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의 입술을 적시는 셰프

사모님의 입술을 적시는 셰프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9-07
Oleh:  6jayBaru saja diperbarui
Bahasa: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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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폭언과 통제 속에서 음식조차 삼키지 못하게 된 백채린. 어느 날, 남편이 접대를 위해 부른 젊은 셰프 강도혁이 그녀의 메마른 입술과 미각을 깨운다. 주방에서 시작된 위험한 테이스팅은 어느새 금단의 관계로 번지고, 채린은 그를 통해 잃어버린 삶과 자신을 되찾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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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 1

01화. 메마른 입술과 낯선 침입자

그릇에 담긴 것은 차가운 모욕이었다.

“또 깨작거리는군. 집에서 온종일 뒹굴면서 남편 퇴근길 밥상 하나 제대로 못 차리는 게, 입맛까지 까다로워?”

식탁 맞은편에서 서태우가 질색하며 젓가락을 내던졌다. 도자기 그릇에 부딪힌 은수저가 쨍, 날 선 소리를 냈다. 백채린은 파리하게 질린 입술을 가만히 깨물었다.

식탁 위에는 그녀가 서툰 솜씨로 반나절 내내 씨름해 끓여낸 소고기뭇국과 나물들이 식어가고 있었다.

“기름 냄새만 맡아도 헛구역질이 올라와서…… 죄송해요.”

“죄송하면 먹어. 네 친정아버지 회사 넘어가기 직전에 내가 숨통 트여준 값, 이런 형편없는 밥상으로 갚을 생각 말고.”

태우는 혐오스럽다는 듯 혀를 차며 일어섰다. 거칠게 닫히는 서재 문소리가 적막한 펜트하우스 복도를 울렸다. 혼자 남은 식탁. 채린은 메스꺼움을 억누르며 국물을 한 숟가락 입에 밀어 넣었다.

하지만 혀끝에 닿자마자 목구멍이 굳어지며 역한 구역질이 치밀었다.

우욱.

채린은 싱크대로 달려가 위액을 쏟아냈다. 아무것도 먹지 않아 노란 담즙만 섞인 신물이 타일 바닥으로 떨어졌다.

거식증.

남편의 3년에 걸친 폭언과 감시, 그리고 인형처럼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그녀의 목구멍을 닫아버린 지 오래였다. 세상의 모든 음식이 모래알 같았고, 삼키는 행위 자체가 지옥 같은 형벌이었다. 다음 날 오후, 거실에 낯선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번 주말, 프랑스 파트너사 임원들이 우리 집으로 온다. 네 손으로 차릴 생각 따윈 꿈도 꾸지 마.”

태우가 넥타이를 고쳐 매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예약 대기만 반년이라는 프라이빗 출장 셰프를 불렀어. 파리 미슐랭 3스타 출신이라더군. 괜히 주방 얼씬거리면서 창피 주지 마.”

태우가 출근한 뒤, 현관 벨이 정적을 깨고 울렸다. 채린이 인터폰을 확인하고 문을 열자, 초가을 바람과 함께 낯선 남자가 문 앞에 섰다.

“안녕하십니까, 사모님. 오늘부터 주방 동선과 식자재 점검을 맡은 강도혁입니다.”

문턱에 선 남자는 생각보다 훨씬 젊었다. 187cm는 족히 되어 보이는 큰 키와 탄탄한 어깨. 단정한 블랙 셰프 코트와 차분한 눈매가 먼저 들어왔다. 그에게서는 신선한 허브와 쌉싸름한 시더우드 향이 희미하게 났다.

“아…… 서태우 상무님이 말씀하신…….”

“네. 오늘 저녁 사전 테이스팅을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도혁의 낮은 목소리가 채린의 귓전에 닿았다. 도혁은 채린의 창백한 안색과 떨리는 입술을 짧게 살폈다.

“남편분은 저녁 늦게 들어오신다고 들었습니다만.”

“네. 회의가 길어져서…… 혼자 준비하셔도 괜찮아요. 전 제 방에 들어가 있을 테니 편하게 쓰세요.”

채린이 몸을 돌려 피하려던 순간이었다.

“사모님.”

도혁이 한 걸음 다가오다 멈춰 주방 쪽을 가리켰다.

“셰프의 음식은 드실 분의 입맛을 맞춰야 완성됩니다. 잠깐만 확인해 주시죠.”

강요하는 말투는 아니었다. 도혁은 주방으로 가는 길을 비켜둔 채 기다렸다. 채린은 망설이다 주방 아일랜드 식탁 앞에 섰다. 도혁은 거침없는 손길로 나이프를 잡고 레몬과 신선한 무화과를 얇게 저몄다.

도마를 두드리는 규칙적인 칼질 소리가 묘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은빛 볼에 담긴 크림빛 소스가 완성되었다. 상큼한 시트러스 향과 진한 바닐라 향이 주방의 공기를 채웠다.

“자, 드셔보시죠.”

도혁이 작은 스푼을 채린에게 건넸다. 하지만 채린은 뒷걸음질을 쳤다. 목구멍이 바짝 타들어 가며 어제의 역한 구역질이 다시 솟구치는 것 같았다.

“전…… 못 먹어요.”

“못 먹는 겁니까, 안 먹는 겁니까?”

“속이 안 좋아서…… 음식 냄새만 맡아도 토해요. 그러니까 그냥 남편 입맛에 맞추세요.”

채린이 고개를 돌리며 거부했다. 도혁은 한 걸음 다가오다 멈췄다.

“억지로 먹이진 않겠습니다.”

그는 더 다가가지 않고 소스가 담긴 볼을 그녀 앞에 내려놓았다.

“냄새부터 맡아보십시오. 속이 뒤집히면 여기서 끝냅니다.”

“그걸 왜 당신이 정해요?”

“끝낼지는 사모님이 정합니다. 저는 온도와 향만 맞출 겁니다.”

도혁은 검지 끝에 무화과 크림을 아주 조금 묻혀 보였다.

“스푼이 싫다면 이만큼만. 어느 쪽이든 선택하십시오.”

채린은 당장 돌아서려 했다. 그런데 코끝에 닿은 레몬과 무화과 향에도 속이 울렁이지 않았다. 평소라면 기름기 없는 과일 향에도 명치부터 굳었을 텐데, 오늘은 침이 아주 조금 고였다. 그 낯선 반응에 채린은 제 몸을 의심하듯 한 번 더 숨을 들이마셨다.

“……한 번만요.”

도혁은 손을 움직이지 않고 기다렸다. 채린이 먼저 고개를 기울여 그의 손끝에 입술을 댔다. 차가운 크림이 갈라진 아랫입술에 스며들었다.

“산미가 먼저입니까, 단맛이 먼저입니까?”

“단맛이요. 뒤에…… 레몬 맛이 나요.”

“좋습니다. 그럼 삼킬 수 있는 만큼만 넘겨보십시오.”

채린이 조심스럽게 혀를 움직이자 무화과 씨앗이 톡톡 터졌다. 구역질 대신 침이 고였고, 목구멍이 아주 조금 열렸다.

꿀꺽.

도혁의 눈이 그녀의 목울대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사모님.”

그가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이렇게 맛을 느끼면서도, 그동안 얼마나 참으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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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화. 메마른 입술과 낯선 침입자
그릇에 담긴 것은 차가운 모욕이었다.“또 깨작거리는군. 집에서 온종일 뒹굴면서 남편 퇴근길 밥상 하나 제대로 못 차리는 게, 입맛까지 까다로워?”식탁 맞은편에서 서태우가 질색하며 젓가락을 내던졌다. 도자기 그릇에 부딪힌 은수저가 쨍, 날 선 소리를 냈다. 백채린은 파리하게 질린 입술을 가만히 깨물었다.식탁 위에는 그녀가 서툰 솜씨로 반나절 내내 씨름해 끓여낸 소고기뭇국과 나물들이 식어가고 있었다.“기름 냄새만 맡아도 헛구역질이 올라와서…… 죄송해요.”“죄송하면 먹어. 네 친정아버지 회사 넘어가기 직전에 내가 숨통 트여준 값, 이런 형편없는 밥상으로 갚을 생각 말고.”태우는 혐오스럽다는 듯 혀를 차며 일어섰다. 거칠게 닫히는 서재 문소리가 적막한 펜트하우스 복도를 울렸다. 혼자 남은 식탁. 채린은 메스꺼움을 억누르며 국물을 한 숟가락 입에 밀어 넣었다.하지만 혀끝에 닿자마자 목구멍이 굳어지며 역한 구역질이 치밀었다.우욱.채린은 싱크대로 달려가 위액을 쏟아냈다. 아무것도 먹지 않아 노란 담즙만 섞인 신물이 타일 바닥으로 떨어졌다.거식증.남편의 3년에 걸친 폭언과 감시, 그리고 인형처럼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그녀의 목구멍을 닫아버린 지 오래였다. 세상의 모든 음식이 모래알 같았고, 삼키는 행위 자체가 지옥 같은 형벌이었다. 다음 날 오후, 거실에 낯선 긴장감이 감돌았다.“이번 주말, 프랑스 파트너사 임원들이 우리 집으로 온다. 네 손으로 차릴 생각 따윈 꿈도 꾸지 마.”태우가 넥타이를 고쳐 매며 차갑게 쏘아붙였다.“예약 대기만 반년이라는 프라이빗 출장 셰프를 불렀어. 파리 미슐랭 3스타 출신이라더군. 괜히 주방 얼씬거리면서 창피 주지 마.”태우가 출근한 뒤, 현관 벨이 정적을 깨고 울렸다. 채린이 인터폰을 확인하고 문을 열자, 초가을 바람과 함께 낯선 남자가 문 앞에 섰다.“안녕하십니까, 사모님. 오늘부터 주방 동선과 식자재 점검을 맡은 강도혁입니다.”문턱에 선 남자는 생각보다 훨씬 젊었다. 187cm는 족히 되어 보이는 큰 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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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화. 주방 아일랜드 위의 배덕
혀끝을 타고 번져 나가는 감각은 낯설 만큼 강렬했다. 채린이 도혁의 손끝에서 받아들인 크림은 체온에 닿자 금세 녹았다. 오랫동안 음식을 밀어내던 위가 뜻밖에도 조용했다. 무화과의 단맛 뒤로 레몬 산미가 짧게 남았고, 목구멍이 저절로 움직였다.꿀꺽.채린은 놀라 제 목을 짚었다.“……넘어갔어요.”“네. 한 입은 넘겼습니다.”도혁은 곧바로 손을 거두고 깨끗한 면포를 건넸다. 채린의 붉게 달아오른 아랫입술에 투명한 타액과 연분홍빛 소스가 얇은 막을 이루며 맺혔다. 맛이 가시기도 전에 뒤늦은 수치심이 목까지 치솟았다.채린은 떨리는 손으로 입술을 닦아내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미쳤어요? 지금……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런 짓을 해요?”“이 집의 안주인이자, 서태우 상무님의 아내 백채린 씨.”도혁은 행주로 손을 닦으며 채린을 똑바로 바라봤다.“제가 제안했고, 사모님이 한 번만 하겠다고 허락했습니다.”“그래도 손가락을…… 입에 대게 했잖아요.”“그 점이 불쾌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다시는 허락 없이 닿지 않겠습니다.”도혁은 한 걸음 다가오다 채린이 물러선 자리에서 멈췄다.“말씀하셔도 됩니다.”그가 행주를 내려놓고 두 손을 보이듯 펼쳤다.“다만 서 상무님이 제 행동보다 사모님을 먼저 몰아세울 가능성이 큽니다. 그게 걱정입니다.”“당신이 뭘 안다고…….”“병을 제가 함부로 단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방금 한 입을 넘긴 것도 사실입니다.”도혁의 시선이 소스의 농도와 채린의 입술을 차례로 짚었다.“몸이 받아들이는 온도와 향부터 찾으면 다음 한 입도 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 이상은 의사가 판단할 일이고요.”채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서태우라면 병을 핑계라 몰아붙였을 텐데, 이 남자는 처음으로 한계를 한계라고 불러주고 있었다.“왜 나한테 이러는 거예요?”“굶고 있는 사람 앞에서 요리사가 모른 척하기는 어렵습니다.”도혁은 가스레인지 쪽으로 몸을 돌렸다.“세 코스 중 하나만 더 고르십시오. 스푼, 포크, 아니면 여기서 끝. 사모님이 정합니
last updateTerakhir Diperbarui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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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화. 입술로 건넨 미각의 불꽃
허락은 했지만, 입술이 닿는 순간 채린의 어깨가 반사적으로 굳었다. 도혁은 곧바로 움직임을 멈췄다. 허리를 받친 손에도 더는 힘을 주지 않았다.“멈출까요?”뜨거운 숨이 맞닿은 거리에서 물음이 떨어졌다. 채린은 그의 가슴을 짚은 채 몇 번이나 숨을 골랐다.“아니요. 고기부터…… 넘기게 해줘요.”도혁이 아주 느리게 고개를 기울였다. 채린이 다시 피하지 않자, 입술 사이로 따뜻한 육즙과 고기 한 점을 건넸다. 풍부한 육즙과 레드와인 발사믹 소스의 진한 풍미가 혀끝을 강타했다. 고소한 버터와 은은한 로즈메리 향이 타액과 뒤섞이며 목구멍 안쪽으로 뜨겁게 흘러들었다.이번 한 점에서는 구역질이 올라오지 않았다. 늘 먼저 굳던 명치가 잠잠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도혁은 고기를 건네주고도 곧바로 물러서지 않았다.그녀가 고기를 씹는 속도에 맞춰 입맞춤의 압력도 늦췄다. 남자의 거친 숨결과 젖은 입맞춤이 채린의 전신에 짜릿한 전율을 일으켰다. 서로의 숨결이 엉키며 주방 아일랜드 위로 은밀한 마찰음이 번졌다.“씹으십시오, 채린 씨.”남자가 입맞춤 사이로 낮게 말했다.‘사모님’이 아닌, 처음으로 불린 자신의 이름.그 생경한 호명이 채린의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만들었다. 채린의 턱이 마비에서 풀려나듯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어금니 사이로 연한 살코기가 부드럽게 씹혔다.지극히 부드러운 육질 사이로 터져 나오는 감칠맛. 맛보다 먼저, 얼어붙었던 몸에 감각이 돌아오는 충격이 밀려왔다. 목구멍이 활짝 열리며 자연스럽게 연하 반사가 일어났다.꿀꺽.고기 한 점이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채린은 곧바로 다음 반응을 기다렸다. 명치가 조여 오지 않는지, 속이 뒤집히지 않는지 살폈다. 몇 초가 지나도 위는 조용했다. 도혁도 그 시간을 재촉하지 않았다.채린은 도혁의 셔츠를 잡았던 손에 힘을 풀었다. 손바닥에 남은 옷감의 감촉까지 선명했다. 음식 한 점을 넘겼을 뿐인데 몸의 감각이 한꺼번에 돌아오는 것 같았다.“하아…….”도혁이 입술을 뗐다.맞닿았던 입술이 떨어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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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화. 닫힌 목구멍을 여는 손길
철컥.육중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채린의 전신이 벼락을 맞은 듯 굳어버렸다.“남편…… 남편이에요!”채린의 얼굴에서 핏기가 순식간에 가셨다. 서태우가 돌아온 줄 알았다. 지금 모습을 들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남편은 병적인 결벽과 통제광이었다.아내의 입술이 붉게 짓물려 있고, 젊은 셰프의 옷깃이 흐트러진 채 밀착해 있는 광경을 본다면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 없었다. 채린이 공포에 질려 숨을 헐떡이자 도혁이 아일랜드 뒤쪽 수납장을 가리켰다.“저 안쪽이면 현관에서 보이지 않습니다. 걸을 수 있습니까?”채린이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혁은 그녀가 넘어지지 않도록 허리를 받쳐 수납장 안쪽으로 이끌었다. 수납장 틈은 거실 쪽 시야에서 벗어나 있었다. 도혁의 넓은 등판이 채린의 시야를 가로막았다.그의 탄탄한 가슴과 채린의 가녀린 몸이 좁은 틈새에서 다시 한번 짓눌리듯 밀착되었다.“숨을 짧게 쉬십시오.”도혁이 고개를 숙여 귓가에 속삭였다. 그가 입술 앞에 손을 들자 채린이 먼저 고개를 끄덕였다. 손바닥이 조심스럽게 입을 덮었다. 버터의 고소한 잔향과 체온이 전해졌다. 그때, 현관 대리석을 밟는 구두 소리가 거실을 가로질러 다가왔다.“사모님? 계십니까?”들려온 목소리는 서태우가 아니었다. 남편의 개인 비서인 김 실장의 목소리였다. 도혁은 채린을 안쪽에 남겨둔 채, 태연하게 주방 밖으로 상체를 반쯤 내밀었다.“서 상무님 댁 맞습니까? 누구시죠?”도혁의 낮고 묵직한 목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거실 탁자 쪽으로 서류 가방을 들고 다가오던 김 실장이 흠칫 놀라며 걸음을 멈췄다.“아, 이번 주말 만찬을 맡으신 강도혁 셰프님이시군요. 상무님 비서실 김 실장입니다. 상무님께서 긴급 기밀 서류를 서재에 두고 가라 하셔서 잠시 들렀습니다.”“그렇습니까. 사모님께서는 속이 안 좋으시다고 방에 들어가 쉬고 계십니다.”“아, 그러시군요. 주방 점검으로 번거로우시겠습니다.”김 실장은 도혁의 침착한 태도에 별다른 의심을 품지 않았다. 그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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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화. 남편의 귀가와 지워지지 않는 흔적
밤 11시를 넘긴 시각, 펜트하우스의 넓은 거실은 숨이 막힐 듯한 냉기만이 감돌고 있었다. 채린은 거실 소파 구석에 앉아, 손에 쥔 노란 서류 봉투를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움켜쥐고 있었다. 구겨진 종이의 글자가 눈에 들어올수록 손끝이 더 차가워졌다.[선우물산 담보권 실행 및 강제 매각 추진 계획서][채권자: (주)태광홀딩스 서태우 상무 전결]“너희 친정 회사를 살려준 은혜를 알아야지.”“밥상 하나 제대로 못 차리는 무능한 년을 거둬준 게 누구 덕인데?”지난 3년 동안 서태우가 매일같이 채린의 목을 죄어오던 그 오만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친정을 살려줬다는 말은 전부 거짓이었다. 태우는 자금난에 빠진 장인의 회사를 담보로 잡아 헐값에 매각한 뒤, 자신의 비자금 창구로 삼으려 했다.‘다 알고 있었어…… 서태우, 넌 처음부터 날 인형 취급한 거야.’눈물이 마른 눈에 분노만 남았다. 그 지독한 가스라이팅에 갇혀 스스로를 쓸모없는 존재라 자책하며 밥 한 숟가락 넘기지 못했던 나날들. 병의 시작을 이제는 분명히 알 것 같았다.태우가 매일 식탁에 얹은 모욕과 공포가, 음식을 삼킬 때마다 목을 조여왔다.삐빅, 삐비비빅— 철컥.벽시계가 자정을 넘긴 직후, 현관문이 거칠게 열렸다. 독한 양주 냄새와 눅눅한 담배 냄새가 현관 복도를 타고 밀려왔다.서태우였다.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들어선 태우는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헤치며 소파 쪽으로 다가왔다.“아직도 안 자고 뭐 해? 불은 왜 다 꺼놓고 청승이야?”태우가 재킷을 바닥에 내팽개치며 짜증스럽게 쏘아붙였다. 채린은 재빨리 서류를 쿠션 밑으로 밀어 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오셨어요.”“물 한 잔 가져와. 목 타 죽겠으니까.”채린은 주방으로 걸어가 냉수를 유리잔에 따랐다. 아일랜드 식탁을 지날 때 낮에 맡았던 시더우드와 버터 향이 기억처럼 되살아났다.‘내가 앉을 식탁이니 내 입에도 맞는지 확인했다고 말하자.’문득 떠오른 문장을 속으로 되뇌자 떨리는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채린이 물잔을 내밀자, 태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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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화. 한밤중 주방의 밀회
휴대폰 화면을 끈 뒤에도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채린은 안방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거친 코고는 소리를 확인했다.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서태우는 아침까지 깨어나지 못할 터였다.하지만 바로 위층 안방에 남편이 누워 있다는 사실 자체가 온몸의 말초 신경을 팽팽하게 곤두세웠다.‘돌아간 게 아니었어?’채린은 얇은 실크 가운을 걸치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카펫이 깔린 복도를 지나, 발소리를 죽인 채 어두운 계단을 밟고 1층 주방으로 내려갔다. 달빛만이 길게 드리운 어두컴컴한 주방.냉장고와 아일랜드 식탁 사이, 은은한 간접 조명 아래 익숙하고 거대한 인영이 서 있었다.강도혁.그는 셰프 코트 대신 편안한 검은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소매를 걷어붙인 팔뚝의 단단한 힘줄과 단정한 흑발이 어둠 속에서 위험한 매력을 뿜어냈다.“도혁 씨…… 안 가고 여기서 뭘 하는 거예요?”채린이 묻고는 스스로 덧붙였다.“이번엔 내가 내려왔어요. 부른다고 끌려온 거 아니에요.”“그 말은 기억하겠습니다. 돌아가고 싶으면 지금 말씀하십시오.”“안 돌아갈 거예요.”도혁의 눈매가 아주 조금 누그러졌다. 도혁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짙은 눈동자가 달빛을 받아 푸른빛으로 빛났다.“안내 데스크에 내일 새벽 식자재 검수가 있어 주방 세팅을 밤새 마쳐야 한다고 말해뒀습니다.”도혁이 한 걸음 다가왔다.그의 커다란 그림자가 채린을 집어삼켰다. 가까워진 거리에서 쌉싸름한 시더우드 향과 달콤한 복숭아 향기가 훅 끼쳐왔다. 도혁의 시선이 채린의 턱 끝에 남은 붉은 자국에 머물렀다.“만져봐도 됩니까?”채린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손끝이 멍든 부위를 조심스럽게 짚었다.“턱을 잡았습니까?”“잡았어요. 그래도…… 그 사람한텐 별일도 아니에요.”채린이 고개를 저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낮에 보았던 노란 봉투의 진실을 털어놓았다.“도혁 씨 말이 맞았어요. 남편은…… 우리 친정을 살려줄 생각이 없었어요. 처음부터 집어삼키려던 거였어요.”채린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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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화. 셰프의 사적인 레시피
발소리는 계단 중간에서 한 번 멎었다가 다시 가까워졌다.터벅, 터벅—.채린의 호흡이 얼어붙었다. 이 야심한 새벽에 주방에서 젊은 셰프와 단둘이 있는 모습을 들키면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었다. 채린이 겁에 질려 몸을 떨자, 도혁이 기민하게 움직였다. 남자의 단단한 팔이 채린의 허리를 가볍게 감아올려 아일랜드 식탁 깊숙한 수납장 뒤편의 음영 속으로 그녀를 밀어 넣었다.거실과 복도에서는 시야가 닿지 않는 자리였다.“숨소리조차 내지 마십시오.”도혁이 귓가에 낮게 속삭이며 채린의 어깨를 툭툭 다독였다. 이어 그는 망설임 없이 주방 메인 조명의 스위치를 올렸다. 탁, 소리와 함께 은백색 조명이 쏟아져 내리며 어둠을 몰아냈다.도혁은 즉시 앞치마를 고쳐 매고, 가스레인지 위의 묵직한 무쇠 냄비 뚜껑을 열었다. 은은한 버터와 볶은 채소, 트러플의 진한 향기가 삽시간에 주방 공기를 채웠다.“……누구야?”게슴츠레하게 풀린 눈을 한 서태우가 주방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다. 잠옷 바지에 가운만 대충 걸친 채, 이마를 찌푸리며 주방 안쪽을 노려보았다.“아직도 안 가고 여기서 뭐 하는 겁니까?”도혁은 미동조차 없이 단정하게 몸을 돌려 고개를 숙였다. 얼굴에는 조금 전 채린의 입술을 핥아 올리던 위험한 남자의 기색은 온데간데없었다. 표정은 이미 냉정한 셰프의 것으로 돌아가 있었다.“서 상무님, 깨우셨다면 죄송합니다. 주말 만찬에 쓸 가니시와 소스 베이스를 새벽까지 숙성시켜야 해서 작업 중이었습니다.”“새벽까지?”태우가 비틀거리며 아일랜드 식탁 쪽으로 다가왔다. 식탁 아래 웅크린 채린의 심장이 터질 것처럼 조여들었다. 남편의 슬리퍼 끝이 불과 수십 센티미터 앞에서 멈춰 섰다.태우는 냄비 안에서 끓어오르는 황금빛 육수를 내려다보며 코를 킁킁거렸다.향만큼은 흠잡기 어려웠다.자신의 체면을 세워줄 3스타 셰프가 밤새 일한다는 말에 태우의 미간이 조금 풀렸다.“하긴, 주말에 루미에르 부사장 놈 코를 납작하게 해줘야 하니까. 대충 차려내면 계약금 한 푼도 못 건져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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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화. 식탁 아래 맞닿은 발끝
창문을 뚫고 들어온 아침 햇살이 대리석 다이닝룸을 눈부시게 비추었다. 말끔한 네이비 스트라이프 수트를 차려입은 서태우가 식탁 상석에 다리를 꼬고 앉아 영문 경제 신문을 넘기고 있었다. 그 맞은편에는 단정한 베이지색 실크 원피스를 입은 채린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어젯밤에 셰프 놈이 밤새 설친 보람이 있어야 할 텐데.”태우가 헛기침을 하며 신문을 접었다. 그때, 말끔한 블랙 셰프 코트를 입은 강도혁이 은빛 트레이를 받쳐 들고 다이닝룸으로 들어섰다. 걸음은 절제돼 있었고, 표정은 손님 앞의 셰프답게 깍듯했다.하지만 채린은 남자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일렁이는 위험한 불꽃을 단번에 알아챘다.“모닝 코스 서빙하겠습니다.”도혁은 태우의 앞에 갓 구운 브리오슈와 수란을 곁들인 아스파라거스 구이를 놓았다. 태우가 나이프로 수란을 톡 터뜨리며 노른자를 찍어 입에 넣었다.“흠…… 과연 파리 3스타 수셰프답군. 계란 비린내 하나 없이 완벽해. 어제 네가 차렸던 그 엉망진창 밥상이랑은 차원이 달라.”태우는 음식을 씹으며 자연스럽게 채린을 향해 모욕을 던졌다.익숙한 가스라이팅이었다.오늘 그 말은 예전처럼 채린의 어깨를 움츠러들게 하지 않았다. 태우를 향한 경멸만 남았다. 도혁이 채린의 자리로 다가왔다. 남자는 채린의 앞에 트러플 오일을 두른 부드러운 스크램블 에그와 따뜻한 홍차 잔을 정갈하게 내려놓았다.“사모님, 식기 전에 드십시오.”정중한 존댓말. 누가 봐도 공적인 태도였다. 그 순간, 식탁 아래에서 가죽 구두 끝이 채린의 맨발등에 가볍게 닿았다.“……!”놀라 발을 빼려던 채린이 도혁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스크램블 에그를 눈짓한 뒤 아주 미세하게 턱을 끄덕였다.먹어도 괜찮다는 신호였다.채린은 잠깐 망설이다 발끝으로 그의 구두를 한 번 눌렀다. 알겠다는 답이었다. 도혁은 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식탁보 아래 숨은 짧은 접촉만으로 뺨에 열이 올랐다.“왜 그래? 아침부터 또 손을 덜덜 떨고 있어.”태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채린을 쏘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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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화. 폭언 뒤에 찾아온 구원
식탁 위로 번쩍 안아 올려진 채린의 호흡이 가파르게 흩어졌다. 도혁의 손이 채린의 허리를 받쳤고, 채린은 그의 셰프 코트 깃을 놓지 않았다.“어깨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멈출까요?”“아니요. 그냥…… 긴장돼서 그래요.”도혁이 채린의 대답을 확인하고 입술로 고개를 숙이려던 때였다.쾅, 쾅, 쾅! 쾅!현관문이 부서질 듯한 거친 발길질 소리와 함께 인터폰 경보음이 펜트하우스 복도를 사납게 뒤흔들었다.“문 열어! 백채린,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당장 문 안 열어?!”서태우의 악에 받친 고함이었다. 출근했던 남편이 불과 10분 만에 핏대를 세우며 다시 돌아온 것이었다. 채린의 얼굴에서 핏기가 한순간에 증발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며 사지가 돌처럼 굳어버렸다. 안심 걸쇠가 굳게 걸려 있는 것을 확인한 남편의 분노가 극에 달해 있었다.도혁은 놀라운 순발력으로 채린을 식탁에서 내려놓고, 그녀의 흐트러진 옷매무새와 머리칼을 단정히 정돈해 주었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현관으로 걸어가 도어락 걸쇠를 풀고 문을 활짝 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핏발 선 눈을 한 서태우가 짐승처럼 들이닥쳤다.“왜 문을 잠가놓고 지랄이야?! 셰프 놈이랑 대낮부터 안에서 대체 뭘 쑤석거리고 있었는데?!”태우는 거칠게 도혁의 어깨를 밀치며 거실로 난입했다. 차 열쇠와 함께 두고 간 긴급 결재 서류를 찾으려던 태우의 시선이, 소파 쿠션 밑에서 삐져나와 있는 노란 서류 봉투에 멎었다. 불길한 예감에 태우가 성큼 다가가 서류를 거칠게 낚아챘다. 봉투 안에서 튀어나온 종이를 확인한 순간, 남자의 얼굴이 흉측한 분노로 일그러졌다.[선우물산 담보권 실행 및 강제 매각 추진 계획서]태우가 고개를 돌려 주방 입구에 서 있던 채린을 살기 어린 눈으로 노려보았다.“이걸…… 네년이 봤어?”“…….”“감히 남편 서류를 뒤져? 네 친정아비 빚더미에서 건져줬더니 뒤통수를 쳐? 이 은혜도 모르는 기생충 같은 년이!”태우가 눈이 뒤집혀 달려들었다. 손바닥이 채린의 뺨을 향해 날아왔다. 채린은 본능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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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거식증의 족쇄를 부수다
채린은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주저앉은 채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조금 전 날아오던 태우의 손이 다시 보였다. 채린은 바닥의 줄눈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손끝 떨림이 조금 줄어든 뒤에야 도혁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이제…… 잡아줘요.”도혁이 그제야 가까이 와 무릎을 꿇고 채린의 어깨를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남자의 단단한 흉통과 묵직한 심장 박동이 채린의 귓가를 가득 채웠다.“끝났습니다, 채린 씨. 내가 막았습니다.”귓가에 울리는 다정한 음성에 채린의 가슴속에서 서러운 오열이 터져 나왔다. 채린은 도혁의 검은 셔츠 깃을 주먹으로 꽉 쥔 채,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남자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등을 쓸어내렸다. 힘을 주지 않고, 채린이 몸을 기댄 만큼만 받쳐주었다.한참을 울고 난 뒤 호흡이 잦아들자, 도혁이 팔을 받쳐 채린을 일으켜 주방 아일랜드 앞 의자에 앉혔다.“속이 비었을 겁니다. 뜨거운 건 피하고 맑은 것부터 드시죠.”도혁은 채린이 고개를 끄덕인 뒤에야 가스레인지 불을 켰다. 작은 무쇠 솥에서는 쌀밥 김이 올랐고, 옆 뚝배기에서는 무와 다시마 육수가 맑게 끓었다. 도혁은 완도산 활전복을 얇게 저며 육수에 살짝 데쳤다. 참기름 한 방울과 쪽파를 얹은 전복 맑은탕, 그리고 흰쌀밥을 작은 양으로 담았다.도혁은 소박한 반상을 채린 앞에 놓고 수저는 손이 닿는 곳에 내려두었다.“서양 요리만 할 줄 알았습니까?”“조금요.”채린의 대답에 도혁의 입가가 아주 잠깐 풀렸다.“복수는 나중입니다. 지금은 한 숟갈 넘기고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는 게 먼저예요.”채린은 흰쌀밥을 조금 떠 입에 넣었다. 오래 씹을수록 밥알에서 구수한 단맛이 났다. 이어 전복 맑은탕의 국물을 한 모금 넘겼다. 명치가 순간 굳었지만, 도혁은 더 먹으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여기서 멈춰도 됩니다.”그가 그릇을 치우려 하자 채린이 수저를 붙잡았다.“아니요. 오늘은 제가 끝낼 만큼 정할게요.”채린은 숨을 고른 뒤 밥을 두 숟갈 더 먹었다.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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