ログイン서진은 자신이 실수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때로는 고집스럽고 유치하다는 것도 알았다.
하린은 아직 그런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녀의 눈에 비친 자신은 능력 있고 다정하며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는 남자였다.
태준은 그 차이를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이 어느 쪽 시선을 더 즐기고 있는지 알 것 같아 불편해졌다.
그는 곧바로 생각을 끊었다.
서진은 아내였다.
하린은 직원이었다.
비교할 대상조차 아니었다.
태준은 그렇게 결론 내리고 카페를 나섰다.
그러나 차에 올라탄 뒤에도 하린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모님이 부러워요.
태준은 운전대를 잡고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 말이 기분 좋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때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서진이었다.
태준은 화면을 바라보다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
“태준아, 아직 바빠?”
서진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다정했다.
그 다정함이 오히려 가슴을 찔렀다.
“응. 이제 거의 끝났어.”
“많이 늦을 것 같아?”
태준은 시계를 보았다.
일곱 시 사십 분.
지금 출발하면 여덟 시가 넘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미안해. 오늘은 먼저 식사하고 들어가.”
서진은 잠시 말이 없었다.
“정말 못 오는 거야?”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태준은 마음이 약해졌다.
지금이라도 가야 했다.
레스토랑에 도착해 늦게라도 아내와 식사를 하고, 준비한 선물을 건네면 됐다.
그것이 자신이 오늘 아침 약속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태준은 이상하게 망설였다.
이미 약속을 어겼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늦게 나타나 서진의 실망한 얼굴을 보는 것이 두려웠다.
그는 그 두려움을 다른 이유로 바꾸었다.
괜히 가서 분위기를 망치는 것보다 내일 제대로 보상하는 게 낫겠다고.
“내일 좋은 데 가자. 오늘은 내가 정말 미안해.”
서진은 한참 뒤에야 대답했다.
“알겠어.”
그 짧은 대답에 태준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서진아.”
“응.”
“사랑해.”
그 말은 진심이었다.
정말로 서진을 사랑했다.
그런데 전화를 끊은 뒤, 태준은 자신이 조금 전까지 다른 여자의 웃음을 떠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서진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그는 운전대를 잡은 채 낮게 숨을 내쉬었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조금 전 하린에게서 온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대표님, 오늘 정말 감사했어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태준은 그 문장을 읽고도 한동안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그러다 차에 시동을 걸기 직전, 짧게 문자를 남겼다.
[오늘은 푹 쉬어요.]
전송 버튼을 누른 뒤 그는 휴대전화를 조수석에 내려놓았다.
집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서진의 목소리와 하린의 웃음이 번갈아 떠올랐다.
***
서진은 결국 혼자 저녁을 먹었다.
예약한 코스 요리 중 일부를 취소하고 간단한 식사를 주문했지만, 음식의 맛은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직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늘 특별한 날이셨던 것 같은데…….”
서진은 식기를 내려놓았다. 맞은편에는 여전히 빈 의자가 놓여 있었다.
“결혼기념일이에요.”
그녀는 애써 웃었다.
“남편이 회사 일이 생겨서요.”
직원은 더 묻지 않았다.
서진은 가방을 챙기며 안에 넣어 둔 선물 상자를 만졌다.
오늘 태준에게 건네려고 했던 시계였다.
그녀는 상자를 꺼내지 않았다.
다음에 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태준이 미안해할 테니 내일은 웃으며 건네자고 마음먹었다.
그때 휴대전화에 낯선 번호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윤서진 님 맞으시죠? 확인하실 게 있습니다.]
서진은 걸음을 멈췄다.
발신자를 확인했지만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다.
장난 문자라고 생각하고 화면을 끄려던 순간 사진 파일이 하나 더 도착했다.
서진은 무심코 사진을 눌렀다.
낯익은 남자의 옆모습이 보였다.
강태준이었다.
그는 카페 창가에 앉아 있었다.
맞은편에는 젊은 여자가 있었다.
연한 하늘색 블라우스와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 그리고 남편을 향해 환하게 웃는 얼굴.
이하린.
서진은 화면을 확대했다.
태준은 웃고 있었다.
아침에 자신에게 보여주었던 것과 비슷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서진이 처음 보는 표정도 있었다.
여자를 바라보는 눈빛이 이상할 만큼 부드러웠다.
서진은 한동안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업무 때문에 만났을 수 있었다.
직원과 카페에서 자료를 검토하는 일은 이상하지 않았다.
문제는 시간이었고, 장소였고, 남편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었다.
하린이 아무리 젊고 예쁘고 교활하더라도, 결국 선택한 사람은 태준이었다.그 여자가 달라고 했다고 해서 반드시 줄 필요는 없었다.아내의 공로를 지켜 줄 수도 있었다.승진 심사를 공정하게 진행할 수도 있었다.아내가 울고 있을 때 한 번쯤 돌아볼 수도 있었다.집에 돌아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볼 수도 있었다.그런데 태준은 그러지 않았다.매번 하린을 선택했다.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었다.그는 아내가 상처받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 같은 선택을 하고 있었다.그 사실이 서진을 더욱 아프게 했다.'당신은 정말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된 걸까.'그 질문이 떠오른 순간, 서진은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십오 년이었다.스물다섯에 만나 마흔이 될 때까지, 자신의 청춘 대부분을 함께한 남자였다.그와 함께 늙어 갈 거라고 믿었다.언젠가 회사에서 물러나면 둘이 여행을 다니자고 했고, 작은 바닷가 마을에 집을 얻어 살자는 이야기도 했다.태준은 그때 웃으며 말했다.'당신이랑 있으면 어디든 좋아.'그 말을 하던 남자가 아직 살아 있었다.그런데 이제는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았다.서진은 눈을 감았다.눈꺼풀 안쪽이 뜨거웠다.그녀는 필사적으로 울음을 삼켰다.회의실에서 소리 내어 울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가슴속에서는 이미 울고 있었다.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곳에서, 십오 년을 사랑했던 여자가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남편이 자신을 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어서.그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웃어 주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혀서.아직 사랑하는데.자신은 아직 그 사람을 사랑하는데.그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쉽게 변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윤 팀장님, 괜찮으십니까?"인사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서진은 대답하려고 입술을 열었다.그러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괜찮지 않았다.전혀 괜찮지 않았다.지금이라도 태준이 문을 열고 들어와 자신을 부르면, 서진은 어쩌면 그대로 울음을 터뜨릴지도
서진은 고개를 끄덕이려 했지만 목이 움직이지 않았다.눈앞의 글자가 조금씩 흐려졌다.그녀는 급히 눈을 깜빡였다.울면 안 됐다.여기서는 안 됐다.인사팀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남편이 보낸 서류를 붙잡고 울고 싶지는 않았다.그런데 이상했다.아무리 참으려 해도 가슴 안쪽에서 무언가 자꾸 올라왔다.처음에는 억울함이라고 생각했다.자신이 만든 사업을 빼앗겼으니까.그다음에는 분노라고 생각했다.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경위서를 써야 했고, 회사 사람들이 자신을 피하기 시작했으니까.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정말 견딜 수 없는 것은 따로 있었다.강태준이었다.십오 년을 사랑한 남자.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그 남자가 지금 자신을 이렇게 만들고 있었다.서진은 종이 위에 올려놓은 손을 내려다봤다.결혼반지가 보였다.오래 착용한 탓에 반지 안쪽에는 작은 흠집이 있었다.태준과 결혼하던 날, 그는 서진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주면서 웃었다.'나랑 결혼해 줘서 고마워.'그때 서진은 울었다.너무 행복해서.태준은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며 말했다.'앞으로는 내가 당신 울릴 일 없게 할게.'서진은 그 말을 믿었다.가난했던 신혼 시절에도, 회사가 어려워져 집 보증금까지 걱정해야 했던 때에도, 남편이 몇 날 며칠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일하던 때에도 믿었다.태준은 언제나 자신의 편이었다.사람들이 사업이 망할 거라고 했을 때도 두 사람은 서로를 믿었다.서진이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태준은 누구보다 먼저 화를 냈다.'당신이 얼마나 열심히 하는데. 사람들이 몰라서 그래.'그는 그렇게 말하며 아내를 끌어안았다.그런데 이제는 그 남자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아내를 모욕하고 있었다.아내의 일을 빼앗아 다른 여자에게 주고 있었다.그 여자에게는 승진과 상을 주면서, 아내에게는 경위서와 직무 변경 동의서를 보내고 있었다.서진은 고개를 숙였다.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을까.그것도 이렇게
그러나 거실은 조용했고, 현관에는 남편의 구두가 없었다.그녀는 다시 침실로 돌아가지 못했다.아침이 밝을 때까지 소파에 앉아 있었다.출근 준비를 하면서도 태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인사팀에서 연락이 왔다."윤 팀장님, 잠깐 면담 가능하실까요?"서진은 서류철을 챙겨 회의실로 향했다.인사팀장과 담당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테이블 위에는 두꺼운 문서가 놓여 있었다."앉으시죠."서진이 자리에 앉자 인사팀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먼저 경위서 제출 건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서진은 그를 바라봤다."이미 제출했습니다. 당시 업무 지시 내용과 제 의견을 날짜별로 정리해서요.""확인했습니다."인사팀장은 잠시 말을 골랐다."대표실에서는 추가적인 업무 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했습니다."서진의 손이 멈췄다."어떤 조정입니까?""신사업 관련 업무를 신설 조직으로 완전히 이관하고, 윤 팀장님은 기존 전략기획팀의 관리 지원 업무를 중심으로 맡는 안입니다."서진은 문서를 받아 들었다.첫 장에는 변경 전후 업무가 나란히 적혀 있었다.신사업 전략 수립.신규 협력사 발굴.사업 확장 계획.경영진 보고.자신이 책임지던 핵심 업무가 모두 빠져 있었다.남은 것은 기존 계약 관리 지원과 일반 기획 행정이었다.서진은 문서의 마지막까지 읽었다."제 직급은 그대로인가요?""네. 현재로서는 직급 변경은 없습니다.""그럼 팀장이라는 직책은 유지하지만, 실질적인 책임 업무는 대부분 다른 조직으로 넘어가는 거군요."인사팀장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서진은 문서를 내려놓았다."이 변경안을 누가 요청했습니까?"담당 직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대표실입니다.""대표님이 직접 지시하셨나요?"인사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네."서진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남편은 자신에게 회사에서 개인적인 감정을 앞세우지 말라고 했다.그런데 정작 남편은 하린에게 상을 주고, 승진시키고, 아내의 업무를 넘기고
"알아요.""정말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서진은 손에 든 서류철을 내려다봤다."민석 씨.""네.""그 사람들보다 더 이해가 안 되는 사람이 있어요."민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진은 엘리베이터 위에 표시된 층수를 바라봤다."저 사람들이야 자기한테 유리한 쪽으로 움직인다고 쳐요."목소리가 조금 흔들렸다."그런데 태준이는……."서진은 말을 멈췄다.민석은 그녀가 끝내 하지 못한 말을 기다리지 않았다."팀장님, 오늘은 제가 계약 검토 의견 같이 정리하겠습니다."서진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그날 저녁, 서진은 집에 돌아와 식탁 앞에 앉았다.시계는 아홉 시를 넘기고 있었다.태준은 아직 연락이 없었다.서진은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어제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오늘은 오겠지.그렇게 생각하며 기다린 시간이 두 시간이었다.열 시가 조금 넘었을 때 서진이 먼저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길게 이어졌다.태준은 받지 않았다.십 분 뒤 다시 걸었지만 결과는 같았다.서진은 메시지를 보냈다.'오늘도 늦어?'한참 뒤 답장이 왔다.'일이 많아. 먼저 자.'서진은 화면을 바라봤다.'집에는 들어오는 거야?'이번에는 답장이 더 늦었다.'오늘은 회사 근처에서 잘게.'서진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태준은 예전에도 야근이 잦았다.하지만 아무리 늦어도 집에 돌아오려고 했다.새벽 두 시에 들어와서도 침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잠든 서진의 이마에 입을 맞추던 남자였다.그런데 이제는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말을 너무 쉽게 했다.서진은 식탁 위에 놓인 두 개의 수저를 바라봤다.하나를 치우려다가 멈췄다.언제부터였을까.남편이 돌아오지 않는 집이 익숙해지기 시작한 것은.그녀는 다시 휴대전화를 들었다.'태준아, 우리 이야기 좀 하자.'답장은 오지 않았다.***태준은 회사 근처 호텔 라운지에 앉아 있었다.맞은편에는 하린이 있었다.그녀는 디저트 접시를 앞에 두고 밝게 웃고 있었다."대표님, 오늘 정말 감
하린은 복도에서 오 대리와 차 과장을 만났다."담당님, 오늘 회의 정말 잘하셨습니다."오 대리가 먼저 말했다.하린은 웃었다."제가 뭘요. 대표님이 많이 도와주셨죠.""그게 능력이죠. 대표님 뜻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도 중요한 실력 아닙니까."차 과장이 맞장구쳤다."솔직히 윤 팀장님은 너무 옛날 방식이세요. 계약서 하나하나 따지는 것도 좋지만, 이제는 속도가 중요한 시대잖아요."서진은 복도 모퉁이를 돌아 나오다가 그 말을 들었다.차 과장은 그녀를 발견하자 말을 멈췄다.오 대리도 입을 다물었다.하린만 웃고 있었다."팀장님, 아직 안 가셨어요?"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하린은 손에 들린 서류철을 가볍게 흔들었다."아까 회의에서 대표님이 조금 단호하게 말씀하셔서 놀라셨죠?"서진은 그녀를 바라봤다."업무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으면 공식적으로 하세요.""또 공식적으로요?"하린은 웃음을 터뜨렸다."팀장님은 참 한결같으세요."오 대리가 어색하게 웃었다.하린은 그를 돌아봤다."그렇죠, 오 대리님? 우리 팀장님은 뭐든 원칙대로 하셔야 하잖아요."오 대리는 서진의 얼굴을 살폈다."아, 뭐…… 윤 팀장님이 원래 꼼꼼하시죠.""그런데 대표님은 요즘 조금 답답하신가 봐요."하린은 다시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제가 아직 부족한 건 맞아요. 그런데 부족한 사람도 좀 키워 주고 그래야 회사가 발전하는 거잖아요."서진은 서류철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하린 씨가 성장하는 걸 반대하는 게 아니에요. 회사가 손해를 보지 않도록 확인하자는 거죠.""네, 알아요."하린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더니 부드럽게 덧붙였다."그런데 팀장님은 이제 책임자가 아니시잖아요."복도에 침묵이 내려앉았다.하린은 웃는 얼굴 그대로 말을 이었다."그렇게 걱정되시면 저한테 보고서를 올려 주세요. 제가 검토해서 대표님께 말씀드릴게요."오 대리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차 과장은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척했다.서진은 하린을 바라봤다.자신에게 보고서를 올리라
"맞습니다. 저희도 그 부분 때문에 윤 팀장님과 여러 차례 협의했죠."하린의 표정이 굳었다.그때 태준이 끼어들었다."윤 팀장."서진이 돌아봤다."지금은 하린 담당자가 설명하는 자리입니다.""대표님, 계약상 중요한 부분이라서…….""그 부분은 새 담당자가 확인하면 됩니다.""하지만 이대로 진행하면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태준은 서류를 내려놓았다."윤 팀장은 이제 해당 업무의 책임자가 아닙니다."회의실이 조용해졌다.서진은 남편을 바라봤다.태준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업무 이관이 결정됐으면 그에 맞춰 협조해야죠. 왜 계속 새 담당자의 일을 방해합니까?"협력사 임원이 난처한 얼굴로 시선을 내렸다.하린은 고개를 숙인 채 서류를 정리했다.그러나 서진은 그녀가 입술을 누르며 웃음을 참는 모습을 보았다."대표님."서진은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제가 말씀드리는 건 업무 권한이 아니라 계약 위험입니다."태준은 차갑게 대답했다."위험이 있으면 보고서로 제출하세요.""이미 기존 보고서에 포함돼 있습니다.""그럼 하린 담당자가 검토하면 되겠군요."그는 하린을 돌아봤다."계속 진행하세요."하린이 환하게 웃었다."네, 대표님."서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자신이 협상한 계약이었다.자신이 지켜 낸 조건이었다.그런데 이제는 그 계약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조차 회의 자리에서 설명할 수 없었다.회의가 끝난 뒤 협력사 임원이 복도에서 서진을 붙잡았다."윤 팀장님, 혹시 무슨 일 있으십니까?"서진은 대답하지 못했다.그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저희는 윤 팀장님을 믿고 계약한 겁니다. 조건이 이렇게 바뀌면 내부에서도 다시 검토해야 합니다."서진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말씀하신 부분은 공식적으로 전달해 주십시오. 계약서에 명시된 조건은 변경 승인 전까지 그대로 유지됩니다."임원은 한동안 그녀를 바라봤다."윤 팀장님 같은 분이 계셔서 저희가 여기까지 온 건데……."그 말에 서진은 입술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