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남편의 전담 한의사, 그가 내 심장을 다시 뛰게 했다: Chapter 1 - Chapter 10

60 Chapters

제 1 화 : 사모님의 쓴 탕약과 의문의 전담의

서울 성북동, 백 년 된 아름드리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태강그룹 본가 한옥 별채 ‘연우재(然雨齋)’.신채경은 옻칠이 벗겨진 낡은 찻상 앞에 등을 꼿꼿이 세운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차가운 놋그릇에 담긴 시커먼 한방 탕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방 안에는 숨이 막힐 정도로 진하고 퀴퀴한 한약재의 탄내와 역겨운 비린내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그것은 지난 3년 동안 시어머니 민 여사의 강요로 아침저녁마다 한 방울도 남김없이 마셔야 했던 정체불명의 ‘회임 보약’이었다.약사발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위장이 뒤틀리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원샷 하라니까, 뭐 하고 멍하니 넋 놓고 있어? 네가 그따위로 굼뜨고 매사에 게으르니까 애가 안 들어서는 거야.”방문 턱에 거만하게 비스듬히 기댄 남편 강시우가 혀를 차며 독한 시가 담배 연기를 훅 내뿜었다.태강그룹 상무. 돈과 집안 이름이면 세상에 못 할 일이 없다고 믿는 재벌 3세였다.어젯밤에도 강남의 술집에서 여자들과 밤을 새우고 들어온 남자의 셔츠 깃에는 낯선 붉은 립스틱 자국이 번져 있었고, 싸구려 향수 냄새가 배어 있었다.“시우 씨…… 이 탕약만 마시면 매일 밤 속이 타는 것처럼 뒤틀리고 열이 올라요. 병원에서 처방받은 영양제도 아니고, 대체 무슨 약재가 들어간 건지…….”“닥치고 마셔, 이 빌어먹을 년아!”강시우가 성큼 다가와 놋그릇을 거칠게 낚아채더니 채경의 턱을 쥐어짜며 입술 사이로 약탕을 억지로 쑤셔 넣었다.쓰디쓴 검은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며 식도를 불로 지지는 듯한 끔찍한 통증을 일으켰다.사레가 들려 기침을 토해내며 바닥에 엎드린 채경의 여린 뺨을 시우가 구둣발 끝으로 툭툭 건드리며 비열하게 짓씹었다.“살결에 온기 하나 없는 목석같은 년. 대를 못 잇는 씨 없는 암탉 주제에 시어머니가 가문의 후계를 위해 특별히 지어주신 비싼 보약이면 넙죽 절을 하고 처먹어야지, 어디서 건방지게 토를 달아?”남편은 채경의 머리채를 거칠게 틀어쥐었다가 바닥으로 내팽개치고는 조롱하듯 방을 빠져나갔다.차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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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화 : 서늘한 손목, 불꽃 같은 첫 진맥

“사모님, 손목을 내어주시겠습니까.”백도현의 낮고 서늘한 음성이 빗소리를 뚫고 다실 안을 깊게 메웠다.남자는 옥빛 두루마기 자락을 정갈하게 정리하며 채경의 맞은편 찻상 앞에 무릎을 꿇고 단정히 앉았다.가까이서 마주한 남자의 얼굴은 잔혹할 정도로 수려하고 단단했다.가까이서 보니 짙은 눈썹과 반듯한 콧날, 흐트러짐 없는 표정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단정한 옷깃 아래로 드러난 체격까지 더해져 쉽게 빈틈을 보일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가까이 다가온 체온과 옷깃에 밴 쌉싸름한 약재 향이 채경의 감각을 어지럽혔다.채경은 알 수 없는 긴장감에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떨리는 손을 뻗어 하얀 명주 비단으로 감싸인 진맥대 위에 올렸다.얇은 실크 저고리 소매가 스르륵 걷히며, 가녀리고 창백한 손목 안쪽의 푸른 핏줄이 드러났다.남편의 거친 손길에 멍든 자국이 손목 언저리에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실례하겠습니다.”도현이 천천히 손을 뻗었다.남자의 길고 단단한 세 손가락이 채경의 맥문(寸關尺)에 닿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화악—!전기에 감전된 듯 짜릿하고 거대한 열락의 전류가 채경의 손목을 타고 척수와 뇌수까지 번개처럼 치달았다.남자의 손끝은 살점이 타들어 가는 화상이라도 입을 것처럼 델 듯이 뜨겁고 거칠었다. 차가운 얼음장 같던 채경의 살결에 남자의 지문이 불도장처럼 각인되었다.지난 3년 동안 남편 강시우의 폭언과 냉대에 짓눌려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 있던 채경의 온몸에 붉은 소름이 돋아났다.남자의 손가락이 닿은 손목의 맥점이 미친 듯이 박동하기 시작했다.“하…… 읏.”채경의 메마른 입술 사이로 통제할 수 없는 얕은 탄식과 신음이 새어 나왔다.채경이 소스라치게 놀라 손을 거두려 하자, 도현은 바로 힘을 풀었다. 다만 진맥이 끝나지 않았다는 듯 손끝만 조심스럽게 맥문 위에 남겨두었다.억지로 붙잡는 힘은 아니었다. 언제든 채경이 손을 빼면 놓아줄 거리였다.“잠깐만 더 보겠습니다. 불편하시면 바로 손을 놓겠습니다.”남자의 시선이 채경의 떨리는 입술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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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화 : 침상 위의 첫 치료, 아랫배를 덮친 온기

도현의 마지막 말은 단순했다. 결정권은 채경에게 있다는 것. 그 사실이 이상할 만큼 낯설었다.도현의 말이 끝난 뒤에도 채경은 한동안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도현의 옷깃에 밴 쌉싸름한 약재 향이 채경의 흐트러진 숨 사이로 스며들었다.지난 3년 동안 시어머니와 남편의 강요로 삼킨 약이 오히려 몸을 해쳤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그리고 자신을 ‘씨 없는 암탉’이라 짓밟던 남편 강시우가 실은 중증 무정자증 환자였다는 잔혹한 진실.그 거대한 배신의 무게에 채경의 가녀린 전신이 사시나무 떨듯 덜덜 떨려왔다.위장이 차갑게 뒤틀리며 오한이 등줄기를 타고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아…… 아아…….”채경의 파리한 입술 사이로 통제할 수 없는 신음이 새어 나왔다.그녀가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지려던 바로 그 찰나였다.덥석.도현의 단단하고 넓은 양팔이 허공에서 채경의 가느다란 허리와 무릎 뒤를 번쩍 안아 올렸다.남자의 탄탄한 흉근에 채경의 뺨이 깊숙이 파묻혔다.옥빛 한복 두루마기 너머로 전해지는 남자의 묵직하고 뜨거운 체온은, 한기(寒氣)에 젖어 있던 채경의 살결을 마비시킬 정도로 강렬했다.도현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연우재 안쪽 미닫이문 너머에 자리한 은밀한 진료 침상(寢床) 위로 채경을 조심스럽게 눕혔다.정갈하게 깔린 하얀 옥양목 이부자리 위로 채경의 흑발이 흩어졌다.“백 박사님…… 안 돼요…… 여긴 본가 별채예요…….”채경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떨리는 손으로 남자의 넓은 어깨를 밀어내려 했다.남편 강시우가 언제 마당을 건너올지 모르고, 안채의 시어머니 민 여사가 보낸 감시의 눈길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다.남편의 고용인이자 전담 한의사와의 접촉은 그 자체로 발각 즉시 가문에서 파문당할 치명적인 금단의 영역이었다.하지만 도현은 물러서지 않았다.남자는 코끝에 걸려 있던 은빛 무테안경을 벗어 찻상 위에 내려놓았다.안경을 벗자 낮 동안 눌러두었던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평소보다 거칠어진 숨이 채경에게도 전해질 만큼 가까웠다.“배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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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화 : 창호지 문 너머의 그림자, 빗속의 첫 결속

덜컥, 덜컹—!창호지 문고리가 거칠게 흔들리는 쇳소리에 채경의 심장이 나락으로 곤두박질쳤다.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시고 전신이 얼음장처럼 굳어버렸다.문 바로 한 뼘 너머, 비에 젖은 창호지 위로 남편 강시우의 험악한 그림자가 거대하게 드리워져 있었다.만약 이 얇은 종이 문짝이 열린다면, 저고리가 풀어헤쳐진 채 한의사의 품에 갇혀 있는 이 배덕의 현장은 피비린내 나는 참극으로 끝장날 터였다.“하…… 읍!”채경이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려던 바로 그 찰나였다.덥석.도현의 크고 단단한 손바닥이 채경의 떨리는 입술을 빈틈없이 틀어막았다.남자의 거대한 몸이 채경의 가녀린 체구 위로 빈틈없이 덮쳐 내려오며 그녀를 침상 깊숙이 결박했다.겹쳐진 한복 옷감 너머로 맞닿은 남자의 단단한 흉근과 거친 늑골이 채경의 여린 가슴을 짓눌렀다.가까이서 마주한 도현의 칠흑 같은 흑안에는 단 한 치의 두려움도 없었다.오히려 살얼음판 같은 이성을 번뜩이며, 남자의 긴 손가락이 채경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조심스럽게 훔쳐냈다.“가만히 계십시오, 사모님.”남자의 입술이 채경의 귓바퀴를 스치며 나직하게 으르렁거렸다.도현은 곧바로 문밖을 향해 평정된 목소리로 말했다.“강시우 상무님이십니까.”문고리를 덜컥거리던 강시우의 손길이 우뚝 멈추었다.“백 박사! 왜 문을 걸어 잠그고 지랄이야?! 그년 진맥 다 끝났으면 얼른 안채로 보내! 어머니가 기다리신다고!”남편의 신경질적인 고함이 문풍지를 흔들었다.도현은 채경의 하얀 허벅지를 제 단단한 허벅지 사이에 끼워 넣고,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더욱 강하게 틀어쥐며 대답했다.“사모님의 하초(下焦) 기혈이 극도로 냉각되어 있어, 원기를 끌어올리는 특수 온구 요법과 혈맥 유주 침 치료를 급히 병행하고 있습니다.”도현의 낮고 단호한 음성이 마당의 빗소리를 뚫고 나갔다.“지금 환자분 옷이 정리되지 않았고 치료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환자 사생활을 위해 문을 열 수 없습니다. 끝나는 대로 모시겠습니다.”단호한 말투에 문밖의 강시우가 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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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화 : 창호문 너머의 은밀한 뜸 치료

이튿날 아침, 성북동 본채 안방 다실.“약기운이 조금 도는지, 얼굴에 누렇던 낯빛이 제법 가셨구나.”시어머니 민 여사가 옻칠 찻상 너머로 차가운 놋그릇 사발을 턱짓으로 오만하게 가리켰다.사발 안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시커멓게 졸아붙은 독초(천남성·파두) 탕약이 담겨 있었다.채경을 서서히 불임으로 만들고 자궁을 망가뜨려 시댁의 꼭두각시로 만들어 온 추악한 독약이었다.과거의 채경이었다면 헛구역질을 참으며 손을 바들바들 떨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그녀의 눈빛에는 깊은 얼음 같은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채경은 탕약 사발을 집어 드는 척하며, 한복 소매 속에 은밀하게 감추어 두었던 백도현의 옥빛 약병에서 좁쌀만 한 해독 정제 한 알을 떨어뜨렸다.해독 정제가 녹으며 미세한 거품이 일었다. 독성 성분을 없애는 만능약은 아니었다. 다만 급성 자극을 줄이고, 이후 치료를 버틸 시간을 벌기 위한 처방이었다.꿀꺽, 꿀꺽.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단숨에 사발을 비워내는 채경의 의연한 모습에 민 여사의 입꼬리가 만족스럽게 비틀렸다.“그래, 진작 그럴 것이지. 혜민당 백 박사가 솜씨는 참 용한 모양이야. 오늘도 오후에 별채 연우재로 건너가서 특별 온구(쑥뜸) 치료를 빠짐없이 받도록 해라. 대를 잇는 게 네 유일한 쓸모니까.”“네, 어머님. 분부대로 하겠습니다.”채경은 깍듯하게 허리를 숙여 예를 갖춘 뒤 성북동 본채 다실을 차분하게 걸어 나섰다.그녀의 눈빛에는 전날과 다른 단단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오후 3시, 가을비가 그치고 자욱한 물안개가 대나무 숲을 뒤덮은 별채 연우재.창호문 안쪽 방 안에는 은은하고 짙은 야생 쑥향과 청량한 박하 향이 안개처럼 자욱하게 내려앉아 있었다.밖에서 들려오는 대나무 잎 스치는 소리가 묘한 긴장감을 자아냈다.달칵.채경이 방 안으로 들어서자, 흰 삼베 적삼에 옥빛 명주 바지를 입은 백도현이 맞이했다.안경을 벗어 찻상 위에 올려둔 도현의 시선이 채경에게 잠시 머물렀다.“오셨습니까, 사모님.”도현의 낮고 깊은 매혹적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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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화 : 본채 가족 만찬의 위험한 시선

창호지 문 너머로 길게 드리운 박 상궁의 흉물스러운 검은 그림자.채경의 심장이 나락으로 덜컥 내려앉았다.침상 위에는 채경의 벗겨진 하얀 한복 저고리와 속옷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고, 그녀의 헐벗은 등 위에는 쑥뜸의 붉은 불씨와 함께 백도현의 거대한 몸이 완벽하게 덮쳐 누르고 있었다.한 치의 틈도 없이 밀착된 두 사람의 살결 사이로 가쁜 숨결이 얽혀들었다.문풍지 하나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절체절명의 배덕적 위기였다.도현은 당황하는 기색 하나 없이, 오히려 채경의 떨리는 입술을 제 커다란 손바닥으로 빈틈없이 틀어막으며 귓가에 서늘하게 속삭였다.“놀라지 마십시오. 문은 제가 막겠습니다.”남자의 눈빛에는 상대가 더 다가오면 한 치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경고가 선명했다.도현은 채경의 허리를 더욱 깊숙이 틀어쥔 채, 문밖을 향해 엄숙하고 위엄 넘치는 명문 종손 한의사의 목소리를 뿜어냈다.“치료 중이고 환자분 옷도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사생활 보호를 위해 문을 열 수 없으니 툇마루 아래에서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당대 최고 명의의 서슬 퍼런 일갈에 문밖의 박 상궁이 흠칫하며 마당 쪽으로 물러서며 허리를 숙였다.“예, 예…… 백 박사님. 치료 끝나시는 대로 본채로 모시겠습니다.”발소리가 멀어지자마자, 도현은 채경의 입술을 덮쳐 농밀한 입맞춤을 사정없이 쏟아부었다.문풍지 너머의 숨 막히는 긴장감이 극상의 쾌락으로 반전되며 채경의 온몸을 뒤흔들었다.두 사람의 거친 호흡이 약향 어린 연우재를 뜨겁게 채웠다.***저녁 7시, 성북동 본채 대청마루 한옥 대식당.화려한 궁중 한정식 만찬상이 차려진 자리에는 태강그룹 강 회장과 민 여사, 남편 강시우, 그리고 가문의 전담 한의사 자격으로 말석에 앉은 백도현이 함께하고 있었다.술잔을 연거푸 들이켠 강시우가 비열한 눈으로 맞은편의 채경을 훑어보았다.“백 박사가 뜸을 좀 놓더니, 목석같던 마누라 안색에 색기가 좀 도네. 그래봤자 대 못 잇는 빈 껍데기 암탉이지만.”남편의 모욕적인 언사에 식탁의 시댁 친족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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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화 : 청담동 오피스텔의 도청과 급습

어두운 한옥 회랑 복도 끝에서 술에 취한 강시우의 비틀거리는 거친 발소리가 가까워졌다.“어이…… 거기 누구야? 박 상궁이야? 물 한 잔 가져오라니까!”시우의 혀 꼬인 신경질적인 고함이 연우재 주변의 적막을 거칠게 찢었다.채경의 심장이 나락으로 덜컥 내려앉으며 숨이 멎는 듯했다.한옥 복도 기둥 뒤의 좁고 어두운 그늘 속, 백도현은 단 한 치의 당황도 없이 채경의 가녀린 몸을 제 단단하고 넓은 품 안으로 온전히 감추었다.남자의 커다란 손바닥이 채경의 부르튼 붉은 입술을 조용히 덮었고, 다른 한 손은 그녀의 차가운 한복 소매 안쪽으로 콩알만 한 초소형 카메라 송신기와 무선 수신기를 밀어 넣었다.남자의 가슴에서 전해지는 뜨거운 체온과 옷깃에 밴 약재 향이 채경을 감쌌다.“주머니 깊숙이 숨기십시오, 사모님.”도현의 서늘하고 다정한 속삭임이 귓전을 스친 직후, 도현은 채경을 그늘 안쪽에 안전하게 두고 홀로 유유히 복도 중앙으로 걸어 나갔다.옥빛 두루마기 자락을 정리하고 안경을 가볍게 밀어 올리는 모습은 조금 전의 긴장과는 전혀 다른, 침착한 의원 그 자체였다.남자의 걸음걸이마다 흐트러짐 없는 기품이 묻어났다.“상무님이십니까. 과음으로 인한 간화(肝火)를 다스릴 온청음 탕약을 준비하려던 참이었습니다.”벽을 짚고 비틀거리던 강시우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혀를 찼다.남자의 몸에서는 싸구려 룸살롱 향수 냄새와 역겨운 술 냄새가 진동했다.“쯧, 백 박사였어? 귀찮게 탕약은 무슨…… 난 청담동 가서 계집애들이랑 제대로 풀고 올 테니까 쓸데없는 짓 하지 마.”시우는 비틀거리며 현관 쪽으로 휘청휘청 사라졌다.남편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지자, 그늘 속에서 채경이 떨리는 가쁜 숨을 토해내며 걸어 나왔다.도현이 채경의 차가운 손을 감싸 쥐며 단호하게 속삭였다.“내일 밤입니다. 그자의 모든 추악한 죄악을 세상의 법정 앞에 발가벗길 시간입니다.”***다음 날 밤 11시, 서울 청담동 최고급 럭셔리 펜트하우스 오피스텔.밀폐된 방 안에는 짙은 시가 연기와 독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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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화 : 무정자증 진단서의 전격 공개

이튿날 오전 9시, 대한민국 모든 언론사와 포털 사이트 메인 뉴스는 태강그룹의 파멸을 알리는 호외 속보로 뒤덮였다.[속보: 태강그룹 후계자 강시우 상무, 상습 마약 투약 및 성매매 혐의 현행범 긴급 체포][단독: 청담동 펜트하우스 현장서 고농도 코카인 및 주사기 대량 압수…… 검찰 구속영장 청구]재벌 3세의 추악한 마약 스캔들에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고, 대한민국 코스피 증권 시장에서 태강그룹 관련주들은 개장과 동시에 가격제한폭까지 폭락하며 하한가로 곤두박질쳤다.***같은 시각, 서울 성북동 태강그룹 본채 안방.시어머니 민 여사는 TV 속 아들의 체포 뉴스를 보며 뒷목을 잡고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우리 귀한 시우가 감옥에 가다니! 그 며느리 년이 뒤에서 사악하게 꾸민 짓이야! 당장 그년 잡아 와!”백옥 지팡이를 짚은 민 여사는 사설 경호원들과 박 상궁을 이끌고 별채 연우재로 살기등등하게 쳐들어왔다.대나무 숲을 가르는 노파의 발소리가 살기를 뿜어냈다.쾅—!연우재 툇마루 문을 박차고 들어선 민 여사의 눈에 시퍼런 핏발이 서 있었다.마루 위에는 단아한 옥빛 실크 한복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신채경이 차를 우리며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그녀의 곁에는 혜민당 종손 백도현이 한 걸음 뒤에서 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네년이 감히 남편을 경찰에 팔아먹고도 살아서 찻잔을 기울여?!”민 여사가 노여움에 부들부들 떨며 지팡이를 내던지고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채경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치려던 그 순간.착—!허공을 가르던 시어머니의 앙상한 손목이 채경의 손아귀에 단단하게 붙잡혔다.단 1밀리미터의 미동도 없는 서늘하고 압도적인 완력.남자의 손아귀 못지않은 힘에 노부인의 어깨가 기우뚱 꺾였다.“이, 이게 대체 무슨 패륜적인 짓이야?! 감히 며느리 년이 시어미 손목을 잡아?!”“어머님, 지난 3년 동안 며느리를 노예나 종년처럼 부리시더니 아직도 사태 파악이 안 되십니까?”채경은 차가운 눈빛으로 시어머니의 손목을 비틀어 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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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화 : 태강물산 적대적 M&A 개시

이튿날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메디케어 글로벌 서울 총괄 본부.광활한 메인 트레이딩 룸 안에는 숨조차 편히 쉴 수 없을 만큼 팽팽하고 날카로운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수십 대의 블룸버그 터미널 모니터가 일제히 붉은색과 푸른색의 하한가 차트 곡선을 토해내고 있었다. 수십 명의 수석 금융 애널리스트들과 글로벌 헤지펀드 트레이더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90도로 깍듯하게 허리를 숙였다. 공간 전체에 울리는 긴박한 타이핑 소리와 전화벨 소리가 거대한 자본 전쟁의 서막을 알리고 있었다.“안녕하십니까, 회장님.”연우재에서 한복을 입고 진맥하던 모습과 달리, 이날 도현은 투자사 회의에 맞춘 짙은 수트 차림이었다.도현이 거대한 마호가니 가죽 체어에 다리를 꼬고 앉으며 묵직한 가죽 바인더를 열었다.“태강물산 담보 채권 및 전환사채(CB) 2,000억 원 장외 매집 현황은?”“현재 시장에 투매로 쏟아진 태강물산 유통 주식과 채권 물량의 90%를 사모펀드 명의로 전량 헐값에 쓸어 담았습니다. 강시우 상무의 마약 구속과 살인미수 고발 소식으로 주가가 3일 연속 하한가를 기록한 덕에 목표치의 두 배를 확보했습니다.”수석 트레이더의 보고가 끝나자 도현은 화면의 숫자를 다시 확인했다. 오랫동안 준비해 온 거래였지만, 흥분하기보다 남은 리스크부터 계산하는 얼굴이었다.“좋아. 신채경 측 명진그룹 우호 지분 18%를 즉시 우리 펀드와 결합 공시해라.”[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주식회사 태강물산 최대주주 변경]- 메디케어 글로벌 및 혜민당 사모펀드 지분: 25.5%- 신채경 대표이사 개인 및 우호 지분: 18.0%- 총 합산 지분율: 43.5% (최대주주 지위 및 경영권 우위 확보)***같은 시각, 서울 테헤란로 태강물산 본사 사옥 25층 이사회실. 로비 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강시우의 숙부들을 비롯한 시댁 방계 친족들이 피를 토하듯 쳐들어왔다.“어디서 천한 며느리 년과 근본 없는 한의사 놈이 짜고 우리 가문의 회사를 집어삼켜?!”서류를 넘기는 채경의 손은 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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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화 : 한옥 별채 침상에서의 깊어진 결속

성북동 한옥 별채 연우재의 깊은 밤.창호지 문 밖으로는 대나무 숲을 거칠게 흔드는 늦가을 밤바람 소리가 파도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밀폐된 방 안에는 은은한 고급 침향과 알싸한 약쑥 냄새가 촛불의 일렁임과 함께 농밀하게 깔려 있었다.대청마루 안쪽 온돌 침상 위에는 백옥 베개와 새하얀 명주 홑이불이 정갈하게 깔려 있었다. 창호문 틈새로 스며드는 서늘한 밤바람이 방 안의 촛불을 흔들며 몽환적이고 아찔한 그림자를 드리웠다.채경은 침상 머리맡에 조용히 앉아 떨리는 숨을 골랐다. 낮 동안 이사회실에서 시댁 친족들과 맞섰던 당당한 모습은 간데없고, 오직 한 남자의 거대한 체온 앞에서 온몸의 세포가 붉게 달아오른 여인의 모습만이 남아 있었다.심장이 쿵쾅거리며 하복부 단전 부근이 뜨겁게 조여들었다. 남자의 체향이 가까워질수록 온몸의 감각이 통제할 수 없을 만큼 예민하게 곤두섰다. 3년간 얼어붙어 있던 감각들이 남자의 발소리 하나에 기적처럼 깨어나고 있었다.사락.도현이 툇마루 문을 닫고 놋쇠 걸쇠를 철컥 걸어 잠갔다.남자가 두루마기를 벗어 옷걸이에 걸치자, 얇은 모시 저고리 너머로 탄탄하게 갈라진 흉근과 짙은 쇄골선이 매혹적으로 드러났다. 남자의 손에는 따뜻하게 달궈진 놋그릇과 최고급 쑥뜸기, 그리고 은침이 담긴 침통이 들려 있었다. 남자가 가까워질수록 따뜻한 약재 향과 체온이 채경의 감각을 채웠다.“사모님.”도현이 성큼 다가와 침상 아래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남자의 커다란 손이 채경의 떨리는 손목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촌관척 맥문에 닿는 남자의 뜨겁고 묵직한 손끝. 맥박이 미친 듯이 쿵쾅거리며 요동치고 있었다.“낮의 전쟁은 끝났습니다. 이제 제 앞에서는 그 어떤 가면도 쓰실 필요가 없습니다.”남자의 낮고 느린 목소리가 채경의 귓가에 닿았다. 도현의 기다란 손가락이 채경의 옥빛 한복 저고리 옷고름을 천천히 풀어내렸다. 비단옷이 스르륵 어깨 아래로 미끄러져 내리며, 새하얀 어깨선과 가녀린 쇄골이 촛불 아래 보석처럼 드러났다.“도현 씨…… 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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