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일정에서 잠시 벗어나 가족이 쉬기 위해 마련한 집이었다.이곳에서 채경은 오전 회의를 하루 두 시간으로 줄였다. 남은 시간에는 아이들과 산책하고, 낮잠을 자고, 도현과 장을 봤다. 처음 마트에 갔을 때 도현이 유기농 제품의 성분표를 지나치게 오래 읽는 바람에 채경이 카트를 밀고 도망친 적도 있었다.“도현 씨, 애들 과자 하나 사는데 논문 심사해요?”“당 함량이 높습니다.”“오늘 하루만 세상이 망하게 둬요.”결국 두 사람은 가장 작은 봉지를 하나 샀고, 도진과 서아보다 부모가 먼저 두 개씩 집어 먹었다. 그런 사소한 하루들이 채경에게는 어떤 해외 행사보다 더 귀했다.넓고 푸른 잔디밭 정원 위로 청량한 솔향과 알프스 고원 야생화의 달콤한 향기가 부드러운 바람을 타고 향기롭게 번져나갔다. 정원 한구석에는 채경이 아끼는 조선 백자와 전통 약초 화단이 조화롭게 자리 잡고 있었다. 잔디밭 위에서는 돌을 갓 지난 쌍둥이 남매, 도진이와 서아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아장아장 걸음마를 떼고 있었다. 나비를 쫓아 통통한 다리로 뛰어가던 도진이가 엉덩방아를 찧자, 서아가 다가가 오빠의 손을 잡고 방긋 미소를 지었다.“넘어질라 조심해야지, 우리 예쁜 도진이와 서아.”상처의 흔적이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가끔 검은 탕약 냄새와 비슷한 향만 맡아도 가슴이 철렁했다. 다만 이제 그런 날에도 돌아올 사람이 있었다.사각, 사각.정원 오솔길을 따라 갓 우려낸 탕약 주전자를 든 백도현이 걸어왔다. 편안한 리넨 셔츠의 소매를 걷어붙인 남자의 다부진 팔뚝과 훤칠한 피지컬이 가을 햇살 아래서 눈부시게 빛났다. 도현은 아이들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 준 뒤, 채경의 곁으로 다가와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차 식어요. 오늘은 약재 세 개밖에 안 넣었습니다.”도현이 백자 찻잔을 건네며 채경의 차가워진 가느다란 손가락을 제 크고 뜨거운 손바닥으로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남자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묵직한 온기가 채경의 온몸을 노곤하게 감쌌다.“고마워요, 도현 씨…… 가끔
Last Updated : 2026-10-04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