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우는 한동안 그 자리를 바라봤다.도움을 청할 사람이 바로 앞까지 왔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그래도 누군가 자기 이름을 들었다.그 사람이 기억할지는 알 수 없었다. 연우는 그 작은 가능성마저 버리지 않았다.새 물병을 집어 들었다.이전 병과 모양이 달랐다.연우는 수위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절반은 지금, 절반은 나중.빵도 반으로 갈라 한쪽만 먹었다.다음번 급식구가 열렸을 때는 다른 손이 들어왔다.연우는 이번에는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대신 소매 아래로 잠깐 보인 손목시계의 분침 위치를 눈에 담았다. 오전인지 오후인지는 알 수 없어도, 시간이 흘렀다는 단서 하나쯤은 남길 수 있었다.문이 닫힌 뒤 벽의 금 옆에 손톱으로 작은 표시를 하나 그었다.완벽한 기록은 아니었다.그래도 아무것도 모른 채 시간을 잃는 것보다는 나았다.그리고 세 번째.현실을 잊지 않기 위한 네 문장."나는 이연우.""지후는 병원에 있어.""USB는 채희가 넣었어.""나는 지아를 밀지 않았어."처음에는 네 문장이 정확하게 이어졌다.연우는 네 문장을 오른손 네 손가락에 하나씩 붙였다. 검지를 누르면 자신의 이름, 중지를 누르면 지후, 약지를 누르면 USB와 채희, 새끼손가락을 누르면 지아를 밀지 않았다는 사실. 눈을 감아도 손끝의 순서는 남아 있었다.문장이 헷갈릴 때마다 손가락 마디를 차례로 눌렀다. 첫 번째, 나는 이연우. 두 번째, 지후는 병원. 세 번째, 채희가 USB를 넣었다. 네 번째, 나는 지아를 밀지 않았다. 기억이 머릿속에서 풀려도 몸의 순서가 다시 문장을 끌어올려 주기를 바랐다.그 작은 방법이 처음에는 통했다. 열이 올라
Last Updated : 2026-11-03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