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민채령과의 조작 기사가 뜬 직후, 다급하게 변명해 오던 유헌의 전화를 가차 없이 끊어낸 해림은 곧바로 예정되어 있던 업무를 이어갔다.오후 3시. 제로파트너스 대표실의 문이 열리고, 사전에 협의되어 있던 일정대로 차서록이 들어왔다.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테이블 위로 태성과의 협업 서류를 내려놓으며 가볍게 입을 열었다."기사는 봤습니다.""어느 쪽이요?""강유헌과 민채령 씨."서록은 기사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배후 추적이나 대응에 자신이 먼저 끼어들지는 않았다."대응은 대표님 쪽에서 하고 있습니까?""네."해림이 건조하게 대답했다."최초 보도 매체와 사진 유포 경로만 따로 추적 지시를 내려둔 상태입니다."서록은 짧게 고개를 끄덕일 뿐 더 이상 묻지 않았다."강유헌 씨도 기사 때문에 전화했어요."해림이 아무렇지 않게 서류를 넘기며 던진 말에, 서류의 다음 장을 넘기려던 서록의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멈칫했다."무슨 이유였습니까?""기사 해명."해림이 시선을 올리지 않은 채 대답했다."본인과 민채령 씨가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서록의 시선이 해림의 서늘한 얼굴에 잠시 머물렀다.다음 장을 넘기지 않은 손끝도 그대로였다.그의 눈매가 아주 미세하게 좁아졌다."…싫습니다."짧고 건조한 정적을 깨고, 서록이 낮게 입을 열었다."뭐가요?"해림이 그제야 시선을 들어 서록을 바라보았다."강유헌이, 자기가 여전히 대표님한테 그런 개인적인 일들을 설명해야 할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게 싫습니다."이번에는 보호도, 책임도 아니었다.서록은 자신의 불쾌감을 다른 이름으로 돌리지 않았다."질투하는 건가요?"해림이 피
"그걸 알아낸 건 당신의 몫이지, 제가 당신에게 돌아가야 할 이유는 아니니까요."서늘한 복도에서처럼, 혹은 그때보다 더 차가운 해림의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넘어갔다.수화기 너머의 유헌은 한동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해림은 그 무거운 침묵 속에서 그가 어떤 상처를 받았을지 굳이 대신 헤아려주지 않았다."…알아."마침내 흘러나온 유헌의 대답은 몹시 갈라져 있었다.짧은 대답이었다.적어도 그는 이번에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해림을 다시 붙잡고 통제할 수 있는 권리인 양 내세우지는 않았다."그 말을 하고 나니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있어."해림은 묻지 않았다.수화기 너머로 마른 숨이 한 번 스쳤고, 잠시 뒤 유헌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그날."짧은 정적이 흘렀다."불이 났던 날, 나는 네 손을 놓고 민채령한테 갔어."새로운 사실도, 놀라운 폭로도 아니었다.하지만 같은 사건을 말하고 있음에도 그의 목소리는 이전과 달랐다.'네 손을 놓았다'는 말을 꺼낸 뒤, 유헌은 한동안 숨소리만 거칠게 내뱉을 뿐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네."해림의 짧고 건조한 대답에는 비난도, 연민도 없었다."그리고 난, 네가 정말 죽었는지… 끝까지 확인하지도 않았어."숨을 짜내듯 토해내는 유헌의 목소리."…미안해."해림의 흔들림 없는 눈동자가 허공을 응시했다.과거의 그녀였다면 그 한마디에 어떻게든 위로의 말을 건넸을지도 모른다.그의 선택을 합리화하며 스스로 그 짐을 대신 덜어주려 애썼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사과는 들었어요.""…그게 끝이야?""네."해림이 서늘하게 덧붙였다.
"너는… 내가 없어도 아무렇지 않아?"수화기 너머로 무겁게 떨어져 내린 유헌의 질문.그것은 그동안 에이온, 계약, 그리고 ZERO라는 수많은 명분 뒤에 숨어 있던 그가 처음으로 모든 포장지를 벗겨내고 꺼내놓은 날것의 결핍이었다.하지만 해림은 그 처절한 질문 앞에서도 아주 조금의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네. 이제는요."과거에는 분명 그렇지 않은 시간도 존재했다.예전의 해림은 유헌이 늦은 밤 피곤한 얼굴로 거실 소파에 앉아 회사 이야기를 무심코 흘려놓으면, 언제나 그 곁에 앉아 끝까지 이야기를 듣고 밤을 새워 해결책을 찾았다.그가 부르면 묵묵히 기다렸고, 굳이 먼저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그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을 지우고 헌신했다.그 맹목적이었던 시간 속에서 해림의 세상은 언제나 강유헌을 중심으로 돌아갔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유헌이 어떤 무거운 질문을 던지든, 그것은 이제 해림의 완벽한 일과나 다음 일정을 단 1초도 바꿀 수 없는 타인의 목소리일 뿐이었다.그가 너무 오랫동안 당연하게 방치했던 그 시간들은 이미 재가 되어 사라진 지 오래였다."당신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게 된 뒤부터요."수화기 너머의 유헌은 그 차가운 대답에 즉시 반문하지 않았다.무겁고 억눌린 숨소리만이 두 사람 사이의 팽팽한 전화선을 가득 채웠다.예전의 해림이라면 분명 달랐을 것이다.수화기 너머로 이런 무거운 침묵이 흐를 때면, 그가 어떤 말을 삼키고 있는지 먼저 헤아리려 애썼다.미세하게 낮아진 목소리나 짧은 한숨만으로도 혹여나 그가 불편한 것은 아닌지, 이유를 묻기도 전에 그 마음부터 살피고 짐을 덜어주려 했다.하지만 이제 해림은 그 기나긴 침묵의 의미를 굳이 앞서 추측하거나 대신 해석해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강유
"왜 당신이어야 하는데요?"해림은 그 짧고 날카로운 반문 뒤로 더 이상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차 문이 닫히고, 서록의 짙은 회색 세단은 어두운 지하 주차장을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서록은 출발하는 내내 백미러 너머로 멀어지는 강유헌을 향해 어떤 불필요한 시선도 던지지 않았다.해림은 차가 모퉁이를 돌아 완전히 주차장을 빠져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차창 너머의 유헌을 한 번 바라보았다.그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차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후회하십니까?"조용한 차 안, 서록이 운전대를 잡은 채 짧게 물었다."뭘요?""방금 그 사람에게 그렇게 말한 것 말입니다.""아니요."해림이 건조하게 대답하자 서록은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그는 방금 두 사람 사이에서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묻지 않았고, 자신의 차에 탄 해림에게 어떤 소유권의 언어도 꺼내지 않았다.그 깔끔하고 서늘한 거리가 다시 한번, 두 남자의 명백한 차이를 증명하고 있었다.제로파트너스에 도착한 해림은 언제나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다음 업무로 넘어갔다.방금 전 주차장에서 있었던 팽팽하고 날 선 대치도 그녀의 완벽한 일과를 조금도 멈춰 세우지 못했다.오후 회의가 끝날 무렵, 전략팀 실장이 결재 서류를 들고 대표실로 들어왔다."대표님. 에이온 측에서 공식 협업 요청서가 도착했습니다."해림은 건네받은 서류를 훑어 내렸다.그가 '필요하다면 정식 계약으로 요청하라'고 선을 그었던 바로 그 업무였다.에이온은 정확히 그 절차에 따라, 제로파트너스 측에 과거 전략안에 대한 추가 자문과 협업을 정식으로 요청해 왔다.사업적으로 지극히 정상적이고 타당한 문서였다.단 하나의 항목만 제외한다면."에이온 측에서 대표님의
"내가 모르는 건 싫으니까."해림은 서늘한 복도를 울리는 유헌의 그 마지막 대답 앞에서 더 이상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그 불쾌하고 날 선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더 파고들어 기다려줄 이유도 없었다.그녀는 이미 업무적, 사적인 접근권을 모두 회수했다는 사실을 재차 못 박듯, 미련 없이 돌아서서 곧장 지하 주차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조용한 주차장 기둥을 돌았을 때였다.다음 일정을 위해 이동하려던 해림의 시야에, 기다리고 있던 짙은 회색 세단 한 대와 그 앞에 선 차서록의 모습이 들어왔다."아직 건물 바깥에 기자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서록은 해림이 다가오자 짧은 목례와 함께 건조하게 상황을 보고했다."출구를 빠져나가기 번거로우실 텐데, 차를 준비해뒀습니다.원하시면 기사만 붙여드리겠습니다."그는 '위험하니 내 차에 타라'고 강제하거나 명령하지 않았다.어디까지나 철저하게 해림의 선택권 아래에 결정 권한을 남겨두는 방식이었다.해림은 잠깐 차를 바라보았다.조금 전, 강유헌은 그녀의 모든 결정과 일정을 자신의 통제 아래에 두려 했다.법적 혼인 관계와 '우리 문제'를 근거로 자신의 관여를 기어코 정당화하려 했다.하지만 정작 곁에 서록이 있을 때는, 그는 그녀의 결정을 통제하는 대신 선택할 수 있는 빈칸을 온전히 비워두고 기다릴 줄 알았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림이 차서록의 그 여백에 전적으로 감동하거나, 지난 화재 사건을 둘러싼 갈등을 전부 지워버린 것은 아니었다.선택을 강요하지 않는 것과, 화재 사건 전의 중요한 추적 정보 일부를 끝내 숨겨두었던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였다.강유헌보다 나은 선택을 했다고 해서 차서록의 그 치명적인 결함이 지워지지는 않았다."차서록 씨가 태워줄 건가요?""대표님이
"또 회사 얘기인가요?"서늘한 복도 위로 해림의 질문이 차갑게 떨어졌다. 유헌은 허공을 맴돌던 굳은 시선을 천천히 거두고, 아주 미세하게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아니."회사 일이 아니었다. 조건도, 계약도, 에이온의 위기 상황도 아니었다.그렇다면 왜 불렀을까. 대답 없는 첫 번째 불필요한 호출의 여운만 서늘한 복도 위에 남았다.그 기묘한 정적의 끝에서 유헌이 과연 어떤 대답을 꺼낼지, 해림은 발걸음을 멈춘 채 고요하게 기다렸다.오랜 침묵 끝에, 유헌의 입술 사이로 마침내 그가 가장 익숙하게 다룰 수 있는 언어들이 서늘하게 쏟아져 나왔다."앞으로 오늘 같은 공개적인 결정은, 적어도 나한테 먼저 알려."해림의 눈매가 미세하게 가늘어졌다."어떤 일이요?""ZERO로서 세상에 나타나는 일. 그리고 내 회사와, 내 이름이 엮이는 그 모든 결정들 말이야."그것은 얼핏 들으면 지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요구처럼 보였다.하지만 해림에게는 그 요구가 결코 낯설지 않았다. 이유를 설명하는 대신 그는 또다시 자신이 가장 익숙한 방식인 권리와 관여의 언어를 꺼내고 있었다."내가 당신에게 먼저 알려야 할 이유는 없어요."해림이 감정을 배제한 채 차갑게 선을 그었다."이건 더 이상 너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니까."유헌이 한 걸음 더 다가섰다."네가 ZERO라고 대중 앞에 서는 순간, 에이온의 과거와 강유헌이라는 이름도 기사에 같이 오르내려. 네 일이 이제 내 쪽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그러니까 이건, 우리 문제야."우리 문제.정작 한집에 살며 아내로서 그 숱한 위기를 함께 감내할 때는 단 한 번도 내어주지 않던 단어였다. 3년 전 해외 공급망 협상 위기 때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