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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Author: 6jay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15 10:35:51

호텔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차 안에는 숨 막히는 침묵이 흘렀다.

민우는 콘솔 위에 놓인 스마트폰을 힐끔거리며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었다.

윤세라에게서 걸려 온 부재중 전화가 세 통, 그리고 거친 항의 문자가 화면을 쉼 없이 채우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민우는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 던지며 서재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소율은 닫힌 서재 문을 차가운 시선으로 응시한 뒤, 안방으로 들어가 박지은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 여보세요, 소율아! 만찬 잘 끝났어?

“응. 지은아, 오늘 대명인베스트 강혜란 이사장님을 만났어.”

소율은 만찬 자리에서 있었던 일과 강 이사장이 제안한 재단 총괄 디렉터 자리에 대해 차분하게 설명했다.

수화기 너머로 지은의 감탄 섞인 탄성이 터져 나왔다.

- 대박이다, 한소율! 강혜란 이사장은 정재계와 문화계에서 영향력이 엄청난 거물이야. 그 프로젝트를 맡으면 네 커리어 복귀는 물론이고, 이혼 소송에서 경제적 자립 능력과 양육권 확보에 결정적인 무기가 돼!

“나, 정말 잘해보고 싶어. 하린이한테 부끄럽지 않은 당당한 엄마가 되고 싶거든.”

- 당연하지. 넌 원래 최고였어. 참, 그리고 내가 요청했던 최민우 대표 법인 자금 추적 결과가 1차로 나왔어.

지은의 목소리가 한층 날카롭게 가라앉았다.

- 최민우가 회사 돈으로 윤세라 오피스텔 보증금 3억 원을 냈어. 매달 400만 원씩 켈브란 리스료도 나갔고. 백화점에서 수천만 원 긁은 전표까지 있어. 이건 바람피운 문제로만 끝날 일이 아니야. 횡령·배임 혐의도 검토할 수 있어.

“……고마워, 지은아. 차근차근 전부 모아둘게.”

통화를 마친 소율은 가슴을 깊게 쓸어내렸다.

남편의 파렴치한 범죄와 배신의 증거들이 하나씩 소율의 손아귀로 들어오고 있었다.

***

다음 날 아침, 식탁에 마주 앉은 민우의 눈 밑은 퀭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어젯밤 세라의 히스테리를 달래느라 밤새 진을 뺀 모양이었다.

민우는 식어버린 커피를 들이켜며 소율을 노려보듯 말했다.

“어제 강 이사장이 제안한 문화재단 프로젝트, 당장 거절해.”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소율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담담하게 되물었다.

민우의 미간이 사납게 구겨졌다.

“당신이 바깥일 한답시고 쏘다니면 하린이는 누가 보고 집안 살림은 누가 해? 그리고 당신 지금 루미너스 PT 받으러 다니는 것도 당장 때려치워.”

“루미너스 PT까지?”

“거기 강사들이랑 트레이너들 수준이 형편없더군. 회원들 뒷조사나 하고 다니고. 내가 오늘 당장 환불 처리할 테니까 앞으로 발도 들이지 마.”

세라의 징계 소식을 듣고 소율의 입을 막기 위해 횡포를 부리는 속셈이 빤히 들여다보였다.

소율은 피식 헛웃음을 흘리며 의자 등받이에 등을 꼿꼿이 기댔다.

“내 이름으로 끊어준 회원권이야. 환불할지 말지는 내가 센터하고 얘기할게. 재단 일도 내가 결정해. 당신 허락 받으려고 꺼낸 얘기 아니야.”

“뭐? 너 지금 남편한테 말대꾸하는 거야?! 말 다 했어?!”

민우가 밥상을 엎을 듯 소리를 질렀지만, 소율은 단 한 치의 미동도 없이 서늘한 눈빛으로 남편을 응시했다.

생전 처음 보는 아내의 서슬 퍼런 위압감에 민우는 오히려 말문이 막힌 채 씩씩거리기만 했다.

소율은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

오전 11시, 루미너스 프라이빗 트레이닝 룸.

소율이 들어서자, 도진이 반듯한 자세로 서서 소율을 맞이했다.

도진의 날카로운 시선이 소율의 걸음걸이와 턱선, 어깨 라인을 스캔하듯 훑었다.

“오늘 자세는 매우 훌륭합니다, 사모님. 눈빛에 흔들림이 없군요.”

도진의 칭찬에 소율의 입가에 맑은 미소가 번졌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지난번보다 어깨에 힘을 덜 주셨습니다. 집에서도 연습하셨나 보군요.”

도진은 소율을 리포머와 매트로 안내했다.

“오늘부터 2단계 코어 강화와 흉곽 안정화 훈련에 들어갑니다. 호흡과 신체 중심을 온전히 사모님의 것으로 만드셔야 합니다.”

도진이 소율의 골반과 갈비뼈 양옆에 단단한 손바닥을 얹었다.

그의 묵직하고 뜨거운 체온이 소율의 몸 깊숙이 스며들며 굳어 있던 늑골을 활짝 열었다.

“숨을 들이마시며 흉곽을 3차원으로 확장하고…… 뱉으면서 복부를 코르셋처럼 조이십시오.”

도진의 묵직한 가슴팍이 소율의 등 뒤에 바짝 닿을 듯 다가왔다.

서늘한 숲 향기와 뜨거운 체온이 교차하며 강렬한 신체적 텐션이 룸 안을 가득 채웠다.

소율은 온몸의 신경을 도진의 손길과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며 완벽한 정렬을 이루어냈다.

운동을 마친 후, 땀을 닦는 소율에게 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사모님, 다음 주부터 자택 수업도 병행해 보시겠습니까? 집에서 오래 앉는 자리나 생활 습관을 직접 보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소율은 잠깐 대답을 망설였다. 센터에서만 보던 남자가 자신의 집으로 온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거실에서 해도 되나요?”

“매트를 놓을 공간이면 됩니다. 시간을 먼저 정하시죠.”

도진이 일정표를 펼쳤다. 소율은 남편의 출장 날짜부터 떠올리는 자신을 알아차렸다. 아직도 그 사람 눈치를 보는구나. 입술을 살짝 눌렀다가, 자신이 편한 시간을 짚었다.

“하린이가 유치원에 가 있는 오후가 좋겠어요.”

“그럼 그 시간으로 잡겠습니다.”

소율은 예약 시간을 휴대폰에 직접 입력했다. 이번 일정에는 민우의 허락을 구하는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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