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로 왕실 어의를 배출해 온 종가에서, 종손 백도현이 사랑하는 사람을 문중에 정식으로 소개하는 오래된 환영 의식이 열리는 날이었다.사각, 사각.대종택 마당에 깔린 붉은 비단 카펫 위로, 신채경이 우아하고 품격 있는 걸음걸이로 들어섰다. 단아한 옥빛 명주 비단 궁중 당의에 짙은 감청색 대란치마를 받쳐 입은 채경의 자태는, 한 나라의 국모처럼 범접할 수 없는 고결한 기품을 뿜어내고 있었다. 가녀린 목선과 단정하게 땋아 올린 쪽머리 위로 은빛 옥잠이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3년 전 태강가의 정략결혼에서 천대받던 상처 입은 여인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곳에는 주도권을 쥔 당당한 여인만이 존재했다.대청마루 중앙, 옥빛 한복 두루마기를 기품 있게 걸친 백도현이 채경을 마주 보며 정중히 손을 내밀었다. 평소 좀처럼 흐트러지지 않던 얼굴에 벅찬 기색이 선명했다. “혜민당 제13대 종손 백도현, 가문의 어른들 앞에서 신채경 씨를 제 삶의 동반자로 사랑하고 존중하겠다고 약속드립니다. 어떤 이름이나 자리를 먼저 씌우기보다, 채경 씨가 원하는 방식으로 함께하겠습니다.”“신채경 여사님을 혜민당의 귀한 손님이자 앞으로 함께할 가족으로 정중히 맞이합니다.”원로들과 임원진이 차례로 자리에서 일어나 채경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과장된 경배가 아니라, 한 사람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예였다.채경은 그 장면 앞에서 잠시 말을 잃었다. 태강가에서는 며느리라는 이유로 늘 아래에 서야 했다. 밥상에서도, 제사에서도, 집안 어른 앞에서도 그녀가 해야 할 일은 고개를 숙이고 참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백발의 원로가 먼저 이름을 물었고, 회사 임원은 그녀의 경영 계획을 궁금해했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지부터 묻는 사람은 없었다.“불편한 건 없으십니까?” 백산 원로가 물었다.채경은 뜻밖의 질문에 눈을 깜빡였다. “제가…… 불편한 걸 말씀드려도 됩니까?”“가족이 될 사람인데 당연하지요.”별것 아닌 말이었다. 그런데 채경은 그 말 하나 때문에 목이 메었다. 도현이
Last Updated : 2026-10-04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