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처마 끝에서 굵어진 빗방울이 쉴 새 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호출한 택시가 도착하려면 아직 칠 분이나 남았고, 전화기 너머에서는 음악 소리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네, 맞는데요. 그런데 누구시죠?”상대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때 멀리서 누군가 여자를 불렀다.― 하린아, 이거 네 거 아니야?“아, 네. 잠시만요.”하린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서진은 얼마 전 태준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새 프로젝트에 들어온 직원 중에 꽤 괜찮은 사람이 있다고 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감각이 좋고 배우는 것도 빠르다며, 평소 직원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태준이 드물게 칭찬했던 여자였다.이하린, 스물넷.그때는 능력 있는 후배가 들어왔나 보다 하고 넘겼는데, 지금 그 여자가 태준의 전화를 받고 있었다.“혹시 이하린 씨예요?”― 네? 아…… 네, 맞아요.“강태준 씨는 지금 어디 있어요?”― 부장님이요?“네. 제 남편이요. 지금 어디 있어요?”잠시 대답이 없었다.의자가 끌리는 소리와 누군가 웃는 소리가 들린 뒤에야 하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부장님은 지금…… 제 옆에 계세요.서진은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봤다.태준은 분명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겼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회사가 아닌 곳에 있었고, 그의 휴대전화는 스물넷의 여직원이 가지고 있었다.이상하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팀원들과 함께 있을 수도 있었고, 회의가 길어져 근처에서 저녁을 먹는 중일 수도 있었다.십오 년을 함께한 남편이었다.전화 한 통으로 의심하기에는 함께한 시간이 너무 길었다.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하린아, 누구 전화야?태준이었다.― 이리 줘. 네가 왜 내 전화를 받고 있어.나무라는 말이었지만 목소리는 그다지 날카롭지 않았다.― 죄송해요. 계속 울리는데 부장님이 안 계셔서 급한 전화인 줄 알고…….― 됐어. 줘 봐.잠시 뒤 태준이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늘 듣던 목소리가 들리자
Last Updated : 2026-10-02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