말만 번지르르하게 하지 마. 결국 날 배신한 거잖아!]“당신은 결혼을 충성 계약처럼 생각했지. 나는 더 이상 그 계약의 물건으로 살지 않아.”태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죽어서도 넌 내 아내야. 난 서류에 절대 도장 안 찍어.]채린의 변호사가 말했다.“피신청인이 동의하지 않아도 재판상 이혼 청구는 계속 진행됩니다. 오늘 조정이 결렬되면 폭행 진단서, 감금 기록, 납치 지시 음성, 담보권 위조 자료가 본안 법정에서 모두 심리됩니다.”협박이 아니라 절차에 대한 설명이었다. 채린은 태우가 그 차이를 알아듣지 못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힘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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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온전한 나만의 미각

석 달 뒤, 겨울로 접어든 서울. 채린은 한남동의 새 집에서 눈을 떴다. 서태우와 살던 펜트하우스가 아니었다. 방 크기도 가구도 자신이 골랐고, 현관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도 채린이 정했다.아침마다 속이 편한 것은 아니었다. 전날 회의가 길거나 재판 관련 연락을 받은 날이면 목이 다시 굳기도 했다. 채린은 정기 진료와 영양 상담을 이어갔고, 먹은 양보다 몸의 반응을 기록했다.오늘 메모에는 짧게 적혔다.[공복감 있음. 메스꺼움 2. 따뜻한 빵 가능.]먹지 못한 날도 지우지 않았다. 예전에는 빈 접시가 곧 실패였지만, 이제 기록은 몸의 상태를 알아보는 자료였다. 담당 의사는 급하게 체중이나 양을 늘리기보다 정해진 시간에 안전한 음식을 시도하고 불안을 함께 다루자고 했다. 거실로 나오자 오픈 주방에서 토마토와 바질 향이 났다. 도혁이 흰 셔츠 소매를 걷은 채 재료를 정리하고 있었다.“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상태는요?”“메스꺼움 2. 배는 조금 고파요.”“그럼 차가운 치즈는 마지막에 올리죠. 먼저 빵 냄새부터 확인하십시오.”채린은 갓 구운 사워도우 가까이 얼굴을 기울였다. 고소한 향이 불편하지 않았다. 도혁이 리넨 앞치마를 들어 보였다.“오늘은 직접 하시겠습니까?”“네. 대신 손 덮어서 잡지 말고, 말로만 알려줘요.”“알겠습니다. 토마토는 5mm. 손가락은 칼날 안쪽으로.”도혁은 손을 뒤로 모으고 한 발 떨어졌다. 처음 만났을 때라면 직접 칼을 빼앗아 정확한 각도를 보여줬을 남자가, 이제는 채린이 요청한 방식대로 기다렸다. 채린은 제 손으로 칼을 잡았다. 사각, 하고 토마토가 갈라지며 붉은 과즙이 도마 위에 번졌다. 두께가 들쭉날쭉하자 도혁이 눈썹을 아주 조금 올렸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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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둘만의 프라이빗 레스토랑

프랑스 파리, 센 강변의 오스만 양식 석조 건물. 오베르주 드 라 루미에르의 아치형 문이 열리자 낮은 재즈 선율과 버터 향이 흘러나왔다. 창밖으로는 젖은 돌길과 강물 위에 번지는 에펠탑 불빛이 보였다.오늘 저녁 레스토랑은 한 테이블만 남기고 문을 닫았다. 다이닝 홀에는 과한 장식 대신 낮은 촛불과 흰 장미 몇 송이, 정갈하게 놓인 은식기가 전부였다. 직원들은 첫 코스만 준비한 뒤 퇴근했고, 주방에는 도혁 혼자 남았다. 채린은 빈 홀을 둘러보다 물었다.“이렇게 문 닫으면 손해 아닌가요?”“오늘 매출은 제가 책임집니다.”“공동 운영자가 되기도 전에 비용부터 확인하게 하네요.”“좋은 습관입니다.”채린은 이사회에서 계약 조항 세 군데를 고치고 온 참이었다. 자신의 결재권, 서울 근무 비중, 선우물산과 재단 사이의 이해상충 회피 규정까지 문서에 넣었다. 주방 문이 열리고 도혁이 흰 셰프 코트 차림으로 나왔다.“협상은 만족스러웠습니까, 백 이사님?”“아직 한 조항 남았어요. 셰프가 내 입맛을 제멋대로 해석하지 않을 것.”“그건 매번 시식으로 확인하겠습니다.”“그리고 ‘사모님’은 서울에 두고 왔어요.”“알고 있습니다, 채린 씨.”도혁은 고개를 숙였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남았다. 도혁이 의자를 빼주었다. 채린은 상석 대신 그와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았다. 첫 접시는 브르타뉴산 랍스터였다. 샤프란은 버터에 오래 끓이지 않고 마지막에 향만 입혔고, 소스에는 레몬즙을 조금 더 넣었다.“서울에서 처음 소스를 드셨을 때 단맛 뒤에 레몬이 난다고 하셨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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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반지보다 먼저 건넨 약속

도혁은 한쪽 무릎을 꿇은 채 반지 상자를 열어두고도 서두르지 않았다.센 강물 위로 번진 불빛이 창문을 타고 들어와 은빛 테두리 위에서 흔들렸다. 채린은 다이아몬드보다 먼저 도혁의 얼굴을 보았다. 늘 정확한 온도와 시간을 말하던 남자가 드물게 긴장한 표정이었다.“배고픈 날마다 한 접시를 비우라고 하지 않겠습니다.”도혁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평소보다 조금 느렸다.“한 숟갈이면 한 숟갈, 아무것도 못 먹는 날이면 그 옆에 있겠습니다. 제가 만든 맛이 틀리면 고치고, 채린 씨가 정한 일과 이름을 빼앗지 않겠습니다.”채린은 손가락으로 편지의 마지막 문장을 다시 짚었다.[당신의 식탁을 대신 정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같은 자리에 오래 앉고 싶습니다.]그 말이 반지보다 오래 눈에 들어왔다. 서태우의 청혼은 선택지가 없는 통보였다. 집안과 회사, 양가 어른의 뜻이 먼저였고 채린의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도혁은 대답을 요구하지 않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거절할 시간까지 그녀에게 돌려주면서.“조건이 있어요.”“말씀하십시오.”“내가 힘들 때 혼자 결정하고 구해주려 들지 말 것. 먼저 말하고 같이 정할 것.”“지키겠습니다.”“내 접시 간은 내가 보고, 내 회사 일도 내가 결정해요. 결혼하고 나서도 백채린으로 일할 거예요.”도혁은 망설이지 않았다.“제가 원하는 사람도 백채린 씨입니다.”“그리고 당신도 모든 걸 혼자 짊어지지 마요. 완벽한 셰프도, 완벽한 구원자도 필요 없어요.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요.”도혁의 눈빛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그는 남을 살피는 데 익숙했지만 제 상태를 내보이는 데는 서툰 사람이었다. 채린은 그 사실을 이제 알고 있었다.“그 조항은 연습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연습하는 동안 내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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