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빙의자는 억울한 죽음을 거부한다: Capítulo 11 - Capítulo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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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지옥의 PT 8번 1

​"자, 먹기 전에 몸부터 풀자."​나는 손가락 8개를 펼쳐 보였다.​"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 지금부터 실시할 동작은 PT 8번, 온몸 비틀기다."​놈들은 몰랐다.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게 유격 훈련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오늘 먹을 고기가 그들의 마지막 만찬(?)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온몸 비틀기라니, 그것이 호랑이를 잡는 비기입니까?"​최가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그의 눈빛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천하장사가 전수해 주는 무술. 무협지에서나 나올 법한 절세 신공의 이름을 기대했으리라. 용이 승천하는 몸짓이라거나, 맹호가 포효하는 자세 같은 거창한 것들 말이다.​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이것만 제대로 익히면 호랑이 허리도 꺾을 수 있지. 물론, 너희 허리가 먼저 끊어질 수도 있겠지만."​"대장님만 믿겠습니다! 무엇이든 시켜만 주십시오!"​장정들이 주먹을 불끈 쥐며 의지를 불태웠다. 순진한 녀석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았다. 그들은 아직 몰랐다. 21세기 대한민국 남성들이 왜 '8번'이라는 숫자만 들어도 치를 떨며 경기를 일으키는지.​"좋아. 전원 상의 탈의."​내 명령에 서른 명의 사내들이 주섬주섬 옷을 벗었다.​볼품없는 몸뚱이들이 드러났다. 배가 나온 놈, 갈비뼈가 앙상한 놈, 근육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물렁살들. 저런 몸으로 전쟁터에 나가면 칼침 맞기 딱 좋은 과녁판이 될 뿐이다.​"간격 벌려. 서로 팔 닿지 않게."​객주 마당이 꽉 찼다.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마당 한가운데, 반라의 사내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섰다. 구경하던 서백설이 흥미롭다는 듯 툇마루에 턱을 괴고 앉았다.​"자, 눕는다."​"눕습니까? 누워서 하는 무술입니까?"​"그래. 제일 편한 자세지. 일단 누워."​녀석들이 흙바닥에 등을 대고 누웠다. 나는 그들 사이를 천천히 걸어 다니며 몽둥이를 탁탁 두드렸다.​"다리는 모으고, 무릎은 펴라. 손은 머리 뒤로 깍지 낀다."​"이, 이렇게 말입니까?"​"그래.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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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지옥의 PT 8번 2

​"킁킁."​나는 일부러 코를 킁킁거리며 큰 소리로 말했다.​"아, 냄새 좋다. 백설아, 고기 다 익었냐?"​마루에 앉아 있던 서백설이 눈치 빠르게 받아쳤다.​"그럼요. 가마솥에서 아주 펄펄 끓고 있어요. 국물이 뽀얀 게 진국이네요."​부엌 쪽에서 구수한 된장 냄새와 기름진 고기 냄새가 바람을 타고 마당으로 흘러나왔다.​지옥의 훈련장 한복판에 떨어진 천국의 향기.​사내들의 코가 벌름거렸다. 눈이 풀려가던 놈들의 동공에 다시 초점이 잡혔다. 고기. 그것도 천하일미라는 호랑이 고기. 저걸 먹어야 한다. 여기서 쓰러지면 국물도 없다.​"들었지? 끝내면 고기다. 못 끝내면 국물 한 방울도 없다."​"으아아아아!"​최가가 괴성을 지르며 상체를 비틀었다.​"육십! 하나! 육십! 둘!"​인간의 욕구란 참으로 단순하고도 강력했다. 식욕이 고통을 이겼다. 옆에 놈이 악을 쓰니 나도 질 수 없다는 경쟁심까지 발동했다.​"칠십... 팔십..."​마당은 아수라장이었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라 시야를 가렸고, 사내들의 몸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들은 더 이상 오합지졸 건달이 아니었다. 생존을 위해, 아니 고기를 위해 몸부림치는 처절한 짐승들이었다.​"구십 구! 백!"​"유격!!"​마지막 구호가 터져 나오는 순간, 사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바닥에 널브러졌다.​"허억... 허억..."​"죽... 죽는 줄 알았네..."​아무도 일어나지 못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묘했다.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으면서도, 해냈다는 성취감이 섞인 기묘한 표정.​나는 박수를 짝짝 쳤다.​"잘했다. 낙오자 없이 전원 통과."​내 칭찬에 몇몇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일어날 힘 있는 놈들은 부엌으로 와라. 선착순이다."​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시체처럼 누워있던 놈들이 좀비처럼 꿈틀거리며 일어났다. 기어서라도 가겠다는 집념.​부엌 앞에는 거대한 무쇠 가마솥이 걸려 있었다.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고, 솥뚜껑 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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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탐관오리의 호출 1

​지옥의 PT 체조와 호랑이 고기 회식으로부터 열흘이 지났다.​그사이 익호군 녀석들은 눈부시게 달라졌다. 흐물거리던 물살은 쏙 빠지고, 그 자리에 단단한 근육이 들어찼다. 눈빛에는 독기가 서렸고, 내 명령이라면 불속이라도 뛰어들 기세가 충만했다.​문제는 그 기세만큼이나 식욕도 폭발했다는 점이다.​"후루룩! 쩝쩝!""아줌마! 여기 밥 더 주쇼!"​점심시간.객주 마당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훈련과 노동으로 배가 꺼진 장정 서른 명이 밥을 마시다시피 하고 있었다.​나는 툇마루에 앉아 이쑤시개를 물고 그 흐뭇한 광경을 바라보았다. 잘 먹어야 잘 싸우는 법이다. 내 군대는 조선 팔도에서 가장 잘 먹는 군대가 될 것이다.​하지만 내 옆에 앉은 물주, 서백설의 생각은 달랐다.​"하아..."​그녀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장부를 넘겼다. 손가락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대장님. 아니, 김덕령 씨. 이거 보여요?"​그녀가 장부를 내 눈앞에 들이밀었다.​"쌀독이 비어가고 있다고요. 호랑이 판 돈, 벌써 3할이나 까먹었어요."​"에이, 3할이면 아직 7할이나 남았네. 넉넉하구먼."​"이게 고작 열흘 치라고요! 이 속도면 두 달도 못 가서 우리 다 손가락 빨아야 해요. 당신, 대책 있어요?"​서백설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그녀는 철저한 상인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걸 가장 싫어하는 부류. 지금 그녀의 눈에 익호군 녀석들은 듬직한 병사가 아니라, 쌀을 축내는 거대한 식충이들로 보일 터였다.​"걱정 마. 투자는 회수 기간이 필요한 법이야."​나는 짐짓 여유를 부렸다.​"그리고 쟤들이 밥만 축내나? 밥값은 하고 있잖아."​나는 마당 한구석에 쌓인 자재들을 가리켰다.​오전에는 체력 단련, 오후에는 대민 지원 겸 진지 구축 훈련. 녀석들은 내 지시에 따라 마을의 무너진 담장을 보수하고, 얕은 개울에 둑을 쌓고 있었다.​"밥값요? 저게 돈이 돼요? 마을 사람들한테 서여(참마) 몇 개 얻어먹는 게 수익의 전부잖아요."​"돈보다 중요한 게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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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탐관오리의 호출 2

​"군사 훈련이라니요. 보시다시피 마을 담장 보수 공사 중입니다. 이게 죄가 됩니까?"​"시끄럽다! 네놈이 왈패들을 모아놓고 괴상한 구호를 외치며 난동을 부린다는 소문이 파다해! 잔말 말고 따라오너라. 현감 사또께서 친히 문초하실 것이다."​현감. 담양 현감.​이 시기의 담양 현감이라면...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적어도 명장(名將) 리스트에는 없는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십중팔구 제 밥그릇 챙기기 바쁜 탐관오리거나 무능한 관료일 터.​"알겠습니다. 가죠."​나는 순순히 괭이를 내려놓았다.​"대, 대장님!"​최가가 당황해서 소리쳤다. 익호군 녀석들이 삽을 들고 우르르 몰려나왔다. 분위기가 험악해졌다.​"이놈들이! 관군에게 대들 셈이냐! 네놈들도 모조리 잡아넣어 주마!"​포교가 육모방망이를 빼 들고 위협했다. 하지만 30명의 근육질 사내들이 인상을 쓰며 다가오자, 말 위에서 흠칫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그만."​내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너희는 하던 일 계속해라. 담장 다 못 쌓으면 저녁 없는 거 알지?"​"하, 하지만 대장님을 잡아간다지 않습니까!"​"잡혀가는 거 아니야. 사또 나으리가 차 한잔하자고 부르시는 거니까, 가서 말씀 좀 나누고 올게."​나는 녀석들을 안심시키고 포교를 바라보았다.​"오라는 필요 없습니다. 도망 안 가니까 앞장서시죠."​포교는 내 기세에 눌렸는지, 아니면 뒤에 있는 30명의 떡대들이 무서웠는지 굳이 오랏줄을 묶으려 들지는 않았다.​"흥, 객기 부리기는. 가서도 그 뻣뻣한 고개가 유지되나 보자."​포교들이 말을 돌렸다. 나는 그 뒤를 터덜터덜 따라갔다.​객주 앞을 지날 때였다.소식을 들은 서백설이 치마를 걷어 올리고 달려 나왔다.​"이게 무슨 일이에요! 관아라니요!"​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는 장사치다. 관아에 끌려간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한번 들어가면 뼈와 살이 깎여나가고, 가진 재산을 다 털리기 전까진 나오지 못한다는 것을.​"별일 아니야. 현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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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석등이 부러지던 날 1

성큼성큼.죄인이 제 발로, 그것도 제집 안방 드나들듯 당당하게 관아로 들어가는 꼴은 난생처음 보겠지.​마당 꼬라지 봐라. 아주 살벌하다.​형틀이 마당 한가운데 떡하니 놓여 있고, 육모방망이를 든 포졸들이 양옆으로 쫙 깔렸다. 죄인 기를 꺾어보겠다는 전형적인 쇼맨십인데, 나한테 통할 리가 있나.​그리고 저 높은 대청마루 위.배가 남산만 하게 나온 사내가 거만하게 앉아 있었다.​담양 현감.​많이도 해 처먹었나 보네, 얼굴 봐라.기름진 얼굴에 탐욕이 아주 그냥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옆에는 족제비처럼 생긴 이방이 부채질을 하며 간신배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었다. 딱 봐도 견적 나온다. 이 동네 예산이 어디로 줄줄 샜는지.​"네놈이 덕령이냐?"​현감이 탁자를 쾅 내리치며 호통을 쳤다. 뱃살이 출렁거리는 게 아주 가관이다.​"죄인은 오라를 받아라! 뭣 하고 서 있느냐, 당장 저놈을 꿇려라!"​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포졸들이 달려들었다.​"무릎 꿇어!"​한 놈이 내 오금을 몽둥이로 후려치려 했다.​나는 피하지 않았다. 대신 다리에 힘을 빡 줬다. 허벅지 근육이 돌덩이처럼 단단하게 뭉쳤다.​딱!​경쾌한 타격음이 났다. 근데 비명을 지른 건 내가 아니었다.​"아이고, 손이야!"​때린 포졸이 몽둥이를 놓치고 손을 털었다. 전봇대를 풀스윙으로 때린 것 같은 진동이 손목을 타고 올라갔을 거다. 내 다리? 모기 물린 자국도 안 남았다.​"어...?"​포졸들이 당황해서 뒷걸음질 쳤다. 사람을 때렸는데 몽둥이가 튕겨 나가는 기이한 현상. 본능적으로 느낀 거지. 아, 이 새끼는 건드리면 안 되는 놈이구나.​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현감을 쳐다봤다.​"사또 나으리."​목소리를 좀 깔았다. 동헌 기둥이 울릴 만큼 묵직하게.​"무릎은 죄지은 놈이나 꿇는 겁니다. 저는 죄를 지은 적이 없는데, 왜 꿇어야 합니까?"​"뭐, 뭐라? 이놈이 감히 관아에서 말대꾸를 해?"​현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감히 천한 것이, 그것도 죄인 주제에 눈 똑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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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석등이 부러지던 날 2

​"흡!"​우웅-​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돌덩이가 허공으로 솟구쳤다.​나는 그것을 한 손으로, 마치 공기놀이하는 깃털처럼 가볍게 받쳐 들었다. 어깨 위에서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가 위태롭게 균형을 잡았다.​"......!!"​현감 눈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이방은 들고 있던 부채를 바닥에 떨어뜨렸고, 창을 겨누던 포졸들은 "히익!" 하고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사람이 아니다.저 무거운 돌을, 그것도 한 손으로 들고 있다니.​마당에는 숨 막히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나의 거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나는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태연하게 서 있었다.​하지만 이걸로 끝내면 재미없지.단순히 힘이 센 장사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뼛속까지 시린 공포를 심어주려면 '파괴'가 필요하다.​나는 들고 있는 지붕돌을 손가락 끝으로 꽉 쥐었다.​빠드득.​소름 끼치는 소리가 났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 같기도 하고, 바위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 같기도 했다. 단단한 화강암 표면에 미세한 금이 가기 시작했다.​"사또 나으리."​나는 석등을 든 채, 현감을 똑바로 쳐다보며 씨익 웃었다.​"제가 억울한 누명을 쓰면, 홧김에 손에 힘이 들어갈지도 모릅니다."​콰직!​손아귀에 힘을 폭발시켰다.​그러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돌의 귀퉁이가 과자 부스러기처럼 부서져 내린 것이다. 돌가루가 하얀 눈처럼 마당에 흩날렸다.​"이렇게 말입니다."​협박이다.그것도 아주 노골적이고, 우아하며, 압도적인 공포를 동반한 협박.​'네 머리통도 이 돌처럼 부숴줄 수 있다.' 이거지.​현감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더니, 턱이 덜덜거리며 부딪히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그는 깨달았을 것이다.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건 곤장 몇 대로 다스릴 수 있는 백성이 아니라, 통제 불가능한 괴물이라는 것을. 저 돌덩이가 내 머리 위로 날아온다면? 상상만으로도 오줌을 지릴 공포였으리라.​나는 돌덩이를 다시 제자리에 내려놓았다.​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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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석등이 부러지던 날 3

​"크, 크흠! 뭐... 듣고 보니 일리가 있구먼. 백성들의 안전을 생각하는 자네의 충심, 내가 높이 사겠네."​현감이 헛기침하며 태세를 전환했다. 뻔뻔하기가 철판을 깔았다.​"벌금은 면제해주마. 대신! 앞으로 마을 치안 유지에 힘써야 할 것이야!"​"물론입니다. 아, 그리고 하나 더."​나는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미리 준비해 온 것이다.​[염초 채취 및 화약 제조 허가 요청서]​"이게 뭔가?"​이방이 종이를 받아 현감에게 건넸다. 내용을 읽은 현감의 눈이 다시 한번 튀어나올 듯 커졌다.​"화, 화약?! 미쳤느냐! 이건 나라에서 엄격하게 통제하는 물품이다! 네놈이 진짜 역모라도 꾸미는 게냐?"​"멧돼지 잡으려면 필요해서 그럽니다."​나는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아까 보셨잖습니까. 제 힘이 세긴 하지만, 산군 같은 놈들이 떼로 덤비면 저도 힘듭니다. 백성들의 안전을 위해서 화약 좀 쓰겠다는 건데, 사또께서 그걸 막으시면..."​나는 슬쩍 아까 부숴뜨린 석등을 쳐다봤다.​"백성들이 참 슬퍼할 겁니다. 저도 슬플 거고요."​'안 해주면 또 부순다?'​무언의 압박. 현감은 종이와 내 주먹을 번갈아 봤다.​선택지는 뻔했다.거절하고 지금 당장 이 괴물에게 해코지를 당할 위험을 감수하느냐, 아니면 눈 딱 감고 도장 찍어주고 무사히 보내느냐.​"크, 크흠! 뭐, 멧돼지 퇴치용이라니 어쩔 수 없구먼. 특별히 허가하는 것일세."​현감이 붓을 들었다. 손이 덜덜 떨렸지만, 기어이 도장을 꾹 찍었다.​"단! 사고가 나면 전적으로 자네 책임이야! 그리고 화약은 절대 딴 데 쓰면 안 되네!"​"물론입니다. 사또 나으리의 애민 정신에 깊이 감동했습니다."​나는 현감이 내민 허가증을 낚아채듯 받아 들었다.​됐다.돈 한 푼 안 들이고 관의 허가를 따냈다. 이제 대놓고 화약을 만들어도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다. 이게 바로 무자본 M&A... 아니, 무자본 협상이지.​나는 정중하게, 하지만 뼈가 있는 목소리로 인사했다.​"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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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쇼핑과 스토커 1

​종이 한 장.꼬장꼬장한 현감이 덜덜 떨며 찍어준 도장이 선명한 허가증.​이 얇은 종이 쪼가리가, 조선의 운명을 뒤바꿀 가장 강력한 면허증이었다.이 시대에서 화약 재료를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건, 곧 '힘'을 비축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나는 종이를 곱게 접어 서백설에게 건넸다.​"자, 이제 물건 사러 가자."​내 말에 서백설이 종이를 받아 챙기며 물었다.​"화약 만들려고요? 재료는 뭔지 알아요?"​"아니? 모르는데?"​나는 아주 당당하게 대답했다. 서백설이 걷다가 제 발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그녀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네? 지금 뭐라고요?"​"모른다고. 그냥 뭐, 펑 터지는 거 섞으면 되는 거 아냐?"​"하... 미치겠네, 진짜."​서백설이 이마를 짚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니, 재료도 모르면서 허가증은 왜 받아온 거예요? 이 신묘한 남자 뭐지? 대책은 있어요?"​"대책이 왜 없어. 너 있잖아. 담양 바닥 꽉 잡고 있다며. 화약 재료 파는 데 알 거 아냐."​나는 뻔뻔하게 배를 내밀었다. 서백설이 기가 차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와... 진짜 뻔뻔함이 하늘을 찌르네요. 내가 몰랐으면 어쩌려고 그랬어요?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인간이랑 동업을 해가지고."​​그녀는 투덜거렸지만, 발걸음은 이미 앞장서고 있었다. 역시 내 파트너답다. 불평은 해도 일 처리는 확실하지.​"따라와요. 유황이랑 숯, 그리고 염초 흙. 그거 세 개면 돼요. 내가 알아서 구할 테니까 당신은 짐이나 날라요."​"갑시다. 짐꾼 준비 완료."​우리는 담양 장터의 후미진 골목으로 들어갔다.​일반적인 약재상이 아니었다. 간판도 없이 약초 냄새만 풍기는 허름한 창고 같은 곳. 서백설이 주인장과 몇 마디 은어를 주고받더니, 곧장 창고 깊숙한 곳으로 안내받았다.​"유황 있어요? 피부병 약에 쓸 거 말고, 화공 약품용으로."​주인장이 눈을 가늘게 뜨며 우리를 훑어보았다.​"관아 허가는 받았소? 유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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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쇼핑과 스토커 2

손잡이도 따로 없었다. 가장자리의 튀어나온 부분을 잡아야 했다.​나는 허리를 숙이고, 솥의 양 끝을 잡았다.​"어이, 젊은이! 허리 다치네! 객기 부리지 말고 수레 불러!"​대장장이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나는 들리지 않았다.​심호흡을 했다. 단전에서부터 기운을 끌어올렸다. 허벅지와 등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했다.​"흡!"​기합과 함께 힘을 주었다.​끼기기긱-!​무거운 쇠가 흙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우웅-​거대한 솥단지가 지면에서 떨어졌다.​나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머리 위까지 들어 올렸다. 핏줄이 터질 듯 솟아오르고, 관절 마디마디가 비명을 질렀지만, 들어 올리는 속도는 줄지 않았다.​척.​나는 솥을 등 뒤에 봇짐처럼 멨다. 유황 자루와 숯 가마니 위로 거대한 무쇠 솥이 덮개처럼 얹혔다.​영락없는 인간 거북이. 아니, 인간 탱크였다.​"......"​정적.​대장장이는 들고 있던 집게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입을 떡 벌린 채, 나를 올려다보았다. 평생 쇠를 만지며 살아온 그에게도 이런 광경은 처음이었으리라.​서백설은 이마를 짚었다.​"하... 진짜 인간이 아니네."​"계산은 이분이 하실 겁니다. 싸게 좀 해주십쇼."​나는 멍하니 서 있는 대장장이에게 씩 웃어 보이고 먼저 걸음을 옮겼다. 발을 디딜 때마다 흙바닥이 움푹움푹 패였다.​장터를 빠져나오는 길.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저, 저게 뭐야?""사람이 솥을 지고 가네?""천하장사다! 천하장사가 나타났다!"​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김덕령이 호랑이를 잡더니, 이제는 집채만 한 솥을 지고 다닌다고. 나는 그 시선을 즐기며 유유히 걸었다.​"무겁지 않아요?"​서백설이 헐레벌떡 쫓아와 물었다.​"운동 되고 좋네. 이게 다 근육으로 가는 거야."​"하여간 못 말려. 근데 아까부터 누가 따라오는 거 알아요?"​역시. 그녀도 눈치챘나 보다. 장사꾼의 감이란 무서운 법이다.​나도 알고 있었다. 약재상에서 나올 때부터 등 뒤에 끈적하게 달라붙은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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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쇼핑과 스토커 3

​"미쳤어요?! 저게 얼마짜린데 다 부어요! 조금씩 넣어야지!"​"아, 몰라! 사나이가 통이 커야지! 숯도 가져와! 몽땅 털어넣어!"​나는 유황 자루를 솥단지 위로 들어 올렸다. 콸콸 쏟아부을 기세였다.​"안 돼요! 잠깐만요!"​서백설이 말렸지만, 나는 들은 척도 안 했다.​"가자! 폭죽놀이 한번 해보자고!"​그때였다.​"이보시오! 멈추시오!"​대문 쪽에서 다급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나는 씩 웃었다.걸려들었구나.​기술자란 족속들은 다 똑같다. 눈앞에서 귀한 재료가 낭비되는 꼴을 보면 참지 못한다. 게다가 엉터리 공정으로 물건을 망치는 꼴은 더더욱 못 참지. 당신이라면 무조건 튀어나올 줄 알았다.​대문을 박차고 들어온 사내. 허름한 갓에 낡은 도포, 손에는 기름때가 묻어 있는 남자. 나대용이었다. 그는 헐레벌떡 뛰어와 내 앞을 막아섰다.​"미쳤군, 미쳤어! 어찌 그런 미친 짓을 한단 말이냐! 그 귀한 유황을 저 똥물에 다 처박으려 하다니!"​그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했다. 정말로 화가 난 표정이었다.​나는 짐짓 모른 척하며 그를 쳐다보았다.​"누구신데 남의 작업에 훈수십니까? 내 돈 주고 산 건데 내 맘대로 붓지도 못합니까?"​"당신 돈인 건 알겠으나, 재료가 아깝지 않소! 그리고 순서가 틀려먹었소! 염초를 먼저 걸러내고 농축한 뒤에 섞어야지, 무작정 탕국 끓이듯 다 때려 넣으면 그게 죽이지 화약이오?"​나대용은 답답해 미치겠다는 듯 가슴을 쳤다.​"물 양도 너무 많고, 재를 섞어서 불순물을 걸러내는 과정도 없지 않소! 거름이나 만들 셈이오?"​역시 전문가다.딱 한 번 훑어보고 문제점을 죄다 짚어냈다.​나는 유황 자루를 슬그머니 내려놓았다.​"아니, 그럼 뭐 아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우린 이게 최선인데."​"허허. 내가 화약 냄새만 맡고 산 세월이 얼만데."​그는 혀를 차며 솥 안을 들여다보았다.​"유황은 좋구먼. 숯도 버드나무 숯이고. 재료는 상급인데, 요리사가 꽝이라니."​그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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