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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불온한 정착: Chapter 71 - Chapter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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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화

차는 한동안 목적지도 없이 어두운 국도를 달렸다. 강수는 앞만 바라봤다. 도시를 벗어난 지 오래였지만 어디로 갈지는 여전히 정하지 못했다. 호텔도, 자신이 소유한 다른 건물도 떠올랐지만 전부 싫었다. 정민이 알고, 조직 사람들이 알고, 필요하면 누구든 찾아올 수 있는 곳이었다. 지금만큼은 아무도 끼어들 수 없는 곳이 필요했다. 문득 오래전 사들인 작은 별장 하나가 떠올랐다. 강원도 산자락 깊숙한 곳. 다른 사람 명의로 되어 있었고 정민조차 존재를 몰랐다. 강수가 정말 혼자 있고 싶을 때를 대비해 마련해둔 곳이었지만 정작 찾아간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핸들이 조용히 방향을 틀었다. 사라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어디 가는지는 정했나 보네.” “어.” “어디요?” “가보면 알아.” “사람 납치해놓고 목적지도 비밀이에요?” 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라도 더 묻지 않았다. 화가 풀린 것은 아니었다. 팔짱을 낀 채 창밖만 바라보는 얼굴이 평소보다 차가웠다. 그 침묵이 오히려 강수를 더 미치게 했다. 겁먹지도 않는다. 달래달라고 하지도 않는다. 어디로 끌려가는지도 모르면서 이 여자는 여전히 자신에게 매달리지 않았다. 두 시간이 넘어서야 차가 좁은 산길로 접어들었다. 가로등마저 드문 길 끝에 낮은 담장과 작은 별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가 어디예요?” “내 별장.” “별장도 있었어요?” 강수는 시동을 끄며 사라를 바라봤다. “아무도 몰라.” 사라의 눈썹이 올라갔다. “한정민 실장님도?” “몰라.” “나를 아무도 모르는 데까지 데리고 온 거예요?” “그래.” “와.” 사라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제대로 미쳤네.” 강수는 먼저 차에서 내렸다. 조수석 문을 열자 사라가 그의 손을 쳐냈다. “나 혼자 내려요.” 그녀가 차에서 발을 내딛는 순간 강수가 허리를 감싸 그대로 들어 올렸다. “야! 내려놔요!” 작은 몸이 그의 품 안에서 버둥거렸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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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화

별장 침실은 두 사람의 거친 숨으로 가득 찼다. 강수와 사라의 살 부딪히는 소리와 사라의 신음소리가 가득했다. 강수의 허리짓에 사라의 몸과 봉긋 솟은 가슴이 흔들렸고, 강수는 사라의 핑크빛 유두를 질근질근 씹었다. “하…… 흣, 그게 반칙인데…….” “내가?” 강수가 낮게 되묻자 사라가 흐트러진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아니면 누군데요.” 숨이 차면서도 말대꾸는 꼬박꼬박 돌아왔다. 그게 강수를 또 웃게 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납치범이니 미쳤느니 소리치던 여자였다. 아무도 모르는 별장까지 강제로 데려왔는데도 사라는 겁먹지 않았다. 화가 나면 화를 냈고, 싫은 건 싫다고 했으며, 지금 이 순간조차 강수의 기분을 맞춰주려 하지 않았다. 그런 사라가 미치도록 좋았다. 강수는 사라를 들어 엎드리게 한 후 뒤에서 끌어안듯 자세를 잡았다. 사라의 작은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겹치고 목덜미를 혀로 한 번 핥아버렸다. 움직임은 계속 이어졌고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강하게 사라를 몰아붙였다. 창밖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도시의 불빛도, 자동차 소리도 없었다. 세상에서 잘라낸 듯 고요한 별장 안에는 오직 두 사람뿐이었다. 강수는 문득 그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전화도 없다. 정민도 없다. 회사도 없다. 준호도 없다. 이곳에서는 사라의 시선을 빼앗아갈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 사실 하나가 비정상적일 만큼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몇 번이나 자세를 바꿔가며 세 번의 사정이 끝난 뒤에야 강수의 움직임이 멈췄다. 지칠 대로 지친 사라는 강수 아래에 누운 채 한동안 숨만 골랐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베개 위로 흩어져 있었고 눈에는 힘이 거의 풀려 있었다. 그런데도 강수를 바라보는 눈빛 어딘가에는 여전히 지기 싫다는 기색이 남아 있었다. 강수가 피식 웃었다. “왜 웃어요.” “그냥.” “사람을 이 꼴로 만들어놓고 웃음이 나와요?” “어.” “진짜 성격 더럽네.” 강수는 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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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화

강수의 시선이 침대 옆 바닥으로 향했다. 사라가 입고 왔던 옷은 다시 입으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엉망이었다. 그제야 자신이 사람만 달랑 데리고 왔다는 사실까지 깨달았다. 먹을 것도 없고, 갈아입을 옷도 없었다. 계획이라는 게 애초에 없었으니 당연했다. “기다려.” 강수가 침대에서 내려왔다. 사라가 이불을 끌어당기며 눈을 가늘게 떴다. “어디 가요?” “먹을 거 사러.” “나 두고?” “같이 갈래?” 사라는 자신의 꼴과 바닥의 옷을 번갈아 보더니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뭘 입고요?” 강수가 입을 다물었다. 그것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사라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옷도 사 와요.” “옷?” “내 거 저렇게 만든 사람이 누구인데.” 강수는 바닥을 한번 내려다봤다. 반박할 말이 없었다. “뭐 사면 되는데.” “편한 거 아무거나.” “사이즈.” “제일 작은 거.” “그게 사이즈야?” “여자 옷 가게 가서 제일 작은 거 달라고 하면 알아서 줘요.” 강수의 미간이 좁아졌다. 사라는 그 표정을 보고 결국 킥킥 웃었다. “설마 옷 사는 게 무서워요?” “내가?” “표정이 그런데.” 강수가 피식 웃으며 사라의 머리를 한 번 헝클었다. “먹고 싶은 거.” “고기.” “또.” “라면. 과자. 아이스크림. 탄산.” “많이도 먹네.” “누가 체력 다 빼놨는데.” 강수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기다려.” 별장을 나선 강수는 차를 몰고 산길을 내려갔다. 문제는 시골이었다. 시간도 늦은 데다 문을 연 곳 자체가 별로 없었다. 한참을 내려간 끝에 작은 마트 하나를 발견한 강수는 카트를 끌고 식료품부터 쓸어 담았다. 고기, 라면, 과자, 탄산음료. 아이스크림 앞에서는 잠시 멈췄다. 무슨 맛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결국 종류별로 담았다. 카트가 금세 가득 찼다. 옷은 더 문제였다. 근처에서 간신히 아직 불이 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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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

강수는 침대 옆에 내려놓았던 봉투를 집어 들었다. “옷부터 입어.” 사라가 이불을 몸에 두른 채 봉투 안을 뒤적였다. 티셔츠와 편한 바지, 속옷까지 차례로 나오자 눈이 동그래졌다. “이걸 다 샀어요?” “필요하잖아.” “사이즈는?” “제일 작은 거.” 사라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그렇게 말했어요?” “네가 그러라며.” “아, 미치겠다.” 사라는 웃으며 옷을 하나씩 펼쳐보다 마지막에 나온 원피스에서 손을 멈췄다. “이건 뭐예요?” “옷.” “그건 나도 알아요. 편한 거 사 오라니까 웬 원피스냐고.” 강수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가게에 걸린 걸 보는 순간 사라가 입으면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그대로 말하기는 묘하게 낯간지러웠다. “그냥.” “설마 나 입으라고 고른 거예요?” “……어.” 사라가 원피스를 몸 앞에 대보며 웃었다. “회장님 여자 옷도 골라요?” “오늘 처음 골랐어.” “근데 제법 예쁜데?” 강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사라에게 머물렀다. 옷이 예쁜 건지, 그걸 들고 웃는 사라가 예쁜 건지 구분되지 않았다. “입어봐.” “지금은 밥부터.” 원피스를 아무렇지 않게 내려놓은 사라가 티셔츠와 바지를 챙겨 욕실로 들어갔다. 역시 사라다웠다. 강수에게는 처음 해본 일이었는데 사라에게는 그저 마음에 드는 옷 하나가 생긴 것뿐이었다. 잠시 뒤 사라가 나왔다. 티셔츠는 제법 맞았지만 바지는 허리가 조금 남았다. “제일 작은 것도 크네.” 강수가 중얼거리자 사라가 허리를 내려다봤다. “이 정도면 입어요. 고기 어디 있어요?” 관심은 금세 음식으로 넘어갔다. 강수는 피식 웃으며 봉투를 들고 주방으로 향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사라가 식탁 앞에 앉아 턱을 괸 채 강수를 바라봤다. “구워줘요.” 강수가 돌아봤다. “내가?” “그럼 누가 해요?” “너.” “싫어요.” “왜.” 사라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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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화

결국 다시 나가기로 했다. 강수가 차 키를 집어 들자 사라도 망설임 없이 침실로 향했다. “같이 가게?” “또 이상한 거 사 올까 봐 못 믿겠어요.” “술이 이상할 게 뭐가 있어.” “아이스크림을 종류별로 쓸어온 사람이 할 말은 아닌데.” 잠시 뒤 방문이 열렸다. 강수는 현관 앞에서 그대로 멈췄다. 사라가 조금 전 자신이 사 온 원피스를 입고 서 있었다. 작은 체구에 맞게 떨어지는 원피스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 어울렸다. 가게에서 별생각 없이 집었다고 자신에게 둘러댔지만 아니었다. 보자마자 사라가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 눈앞의 모습을 보니 제대로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라가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았다. “어때요?” 강수는 잠시 말이 없었다. “회장님?” “예뻐.” 너무 바로 나온 대답에 오히려 사라가 눈을 깜빡였다. “옷이?” “너.” 사라가 잠시 강수를 쳐다보다 피식 웃었다. “이럴 때 보면 여자한테 인기 많았을 것 같은데.” “없었어.” “거짓말.” “필요 없었으니까.” 강수는 현관문을 열었다. 사라는 대수롭지 않게 먼저 밖으로 나갔다. 또 자신만 남았다. 저런 말을 해도 사라는 의미를 붙이지 않는다. 예쁘다는 말도, 옷을 사준 것도, 함께 밤길을 나서는 것도 그냥 지금 일어난 일일 뿐이었다. 산길을 내려가는 동안 사라는 조수석에서 휴대폰을 찾다가 빈손을 내려다봤다. “아, 맞다. 내 폰.” 강수의 손가락이 핸들 위에서 멈칫했다. “차 뒤에 있어.” “회장님이 던졌잖아요.” “알아.” “별장 돌아가면 돌려줘요.”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래.” 사라가 슬쩍 강수를 바라봤다. “순순하네?” “내가 잘못했으니까.” 사라의 눈이 조금 커졌다. 강수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질투한다고 사라의 전화까지 끊어버릴 권리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그건 자신도 알고 있었다. 이십 분쯤 달리자 읍내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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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화

별장으로 돌아온 사라는 술이 든 봉투부터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강수가 사 온 원피스 차림 그대로 의자에 앉아 소주와 맥주를 하나씩 꺼내 늘어놓더니 과자 봉지까지 뜯었다. 조금 전 고기를 그렇게 먹어놓고도 손은 쉬지 않았다. 강수는 맞은편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봤다. “많이도 먹네.” “잘 먹는 게 좋은 거예요.” “누가 뭐래.” 사라가 소주잔 두 개를 꺼내 하나를 강수 앞에 놓았다. “회장님도 마셔요.” 잔이 부딪혔다. 사라는 술이 들어가자 금세 말이 많아졌다. 여행 중 길을 잘못 들어 엉뚱한 도시까지 갔던 이야기, 외국에서 메뉴판을 잘못 읽어 정체 모를 음식을 시켰던 이야기까지 두서없이 이어졌다. 강수는 대부분 듣기만 했다. 평소라면 남의 시답잖은 이야기를 이렇게 오래 듣고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사라가 웃다가 손짓까지 섞어가며 떠드는 모습은 이상하게 지루하지 않았다. 두 잔째를 비운 사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데 여기 진짜 아무것도 없다.” 거실을 기웃거리더니 서랍도 열어보고 벽도 살폈다. “뭐가.” “회장님 물건.” 별장에는 필요한 가구와 물건만 갖춰져 있었다. 사진 한 장 없었고 장식품 하나 제대로 놓여 있지 않았다. “여기 와서 뭐 해요?” “자.” 사라가 돌아봤다. “끝?” “끝.” “재미없게 산다.” 강수의 눈썹이 꿈틀했다. “내가?” “네.” 사라는 단호하게 대답하고는 소파에 털썩 앉았다. “돈도 많고 시간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이 왜 이렇게 재미없게 살아요?” 강수는 반박하지 못했다. 재미를 찾을 필요가 없었다. 원하는 건 가졌고 해야 할 일은 넘쳤다. 조직과 회사, 그 사이에서 살아남고 더 많은 걸 손에 넣는 게 그의 삶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달랐다. 밤바다까지 차를 몰고 가고, 폭죽을 터뜨리고 도망치고, 여자 옷을 사고, 고기를 굽고, 술을 사러 읍내까지 내려갔다. 전부 사라를 만나고 처음 해본 일이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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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화

한 시간 뒤, 두 사람은 별장을 나섰다. 운전석에는 사라가 앉았다. 어제처럼 좌석을 한참 앞으로 당긴 뒤에야 페달에 발이 편하게 닿았다. 강수는 조수석에 앉아 그 모습을 보다가 안전벨트를 맸다. “어디 가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냐.” “몰라요.” “뭐?” “가다가 재밌어 보이는 데 있으면 가는 거죠.” 강수는 헛웃음을 흘렸다. 목적지도 없이 출발하는 건 그의 방식과 정반대였다. 어디를 가든 목적이 있었고 움직이기 전에는 이미 도착한 뒤의 일까지 정해져 있어야 했다. 사라는 아니었다. 좋으면 멈추고, 궁금하면 가보고, 재미없으면 떠났다. 차는 산길을 빠져나와 국도로 접어들었다. 창문을 조금 내린 사라는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흥얼거렸다. 그러다 길가에 세워진 커다란 현수막을 발견하자 갑자기 속도를 줄였다. “저기 가요.” “어딜.” “축제한대.” 강수가 고개를 돌렸다. 작은 지역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었다. “저런 데를 왜 가.” “재밌잖아요.” “뭐가.” “가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아요?” 결국 십 분 뒤 두 사람은 사람들 사이를 걷고 있었다. 강수에게는 모든 게 낯설었다. 천막 아래 줄지어 늘어선 먹거리와 물건들, 아이들 손에 들린 풍선, 여기저기서 들리는 음악과 웃음소리까지. 사라는 들어서자마자 신이 났다. “회장님, 이거 먹어봐요.” 강수의 손에 이름도 모를 간식을 하나 쥐여주고는 옆 가게로 뛰어갔다. “민사라. 천천히 가.” “빨리 와요!” 강수는 결국 그녀를 따라갔다. 사라는 사격 게임 앞에서도 멈췄다. 상품으로 걸린 커다란 인형을 보더니 총을 집어 들었다. “저거 딸 거예요.” “살아.” “그럼 재미없잖아요.” 첫발이 빗나갔다. 두 번째도 실패했다. 사라의 입술이 조금씩 튀어나왔다. 강수가 옆에서 지켜보다 손을 내밀었다. “줘봐.” “회장님 할 줄 알아요?” 대답 대신 총을 받아든 강수가 자세를 잡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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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화

강수는 사진을 지갑 안쪽에 넣었다. 사라는 제 몫의 사진을 원피스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밀어 넣더니 벌써 다음 구경거리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역시 저 여자한테는 사진 한 장도 그저 오늘의 기념품이었다. 강수는 지갑을 닫아 주머니에 넣었다. “회장님, 빨리 와요.” 어느새 멀어진 사라가 손을 흔들었다. 강수는 긴 보폭으로 그녀를 따라갔다. 사라가 가져간 하루는 정말 제멋대로였다. 축제를 빠져나온 뒤에도 목적지는 없었다. 차를 타고 가다 예쁜 카페가 보이면 들어갔고, 강가에 사람들이 몰려 있으면 차를 세웠다. 작은 오락실을 발견했을 때는 강수의 손목까지 잡아 끌었다. 두더지 잡기 앞에 선 강수가 황당한 얼굴을 했다. “이걸 왜 해.” “점수 내기.” “애냐?” “무서우면 하지 말고.” 결국 망치를 집었다. 시작하자마자 상황이 달라졌다. 강수가 무표정한 얼굴로 튀어나오는 두더지를 사정없이 내려치자 사라가 옆에서 배를 잡고 웃었다. “아, 그렇게 진지하게 하지 말라고!” “내기라며.” “회장님 지금 두더지한테 원한 있어요?” 마지막 두더지까지 내려친 강수가 망치를 내려놨다. 최고 점수였다. 사라는 점수판과 강수를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진짜 재미없게 잘한다.” “이겨도 지랄이네.” “놀 때는 좀 망가져야 재밌는 거예요.” 사라는 곧바로 농구 게임으로 옮겨갔다. 이번에는 강수가 봐주지 않았다. 결과는 또 강수의 승리였다. “아, 짜증 나.” “네가 하자며.” “한 번 더.” “또 져.” “이번엔 이겨요.” 결국 세 판을 더 했다. 사라가 처음으로 한 판을 이겼을 때는 오락실 전체가 떠나가도록 좋아했다. 강수는 자신이 일부러 마지막 공을 놓쳤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해가 기울 무렵에야 둘은 차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강수가 운전했다. 조수석에 앉은 사라는 하루 종일 돌아다닌 게 피곤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좌석을 뒤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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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화

사라는 침실 문 앞에 선 채 강수를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 별생각 없던 얼굴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강수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 가늠하는 눈이었다. “회사 가야죠.” 당연한 대답이었다. 이틀 동안 두 사람의 일정을 통째로 비워버린 사람이 강수였으니, 그 시간이 끝나면 돌아가는 것도 당연했다. 강수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싫었다. “하루 더 있자.” “싫어요.” 사라는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 “이틀만이라면서요.” “알아.” “그럼 약속 지켜요.” 강수의 턱이 굳었다. 예전 같았으면 이유부터 물었을 것이다. 안 된다고 하면 되게 만들었고, 떠나겠다고 하면 붙잡았을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여기까지 데려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사라가 스스로 남는 것과 자신이 붙잡아두는 건 전혀 다른 일이었다. “알았어.” 순순한 대답에 사라가 잠깐 눈을 깜빡였다. “진짜요?” “내일 가.” “이제 좀 말이 통하네.” 사라는 웃으며 침실로 들어갔다. 강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말이 통하는 게 아니라 참는 것이었다. 붙잡고 싶은데 붙잡지 않는 것. 그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처음 알았다. 잠시 뒤 강수는 거실로 내려왔다. 소파에는 오늘 축제에서 따준 커다란 인형이 놓여 있었고 식탁에는 사라가 먹다 남긴 과자가 있었다. 의자 등받이에는 어제 사 온 옷이 걸려 있었다. 고작 이틀이었다. 그런데 텅 비어 있던 별장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 내일 사라가 떠나면 다시 깨끗해질 것이다. 그 생각이 더 싫었다.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안쪽에 넣어둔 사진 한 장을 꺼내자 낮에 찍힌 두 사람이 나타났다. 활짝 웃고 있는 사라. 그리고 그런 사라만 보고 있는 자신. 강수는 사진을 한동안 내려다보다 다시 지갑 깊숙이 넣었다. 그제야 확실히 알았다. 준호 때문만이 아니었다. 다른 남자가 싫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 사라를 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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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화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의 호흡만 조용히 오갔다. 강수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잠들지 않았다. 품 안에 들어온 사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허리를 감싼 팔 아래로 작은 숨이 일정하지 않게 오르내렸다.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던 강수가 낮게 입을 열었다. “민사라.” “……왜요.” 역시 깨어 있었다. 강수의 입가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지금 대답 안 해도 돼.” 사라는 돌아보지 않았다. “뭘요.” 강수는 잠시 말을 골랐다. 평생 누군가에게 자신을 봐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 필요한 사람은 곁에 두었고, 필요 없는 사람은 밀어냈다.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라에게만은 그 방식이 통하지 않았다. 억지로 이 별장까지 데려올 수는 있었다. 몸을 곁에 둘 수도 있었다. 하지만 머물게 할 수는 없었다. 그건 사라가 결정할 일이었다. “그냥 봐주면 안 되냐.” 사라의 몸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뭘 봐요?” “나.” 이번에는 침묵이 조금 길었다. 강수는 그녀를 돌려세우지 않았다. 뒤에서 안은 채 사라의 대답을 기다렸다. “내가 네가 정착할 수 있는 사람인지.” 강수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아닌지.” 사라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강수의 팔 안에서 돌아누운 작은 얼굴이 어둠 속에서 그를 올려다봤다. “회장님 지금 나한테 정착하라고 하는 거예요?” “아니.” 대답은 단호했다. “그건 네가 정하는 거라며.” “맞아요.” “그러니까 정하지 마. 아직.” 사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강수는 자신을 바라보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나도 모르니까.” “뭘 몰라요?” “내가 네가 머물 만한 놈인지.” 사라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강수답지 않은 말이었다. 늘 자신만만했고, 원하는 건 손에 넣는 남자였다. 불과 이틀 전에도 사라의 의사 따위 묻지 않고 여기까지 끌고 온 사람이었다. 그런 남자가 지금은 자신을 선택해달라고 하지 않았다. 판단해달라고 하고 있었다. 사라가 작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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