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남편의 전담 한의사, 그가 내 심장을 다시 뛰게 했다: Chapter 41 - Chapter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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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1 화 : 스위스 알프스 태교 밀월

스위스 체르마트(Zermatt), 마터호른 봉우리가 웅장하게 병풍처럼 둘러선 알프스 산자락의 프라이빗 샬레.만년설이 하얗게 뒤덮인 알프스의 청정하고 서늘한 공기가 샬레의 원목 테라스를 스쳐 지나갔다.서울을 뒤흔들었던 태강그룹의 파멸과 시댁 일족의 몰락, 그리고 숨 가빴던 인수합병의 전쟁터를 뒤로하고 도착한 이곳은 오직 두 사람과 태중의 아이들을 위한 완벽한 성역이었다.벽난로 안에서는 붉은 참나무 장작이 타닥타닥 정겨운 소리를 내며 거실 안을 은은한 피톤치드 향과 황금빛 온기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스위스 특유의 맑고 투명한 햇살이 통유리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며 은빛 설원을 보석처럼 물들였다.채경은 포근한 아이보리색 캐시미어 숄을 어깨에 두른 채 소파에 기대어 창밖의 설경을 바라보았다.임신 10주 차. 아직 겉으로는 크게 티가 나지 않지만, 아랫배 언저리에서 느껴지는 묵직하고 따스한 생명의 고동이 채경의 가슴을 벅차게 적셨다.지난 3년간 시어머니 민 여사의 모욕과 억압 속에서 ‘살결에 온기 하나 없는 목석’이라 멸시당하던 상처가, 알프스의 눈부신 만년설처럼 하얗게 정화되는 기분이었다.차가웠던 가슴속 응어리가 따스하게 녹아내리며 비로소 진정한 평온이 찾아왔다.“사모님, 발이 차갑습니다.”등 뒤에서 조용하고 묵직한 발소리와 함께 백도현이 다가왔다.남자는 편안한 블랙 니트에 슬랙스 차림이었지만, 188cm의 단단하고 다부진 체격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압적인 기품은 여전했다.남자의 손에는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유기 대야가 들려 있었다.임신 중 사용해도 문제가 없는지 산부인과 협진을 거쳐 고른 순한 약초를 우린 족욕수였다. 향이 진하지 않도록 농도도 낮췄다.은은하고 그윽한 약초 향이 거실의 서늘한 공기를 감싸 안았다.도현이 채경의 발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남자의 크고 뜨거운 손이 채경의 작고 하얀 발을 부드럽게 감싸 쥐어 따스한 약선 온수에 담갔다.“앗…… 따뜻해요, 도현 씨.”따스한 온기가 발끝의 용천혈(湧泉穴)을 타고 종아리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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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2 화 : 취리히 글로벌 메디컬 포럼에서의 당당한 연설

스위스 취리히 호숫가에 우뚝 솟은 국제 컨벤션 센터(Kongresshaus Zurich).전 세계 60여 개국에서 모여든 글로벌 제약사 CEO와 바이오 투자자,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를 포함한 세계적 석학들이 메인 오디토리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세계 최대 규모의 ‘2026 취리히 글로벌 메디컬 바이오 서밋’의 개막식 현장이었다.수십 대의 외신 카메라와 프레스 중계진이 메인 무대를 향해 렌즈를 일제히 집중하고 있었다.장내에는 전 세계 제약·바이오 산업을 선도하는 거물들의 숨 막히는 긴장감이 감돌았다.사회자의 격조 높은 독일어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다음은 동양 전통 의학과 첨단 유전자 바이오 기술의 결합을 통해 글로벌 항암 및 난임 치료의 새로운 지평을 연 주식회사 성운글로벌의 총괄대표, 신채경 대표님의 기조연설이 있겠습니다.”웅장한 오케스트라 팡파르와 함께 메인 무대의 조명이 밝아졌다.단상 위로 걸어 나오는 신채경의 모습에 장내에는 숨이 멎을 듯한 감탄과 경탄의 침묵이 흘렀다.짙은 에메랄드빛 맞춤 실크 케이프 정장은 임신 초기의 몸을 편안하게 감싸면서도 단상 위에서 선명한 인상을 남겼다.단정하게 틀어 올린 흑발에는 혜민당 가문의 보물인 옥비녀가 은은한 비취색 빛을 발하고 있었고, 가녀린 쇄골선에는 심플한 다이아몬드가 눈부시게 반짝였다.긴장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채경은 손에 쥔 발표 리모컨을 한 번 고쳐 잡고 청중을 똑바로 바라봤다.3년 전 시댁의 골방에서 독초 탕약을 억지로 삼키며 눈물 흘리던 허수아비 며느리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이제 채경은 누군가의 허락을 기다리지 않고 제 이름으로 발표를 시작할 수 있었다.채경이 단상 중앙의 마이크 앞에 섰다.채경은 준비한 영어로 차분하게 인사를 건넸고, 현지 청중을 향해 짧은 독일어 인사를 덧붙였다.발표의 핵심은 화려한 전통이 아니었다. 어떤 처방에서 어떤 후보물질을 뽑았고, 기존 치료와 비교했을 때 무엇이 나았고 무엇이 부족한지를 공개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실패한 전임상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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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3 화 : 스위스 인터라켄 호숫가의 전통 약선 연회

스위스 인터라켄, 융프라우의 만년설이 은빛 거울처럼 비치는 브리엔츠 호수(Lake Brienz).호숫가 절벽 위에 자리 잡은 최고급 빅토리아-융프라우 프라이빗 리조트의 가든 테라스에는 은은하고 깊은 전통 한방 약재의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성운글로벌과 혜민당이 유럽 정·재계 인사들과 스위스 연방 관계자, 유력 제약사 경영진을 초청해 연 ‘글로벌 VIP 전통 약선 갈라 연회’였다. 호수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알프스의 겨울바람과 100년 묵은 천종산삼, 영지버섯의 그윽한 훈향이 어우러져 테라스 전체를 신비로운 치유의 공간으로 물들였다.임신으로 달라진 몸을 숨기지 않은 채 편안하고 당당하게 손님을 맞았다.“한 대표님, 오늘 선보여 주신 혜민당의 ‘황칠 공진단’과 전통 약선 코스는 서양 현대 의학이 수십 년간 찾지 못했던 천연 면역 치유의 해답입니다. 우리 그룹과의 유럽 독점 공급 파트너십을 반드시 체결하고 싶습니다.”채경은 유창한 독일어와 영어로 미소를 지으며 여유롭게 응대했다.“현대 의학과 자연 유래 약물은 서로 대립할 필요가 없습니다. 중요한 건 근거와 안전성, 그리고 환자에게 실제 도움이 되는가입니다. 그 기준으로 함께 연구하겠습니다.”그녀는 이제 제 사업의 장단점을 직접 설명하고, 질문을 받고, 틀린 부분은 고칠 수 있는 경영자였다.***연회가 성황리에 마무리된 자정 무렵, 호숫가에 자리 잡은 프라이빗 글라스 방갈로. 잔잔한 브리엔츠 호수의 물소리가 밤의 적막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사각, 사각.발소리와 함께 백도현이 다가왔다. 남자는 낮의 격식 있던 연회복 대신 편안한 흰 모시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 손에는 산모의 원기를 돋우는 따뜻한 온궁차(溫宮茶)가 담긴 청자 찻잔이 들려 있었다.“피곤하지 않으십니까, 사모님.”도현이 찻잔을 협탁에 내려놓고, 채경의 차가워진 손을 감싸 쥐었다. 남자의 뜨거운 체온이 손끝을 타고 전신으로 스며들었다.“아니요…… 우리 아이들도 오늘 밤은 얌전히 숨을 고르고 있어요. 도현 씨 손길이 닿아서 그런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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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4 화 : 혜민당 글로벌 R&D 센터 기공식

스위스 북서부 바젤(Basel), 세계 바이오 의약 산업의 심장부인 바젤 바이오 밸리.라인강과 바젤의 연구단지를 배경으로 한 넓은 부지 위에 만국기와 함께 거대한 금빛 현수막이 바람을 타고 휘날리고 있었다. [혜민당 글로벌 천연물 신약 바이오 R&D 센터 기공식]. 스위스 연방 정부의 경제부 장관을 비롯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들, 유럽 유수 대학의 석학들, 그리고 글로벌 제약사 CEO 500여 명이 자리를 빽빽하게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한국의 오랜 전통 한의학이 최첨단 나노 바이오 기술과 융합하여 전 세계 난치병 치료의 새로운 중심지로 도약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행사장 전체에 웅장한 클래식 오케스트라 팡파르가 울려 퍼졌다.연구센터 사업을 함께 책임지는 공동 투자자의 차분한 존재감이 느껴졌다.마이크 앞에 선 신채경 대표가 단호하고 기품 있는 목소리로 연설을 시작했다.“이 센터는 전통 처방을 신화로 포장하는 곳이 아니라, 성분과 기전을 검증하고 안전성을 확인하는 연구기관이 될 겁니다. 효과가 있는 것은 증명하고, 없는 것은 버리겠습니다.”영어로 이어진 연설이 끝나자 연구자들과 투자자들의 박수가 이어졌다.이어 두 사람이 황금 삽을 쥐고 센터 착공을 알리는 금빛 시삽대에 흙을 올렸다.파아아앙—!경쾌한 축하 팡파르와 함께 오색 꽃가루가 바젤의 푸른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수백 명의 세계 언론 기자들이 터뜨리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 속에서, 백도현이 천천히 채경을 향해 몸을 돌렸다. 남자는 전 세계의 카메라가 지켜보는 단상 위에서, 채경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5캐럿 블루 다이아몬드 반지를 쥔 채 정중하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남자의 무테안경 너머 흑안에 뜨거운 사랑이 넘쳐흘렀다.“와아아아—!”객석에서 경이로움에 찬 탄성과 환호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도현이 채경의 부드러운 손등에 깊고 뜨거운 입맞춤을 내리며, 오직 그녀만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속삭였다.“이 센터의 첫 삽과 앞으로 여기서 나올 모든 성과를 당신에게 바칩니다. 당신이 걸어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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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5 화 : 성북동 연우재로의 귀환과 전통 혼례 준비

스위스 취리히에서 날아오른 특별 전용기가 서울의 맑은 초겨울 하늘을 가르고 인천국제공항 활주로에 부드럽게 착륙했다.VIP 전용 터미널 출구 앞에는 수백 명의 국내외 경제부 기자들과 방송사 취재진, 그리고 성운글로벌과 혜민당 임직원들이 마중 나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스위스 바젤 바이오 밸리 R&D 센터 기공식과 30조 원 규모의 유럽 글로벌 바이오 펀드 유치를 성공시키고 당당하게 금의환향한 주인공들의 입국이었다. 플래시 세례가 터져 나오는 가운데, 두 사람은 여유로운 미소로 인사를 건네며 준비된 의전 차량에 올랐다.칠흑 같은 롤스로이스 전용 의전 차량이 멈추어 선 곳은, 서울 성북동 백 년 된 아름드리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한옥 ‘연우재(然雨齋)’.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시어머니 민 여사의 감시와 남편 강시우의 폭언에 갇혀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 썩어가던 유폐의 공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연우재의 모습은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시댁 태강가의 음산하고 퀴퀴한 흔적은 완벽하게 철거되었고, 혜민당 본가의 장인들이 정성을 다해 복원한 고즈넉한 단청과 청사초롱이 처마 밑에서 은은한 명문가의 기품을 뽐내고 있었다. 마당의 대나무 잎들이 스치는 소리가 맑은 풍경 소리와 어우러져 평화로운 서정을 노래했다.“신 대표님,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혼례 준비는 저희가 맡아두었습니다.”채경도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누군가 위에서 내려다보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 예를 갖추는 자리라 마음이 편했다.채경은 품격 있는 다정한 미소로 어른들의 인사를 받으며 연우재 안채로 걸어 들어갔다. 대나무 숲 사이로 불어오는 차가운 초겨울 바람에 갓 달인 약재 향이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달칵.창호지 미닫이문이 조용히 닫히고, 안채 다실에 두 사람만이 남았다. 도현이 갓 달여낸 따뜻한 탕약 찻잔을 들고 채경의 맞은편에 단정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왕실 비전 안태음(安胎飮)을 정성껏 올립니다.”탕기 뚜껑을 열자, 백두산 천종산삼과 백출, 당귀의 그윽하고 달콤한 향기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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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6 화 : 연우재의 전통 혼례와 새로운 가족

쾌청한 초겨울 햇살이 성북동 연우재의 푸른 기와지붕 위로 금빛 가루처럼 찬란하게 쏟아져 내렸다.가문과 회사의 손님들이 함께 자리한 큰 전통 혼례였지만, 두 사람에게는 결국 서로에게 예를 올리는 하루였다.집례관의 엄숙하고 우렁찬 창홀(唱呼)이 마당에 울려 퍼졌다.“신랑, 신부 입실!”장엄한 궁중 취타대의 대취타 선율이 대나무 숲을 뒤흔들며 연우재 하늘을 수놓았다. 짙은 감청색 단령에 금실 흉배를 두르고 사모관대를 갖춰 입은 백도현이 초례청에 들어섰다. 평소보다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신부를 바라보는 순간 입가가 아주 조금 풀렸다.쌍둥이를 품은 몸 때문에 걸음은 조금 느렸지만, 채경은 끝까지 제 발로 초례청에 섰다.푸른 대나무 숲이 맑은 겨울바람에 서걱거리는 소리를 내는 가운데, 백 년 묵은 초례상 앞에 마주 선 두 사람. 신랑과 신부가 서로를 향해 정중히 절을 올리는 교배례(交拜禮)가 거행되었다. 서로를 향해 깊숙이 허리를 숙이는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조용히 마주쳤다. 3년 전 시댁의 골방에서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 서서히 말라 죽어가던 가련한 여인과, 비루한 시댁의 의전을 감수하며 그녀를 구원하기 위해 숨죽여 칼을 갈았던 남자의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두 사람의 눈가에 말로 다할 수 없는 벅찬 감격의 투명한 눈물이 맺혔다.이어서 표주박을 둘로 쪼개어 술을 나누어 마시는 합근례(合巹禮)가 이어졌다. 도현이 쪼개진 표주박 잔을 채경의 붉은 입술에 대어주었다. 임신 중인 채경을 위해 술 대신 준비한 오미자 화합차가 목을 타고 넘어갔다. 두 사람은 같은 잔을 나누며 조용히 웃었다.“신랑 백도현과 신부 신채경이 부부의 연을 맺고 혜민당의 대종부로 우뚝 섰음을 천지신명과 문중 만백성 앞에 선포하노라!”정식 혼례가 끝나고 두 사람은 부부로서 하객들의 축하를 받았다.교배례를 마칠 때부터 도현은 계속 채경의 얼굴을 살폈다. 쌍둥이를 품은 몸으로 오래 서 있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알아서였다.“허리 괜찮아요?”“지금 그걸 물어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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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7 화 : 혜민당 대종부의 사당 참배와 황후 안태음

성북동 연우재(然雨齋)의 아침 햇살이 백 년 묵은 한옥 서까래를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대례복 활옷을 벗고 혜민당 대종부(大宗婦)의 상징인 짙은 자줏빛 명주 치마저고리를 차려입은 신채경은 조용히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맑은 얼굴에는 출산을 기다리는 사람 특유의 기대와 긴장이 함께 비쳤다.지난 3년간 시댁 태강가의 골방에서 ‘대를 못 잇는 암탉’이라며 멸시와 학대를 당하던 상처 입은 여인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었다.“사모님, 사당 참배를 위한 헌다례(獻茶禮) 준비가 모두 끝났습니다.”미닫이문이 열리며, 감청색 도포를 단정히 차려입은 백도현이 들어섰다.도현의 눈에는 신부를 향한 애정과 자부심이 숨김없이 드러나 있었다.도현이 가까워지자 익숙한 약재 향이 은은하게 따라왔다.도현이 채경의 가녀린 손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며 제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남자의 뜨거운 숨결이 채경의 손등을 델 듯이 적셨다.“가문의 300년 역사가 오늘 온전히 사모님을 맞이할 것입니다.”***연우재 북편 언덕, 백 년 된 아름드리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혜민당 가묘(家廟) 사당.백자 향로에서 피어오르는 그윽한 침향 연기가 사당 안뜰을 자욱하게 채우고 있었다.뜰 아래에는 백도현의 숙부 백경호 종친회장을 비롯한 전국의 문중 원로 50여 명이 정갈한 도포를 입고 엄숙하게 도열해 있었다.“혜민당 제13대 대종부, 신채경 마님 입실!”집례관의 낭랑한 창홀 소리와 함께 채경이 도현의 호위를 받으며 사당 안으로 들어섰다.채경은 선조들의 신위 앞에 무릎을 꿇고 정성껏 달인 작설차를 올리며 사배(四拜)를 올렸다.채경이 절차를 차분히 따르자 원로들도 고개를 끄덕였다.참배가 끝나자, 백경호 종친회장이 붉은 비단 보자기 위에 놓인 묵직한 흑단 인장함을 받쳐 들고 다가왔다.“이 인장은 문중 재단의 주요 결재에 공동으로 참여한다는 뜻입니다. 혼자 결정하는 권력이 아니라 함께 책임지는 자리로 받아주십시오.”문중 원로들은 차례로 인사를 올렸고, 채경도 같은 예로 답했다. 일방적으로 받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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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8 화 : 폐쇄 병동의 탈출과 대문 앞의 마지막 무릎

“내 아들 살려내! 내 회사 내놔! 이 씨발년아, 네가 우리 집안 다 망쳤어!”서울 성북동 연우재 솟을대문 앞.백발이 산발이 된 채 흙투성이가 된 환자복을 걸친 노파가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을 손톱으로 사납게 긁어대고 있었다.태강그룹의 오만방자했던 전 안주인, 민 여사였다.외아들 강시우의 징역 15년 확정과 추가 횡령 기소, 가문의 재산 추징 소식이 겹친 뒤 상태가 악화된 민영숙은 병원 이송 과정에서 보호 인력을 뿌리치고 달아났다가 성북동까지 온 것이었다.손톱 밑에는 피딱지가 말라붙어 있었고, 뼈만 남은 앙상한 몸에서는 악취가 진동했다.“이 대문 열어! 여기가 어떤 집인데 천한 며느리 년이 안주인 행세를 해?! 내가 그년 머리채를 뽑아 죽여버릴 거야!”성북동 고급 주택가를 지나가던 주민들과 방송사 취재진이 그 비참하고 흉측한 노파의 몰골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며 손가락질하고 혀를 차고 있었다. 한때 대한민국 상류층의 꼭대기에서 군림하던 재벌가 마님의 말로는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수십 년간 대한민국 재계를 쥐락펴락하며 며느리에게 극독을 먹이던 악마의 비참한 최후였다.쿠우우웅—.육중한 연우재 솟을대문이 장엄한 굉음을 내며 천천히 열렸다.대문 안쪽에서 혜민당 전담 경호팀 요원들이 양옆으로 도열했다.그 당당하고 위엄 넘치는 호위 대열 사이를 가르고 천천히 걸어 나오는 두 사람의 거룩한 인영.짙은 자줏빛 실크 두루마기에 종가 비취 옥비녀를 꽂은 신채경.그녀의 곁에는 다크 네이비 수트 차림의 백도현 회장이 말없이 서 있었다.초겨울 햇살 아래서 뿜어져 나오는 채경과 도현의 기품은 광기에 찌든 노파를 단숨에 압도했다.“채, 채경아……!”민 여사가 번쩍이는 옥비녀와 채경의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5캐럿 블루 다이아몬드 반지를 보더니 넋이 나간 듯 허겁지겁 무릎으로 기어 왔다.노파의 더러운 손가락이 채경의 단정한 비단 신발을 향해 뻗어나갔다.“며늘아가…… 내가 잘못했다! 내 아들 시우 좀 감옥에서 빼다오! 나 밥 한 끼만 먹여다오! 길바닥에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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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9 화 : 쌍둥이 태교 여행과 혜민당 메디컬 타운 완공

봄이 무르익은 5월 무렵, 제주도 한라산 기슭에 자리 잡은 혜민당의 프라이빗 전통 약선 휴양림 ‘천초원(天草園)’.백 년 된 제주 삼나무 숲과 푸른 남쪽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전통 별채 테라스 위로 따뜻한 늦봄 햇살이 쏟아졌다. 성북동 대문 사건 뒤 몇 달이 흐른 지금, 채경은 임신 6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도현은 바쁜 일정을 잠시 비워 이곳으로 태교 여행을 준비했다.바람결에 실려 오는 맑은 삼나무 피톤치드와 은은한 야생 국화 향이 채경의 폐부를 달콤하게 적셨다. 채경은 부드러운 순백의 캐시미어 숄을 걸친 채 볼록하게 솟아오른 아랫배를 두 손으로 가만히 어루만졌다. 단전 깊은 곳에서 두 아이가 기분 좋은 듯 꼼지락거리며 힘차게 발길질하는 태동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아이들이 제주의 맑은 숲 내음을 무척이나 반기는 모양입니다.”뒤편에서 백도현이 걸어 나왔다. 편안한 네이비 린넨 셔츠 차림의 남자 손에는 방금 짜낸 제주 감귤에 천문동과 맥문동을 달여 넣은 생맥산(生脈散) 한 잔이 들려 있었다.“사모님을 위한 맞춤 보음 탕차입니다. 갈증을 멎게 하고 태아의 기운을 서늘하고 맑게 보살펴줄 것입니다.”“고마워요, 도현 씨.”채경이 잔을 받아 한 모금 넘기자, 입안 가득 새콤달콤한 과향과 깊은 약재의 청량감이 번지며 온몸의 나른한 피로가 사르르 씻겨 나갔다. 도현이 채경의 곁으로 다가앉아 그녀의 부른 배 위에 크고 따뜻한 손바닥을 부드럽게 얹었다. 남자의 묵직하고 따스한 기혈의 진기가 여린 살결을 타고 스며들자, 쌍둥이가 화답하듯 남자의 손바닥을 톡톡 쳤다. 도현의 입가에 벅찬 소년 같은 미소가 번져나갔다.***해외 경제 매체들은 성운글로벌의 지배구조 개편과 바이오 투자 확대를 주요 사례로 다뤘다.오후가 깊어지자, 테라스 안쪽의 프라이빗 노천 히노키탕에 따뜻한 약선 온천수가 가득 채워졌다. 천궁과 당귀, 야생 쑥을 우려낸 은은한 약탕의 수증기가 붉은 노을빛 아래서 몽환적으로 피어올랐다. 도현이 탕 안으로 들어가 앉은 뒤, 가벼운 면사 가운을 벗은 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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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0 화 : 대종부의 은밀한 보양 의전

제주 태교 여행을 마친 뒤 두 달이 흐른 한여름, 성북동 연우재의 깊은 밤.혜민당에서 임신한 가족을 위해 해오던 오래된 보양 습관을 현대적으로 정리한 밤이었다. 이름은 거창했지만 핵심은 충분히 쉬고, 안전하게 먹고, 긴장을 푸는 것이었다.채경은 예전 같으면 “가문 의전”이라는 말만 들어도 몸부터 굳었을 것이다. 태강가의 의전은 늘 누가 위고 누가 아래인지 확인하는 절차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도현은 약재 목록을 먼저 보여줬고, 산부인과 협진 메모까지 옆에 붙여뒀다. 하고 싶지 않은 건 빼도 된다고도 했다.“이건 의전이라기보다 체크리스트네요.”“안전이 제일 중요하니까요.”“그 말은 마음에 드네요.”채경은 직접 탕의 온도를 확인하고, 너무 뜨겁다고 한 번 식혀달라고 말했다. 별것 아닌 요구였지만 그 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방 안에는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진하고 달콤한 산삼 훈향과 혜민당 특유의 알싸한 야생 쑥향이 농밀하게 가득 차 있었다. 은은한 침향 연기가 촛불 주위를 신비롭게 감돌았다. 신채경은 얇고 가벼운 순백의 최고급 명주 슬립 저고리만 걸친 채 따뜻한 온돌 침상 위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 은은한 호롱불 조명 아래 비친 그녀의 살결은 수줍은 복숭앗빛 홍조를 띠며 갓 피어난 백합꽃처럼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단전 안쪽에서 느껴지는 쌍둥이의 건강한 고동이 방 안의 적막을 기분 좋게 울렸다.달칵.창호문이 조용히 닫히며 백도현이 다가왔다. 남자는 상의를 완전히 벗어 던진 채, 탄탄하게 갈라진 구릿빛 흉근과 짙은 쇄골선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남자의 손에는 옥빛 탕기에 담긴 짙은 황금빛의 산삼녹용 진액이 들려 있었다.“오늘 검사에서 문제없는 재료만 쓴 보양차입니다. 그래도 맛은 장담 못 합니다.”도현이 탕기 뚜껑을 열자 채경이 미리 눈을 가늘게 떴다. “컵 놔두고 또 입으로 먹일 생각은 아니죠?” 도현이 잠깐 멈췄다가 웃었다. “들켰네요.”채경이 잔을 직접 받아 한 모금 마신 뒤, 이번에는 제가 먼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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