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낮에는 선비, 밤에는 마물: Chapter 21 - Chapter 30

116 Chapters

서책 보관각의 사투

어전 회의의 소집을 알리는 묵직한 징 소리가 대궐 마당을 쩌렁쩌렁 울렸다. 백관들이 일제히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왕이 계신 편전을 향해 줄지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진은 단 한 걸음도 떼지 못한 채, 궁궐 회랑의 붉은 기둥을 붙잡고 사시나무 떨듯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관복 도포 앞자락이 마치 거대한 창끝처럼 허공을 향해 뾰족하게 솟아올라 부르르 경련하고 있었다. 폭주하는 흉물의 지독한 고열에 비단 바지가 타들어 갈 듯 뜨거웠고, 귀두 끝에서 쏟아져 나오는 진액이 버선목을 타고 흘러내려 신발 안쪽을 적셨다.이 몰골로 편전에 발을 들이는 순간, 전하와 삼정승 육판서 앞에서 음란한 마물임이 만천하에 폭로되어 대역죄인으로 능지처참을 당할 터였다."배 참판! 어찌 그리 지체하시오? 어전 회의에 불참했다간 당장 삭탈관직이오!"저 멀리서 좌참찬이 조롱 섞인 목소리로 도진을 재촉했다. 도진은 눈앞이 하얗게 점멸하는 절망 속에서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었다."끝이다…… 배씨 가문 백 년의 명망이 오늘 내 가랑이 사이에서 끝장나는구나."단전이 터질 듯 팽창하며 하복부를 칼로 후벼 파는 고통에 굵은 식은땀이 턱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한 발자국만 움직여도 도포가 찢겨 나갈 것 같은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궁궐 담장 모퉁이 그늘 뒤편에서, 눈에 익은 옥색 무명 치맛자락이 스치듯 시야에 들어왔다. 연화였다. 참판 댁 노마님의 명을 받아 궁중 내의원에 약재를 전하러 입궐했던 연화가, 기둥 뒤에서 비틀거리는 도진의 심상치 않은 꼴을 발견하고 다가온 것이었다.도진은 마지막 남은 생명의 불씨를 쥐어짜듯, 다가온 연화의 가느다란 손목을 낚아챘다."읍……?! 나으리?!"연화가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지르려는 찰나, 도진은 그녀를 품에 와락 끌어안고 편전 옆 외딴 서책 보관각(書冊保管閣) 문 안으로 뛰어들었다. 끌어안는 동작에 도포 안의 기둥이 연화의 아랫배에 묵직하게 닿았다.쾅-!먼지가 뽀얗게 쌓인 육중한 목문이 닫히고, 도진은 떨리는 손으로 빗장을 걸어 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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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포 자락 속의 구강 접치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서책 보관각 구석. 천장 높이 솟아오른 웅장한 서가들이 미로처럼 얽힌 어두컴컴한 틈새로, 묵직한 고서 냄새와 함께 지독하게 농밀한 단내가 진동했다.쾅, 쾅-!"배 참판! 안에 계시오? 전하께서 편전에 입어하시어 어전 회의가 곧 개회될 시간이오!"서책각의 육중한 목문 너머로 좌참찬의 재촉하는 서슬 퍼런 고함이 쩌렁쩌렁 울렸다. 문풍지가 파르르 떨며 문밖의 호위 군사들과 관원들의 웅성거림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어서 문을 여시오! 의례 주무관이 어전 회의에 불참하는 것은 대역죄요!"그러나 도진은 대답은커녕 제 입술조차 떼지 못하고 서가 기둥을 손톱이 부서져라 쥐어뜯고 있었다.문 쪽으로 돌린 도진의 고개가 굳었다. 밖에서 부르는 관직명은 또렷했지만, 대답할 말을 고르는 동안에도 숨이 끊겼다. 그는 서가에 짚은 손에 힘을 주었다. 손끝이 떨려 책등을 건드릴 때마다 문밖에서 그 소리를 듣지 않았는지 귀를 세웠다.도진의 넓은 관복 도포 자락 아래, 연화가 무릎을 꿇은 채 남자의 하반신 깊숙이 머리를 푹 묻고 있었다. 연화의 붉고 작은 입술이, 서역의 극양 독주로 인해 펄펄 끓어오르는 거대한 귀두를 망설임 없이 한입에 집어삼켰다. 턱이 한계까지 벌어지고, 입술이 테두리를 넘자 침이 줄줄 흘렀다.읍, 츄릅-.서늘하고 매끄러운 여인의 구강 안쪽 여린 살결이, 팽창한 대물의 굵직하고 시퍼런 핏줄을 빈틈없이 감싸 안았다. 혀가 밑에서 기둥을 쓸고, 윗입술이 귀두 홈을 문질렀다. 한 번에 삼켜지지 않는 길이를 손으로 받쳐 짜냈다."흐아…… 으읍……!"도진의 등줄기가 활처럼 꺾이며 눈동자가 하얗게 뒤집혔다. 신음을 내지르면 문밖의 관리들과 군사들에게 즉시 발각되어 대역죄인으로 능지처참을 당할 절체절명의 상황. 도진은 제 비단 관복 소맷자락과 손등을 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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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밖의 발소리와 절정

쿵-! 쿵-!서책각 목문이 거칠게 덜컹거리며 천장의 먼지가 부옇게 쏟아져 내렸다."군사들은 무얼 하느냐! 즉시 그 도끼로 저 빗장을 찍어 넘겨라!"문풍지 너머로 들려오는 좌참찬의 서슬 퍼런 호통에, 도진의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발각까지 남은 시간은 기껏해야 서너 숨. 그러나 도진의 가랑이 사이에 머리를 묻은 연화는 물러서기는커녕, 오히려 도진의 골반을 제 양손으로 꽉 부여잡았다.연화의 가느다란 목구멍이 거대한 흉물의 기둥을 남김없이 삼켜내며 격렬하게 조여들었다. 코가 밑동에 닿을 만큼 밀어 넣자 숨이 막히는 소리가 났다.꾸륵, 츄릅, 흡-!극음의 냉기와 마계의 화마가 여인의 목구멍 안에서 맹렬히 회오리치며, 도진의 단전에 갇혀 있던 양기를 무자비하게 쥐어짰다. 연화는 두 손으로 도진의 엉덩이를 제 쪽으로 바짝 끌어당겨 한 치의 틈도 없이 밀착시켰다.여인의 목구멍 안쪽 따스하고 젖은 압박이 굵직한 기둥을 쥐어짜듯 삼켜낼 때마다, 도진의 등줄기로 수만 마리의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전율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삼키는 동작마다 볼이 홀쭉해졌다."읍…… 하아…… 연화야…… 제발……!"도진은 제 비단 도포를 찢을 듯 움켜쥐며 턱을 뒤로 꺾었다."으, 으읍……! 하윽…… 연화야……!"도진은 눈앞이 하얗게 타들어 가는 환각 속에서 연화의 어깨를 바스러져라 움켜쥐었다. 목구멍 깊숙한 곳까지 차오른 쾌락의 파도가 남자의 등뼈를 부러뜨릴 듯 휘몰아쳤다.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입술을 짓이기며 피를 철철 흘리던 도진의 허리가 마침내 통제를 잃고 허공을 향해 튕겨 올랐다.푸슈욱-! 콰아아-!용암처럼 끓어오르던 뜨거운 백탁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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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입술과 싹트는 연정

도진의 서슬 퍼런 일갈에 좌참찬의 얼굴이 흙빛으로 일그러졌다. 기대했던 '음란한 마물에 씐 미치광이'의 꼴은 어디에도 없었다. 도진의 안색은 창백하리만치 차분했고, 관복 앞섶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그렇다면 아까 부를 때 한마디라도 하셨어야지."좌참찬이 혀를 차며 미심쩍게 물러서려 하자, 도진이 펼쳐 든 서책을 내려놓고 한 걸음 성큼 다가섰다."대감께서 권하신 서역 보양주가 체질에 맞지 않아 잠시 냉수를 마시며 정신을 가다듬던 중이었습니다. 어전 회의가 시작되었으니 어서 편전으로 드시지요. 대감의 무례는 전하 앞에서 친히 시비를 가리겠습니다."도진이 조금의 흔들림도 없는 서늘한 걸음걸이로 앞장서서 편전으로 성큼 걸어 나가자, 백관들과 사신들은 도진의 위풍당당한 기개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좌참찬과 군사들은 기가 질려 쥐구멍이라도 찾듯 꽁무니를 뺐다. 어전 회의가 진행되는 2시진 동안, 도진은 완벽한 논리로 외교 공문을 보고하며 좌참찬의 숨통을 조였다. 정적으로부터 가문과 목숨을 완벽히 지켜낸 압도적인 승리였다.***회의가 파하고 해 질 녘이 되어서야 도진은 다시 서책 보관각으로 숨어들었다. 어둑한 서가 구석, 연화가 피곤에 겨워 책더미에 기댄 채 곤히 졸고 있었다. 그녀의 붉은 입술가에는 미처 다 닦아내지 못한 하얀 정액의 흔적이 말라붙어 있었다.자신을 살리기 위해 대궐 한복판에서 그 끔찍한 양기를 목구멍으로 다 받아내 준 여인. 만약 연화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어전에서 피를 토하고 능지처참을 당했을 터였다. 도진은 연화의 작은 손을 제 두 손으로 소중히 감싸 쥐며, 가슴 벅찬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도진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형언할 수 없는 뜨겁고 저릿한 감정이 화산처럼 솟구쳐 올랐다. 신분의 벽도, 유교적 명분도, 사대부의 체통도 이 여인의 희생과 헌신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도진은 잠든 연화 옆에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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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막의 미행과 암운(暗雲)

창덕궁 인정전의 독주 음모가 수포로 돌아간 후, 좌참찬의 비밀 사가 사랑방에는 음산한 살기가 감돌았다. 좌참찬은 탁자 위에 놓인 백자 찻잔을 마루 바닥에 사정없이 내던져 산산조각을 내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사기 조각이 사방으로 튀며 서늘한 파열음을 냈고, 찻물이 검게 번져 나갔다."내 십수 년간 공들여 준비한 거사가 고작 일개 참판 놈에게 발목이 잡혀 어그러질 순 없다!""말도 안 된다! 환양술에 극양의 독주까지 먹였거늘, 어찌 어전 회의에서 털끝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단 말이냐!"그의 맞은편에 앉은 검은 도포 차림의 도사가 음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대감, 배도진의 몸속에 있는 마계의 양기를 누군가 완벽하게 정화해 주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보통의 침술로는 불가능하니, 범상치 않은 특이 체질을 지닌 자가 지척에 숨어 있는 것입니다.""지척에 숨은 자라니?""배도진의 사가를 샅샅이 감시해야 합니다. 반드시 그 뒤에 숨은 치료자가 있을 터입니다."좌참찬의 눈빛이 북극의 한기보다 차가운 살의로 번뜩였다."배도진 이놈이 내 손에 파멸하지 않는다면, 이번엔 내가 어전에서 역모로 몰려 사약을 받을 판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그 배후를 밝혀내라!"좌참찬이 명령을 내리자 사설 자객들과 밀정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인 채 다음 말을 기다렸다."즉시 가회동 참판 댁에 사설 밀정을 붙여라. 쥐새끼 한 마리 드나드는 것까지 낱낱이 보고하라!"명령이 끝나자 자객들과 밀정들은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그 시각, 북촌 가회동 참판 댁 서쪽 별채. 별채 툇마루 위로 밤안개가 낮게 깔리며 서늘한 바람이 대나무 숲을 스산하게 흔들고 있었다. 궁궐에서의 거대한 위기를 넘긴 도진은, 연화의 안위가 걱정되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나으리, 별채 군불이 식어서 장작을 좀 패 와야겠는데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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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의 은밀한 합방

북촌 가회동 참판 댁 사랑채 서재.창호지 문살 틈으로 스며드는 밤바람이 유난히 스산했다. 도진은 서책을 펼쳐 두고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뜰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조금 전, 서쪽 별채 뒤편 대나무 숲에서 바스락거리는 불길한 발소리를 똑똑히 들었다.바람에 흔들리는 댓잎 소리가 아니었다. 인기척을 숨기려 극도로 발걸음을 죽인 자객 혹은 사설 밀정의 은밀한 기척이었다.'좌참찬…… 기어이 내 사가에 개들을 풀었구나.'도진은 벼루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독주 사술이 실패로 돌아가자, 흑막들은 도진이 어떻게 화마를 잠재웠는지 캐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만약 저 어둠 속에 숨은 자들이 별채를 급습하여 연화의 존재를 알아챈다면? 극음 체질의 침모가 밤마다 참판의 양기를 뽑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연화는 사헌부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목숨을 잃을 터였다.생각만 해도 가슴속에서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듯한 공포와 분노가 치밀었다. 단순히 제 가문의 체통이나 환양술의 비밀이 탄로 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었다. 저 여염집 처자, 뻔뻔하고 당돌하게 웃으며 제 목숨줄을 쥐고 흔들던 연화가 참혹하게 다칠 수 있다는 사실이, 도진의 심장을 옥죄어 오고 있었다.도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별채로 향하는 협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달칵.별채 온돌방 안에서 혼자 침구를 펴고 있던 연화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돌아보았다."나으리? 밤이 깊었는데 어인 행차이십니까. 또 가랑이 사이가 불타오르십니까?""잔말 말고 짐을 싸거라.""예? 짐을 싸라니요? 매달 은괴 30냥 주시기로 해놓고 야밤에 내쫓으시려는 겁니까?"연화가 눈꼬리를 치켜올리며 저고리 옷깃을 단단히 여몄다. 도진은 귀밑이 붉어지는 것을 애써 누르며 헛기침을 내뱉었다."누가 쫓아낸다더냐! 처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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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이불 속의 농밀한 접치

탁, 촛불의 심지가 꺼지며 사랑채 안방은 짙은 어둠 속에 잠겼다. 창호지 문살을 통해 스며드는 푸르스름한 새벽달빛만이 방바닥에 깔린 넓은 비단 요를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한 이불 아래, 도진과 연화는 나란히 누워 있었다.도진은 꼿꼿하게 천장을 바라본 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나무토막처럼 굳어 있었다. 옆자리에서 은은하게 풍겨오는 연화의 달콤한 살냄새와 따스한 체온. 규방 처자의 숨결이 귓가를 간질일 때마다 도진의 심장은 당장이라도 갈비뼈를 부수고 튀어나올 듯 거세게 요동쳤다.연화를 만나기 전에는 여인의 손길은커녕 옷자락조차 스쳐본 적 없던 결벽증 선비에게, 이 야릇한 합방은 고문과도 같았다.옆자리에서 이불이 바스락거렸다. 도진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눈만 움직였다. 연화가 편히 눕는 모습을 본 뒤에도 어깨의 힘이 빠지지 않았다. 제가 먼저 함께 머물자 해 놓고 이제 와 불편한 기색을 내는 것 같아 입술을 다물었다.화르륵-.아니나 다를까, 긴장과 흥분이 극에 달하자 가랑이 사이에서 지독한 불길이 치솟았다."흐윽……! 읏……!"도진의 입술 사이로 억누른 신음이 터져 나왔다. 관복을 벗고 얇은 속곳만 걸친 하반신에서, 거대한 흉물이 무서운 기세로 팽창하며 비단 이불을 불룩하게 밀어 올렸다. 단전이 펄펄 끓어오르며 단단해진 대물이 옆으로 돌아누운 연화의 허벅지 안쪽 살갗을 묵직하게 찔렀다."으음…… 나으리?"잠결에 뒤척이던 연화가 허벅지에 닿은 뜨겁고 굵직한 몽둥이에 흠칫 놀라 눈을 떴다."가, 가까이 오지 마라…… 저리 비켜라…… 흣! 으흑……!"도진은 제 배를 쥐어뜯으며 벽 쪽으로 몸을 웅크리려 했다. 어둠 속에서도 남자의 백옥 같은 뺨이 수치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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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흉터와 의관의 누명

새벽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은은한 아침 햇살이 창호지를 비추었다. 연화는 도진의 단단한 품속에 갇힌 채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밤새 폭풍 같은 접치를 치르고 탈진한 예조참판은, 여전히 연화의 허리를 꽉 끌어안은 채 곤히 잠들어 있었다.평소의 서슬 퍼런 위엄은 온데간데없었다. 땀에 젖은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색색 숨을 쉬는 도진은, 어리광을 부리는 철없는 사내 같았다. 연화는 픽 웃음을 흘리며 남자의 곤히 잠든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평소에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처럼 냉랭하던 사대부가, 제 품에 안겨 안식을 찾는 모습이 묘하게 가슴을 간질였다. 연화는 살포시 손을 뻗어 남자의 벌어진 옷섶 사이를 살폈다. 도진의 왼쪽 쇄골 아래, 심장 부근에 선명하게 새겨진 붉고 거친 흉터.단순한 칼자국이 아니었다. 독기를 빼내기 위해 불에 달군 침을 수십 차례 찔러 넣고 살점을 도려낸 끔찍한 시술의 흔적이었다.스륵-.연화의 서늘한 손끝이 흉터 위를 조심스럽게 쓸어내리자, 도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서서히 눈을 떴다."으음……."도진은 제 품 안에 안겨 있는 연화의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 상체를 벌떡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도로 홑청 위로 몸이 기울었다."너, 네가 왜 내 품에……!""나으리께서 밤새 저를 질식사시킬 기세로 끌어안고 주무셔놓고 누굴 탓하십니까?"도진의 얼굴이 단숨에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어젯밤 한 이불 아래에서 벌어졌던 그 낯뜨거운 정염의 기억들이 벼락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연화는 붉어진 도진의 얼굴 대신, 그의 가슴팍 흉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이 흉터…… 5년 전, 궁중에서 일어났던 '단오 독살 미수 사건' 때 생긴 것이지요?"도진의 서늘한 눈매가 일순 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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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진심 어린 약조

좌참찬 윤자명.그 더러운 이름 석 자가 연화의 붉은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순간, 도진의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모든 의문의 조각들이 단숨에 하나로 맞춰지고 있었다. 5년 전, 강태수 의관의 목숨을 건 시술 덕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던 자신.그리고 그 의관의 억울한 누명 뒤편에 도사리고 있던 좌참찬의 검은 음모. 도진은 연화의 작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사당동 뒷골목 음습한 암의원에서 천대받으며 억척스럽게 약재를 다듬고 침을 놓던 처자.그녀가 쥐어짜듯 벌어들인 은괴들은 사치나 유흥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폐인이 되어 누워 있는 아비의 탕약값과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피눈물 나는 생존의 대가였다. 그 가녀린 어깨 위에 얹혔을 모진 풍파와 세월의 무게가, 도진의 가슴 한구석을 송곳으로 찌르듯 후벼 팠다.체통만을 따지며 쌀쌀맞게 굴었던 지난날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고 미안해졌다."바보 같은 계집……."도진의 입술 사이로 낮고 거친 탄식이 새어 나왔다. 연화가 눈물을 훔치며 붉어진 눈으로 도진을 흘겨보았다."예, 바보 맞습니다. 아비의 원수를 알고도 아무것도 못 하고 그저 목숨 부지하겠다고 나으리 양물이나 주무르고 있었으니 바보 천치지요.""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다!"도진이 불쑥 손을 뻗어 연화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평소의 결벽증 선비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칠고 박력 있는 손길이었다."나으리……?"놀란 연화의 뺨 위로, 도진의 기다란 손가락이 가만히 닿았다. 남자는 비단 소매로 연화의 눈가에 고인 굵은 눈물방울을 아주 조심스럽고 다정하게 닦아내기 시작했다. 도진의 흑요석 같은 눈동자 속에서, 일찍이 본 적 없는 맹렬한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너의 부친은 충의로운 의관이었고, 내 목숨을 살려준 은인이다. 죄인은 오직 좌참찬 그 간교한 흉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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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판 댁 노마님의 기습 방문

그다음 날 이른 아침의 차가운 이슬이 북촌 가회동 참판 댁 사랑채 기와지붕을 촉촉이 적시고 있었다. 사랑채 안방 안쪽은 밖의 쌀쌀한 날씨와는 전혀 딴판으로, 은은하고 농밀한 열기로 훈훈하게 젖어 있었다. 비단 이불 아래에서 도진은 연화를 제 품에 가둔 채 뒤늦게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평생 묘시(卯時, 오전 5~7시)에 칼같이 일어나 의관을 정제하던 결벽증 선비가, 평소와 달리 아침 햇살이 방 안에 들 때까지 늦잠을 잔 것이었다."으음……."도진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있던 연화가 부스스 눈을 비비며 남자의 쇄골에 콧등을 부볐다. 그 나른하고 야릇한 숨결이 닿는 순간, 도진의 가랑이 사이에서 잠자던 흉물이 또다시 움찔거리며 고개를 쳐들려 했다."일, 일어나거라! 날이 밝았다…… 하인들이 보기라도 하면……!"도진이 귀밑까지 새빨개져 연화의 어깨를 밀어내려던 바로 그 찰나였다.쿵, 쿵-!"도진아! 안에 있느냐?"사랑채 뜰을 울리는 엄격하고 묵직한 여인의 목소리가 창호지 문을 뚫고 날아들었다. 도진의 온몸에 벼락이 내리꽂혔다.노마님.도진의 생모이자, 참판 댁의 규율과 사대부의 가도를 엄격하게 관장하는 정경부인 박씨였다."어, 어머니……?!"평소 노마님은 아들의 청렴과 결백을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여겨, 침소를 살피는 일도 하인들에게 맡기던 분이었다. 도진은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도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제 품에는 아직 연화가 누워 있었다.그런 노마님이 아침 댓바람부터 여종들과 행랑아범들을 거느리고 사랑채 문턱을 직접 밟은 것이었다. 아들의 환후가 심상치 않다는 흉흉한 소문에, 하인에게 안부를 묻는 것만으로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던 터였다."간밤에 네가 미열이 심하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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