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택으로 돌아가는 길, 서아는 밀려오는 졸음을 참으며 이헌을 돌아보았다.“오늘…… 정말 감사했어요. 이렇게 늦게까지 기다려주시고 직접 데리러 와주실 줄은 몰랐어요.”“다음부터는 늦어질 때 미리 연락해.”서아의 어깨가 움츠러들자 이헌은 그녀가 무릎 위에서 두 손을 꼭 맞잡는 것을 보고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혼내려는 게 아니야. 기사가 기다리고 있으니 일정을 알려달라는 뜻이지. 과제 때문에 늦는 건 아무 문제없어. 대학생이 공부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잖아.”서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손끝에 들어간 힘은 풀리지 않았다.창밖으로 가로등이 스쳐 지나가자 오래전 기억이 떠올랐다. 고등학생 때 학원 수업이 늦어져 이십 분 늦게 귀가했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가방을 내던지며 소리쳤던 날이었다. 그날 이후 서아는 귀가 시간이 가까워지면 공부도 중단한 채 버스 정류장까지 뛰어가곤 했다.“저는…… 늦으면 당연히 혼나는 줄 알았어요.”이헌은 신호등 앞에 차를 세우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서아야, 여기는 네가 늦었다고 벌을 받는 곳이 아니야. 넌 내 아내야. 누군가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네 일상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공부든 친구든 네가 하고 싶은 일은 해. 다만 늦어질 때는 연락해 줘. 내가 걱정하지 않게.”서아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사랑이 아닌 계약으로 시작된 결혼이었지만, 이헌은 그녀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자유까지 당연한 권리처럼 이야기하고 있었다.“네. 다음부터는 꼭 연락드릴게요.”그제야 서아의 손에서 힘이 풀렸다.이헌은 차를 출발시키다가 선재가 서아의 가방을 챙겨주던 모습을 떠올렸다. 점심을 거른 사실까지 알고 있던 남자였다. 정작 자신은 그녀가 저녁을 먹지 않았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평소에도 식사를 자주 거르나?”“아니요. 오늘은 작업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요.”“앞으로는 아무리 바빠도 챙겨 먹어. 학교에서 필요한 게 있으면 이야기하고.”“지금도 충분해요.”서아가 웃으며 대답하자 이헌은 더 권하지 않았다
Last Updated : 2026-10-09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