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강유헌의 고집스러운 목소리가 해림의 귓가에 맴돌았다.해림에게 그의 억지는 부부라는 관계를 지키려는 애원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소유물로서의 도해림을 놓지 않으려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발버둥일 뿐이었다.해림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태성 측이 준비해 준 차를 타고 익숙한 고급 주택가로 향했다.외부인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는 곳. 에이온모빌리티 대표의 사택이자, 5년 동안 해림과 유헌이 비밀스럽게 결혼 생활을 유지했던 진짜 신혼집이었다. 법원이나 언론에는 철저히 숨겨진, 오직 두 사람과 극소수의 측근만이 아는 공간.도해림이 법적으로 죽었다 한들, 이 집의 보안 시스템과 비밀번호는 그녀의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현관문 앞.익숙하게 도어록의 덮개를 올리고 비밀번호를 눌렀다.띠리릭, 찰칵.가벼운 기계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해림이 천천히 거실로 들어섰다.자신이 직접 고른 거실의 샹들리에와 벽지의 질감이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 익숙함은 찰나에 불과했다. 해림의 발걸음이 거실 한가운데서 우뚝 멈췄다.공간의 분위기가 기묘하게 틀어져 있었다.벽에 걸려 있던 두 사람의 흑백 결혼사진이 보이지 않았다. 해림이 주로 앉던 소파 자리 옆, 늘 놓여 있던 찻잔 세트와 읽다 만 책들도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시선은 자연스럽게 안방으로 향했다. 살짝 열린 방문 틈으로, 낯설고 이질적인 흔적들이 해림의 눈을 찔렀다.화장대 위.자신이 쓰던 스킨케어 병들이 있던 자리를, 낯선 브랜드의 화려한 화장품들이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의자에는 자신이 결코 입지 않는, 레이스가 달린 연분홍색 실크 가운이 아무렇게나 걸쳐져 있었다.그리고 방 한구석, 아직 다 치우지 못한 듯 쌓여 있는 커다란 골판지 상자들.상자 겉면에는 굵은 매직으로 무심하게 적힌 글씨가 보였다.[도해림 개인 물품]해림은 그 상자들 앞에 섰다.자신이 쓰던 다이어리, 아끼던 만년필, 계절이 지나면 입으려고 잘 다려두었
Última atualização : 2026-10-09 Ler ma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