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모님, 자세가 묘합니다: Chapter 11 - Chapter 20

130 Chapters

제11화

호텔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차 안에는 숨 막히는 침묵이 흘렀다.민우는 콘솔 위에 놓인 스마트폰을 힐끔거리며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었다.윤세라에게서 걸려 온 부재중 전화가 세 통, 그리고 거친 항의 문자가 화면을 쉼 없이 채우고 있었다.집에 도착하자마자 민우는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 던지며 서재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소율은 닫힌 서재 문을 차가운 시선으로 응시한 뒤, 안방으로 들어가 박지은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소율아! 만찬 잘 끝났어?“응. 지은아, 오늘 대명인베스트 강혜란 이사장님을 만났어.”소율은 만찬 자리에서 있었던 일과 강 이사장이 제안한 재단 총괄 디렉터 자리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했다.수화기 너머로 지은의 감탄 섞인 탄성이 터져 나왔다.- 대박이다, 한소율! 강혜란 이사장은 정재계와 문화계에서 영향력이 엄청난 거물이야. 그 프로젝트를 맡으면 네 커리어 복귀는 물론이고, 이혼 소송에서 경제적 자립 능력과 양육권 확보에 결정적인 무기가 돼!“나, 정말 잘해보고 싶어. 하린이한테 부끄럽지 않은 당당한 엄마가 되고 싶거든.”- 당연하지. 넌 원래 최고였어. 참, 그리고 내가 요청했던 최민우 대표 법인 자금 추적 결과가 1차로 나왔어.지은의 목소리가 한층 날카롭게 가라앉았다.- 최민우가 회사 돈으로 윤세라 오피스텔 보증금 3억 원을 냈어. 매달 400만 원씩 켈브란 리스료도 나갔고. 백화점에서 수천만 원 긁은 전표까지 있어. 이건 바람피운 문제로만 끝날 일이 아니야. 횡령·배임 혐의도 검토할 수 있어.“……고마워, 지은아. 차근차근 전부 모아둘게.”통화를 마친 소율은 가슴을 깊게 쓸어내렸다.남편의 파렴치한 범죄와 배신의 증거들이 하나씩 소율의 손아귀로 들어오고 있었다.***다음 날 아침, 식탁에 마주 앉은 민우의 눈 밑은 퀭하게 가라앉아 있었다.어젯밤 세라의 히스테리를 달래느라 밤새 진을 뺀 모양이었다.민우는 식어버린 커피를 들이켜며 소율을 노려보듯 말했다.“어제 강 이사장이 제안한 문화재단 프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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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몇 주간의 레슨이 지나고, 브랜드 리뉴얼 VIP 갈라 파티를 사흘 앞둔 토요일 오후.남편 최민우는 소율에게 청담동 명품 거리에 위치한 최고급 하이엔드 드레스 살롱 피팅 일정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파티 때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제일 얌전하고 몸 꽁꽁 가리는 걸로 골라 놔. 애 엄마 티 팍팍 내며 내 얼굴에 먹칠하지 말고.아침 출근길에 차가운 눈빛으로 내뱉었던 남편의 역겨운 폭언이 귓가를 맴돌았다.아내를 무대 위의 동반자가 아닌, 흠을 가려야 할 결격 상품 취급하는 비열하고 얄팍한 태도.지난 6년간 임신과 출산, 고된 독박 육아를 거치며 남편의 회사를 위해 밤낮없이 디자인을 쏟아부었던 대가가 고작 이런 모멸과 기만이었다.소율은 딸 하린이를 친정어머니께 잠시 맡긴 뒤, 등을 곧게 펴고 단정한 걸음으로 살롱 문을 열고 들어섰다.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화려한 크리스털 샹들리에 아래, 살롱의 수석 디자이너가 소율을 정중하게 맞이했다.“어서 오세요, 최민우 대표님 사모님 맞으시죠? 대표님께서 가장 단정하고 노출 없는 라인으로 특별히 준비해 달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디자이너가 내민 드레스들은 하나같이 칙칙한 회색빛 무채색에 온몸을 헐렁하게 덮어버리는 통자 실루엣뿐이었다.아내를 철저히 ‘초라하고 무기력한 그림자’로 가두어두려는 남편의 추악한 통제욕이자 가스라이팅의 흔적이었다.소율의 붉은 입술이 서늘하게 호선을 그렸다.“아니요. 그 옷들은 전부 치워주세요.”“……네? 사모님, 하지만 대표님께서 직접 지정하신 가이드라인인데요…….”소율은 살롱 안쪽 중앙 쇼케이스 마네킹에 걸려 있는 에메랄드빛 실크 드레스를 손끝으로 우아하게 가리켰다.“저걸로 입어보겠습니다.”그것은 쇄골과 목선을 시원하게 드러내고, 등 라인이 깊게 U자로 파여 척추 기립근과 견갑골의 곡선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과감한 딥 백리스 실크 드레스였다.디자이너가 당황한 기색으로 조심스럽게 만류했다.“사모님, 이 드레스는 체형이 조금만 무너져 있거나 굽은 등이 있으면 단점이 극명하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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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월요일 오후 2시, 청담동 최고급 펜트하우스 15층.남편 최민우가 지방 공장 출장을 떠나고 딸 하린이가 유치원에 간 시간.차가운 대리석 바닥이 깔린 거실의 현관 인터폰 벨이 고요한 정적을 날카롭게 갈랐다.‘띵동-.’소율이 인터폰 화면을 확인하자, 블랙 트레이닝복 차림의 차도진이 단정한 자세로 서 있었다.188cm의 압도적인 피지컬과 서늘한 존재감.소율의 심장이 기묘한 긴장감으로 쿵쿵 뛰기 시작했다. 센터가 아닌, 남편의 집 안으로 그 몸을 들이는 일이 이상하게 숨이 막혔다.문을 열자, 도진의 서늘한 숲 향기와 시원한 바깥 공기가 거실 안으로 묵직하게 밀려들었다.“실례하겠습니다, 사모님.”도진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거실로 들어섰다.남편 최민우의 허세와 과시욕으로 꾸며진 넓고 삭막한 거실.벽면에는 민우의 수상 트로피와 언론 인터뷰 액자들만 요란하게 걸려 있었고, 6년간 헌신한 소율의 흔적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그 차가운 공간 한가운데, 도진이 가져온 전문 운동 매트와 폼롤러, 저항 밴드들이 정갈하게 놓였다.“센터 기구에 의존하지 않고, 사모님이 매일 숨 쉬고 생활하는 이 공간에서 척추와 골반 정렬을 유지하는 법을 몸에 각인시켜야 합니다.”도진의 날카로운 시선이 소파와 식탁, 그리고 소율의 일상적인 걸음걸이를 예리하게 훑었다.“소파에 앉으실 때 늘 오른쪽 골반에 체중을 싣고 기대어 계시는군요. 아이를 안거나 집안일을 할 때 생긴 비대칭 습관 때문에 요추 4번과 골반 경사가 틀어지는 겁니다. 일상의 사소한 틀어짐이 체형을 무너뜨리는 주원인입니다.”도진의 한 치 오차 없는 지적에 소율은 절로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매트에 엎드리십시오. 오늘은 골반 심부 안정화 근육과 둔근 가동성을 집중적으로 잡겠습니다.”소율은 매트에 손바닥과 무릎을 대고 네발기기 자세를 잡았다.타이트한 기능성 레깅스와 탑 너머로 소율의 잘록한 허리와 탄탄한 등 라인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센터의 넓은 룸과 달리, 이 집의 매트는 안방 문과 너무 가까웠다. 남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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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수업? 지금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는 거야?”매트 끝에 선 민우가 소율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남편의 거친 삿대질과 폭언이 고요하던 거실의 적막을 날카롭게 찢어발겼다.민우의 시선은 땀에 젖은 소율의 탄탄한 허리 라인과, 그 곁에 서 있는 거대한 체격의 젊은 남자에게 사납게 꽂혀 있었다.민우가 더 다가서려 하자, 도진이 소율의 앞을 가로막아 섰다.188cm의 압도적인 피지컬과 서늘한 어깨너머로 민우의 시야가 완벽하게 차단되었다.도진의 목소리는 한겨울 얼음물처럼 차분하고 단호했다.“루미너스 VVIP 전담 1:1 홈 트레이닝 정식 계약에 따른 방문 지도 중입니다.”“뭐? 루미너스?”민우가 기가 찬다는 듯 코웃음을 쳤지만, 도진의 살기 어린 눈빛과 위압적인 체격에 본능적으로 반 걸음 물러섰다.전직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다운 단단한 골격과 묵직한 아우라는, 허세로 가득 찬 민우를 단숨에 짓눌렀다.“내가 분명 센터에 연락해서 회원권 환불하겠다고 통보했을 텐데? 당신들 강사들 수준이 이 따위야? 남의 집에 허락도 없이 기어들어와서 불륜 수작질이야 뭐야!”민우가 자존심을 세우려 억지 고함을 질렀다.그때, 도진의 등 뒤에서 소율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소율의 어깨는 활짝 펴져 있었고,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에는 일말의 두려움도 주눅도 없었다.“최민우 씨. 착각하지 마.”소율의 낮고 또렷한 음성이 거실에 서늘하게 울려 퍼졌다.“내가 예약했고 내가 문 열어드렸어. 센터에도 내 의사부터 확인하라고 했고. 선생님한테 화풀이하지 마.”“뭐……? 너 지금 누구 돈으로 끊어준 건지 잊었어? 내가 벌어다 준 돈으로 호사 누리면서 감히 남편한테 대들어?”민우가 삿대질하며 다가오자, 소율은 서늘한 비소를 머금었다.“당신 혼자 번 돈이라고? 내가 6년 동안 뭘 했는데. 우리 부모님이 대준 돈으로 회사 시작하고, 내가 밤새 그린 디자인으로 첫 물건 팔았잖아. 100회 회원권 끊어줬다고 그게 전부 당신 덕이 돼? 내 몸 돌보는 일까지 허락받을 생각 없어. 내가 계속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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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브랜드 리뉴얼 VIP 갈라 파티 당일 아침.소율은 창가에 서서 맑게 갠 청담동의 하늘을 바라보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슴속을 가득 채우는 서늘한 긴장감과 기묘한 전율.휴대폰 진동과 함께 박지은 변호사의 전화가 걸려 왔다.- 소율아, 방금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가처분 신청 접수 증명서가 정식으로 발급됐어.지은의 목소리는 승리를 확신하는 사냥꾼처럼 예리하고 명쾌했다.- 최민우가 윤세라의 페이퍼컴퍼니 ‘세라픽 스튜디오’로 상표권을 넘기려던 계약서 원본, 그리고 수억 원대 법인 자금 횡령 전표까지 전부 법원에 제출했어. 오늘 저녁 갈라 파티에서 주요 투자사들과 이사진이 모였을 때 공식적으로 폭로할 거야. 최민우의 사회적 매장을 위한 완벽한 무대야.“고마워, 지은아. 모든 준비는 끝났어. 파티장에서 보자.”전화를 끊은 소율은 딸 하린이를 친정어머니께 부탁한 뒤, 예약해 둔 최고급 헤어 메이크업 살롱으로 향했다.거울 앞에 앉은 소율의 얼굴 위로 섬세한 브러시 터치가 이어졌다.화려하게 덧칠하는 화장이 아닌, 소율 본연의 맑고 우아한 이목구비를 극대화하는 내추럴 글로우 메이크업.단정하게 빗어 올려 목선과 쇄골의 유려한 선을 강조한 클래식 업스타일 헤어.그리고 마침내, 살롱에서 맞춘 에메랄드빛 딥 백리스 실크 드레스를 착용했다.차르륵-.시원하고 매끄러운 실크가 몸을 감싸 안는 순간, 숍 안의 모든 원장과 스태프들이 일제히 숨을 죽였다.군살 하나 없이 곧게 뻗은 목선, 도진의 코칭으로 활짝 펴진 우아한 날개뼈, 그리고 꼿꼿하게 솟아오른 척추 기립근.거울 속에는 6년간 남편의 그늘에 갇혀 있던 초라한 그림자가 아닌,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디자이너 한소율이 서 있었다.도진에게서 전수받은 호흡법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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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화려한 샹들리에 조명이 쏟아지는 그랜드 볼룸의 메인 무대.최민우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무대 중앙 마이크 앞에 섰다.“존경하는 투자자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를 빛내주신 정재계 귀빈 여러분. 오늘 이 자리는 저희 브랜드가 국내를 넘어 글로벌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역사적인 순간입니다.”민우는 대형 스크린에 띄워진 신규 리뉴얼 라인업을 가리키며, 마치 자신이 모든 디자인 철학과 공간 조형미를 독자적으로 창조해 낸 천재 사업가인 양 온갖 현란한 미사여구를 쏟아냈다.“창립 초기부터 제가 직접 스케치북을 메우며 지켜온 ‘절제된 미니멀리즘과 코발트블루의 조화’, 그것이 바로 오늘날 수백억 매출을 일군 제 신념의 결실입니다.”민우가 샴페인 잔을 들어 올리며 오만한 시선으로 객석을 둘러보았다.하지만 메인 헤드테이블에 앉아 있던 대명인베스트 박진우 대표와 문화재단 강혜란 이사장의 표정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소율은 등을 꼿꼿이 세운 채, 샴페인 잔을 가볍게 쥐고 무대 위의 남편을 서늘한 눈빛으로 응시했다.도진에게 배운 늑골 호흡으로 복압을 단단히 유지한 소율의 자세는, 그 자체로 범접할 수 없는 고혹적인 위엄을 뿜어내고 있었다.자신의 피땀 어린 창작물을 가로채 평생을 기만해 온 남편의 얄팍한 허세가 마지막 발악을 하고 있었다.그때였다.민우의 발표가 절정에 달해 자화자찬을 늘어놓으려던 순간, 무대 뒤편의 거대한 초대형 LED 스크린 화면이 지지직거리며 푸른색 법원 직인이 찍힌 공문서 화면으로 강제 전환되었다.[서울중앙지방법원 제51민사부 : 상표권 및 지식재산권 일체 처분금지 가처분 인용 결정문]순간 볼룸 안의 모든 웅성거림이 거짓말처럼 뚝 끊기며 숨 막히는 침묵이 내려앉았다.&ldqu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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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크악……!”민우의 입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도진의 거대한 손아귀는 민우의 손목뼈를 부술 듯 단단하게 옥죄고 있었다.도진의 서늘한 눈빛에는 단 한 점의 자비도, 흔들림도 없었다.“사모님께 더러운 손대지 마십시오.”도진의 낮고 묵직한 중저음이 얼음송곳처럼 민우의 고막을 찔렀다.전 국가대표 출신의 완벽한 완력 앞에 민우는 힘 한번 쓰지 못하고 바닥으로 무릎을 꿇었다.파티장에 모인 수백 명의 정재계 인사들과 기자들이 바닥에 널브러진 민우의 추태를 경멸 어린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소율은 도진의 곁에서 등을 곧게 펴고 서서, 차갑게 식어버린 눈동자로 남편을 내려다보았다.“최민우 씨. 당신 파티야. 망친 것도 당신이고. 나한테 뒤집어씌우지 마.”민우는 바닥을 기며 고통과 굴욕감에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한편, 객석 구석에서 사태를 지켜보던 윤세라는 자신의 이름과 페이퍼컴퍼니가 전광판에 박제되자 사색이 되어 도망치려 했다.“비켜요! 나랑 상관없는 일이라고요!”세라가 붉은 드레스 자락을 움켜쥐고 연회장 출구로 뛰쳐나가려던 찰나, 박지은 변호사가 앞을 가로막아 섰다.“윤세라 강사님. 법인 자금 부정 수수 및 상간자 불법행위에 대한 위자료 청구 소장 전달해 드립니다. 부동산 및 예금 계좌 가압류도 함께 집행되었으니 도망칠 생각은 접으시죠.”소장을 받아 든 세라의 손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며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주변 하객들의 수군거림과 경멸 어린 시선이 세라의 숨통을 조여왔다.인플루언서로서 쌓아 올린 화려한 명성과 가짜 삶이 단 한순간에 산산조각 났다.소율은 무너져 내린 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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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갈라 파티 다음 날 오전 10시, 역삼동 본사 18층 대회의실.대명인베스트 박진우 대표와 주요 기관 투자자, 그리고 사외이사들이 전원 참석한 가운데 긴급 임시 이사회가 소집되었다.회의실 대형 스크린에는 붉은색 글씨로 안건이 선명하게 떠올라 있었다.[안건 : 대표이사 최민우 직무집행정지 및 해임 결의의 건]초췌한 몰골로 문을 열고 들어선 민우는 넥타이조차 제대로 매지 못한 채 주주들을 향해 연신 허리를 굽혔다.“이사님들! 어제 일은 오해입니다. 상표권 계약은 해외 라이선스 제휴를 검토하던 거고, 카드 쓴 건 마케팅 비용이에요. 설명할 기회는 주셔야죠!”민우의 구차한 변명에 회의실 안에는 싸늘한 비소와 경멸만이 감돌았다.대명인베스트 박진우 대표가 법원 가처분 인용 결정문과 회계 감사 보고서를 탁자 위로 매섭게 내던졌다.“최 대표. 법원에서 가처분이 인용된 계약서와 내연녀 오피스텔 보증금 송금 영수증, 그리고 백화점 명품 결제 전표가 버젓이 제출되었습니다. 창립 초기 아내의 디자인을 독점해 사기극을 벌인 것도 모자라, 회사 공금으로 불륜을 저지른 자를 어떤 주주가 신뢰하겠습니까?”“박 대표님!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제가 이 브랜드를 일군 장본인입니다!”민우가 애원하듯 매달렸지만, 박 대표는 단호하게 손을 들어 말을 잘랐다.“더 이상의 변명은 듣지 않겠습니다. 투표를 시작하겠습니다.”결과는 만장일치였다.최민우 대표이사의 직무집행정지 및 해임안이 단 15분 만에 일사천리로 가결되었다.대표실로 돌아와 쫓겨나듯 개인 짐을 싸던 민우 앞에, 사색이 된 윤세라가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최민우! 내 오피스텔 보증금이랑 통장 가압류 걸린 거 어떻게 할 거야?! 당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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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다음 날 오전, 대명인베스트 문화재단 집무실.소율은 강혜란 이사장과 마주 앉아 프리미엄 아트 콤플렉스 총괄 비주얼 디렉터 위촉 계약서에 정식으로 서명했다.“한소율 디렉터님. 다시 무대 위로 돌아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강 이사장이 따뜻하게 손을 건넸다.“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사장님. 기대에 부응하는 최고의 디자인을 선보이겠습니다.”소율의 목소리에는 프로 디자이너로서의 자부심과 결의가 넘쳐흘렀다.재단 측에서 배정한 전용 아틀리에와 새 스케치북을 마주하자, 6년간 억눌려 있던 창작의 열정이 심장 속에서 뜨겁게 요동쳤다.소율의 손끝에서 새로운 로고 라인과 코발트블루 컬러 팔레트들이 막힘없이 피어나기 시작했다.자신이 살아있음을, 온전한 창작자로 숨 쉬고 있음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순간이었다.***오후 2시, 청담동 펜트하우스 거실.어제 민우가 짐을 싸서 완전히 쫓겨난 집안은 차분하고 맑은 공기에 싸여 있었다.‘띵동-.’인터폰이 울리고, 편안한 블랙 슬리브리스 트레이닝복 차림의 차도진이 들어섰다.도진의 압도적인 피지컬과 서늘한 숲 향기가 거실의 공기를 단숨에 정화하듯 메웠다.“오셨어요, 선생님.”“축하드립니다, 사모님. 오늘 재단 총괄 디렉터 위촉 소식을 기사로 접했습니다.”도진의 나지막한 축하에 소율이 수줍은 듯 맑은 미소를 지었다.“선생님 덕분이에요. 몸이 바로 서니까, 제 인생의 자리도 되찾을 수 있었어요.”“사모님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신 겁니다. 하지만 이제 본격적인 디자인 작업에 들어가시면 장시간 드로잉으로 흉추와 견갑골이 다시 굳기 쉽습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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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다음 날 오후 3시, 강남 테헤란로에 위치한 최고급 5성급 부티크 호텔 22층.두터운 카펫이 깔린 최상층 복도에 소율과 박지은 변호사, 그리고 법원 집행관 및 증거 채증 전문 조사관들이 섰다.스위트룸 2205호 문 앞.심장이 가쁘게 뛰며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저려왔지만, 소율은 이를 악물었다.도진에게 배운 늑골 호흡으로 아랫배를 단단히 조이고, 굽어 있던 척추를 꼿꼿하게 세웠다.신체 중심이 흔들림 없이 바로 서자, 요동치던 감정의 파도가 차가운 얼음처럼 가라앉았다.“집행관님, 개문해 주십시오.”지은의 신호에 호텔 지배인이 마스터키를 도어록에 태그하고 문을 밀어 열었다.‘삐비빅-.’스위트룸 문이 활짝 열리는 순간, 방 안에서 은은하게 풍기던 짙은 바닐라 향수와 샴페인 냄새가 복도로 쏟아져 나왔다.침실과 이어진 응접실 안쪽.샤워 가운 차림의 최민우와 얇은 실크 슬립 차림의 윤세라가 대형 원목 테이블 위에 거액의 미화 100달러 뭉치와 귀금속, 그리고 차명 계좌 통장들을 펼쳐놓고 해외 도피 일정을 조율하고 있었다.“어……? 누구야?!”민우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가, 문 앞에 서 있는 소율을 발견하고 그대로 얼어붙었다.“하, 한소율……?!”세라는 사색이 되어 비명을 지르며 침대 시트로 몸을 가리려 허둥댔다.“꺄악! 뭐야! 당신들 누구야?! 당장 나가요!”그 순간, 조사관들의 전문 카메라 플래시가 사방에서 쉴 새 없이 터지기 시작했다.번쩍-! 번쩍-!테이블 위에 널브러진 거액의 현금 뭉치와 위조 서류, 그리고 두 사람의 적나라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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