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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결혼기념일

작가: 해월
last update 게시일: 2026-10-02 00:16:14

다음 날 아침, 서진이 눈을 떴을 때 태준은 이미 일어나고 없었다.

비어 있는 침대 옆자리를 바라보며 몸을 일으키려는데 마침 방문이 열리더니, 태준이 커피 두 잔을 들고 들어왔다.

“벌써 일어났어?”

서진이 언제 들어왔냐고 묻자 태준은 한 시 조금 넘어서였다며, 너무 잘 자고 있어서 깨우지 않았다고 했다.

태준은 서진이 좋아하는 라테를 협탁 위에 내려놓고 침대 끝에 걸터앉았다. 서진이 숙취는 괜찮냐고 묻자 어제는 별로 마시지 않았다며 얼른 씻고 나오라고 재촉했다.

“왜 이렇게 서둘러?”

“오늘이 무슨 날인데 계속 자려고 해.”

커피잔을 들던 서진의 손이 멈췄다.

“기억하고 있었어?”

“내가 이걸 왜 잊어.”

오늘은 두 사람의 여덟 번째 결혼기념일이었다.

어젯밤까지 태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올해는 정말 잊었나 싶었지만, 서진은 굳이 먼저 묻지 않았다. 십오 년을 함께하는 동안 생일이며 기념일을 먼저 기억하고 챙긴 사람은 대부분 태준이었기 때문이다.

“나 어제 조금 섭섭할 뻔했잖아.”

“오늘 아침에 말하려고 일부러 아무 말 안 한 거야.”

태준은 웃으며 서진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저녁 식당은 이미 예약해 뒀지만 혹시 다른 게 먹고 싶으면 바꾸겠다는 말에 서진도 웃었다.

“예약까지 해놓고?”

“오늘은 당신 먹고 싶은 게 더 중요하잖아.”

익숙한 말과 손길을 받고 있자 어젯밤부터 마음 한쪽에 남아 있던 불편함도 조금씩 흐려졌다.

커피를 한 모금 마셔보니 우유가 조금 많이 들어간 것까지 평소 자신의 취향 그대로였다.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무심해질 만도 한데, 태준은 여전히 이런 사소한 것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자 어젯밤 전화기 너머로 들었던 말이 문득 떠올랐다.

― 하린아, 그거 마시지 마. 너 아까 속 안 좋다며.

서진은 손에 든 커피잔을 내려다봤다.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를 기억하는 남자가 함께 일하는 직원의 몸 상태를 기억한 게 뭐가 이상할까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어젯밤에는 자신이 괜히 예민했던 것 같았다.

태준이 왜 갑자기 조용해졌냐고 묻자 서진은 커피가 맛있어서 그렇다고 둘러댔다.

“내가 탄 것도 아닌데?”

“사 온 사람 성의까지 포함해서.”

태준은 웃으며 서진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밀었다.

“그렇게 고마우면 얼른 씻어. 아침 먹으러 가게.”

서진이 오늘은 출근하지 않느냐고 묻자 태준은 오전 반차를 냈다며, 결혼기념일인데 아침부터 같이 보내고 싶었다고 했다.

“저녁에도 볼 거잖아.”

“그래도 아침부터 같이 있으면 더 좋지.”

별것 아닌 말인데도 서진은 웃음이 났다.

욕실로 향하던 태준은 몇 걸음 가지 않아 다시 돌아보더니 어제 일을 꺼냈다.

“그리고 어제는 미안했어. 갑자기 먼저 나간 것도 그렇고, 전화 못 받은 것도.”

서진이 일 때문이었으니 됐다고 하자 태준은 그래도 걱정하게 만들었다며 다음부터는 미리 연락하겠다고 했다.

서진은 잠시 태준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적어도 지금의 서진에게는 그랬다.

***

두 사람은 집 근처 호텔에서 늦은 아침을 먹었다.

평일 오전이라 레스토랑은 한산했고, 통창으로 들어온 햇빛이 테이블 위까지 길게 번져 있었다.

태준은 음식을 가지러 갔다가 서진이 예전부터 좋아하던 빵을 접시에 담아왔다. 그런데 서진이 이제는 그 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자 의아한 얼굴로 바라봤다.

“언제부터?”

“몇 달 됐어. 요즘은 크루아상이 좋아.”

“그걸 진작 말하지.”

태준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잠시 후 크루아상을 가져와 서진 앞에 내려놓았다.

“이제 됐어?”

“응. 이거면 돼.”

두 사람은 마주 보며 웃었다.

십오 년을 함께했어도 모르는 게 생기고, 알고 있던 것도 조금씩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그래도 달라진 게 있으면 다시 알아가면 된다고 서진은 생각했다.

오래 함께 산다는 건 어쩌면 그런 일이었다.

서진이 저녁에는 어디로 가느냐고 다시 묻자 태준은 아무리 물어봐도 알려주지 않을 거라며 웃었다.

“저녁 되면 알게 될 거야.”

서진은 더 묻지 않고 크루아상을 잘랐다.

그때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태준의 휴대전화가 짧게 울렸다.

화면을 확인한 태준의 얼굴에서 방금까지 남아 있던 웃음이 아주 조금 옅어졌다. 놀라거나 당황한 표정은 아니었지만, 서진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태준은 메시지를 확인한 뒤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

“회사야?”

“응. 별거 아니야.”

태준은 아무렇지 않게 포크를 들며 조금 전 이야기를 이어갔다.

“요즘은 크루아상이 좋다고 했지? 앞으로는 그걸로 기억해 둘게.”

평소와 다르지 않은 목소리였기에 서진도 별다른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잠시 후, 뒤집어 놓았던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태준이 휴대전화를 집어 드는 순간 화면이 서진 쪽으로 잠깐 스쳤다. 메시지 내용까지 보이지는 않았지만, 보낸 사람의 이름만큼은 분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이하린.

서진의 시선이 잠시 그 이름에 머물렀다.

어젯밤 남편의 전화를 받았던 여자였고, 오늘은 결혼기념일 아침부터 태준에게 두 번이나 연락을 보내고 있었다.

서진은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내려 크루아상을 한 조각 잘랐다. 조금 전까지 맛있게 먹던 빵인데, 다시 입에 넣자 이번에는 무슨 맛인지 잘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은 두 사람의 여덟 번째 결혼기념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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