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아버지에게 쫓겨 비를 맞으며 거리를 헤매던 자신이었다. 그런데 하루도 지나지 않아 스무 살이나 많은 남자와 결혼을 약속하고 있었다.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의 대표와.이헌은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하면서도 대답을 서두르지 않았다.계약서에 서명한 이상 법적으로 준비할 일은 자신이 처리하면 됐다. 그러나 서아의 마음까지 계약서 한 장으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결혼의 무게를 실감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이곳에 머물러도 괜찮다는 확신이었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아 앞으로 걸어왔다.“서아야, 당장 달라지는 건 없어. 학교도 다니던 대로 다니고, 하고 싶은 공부도 계속해. 네가 원하지 않는 일은 시키지 않을 거야.”서아가 여전히 펜을 쥔 채 그를 올려다보자 이헌은 손을 내밀었다. 그녀가 무심코 펜을 건네자 그는 그것을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집만 바뀌는 거야. 네가 돌아가기 싫어하는 곳에서, 돌아오고 싶은 곳으로.”서아는 한동안 그를 바라봤다.돌아오고 싶은 곳.그런 집이 자신에게도 생길 수 있을까.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어젯밤 처음으로 문을 잠그지 않고 잠들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그녀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이헌은 더 묻지 않았다.지금 당장 자신을 믿으라고 요구할 생각은 없었다. 믿음은 말 몇 마디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고, 누군가의 호의를 의심하는 데 익숙한 서아에게는 더욱 그랬다.아침마다 같은 식탁에서 식사하고, 학교에 다녀오면 편히 쉴 수 있는 방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익히게 하면 됐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가능한 한 들어주고, 불편해하는 일은 서두르지 않을 생각이었다.다만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일만큼은 예외였다.서아는 아직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러니 적어도 그녀가 이 집에 머무는 동안은 자신이 먼저 위험을 살피고, 필요하다면 대신 결정을 내려 주는 편이 나았다.이헌은 그렇게
آخر تحديث : 2026-10-09 اقرأ المزي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