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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탐관오리의 호출 2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8 16:19:59

​"군사 훈련이라니요. 보시다시피 마을 담장 보수 공사 중입니다. 이게 죄가 됩니까?"

​"시끄럽다! 네놈이 왈패들을 모아놓고 괴상한 구호를 외치며 난동을 부린다는 소문이 파다해! 잔말 말고 따라오너라. 현감 사또께서 친히 문초하실 것이다."

​현감. 담양 현감.

​이 시기의 담양 현감이라면...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적어도 명장(名將) 리스트에는 없는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십중팔구 제 밥그릇 챙기기 바쁜 탐관오리거나 무능한 관료일 터.

​"알겠습니다. 가죠."

​나는 순순히 괭이를 내려놓았다.

​"대, 대장님!"

​최가가 당황해서 소리쳤다. 익호군 녀석들이 삽을 들고 우르르 몰려나왔다.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이놈들이! 관군에게 대들 셈이냐! 네놈들도 모조리 잡아넣어 주마!"

​포교가 육모방망이를 빼 들고 위협했다. 하지만 30명의 근육질 사내들이 인상을 쓰며 다가오자, 말 위에서 흠칫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만."

​내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너희는 하던 일 계속해라. 담장 다 못 쌓으면 저녁 없는 거 알지?"

​"하, 하지만 대장님을 잡아간다지 않습니까!"

​"잡혀가는 거 아니야. 사또 나으리가 차 한잔하자고 부르시는 거니까, 가서 말씀 좀 나누고 올게."

​나는 녀석들을 안심시키고 포교를 바라보았다.

​"오라는 필요 없습니다. 도망 안 가니까 앞장서시죠."

​포교는 내 기세에 눌렸는지, 아니면 뒤에 있는 30명의 떡대들이 무서웠는지 굳이 오랏줄을 묶으려 들지는 않았다.

​"흥, 객기 부리기는. 가서도 그 뻣뻣한 고개가 유지되나 보자."

​포교들이 말을 돌렸다. 나는 그 뒤를 터덜터덜 따라갔다.

​객주 앞을 지날 때였다.

소식을 들은 서백설이 치마를 걷어 올리고 달려 나왔다.

​"이게 무슨 일이에요! 관아라니요!"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는 장사치다. 관아에 끌려간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한번 들어가면 뼈와 살이 깎여나가고, 가진 재산을 다 털리기 전까진 나오지 못한다는 것을.

​"별일 아니야. 현감이 나 좀 보자네."

​"그게 별일이 아니에요? 내가 뭐랬어요! 너무 튀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서백설이 발을 동동 구르며 품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빳빳한 종이 뭉치였다.

​"이거 가져가요. 가서 이방한테 찔러주고, 사또한테는 납작 엎드려서 잘못했다고 빌어요. 쌀 50석은 족히 바꿀 수 있는 어음이에요. 돈으로 해결하는 게 제일 깔끔해요."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내 손에 어음을 쥐여주려 했다. 현실적인 판단이었다. 조선 시대에 재물만큼 확실한 변호사는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어음을 밀어냈다.

​"됐어. 돈 아깝게. 우리 쌀 살 돈도 없다며."

​"지금 돈이 문제예요? 당신 미쳤어요? 거기가 어디라고 빈손으로 가요! 곤장 맞고 병신 되고 싶어요?"

​서백설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동업자로서의 걱정인지, 아니면 나라는 인간에 대한 연민인지 모를 감정이었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

​"걱정 마. 나 김덕령이야. 곤장 몇 대 맞는다고 부러질 뼈도 아니고."

​"지금 농담이 나와요?"

​"그리고, 내가 빈손은 아니지."

​나는 주먹을 쥐어 보였다.

​"아주 확실한 뇌물을 들고 가니까."

​"그게 뭔데요?"

​"이거."

​나는 내 주먹을 그녀의 눈앞에 들어 보였다.

​"이걸로 계산하고 올게."

​서백설은 멍한 표정으로 내 주먹을 바라보았다. 설마 관아에 가서 사또를 패겠다는 건가? 하는 경악이 스쳐 지나갔다.

​"기다리고 있어. 저녁 먹기 전엔 올 테니까. 아, 오늘 저녁은 고기 좀 볶아놔. 힘쓰고 오면 배고플 거 같아서."

​나는 돌아섰다.

​포교들이 재촉했다.

​"빨리 안 오고 뭐 하느냐! 꾸물거리다간 몽둥이찜질을 당할 것이다!"

​나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마을 사람들이 길가에 나와 웅성거리고 있었다.

"덕령이가 잡혀간대."

"아이고, 젊은 사람이 아깝게 됐네."

"호랑이 잡았다고 너무 설쳤어."

​동정의 시선, 비웃음 섞인 시선.

그 모든 시선을 등에 업고 나는 걸었다.

​내 머릿속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현감이라.'

​돈 냄새를 맡고 달려든 하이에나.

그를 어떻게 요리해야 할까.

​그냥 돈을 주고 무마할 수도 있다. 서백설의 말대로 그게 가장 안전하고 편한 길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앞으로도 계속 뜯기게 된다. 놈들은 한 번 피 맛을 보면 멈추지 않는다.

​게다가 나는 앞으로 더 큰일을 벌여야 한다. 화약을 만들고, 무기를 제작하고, 배를 만들어야 한다. 그럴 때마다 관아의 눈치를 보고 뇌물을 바쳐야 한다면, 전쟁 준비는커녕 뒷수습하다가 볼일 다 본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확실히 해야 한다.

​누가 갑(甲)이고, 누가 을(乙)인지.

​관아의 문턱을 넘는 순간, 나는 단순한 백성 김덕령이 아니라, 이 난세의 주도권을 쥔 협상가로서 마주할 것이다.

​담양 관아의 솟을대문이 보였다.

창을 든 포졸들이 위압적으로 서 있었지만, 내 눈에는 그저 나무토막을 든 허수아비로 보였다.

​"들어가시죠."

​내가 먼저 말했다. 포교가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관아 마당으로 발을 들였다.

탐관오리 나으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해줄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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