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환을 핑계 삼아 조정을 비운 이건은 홀로 난인사로 향하는 산길에 올랐다.이번에는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기에, 절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정처 없이 걷던 그는 문득 생각했다. ‘예전에 소은하가 이곳에 왔을 때도, 이런 풍경을 보았을까?’서로 기대어 붉은 비단에 백년해로를 비는 젊은 부부, 아이를 안고 스님에게 복을 청하는 이들, 과거 급제를 바라며 소원을 적는 선비들.그곳에는 세상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그제야 이건은 소은하가 어찌 전쟁을 원치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전쟁이 나면 징병을 피할 수 없었고, 징병은 그들이 누군가의 부군이자 아비이고 자식이라는 사실을 헤아리지 않았다. 모두에게 가족이 있었고, 살아갈 앞날이 있었다.하지만 전쟁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리는 순간, 저들 역시 생사를 달리해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될지 몰랐다.그러나 전장을 누벼 온 소은하는 한 장수의 공이 수많은 목숨의 대가로 세워진다는 것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알았다.그래서 그녀는 명예나 부귀를 탐하지 않았고, 매번 병사들의 희생을 줄이려 애썼다. 그들이 흘리는 피와 아픔을 보았기에 밤마다 뒤척일 수밖에 없었다.이건의 눈가가 붉어졌다. 그는 불전 앞에 무릎을 꿇고 향안 위 불경에 이마를 댄 채 몇 번이고 빌었다.‘소은하가 지은 살생의 업을 모두 제게 내리시옵소서.’‘그녀는 저를 위해 칼을 들었습니다. 허니 그 업은 마땅히 제가 짊어져야 합니다.’법당으로 스며든 바람에 촛불이 아른거렸다. 이건이 고개를 들자, 흔들리는 불빛 너머로 허공대사가 서 있었다.예전과 달리, 이건은 허공대사를 향해 공손히 예를 갖췄다. 허공대사는 그 절을 묵묵히 받았다. 부처를 닮은 얼굴에는 평온한 자비가 어려 있었다.시종 하나 없이 찾아온 이건을 보고도, 그는 그의 신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한 달 만에 오셨군요. 그간 평안하셨는지요?”이건은 눈을 내리깔았다. 표정에는 쉬이 사라지지 않는 고통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대사님, 짐은 평안하지 못합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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