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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hat ng Kabanata ng 불온한 정착: Kabanata 81 - Kabanata 90

322 Kabanata

81화

별장에서 돌아온 지 사흘이 지났다. CH건설 본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돌아가고 있었다. 밀린 결재가 책상 위에 쌓였고, 강수는 비워둔 이틀의 대가를 치르듯 오전 내내 회의와 보고를 이어갔다. 문제는 사라였다. 너무 멀쩡했다. 비서실에서는 정민과 커피를 마시며 떠들었고, 전화가 오면 웃으며 받았다. 업무로 회장실에 들어올 때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오후 세 시 임원회의고 네 시 반에 협력사 대표 미팅 있습니다.” 사라가 태블릿을 내려다보며 일정을 읽었다. 강수는 서류에 사인하면서도 그녀를 힐끗 봤다. “끝?” “네.” 사라는 태블릿을 챙겼다. “그럼 나가볼게요.” “민사라.” “네?” 강수는 입을 다물었다. 뭘 물어야 할지 애매했다. 보고 있냐고? 자신이 정착할 만한 사람인지 벌써 생각해봤냐고? 그 말을 꺼내는 순간 사흘도 못 참고 답을 재촉하는 꼴이었다. “……아니다.” 사라가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다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일하세요.” 문이 닫혔다. 강수는 펜을 내려놓았다. 기가 막혔다. 보라고 해놓은 건 자신이었다. 언제까지 보라는 기한도 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저 여자는 정말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였다. 강수는 자신도 모르게 혀로 볼 안쪽을 밀었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사라가 다시 들어왔다. “회장님, 아까 결재하신 거 하나 빠졌…….” 책상 가까이 다가온 사라의 시선이 문득 멈췄다. 강수가 펼쳐놓은 지갑 안쪽에서 작은 사진 한 귀퉁이가 보였다. 사라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거.” 강수의 시선이 따라 내려갔다. “사진 아직 가지고 있어요?” “왜 버려.” “안 버렸냐고 물어본 건데.” 사라는 지갑에서 살짝 드러난 사진을 보며 웃었다. “회장님 이런 거 간직하는 사람이었구나.” 강수는 지갑을 닫았다. “네 건?” “있죠.” “어디.” “내 지갑에.” 강수의 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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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화

퇴근 시간이 지나자 비서실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정리했다. 사라도 가방을 어깨에 걸쳤다. “실장님, 저 먼저 갈게요.” “약속 있다며. 재밌게 놀아요.” 정민이 손을 흔들자 사라는 밝게 웃으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사라졌다. 회장실에서 나오던 강수의 시선이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에 머물렀다. 누구를 만나러 가는지 묻지 않았다. 준호인지, 다른 친구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궁금했다. 빌어먹게 궁금했지만 참았다. “오빠, 가자.” 서희의 목소리에 강수가 고개를 돌렸다. “뭐 먹고 싶어?” “나? 음…… 오빠 먹고 싶은 거.” “또 나한테 고르라고?” “오빠가 고르는 데 다 맛있잖아.” 서희가 자연스럽게 그의 팔에 손을 걸었다. 강수는 익숙하게 서희의 손을 잡았다. 회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도 이상할 것 없는 부부였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동안 서희는 오늘 있었던 일을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강수는 평소처럼 들어주고 대답했다. 그런데 주머니 안에 있는 지갑이 자꾸 의식됐다. 그 안에는 오늘 자신의 팔을 잡고 있는 아내와 찍은 사진이 아니라, 사라와 처음 찍은 사진이 들어 있었다. 강수의 표정이 굳었다. “오빠?” “어.” “무슨 생각 해?” “일.” 거짓말이 입에서 너무 자연스럽게 나왔다. 서희가 작게 웃었다. “나랑 있을 때는 일 좀 그만 생각해.” “알았어.” 강수는 서희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저녁은 서희가 좋아하는 한식당으로 갔다. 마주 앉은 서희는 여전히 다정했고 사흘 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음식이 나오면 강수가 좋아하는 반찬을 먼저 밀어줬고, 강수는 서희가 좋아하는 생선을 발라 접시에 놓아줬다. 오랫동안 몸에 밴 것처럼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아, 맞다. 사라.” 그 이름 하나에 강수의 젓가락이 멈췄다. “왜.” “요즘 회사 생활 괜찮아?” “잘해.” “다행이다.” 서희가 웃었다. “걔 원래 한군데 오래 붙어 있는 애가 아니라서 금방 그만둘 줄 알았거든.”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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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화

강수는 휴대폰 화면을 한동안 내려다봤다. 평소대로 있으라. 말은 쉽다. 사라에게 자신을 봐달라고 한 것도 강수였고, 그동안 답을 재촉하지 않겠다고 한 것도 자신이었다. 그런데 사라는 정말 제멋대로였다. 사흘 동안 먼저 찾아오지도 않았다. 회사에서는 회장과 비서로 굴었고, 퇴근하면 자신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이제 와서 보고 있다고 한다. 강수의 시선이 사진으로 내려갔다. 테이블 맞은편에 찍힌 손.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하기 애매했다. 누구냐. 어디냐. 두 가지가 동시에 떠올랐다. 예전 같았으면 정민에게 전화했을 것이다. 위치를 알아내고 직접 갔을 것이다. 하지만 강수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메시지를 썼다. [누구랑 있어.] 보내려다 지웠다. 다시 손가락을 움직였다. [어디야.] 그것도 지웠다. 강수는 짜증스럽게 머리를 쓸어넘겼다. “오빠.” 욕실 문이 열렸다. 강수는 바로 휴대폰을 뒤집어놓았다. 머리를 말리며 나온 서희가 침대 끝에 앉았다. “나 내일 아침 일찍 나가야 해.” “몇 시.” “여덟 시쯤?” “기사 붙여줄게.” “괜찮아. 내가 운전하면 되는데.” “붙여.” 서희가 웃었다. “알았어.” 강수는 평소처럼 대답했고, 서희가 잠들 때까지 옆에 있었다.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밤이었다. 그게 오히려 숨을 막히게 했다. 한참 뒤 서희의 호흡이 고르게 가라앉았다. 강수는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소파에 앉아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사라에게서는 더 이상 메시지가 없었다. 사진 한 장. 보고 있다는 말 한마디. 그리고 끝이었다. 강수는 결국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세 번쯤 울렸다. - 여보세요? 시끄러운 음악 소리가 먼저 들렸다. “나야.” - 알아요. 이름 뜨는데. 목소리에 술기운이 조금 묻어 있었다. 강수의 미간이 좁아졌다. “술 마셨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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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화

강수는 사라가 보내온 주소 앞에 차를 세웠다. 번화가 골목 안쪽의 작은 펍이었다. 차에서 내린 강수는 유리문 너머를 한 번 훑었다. 늦은 시간인데도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음악과 웃음소리가 문밖까지 새어 나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몇몇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에게 붙었다. 반듯한 셔츠에 검은 슬랙스. 189센티미터의 큰 체격과 오른쪽 얼굴을 길게 가르는 흉터까지. 이런 곳에 가볍게 술이나 마시러 온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건 당연했다. 강수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안쪽을 한 번 훑는 것만으로 사라를 찾아냈다. 긴 테이블 한가운데 앉아 있었다. 여자 둘, 남자 셋. 술잔과 안주가 어지럽게 널린 사이에서 사라는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고개까지 뒤로 젖혀가며 웃고 있었다. 강수의 시선이 잠깐 남자들에게 머물렀다. 마음에 들 리 없었다. 그래도 여기까지 온 건 자신이었다. 그때 사라가 강수를 발견했다. 눈이 마주치자 입꼬리가 활짝 올라갔다. “회장님!” 손까지 번쩍 들었다. 강수는 그대로 테이블로 걸어갔다. “진짜 왔네.” “오라며.” “그래도 안 올 줄 알았는데.” “보고 싶다니까.” 주변에 누가 있든 강수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오히려 사라가 잠깐 눈을 깜빡였다. 친구들의 시선이 두 사람 사이를 빠르게 오갔다. “뭐야?” 맞은편 여자가 흥미로운 얼굴로 사라를 바라봤다. “소개 안 해줘?” “아.” 사라는 그제야 자리에서 몸을 조금 일으켰다. “차강수 씨.” 회장님이 아니었다. 강수의 눈이 사라에게 향했다. 사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친구들을 가리켰다. “내 친구들이에요. 여행하다가 만난 애들도 있고 한국에서 알게 된 애들도 있고.” 그러더니 이번에는 친구들을 향해 강수를 가리켰다. “그리고 이쪽은 차강수 씨.” 한 남자가 웃으며 물었다. “아까 전화한 그 사람?” “응.” “회사 회장님이라며?” “그것도 맞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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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화

노래방에 들어서자마자 사라가 리모컨부터 차지했다. “첫 곡 내가 한다.” “또 네가 먼저야?” “싫으면 먼저 잡든가.” 친구들과 티격태격하는 사이 강수는 가장 안쪽 소파에 앉았다. 평소라면 발도 들이지 않을 공간이었다. 요란한 조명에 시끄러운 반주, 테이블 위에는 맥주와 마른안주가 올라왔다. 그 한가운데 사라가 있었다. 강수는 자연스럽게 다리를 벌리고 기대앉아 사라를 바라봤다. “회장님.” “왜.” “재미없어요?” “아니.” “표정은 사람 하나 묻고 온 것 같은데.” 옆에서 웃음이 터졌다. 강수는 피식 웃으며 맥주를 들었다. “원래 이렇게 생겼어.” “그건 맞아.” 사라가 태연하게 맞장구치자 강수가 눈을 흘겼다. “민사라.” “왜요. 잘생겼다고도 했잖아요.” 그러고는 음악이 시작되자 마이크를 들고 몸을 돌렸다. 강수의 시선도 따라 움직였다. 회식 때도 사라가 노래하는 걸 들었다. 그때도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회사 사람들 앞에서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정말 편한 사람들 사이에서 부르는 사라는 처음이었다. 작은 몸에서 어떻게 저런 목소리가 나오는지 싶을 만큼 힘 있는 음색이 공간을 채웠다. 장난치던 친구들도 어느새 조용해졌다. 강수 역시 잔을 입가에 댄 채 움직이지 않았다. 노래가 끝나자 환호가 터졌다. “역시 민사라!” “한 곡 더!” 사라는 웃으며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가장 먼저 강수를 봤다. “어때요?” 강수는 짧게 대답했다. “좋네.” “노래가?” “너.” 주변이 순간 조용해졌다가 곧 야유와 웃음으로 뒤집혔다. “와, 뭐야.” “사라야, 저분 원래 저래?” 사라도 잠깐 말을 잃었다. 강수는 아무렇지 않게 맥주를 마셨다. “왜.” “아니…….” 사라가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직진이네.” “이제 알았냐.” 강수는 옆자리를 손으로 툭 쳤다.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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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화

사라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불빛이 작은 얼굴 위를 스쳤다 사라졌다. 강수는 운전대를 잡은 채 기다렸다.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정말 사라가 정하게 둘 생각이었다. “연애라…….” 한참 만에 사라가 중얼거렸다. “왜.” “생각 중이에요.” “해.” 사라가 어이없다는 듯 돌아봤다. “생각하라면서요.” “생각은 해. 오래 하지 말고.” “이래서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안 된다니까.” 강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가 언제 변했어.” “별장에서는 기다리겠다며.” “기다리고 있잖아.” “지금 재촉하잖아요.” “정착은 기다린다고.” 강수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연애는 지금 하고.” 사라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차강수였다. 조금 달라졌다고 사람이 통째로 바뀐 건 아니었다. 갖고 싶은 걸 숨기지 않았고, 원하는 것도 분명했다. 다만 예전과 다른 게 있다면 이제 사라가 싫다고 하면 멈추려 한다는 것. 그 정도면 됐다. “해요, 그럼.” 강수의 눈이 바로 옆으로 향했다. “뭐?” “연애.” 너무 쉽게 떨어진 대답에 오히려 강수가 말이 없었다. 사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요. 하자면서.” “……한다는 거야?” “네.” “나랑?” “여기 다른 사람 있어요?” 강수의 입가가 천천히 올라갔다. 기분이 좋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웃는다.” “안 웃었어.” “웃었거든요.” “시끄러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입꼬리가 내려오지 않았다. 사라는 그런 강수를 보다가 피식 웃었다. “대신.” 강수의 표정이 바로 진지해졌다. “뭔데.” “연애한다고 내가 갑자기 회장님한테 맞춰주지는 않아요.” “알아.” “친구도 계속 만날 거고 여행 가고 싶으면 갈 수도 있고.” 강수의 손에 힘이 조금 들어갔다. 여행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대답했다. “어.” “남자 친구도 있어요.” 이번에는 대답이 늦었다. 사라가 빤히 쳐다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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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화

다음 날 아침. 사라는 평소보다 십 분 늦게 비서실에 들어왔다. “좋은 아침.” 한 손에는 커피, 다른 손에는 편의점 샌드위치가 들려 있었다. 정민이 시계를 한번 보고 사라를 봤다. “좋은 아침 맞아요?” “지각 안 했잖아요.” “2분 남았네.” “그럼 완벽하지.” 사라는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어젯밤 연애를 시작한 여자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평소와 같았다. 그 시각 회장실. 강수는 달랐다. 아침부터 세 번이나 휴대폰을 확인했다. 메시지는 없었다. 출근했다는 연락도 없고, 잘 잤냐는 흔한 인사 하나 없었다. 결국 인터폰을 눌렀다. “민사라 들어오라고 해.” 잠시 뒤 문이 열렸다. “불렀어요?” 사라는 샌드위치를 우물거리며 들어왔다. 강수의 미간이 바로 좁아졌다. “먹고 들어오지.” “왜요?” “나랑 말하면서 씹을 거야?” 사라는 남은 한입을 통째로 입에 넣었다. 오물오물. 꿀꺽. “됐죠?” 강수가 헛웃음을 흘렸다. “앉아.” “일 있어요?” “없어.” “근데 왜 불러요?” “보고 싶어서.” 사라가 눈을 깜빡였다. “어제 봤잖아요.” “잤잖아.” “그래서요?” “자는 동안은 못 봤으니까.” 사라가 황당하다는 듯 웃었다. “연애 시작하자마자 이래요?” “뭘.” “벌써 귀찮게 하잖아.” 강수의 눈썹이 꿈틀했다. “귀찮아?” “조금?” 강수는 대놓고 인상을 썼다. 사라는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봤으면 나가도 되죠? 일해야 돼요.” “잠깐.” 강수가 손을 뻗어 지나가는 사라의 손목을 잡았다. 끌어당기지는 않았다. 대신 손을 아래로 내려 손가락 사이를 맞물렸다. 사라가 내려다봤다. “뭐 해요?” “연애.” “손잡는 게?” “어.” “지금 회사인데.” “그래서.” 역시 차강수였다. 사라가 피식 웃더니 맞잡은 손을 한번 흔들었다. “끝?” “아니.” “나 바빠요.” “나도 바빠.” “그럼 일해요.” 사라는 미련 없이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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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화

밤 열한 시가 조금 넘었다. 강수의 휴대폰이 울렸다. [끝났어요.] 짧은 메시지였다. 강수는 읽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야.] 이번에는 위치가 바로 날아왔다. 약속대로 데리러 갈 생각이었다. 차 키를 집어 들던 강수의 시선이 몇 시간 전 사라와 나눈 메시지 위에서 멈췄다. 친구를 만나러 간 사라가 음식 사진을 몇 장 보내왔다. 그 사이 별 의미 없이 끼어 있던 한마디. [아 딸기 케이크 먹고 싶다.] 강수는 그대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사라가 있는 곳까지는 삼십 분. 그런데 차는 반대 방향으로 먼저 움직였다. 늦게까지 문을 여는 디저트 매장을 찾는 데만 십 분이 넘게 걸렸다. 강수가 매장에 들어서자 마감 준비를 하던 직원이 흠칫했다. “딸기 케이크.” “홀케이크 말씀하세요?” 강수는 진열장을 내려다봤다. 크고 작은 케이크가 여러 개였다. “뭐가 제일 맛있어.” “딸기 생크림이 제일 잘 나가요.” “그걸로.” “사이즈는요?” 강수의 눈앞에 사라가 떠올랐다. 조그만 몸으로 먹는 건 또 기가 막히게 잘 먹었다. “큰 거.” 직원이 가장 큰 케이크를 포장했다. 강수는 상자를 받아 들고 다시 차에 올랐다. 사라가 보낸 위치에 도착했을 때는 자정이 가까웠다. 가게 앞에 사라가 서 있었다. 짧은 치마에 얇은 재킷을 걸친 채 친구와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강수의 차를 발견한 사라가 손을 흔들었다. “나 갈게!” 친구와 인사를 마친 사라가 조수석에 올라탔다. “진짜 왔네.” “간다고 했잖아.” “피곤하지 않아요?” “안 피곤해.” 강수는 사라의 안전벨트를 한번 확인하고 출발했다. 사라는 신이 난 얼굴로 오늘 있었던 일을 떠들기 시작했다. 강수는 운전하면서 간간이 대답했다. 그러다 신호에 걸렸을 때 뒷좌석을 턱짓했다. “뒤에.” “뭐가요?” “봐.” 사라가 몸을 돌렸다. 뒷좌석에 하얀 상자가 놓여 있었다. “뭔데?” 상자를 끌어와 무릎 위에 올리고 열어본 사라의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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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화

강수와 연애를 시작한 지 일주일. CH건설 비서실 복도에 사라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그러니까 내가 보낸 파일이 맞다니까요!” 지나가던 직원들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사라 앞에는 CH법무법인 대표변호사의 남자 비서가 서 있었다. 법무법인과 건설 쪽 계약 관련 자료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상대 측에서는 사라가 최종본이 아닌 이전 파일을 보냈다고 주장했고, 그 때문에 대표변호사의 오전 일정까지 꼬였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라가 발송 기록을 확인해보니 달랐다. “여기 있잖아요. 어제 오후 세 시 십칠 분. 최종 수정본.” 사라가 태블릿 화면을 내밀었다. “첨부파일명도 확인해봐요.” 남자 비서의 표정이 굳었다. 그 역시 화면을 봤다. 분명했다. 사라가 보낸 건 최종본이었다. 문제는 자신이 대표변호사에게 전달하면서 이전에 내려받아 둔 파일을 잘못 첨부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사과는 없었다. “어쨌든 파일명을 그렇게 비슷하게 해두시면 헷갈릴 수도 있죠.” 사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네?” “다음부터는 구분되게 보내주세요.” “잠깐만.” 사라가 태블릿을 내렸다. “지금 본인이 잘못 전달한 거 확인했죠?” “누가 잘못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업무에 차질이 생겼다는 게 중요하죠.” “아니. 중요해요.” 사라의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아까 나한테 뭐라고 했어요? 비서가 기본적인 파일 확인도 안 하냐고 했죠?” 주변이 점점 조용해졌다. 그 남자는 원래 비서들 사이에서 얄밉기로 유명했다. 자기 실수는 교묘하게 떠넘기고, 다른 사람 실수 하나는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타입. 직급이나 소속에 따라 태도까지 달라졌다. “그래서 확인했잖아요.” 사라가 화면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내가 제대로 보냈고, 그쪽이 잘못 전달했네?” “말을 그렇게 하시면 곤란하죠.” “뭐가 곤란해요?” “민사라 씨.” “내 이름 알아요. 자꾸 안 불러줘도 돼요.” 뒤쪽에서 누군가 작게 숨을 삼켰다. 마침 비서실로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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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화

사라는 언제 화를 냈냐는 듯 자리에 앉아 다시 일을 시작했다. 불과 조금 전까지 법무법인 대표비서와 복도가 울리도록 싸웠다. 자기 실수라는 걸 확인하고도 끝까지 뻔뻔하게 나오는 남자에게 몇 마디를 더 쏟아내던 사라는 어느 순간 입을 다물었다. 말이 안 통하는 인간에게 더 감정을 쓰는 게 아깝다는 듯. 그렇게 끝난 줄 알았다. 적어도 정민을 제외한 사람들은. 탁탁탁. 한동안 키보드를 두드리던 사라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잠시 외출이요.” 정민이 곧바로 고개를 들었다. “어디 갑니까?” “잠깐요.” “업무입니까?” “아니요.” 사라는 가방을 챙겼다. “금방 올게요.” “사라 씨.” 대답도 없이 손만 흔들며 나가버렸다. 정민은 닫힌 문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저렇게 조용히 나가는 게 더 불안했다. 그리고 삼십 분쯤 뒤. 사라가 양손 가득 봉투를 들고 돌아왔다. “간식이요.” 빵이며 쿠키, 샌드위치에 음료까지 바리바리 사 왔다. “갑자기 웬 간식이에요?” “내가 먹고 싶어서 샀다가 많이 샀어요.” 사라는 비서실을 돌아다니며 하나씩 나눠줬다. “이거 드세요.” “사라 씨, 잘 먹을게요.” “실장님도.” 정민 앞에도 툭. “고맙습니다.” 그런데 정민의 시선이 책상 한쪽에서 멈췄다. 봉투 하나가 따로 떨어져 있었다. “저건 뭡니까?” 사라가 슬쩍 봤다. “저것도 간식.” “왜 저것만 따로 놨어요?” “주인이 따로 있으니까.” 사라의 입꼬리가 묘하게 올라갔다. 정민이 뭔가 더 묻기도 전에 사라는 다른 봉투 하나를 챙겨 회장실로 들어갔다. 강수가 서류에서 눈을 들었다. “뭐야.” “회장님 거.” 책상 위에 간식을 내려놓았다. 강수가 봉투를 열어봤다. “네가 샀어?” “네.” “갑자기?” “먹기 싫으면 줘요.” 사라가 다시 가져가려 하자 강수가 먼저 봉투를 끌어당겼다. “누가 싫대.” “그럼 먹어요.” 강수는 바로 포장을 뜯어 한입 먹었다. 사라가 그걸 확인하더니 만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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