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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탐관오리의 호출 1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8 16:19:39

​지옥의 PT 체조와 호랑이 고기 회식으로부터 열흘이 지났다.

​그사이 익호군 녀석들은 눈부시게 달라졌다. 흐물거리던 물살은 쏙 빠지고, 그 자리에 단단한 근육이 들어찼다. 눈빛에는 독기가 서렸고, 내 명령이라면 불속이라도 뛰어들 기세가 충만했다.

​문제는 그 기세만큼이나 식욕도 폭발했다는 점이다.

​"후루룩! 쩝쩝!"

"아줌마! 여기 밥 더 주쇼!"

​점심시간.

객주 마당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훈련과 노동으로 배가 꺼진 장정 서른 명이 밥을 마시다시피 하고 있었다.

​나는 툇마루에 앉아 이쑤시개를 물고 그 흐뭇한 광경을 바라보았다. 잘 먹어야 잘 싸우는 법이다. 내 군대는 조선 팔도에서 가장 잘 먹는 군대가 될 것이다.

​하지만 내 옆에 앉은 물주, 서백설의 생각은 달랐다.

​"하아..."

​그녀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며 장부를 넘겼다. 손가락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대장님. 아니, 김덕령 씨. 이거 보여요?"

​그녀가 장부를 내 눈앞에 들이밀었다.

​"쌀독이 비어가고 있다고요. 호랑이 판 돈, 벌써 3할이나 까먹었어요."

​"에이, 3할이면 아직 7할이나 남았네. 넉넉하구먼."

​"이게 고작 열흘 치라고요! 이 속도면 두 달도 못 가서 우리 다 손가락 빨아야 해요. 당신, 대책 있어요?"

​서백설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그녀는 철저한 상인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걸 가장 싫어하는 부류. 지금 그녀의 눈에 익호군 녀석들은 듬직한 병사가 아니라, 쌀을 축내는 거대한 식충이들로 보일 터였다.

​"걱정 마. 투자는 회수 기간이 필요한 법이야."

​나는 짐짓 여유를 부렸다.

​"그리고 쟤들이 밥만 축내나? 밥값은 하고 있잖아."

​나는 마당 한구석에 쌓인 자재들을 가리켰다.

​오전에는 체력 단련, 오후에는 대민 지원 겸 진지 구축 훈련. 녀석들은 내 지시에 따라 마을의 무너진 담장을 보수하고, 얕은 개울에 둑을 쌓고 있었다.

​"밥값요? 저게 돈이 돼요? 마을 사람들한테 서여(참마) 몇 개 얻어먹는 게 수익의 전부잖아요."

​"돈보다 중요한 게 민심이야. 나중에 전쟁 터지면 알게 될 거야. 우리를 숨겨주고 먹여줄 사람은 결국 이 마을 사람들이니까."

​"전쟁, 전쟁. 그놈의 전쟁 타령. 진짜 오긴 오는 거예요?"

​서백설은 투덜거렸지만, 밥통이 비어가는 녀석들에게 "야! 거기 천천히 좀 먹어! 체하겠다!"라고 소리치며 챙겨주는 걸 잊지 않았다. 겉으로는 깐깐해도 속정은 깊은 여자다.

​"애들아! 밥 다 먹었으면 일어나라!"

​내 고함에 녀석들이 숟가락을 놓고 벌떡 일어났다.

​"오후 일과 시작한다. 오늘은 마을 입구 방벽 공사다. 해지기 전까지 못 끝내면 저녁 없는 거 알지?"

​"옛! 알겠습니다!"

​녀석들의 목소리에 군기가 바짝 들어있었다. 저녁이 없다는 말은 그들에게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기에, 동작이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작업 현장은 마을 어귀였다.

​기존의 흙담은 엉성했다. 장마 한 번이면 무너질 수준이었다. 나는 현대 공병 기술을 접목해 제대로 된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돌 날라! 큰 놈은 밑에 깔고, 작은 놈은 틈새에 끼워! 진흙 반죽 꼼꼼하게 안 해?"

​나는 뒷짐을 지고 감독했다.

​최가가 곰만 한 바위를 낑낑대며 들고 오다가 비틀거렸다.

​"대장님! 이 돌은 너무 무겁습니다요!"

​"비켜 봐."

​나는 최가를 밀어내고 바위를 한 손으로 잡았다.

​"흡!"

​가볍게 어깨에 메고 성큼성큼 걸어가 담장 위에 쿵 내려놓았다.

​"우와아..."

​녀석들이 입을 딱 벌리고 박수를 쳤다. 열흘을 봐도 적응이 안 되는 힘인가 보다.

​"구경할 시간 있으면 삽질이나 해! 전쟁 터지면 저 돌담이 너희 목숨 줄이 될 거다."

​녀석들이 다시 미친 듯이 삽질을 시작했다.

​나는 땀을 닦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평화로웠다.

하지만 이 평화가 폭풍전야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호랑이 사냥, 사설 부대 창설, 그리고 마을 요새화.

내 행보가 너무 눈에 띄었다. 조선 사회에서 이런 튀는 행동은 필연적으로 '관(官)'의 주목을 끌게 되어 있다.

​아니나 다를까.

​"게 누구 없느냐!"

​마을 어귀에서 앙칼진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작업을 하던 녀석들이 멈칫했다. 나도 고개를 돌렸다.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말 세 필이 달려오고 있었다.

​관복을 입은 사내들. 허리에는 붉은 오라를 차고, 손에는 육모방망이를 든 꼴이 영락없는 관아의 포교들이었다.

​'올 것이 왔군.'

​나는 괭이를 짚고 그들을 기다렸다.

​말 위에서 내려다보는 포교들의 눈빛이 거만했다. 가운데 있는, 수염이 쥐새끼처럼 난 녀석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네놈이 김덕령이냐?"

​반말이다.

기분이 확 상했다. 나는 45세 아재 멘탈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시대에서 나는 그저 덩치 큰 백수 건달일 뿐이다.

​"그렇습니다만."

​"오라를 받아라."

​포교가 다짜고짜 붉은 오랏줄을 내 발치에 던졌다.

​작업하던 익호군 녀석들이 술렁거렸다. 최가가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낫을 고쳐 쥐었다. 내가 눈짓으로 가만히 있으라고 신호를 보냈다. 여기서 공권력과 정면충돌하면 진짜 역적이 된다.

​"죄목이 뭡니까?"

​나는 태연하게 물었다.

​"죄목? 네놈이 더 잘 알 텐데?"

​포교가 말 채찍으로 나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사사로이 무리를 지어 군사 훈련을 시키고, 관의 허락도 없이 산군을 밀도살하여 막대한 이득을 취했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이는 국법을 어긴 중죄다!"

​사병(私兵) 양성과 밀도살.

걸면 걸리는 코걸이, 귀걸이 같은 죄목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냄새를 맡았다. 저 쥐새끼 같은 놈들의 눈빛에서 '정의 구현'의 의지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로지 탐욕. 호랑이 가죽 판 돈 냄새를 맡고 달려온 하이에나들의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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