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문득 지난봄의 일이 떠올랐다.
왕의 총애를 받던 한 후궁이 회임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였다.
궁 안은 며칠 동안 축하 인사로 떠들썩했다. 왕실의 경사라며 비단과 귀한 약재가 쏟아졌고, 왕비 역시 사람을 보내 몸조심하라는 말을 전했다.
하지만 두 달도 지나지 않아 그 후궁은 아이를 잃었다.
궁에서는 몸이 약해 생긴 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아이를 잃기 전날 밤, 후궁이 먹은 탕약을 두고 의녀들이 서로 다른 말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처방을 내린 의관은 지방으로 떠났고, 약을 달였던 궁녀는 다른 전각으로 옮겨졌다.
그 뒤로 그 일을 입에 올리는 사람은 없었다.
서령 역시 진실을 알지 못했다.
다만 아이를 잃은 후궁이 한동안 침전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는 사실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서령은 처음으로 깨달았다.
궁에서 왕의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한 여인에게 가장 큰 기쁨이면서, 동시에 가장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마마, 전하께 아뢰어야 할 경사이옵니다.”
의녀의 말에 서령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열린 문 너머로 희원궁의 뜰이 보였다. 햇빛은 여느 날처럼 따뜻했고, 난간에 걸어 둔 국화 화분도 바람에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방 안의 공기는 조금 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아직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라.”
의녀가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마마, 왕실의 혈손이옵니다. 이 일을 감추셨다가……”
“그래서 더욱 신중해야 한다.”
서령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아직 초기라고 하지 않았느냐. 며칠 뒤 다시 맥을 살펴 확실해지면 그때 전하께 아뢸 것이다.”
“하지만 중궁전에도 보고해야 할 일이라……”
“확실하지 않은 일을 먼저 알렸다가 태기가 아니라면 어찌하겠느냐? 그때는 너 역시 곤란해질 것이다.”
의녀는 입술을 다물었다.
서령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네가 이곳에 다녀간 이유는 내가 며칠째 속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의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머리를 숙였다.
“분부대로 하겠사옵니다.”
그녀가 물러가자 난희는 방문을 닫고 돌아왔다.
“마마, 정말 전하께도 말씀드리지 않으시겠습니까?”
서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탁자 위에는 도겸이 남기고 간 향낭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작은 주머니를 집어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어젯밤만 해도 향이 다하면 다시 만들어 달라는 말이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약속처럼 느껴졌다.
도겸이 아이를 알게 된다면 분명 기뻐할 것이다.
그가 얼마나 다정한 사람인지, 서령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왕이라는 사실 또한 잊을 수 없었다.
왕이 아이를 기뻐하는 순간, 이 아이는 더 이상 서령 혼자만의 아이가 아니게 된다.
왕실의 혈손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사람의 관심과 기대, 그리고 경계의 대상이 될 터였다.
서령은 향낭을 내려놓고 아랫배를 감쌌다.
아직 작고 여린 생명이었다.
적어도 이 아이가 조금 더 단단하게 자리 잡을 때까지는 조용히 지키고 싶었다.
“난희야.”
“예, 마마.”
“오늘부터 내 음식과 탕약은 네가 직접 살펴라. 다른 사람이 가져오는 것은 내가 확인하기 전까지 들이지 말고.”
난희의 얼굴이 굳어졌다.
“마마께서 무엇을 염려하시는지 알겠습니다.”
서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뜰에서 낯선 발소리가 들려왔다.
평소 희원궁을 드나드는 궁녀들의 가벼운 걸음과는 달랐다. 여러 사람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걸어오는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곧 방문 앞에서 멈췄다.
잠시 뒤 궁녀의 목소리가 울렸다.
“마마, 중궁전에서 사람이 왔사옵니다.”
난희가 서령을 바라보았다.
서령은 손에 쥔 향낭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아직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하필 지금 중궁전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그녀는 흐트러진 옷깃을 바로잡고 조용히 말했다.
“들라 하여라.”
문이 열리기 직전, 서령의 손이 마지막으로 아랫배를 스쳤다.
그러나 곧이어 들려온 윤화경의 말이 그녀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전하, 이제는 처방의 잘잘못만 따질 때가 아니옵니다. 희원궁의 회임이 알려진다면 조정이 얼마나 크게 흔들리겠사옵니까.”서령은 숨을 멈췄다.도겸이 자신의 회임을 알고 있었다.그녀는 기둥에 손을 얹었다.차가운 나무의 감촉이 손바닥으로 스며들었다.“그 아이에 관한 일은 더 이상 밖으로 새어 나가서는 안 되오.”도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서령의 손끝이 굳었다.윤화경은 잠시 침묵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전하께서도 아시지 않사옵니까. 중궁에 아직 후사가 없는 상황에서 희원궁의 아이가 태어난다면 조정의 대신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옵니다.”도겸은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서령은 문 너머에서 그의 말을 기다렸다.자신의 아이를 지키겠다고, 누구도 해치지 못하게 하겠다고 말해 주기를 바랐다.그러나 도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전혀 달랐다.“알고 있소. 그러니 내가 직접 처리할 것이오.”서령은 눈을 크게 떴다.처리한다니.무엇을 처리한다는 것일까.윤화경이 다시 물었다.“그렇다면 희원궁의 일도 전하의 뜻대로 하겠사옵니다.”이번에도 도겸은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그 짧은 침묵이 서령에게는 견딜 수 없을 만큼 길게 느껴졌다.그녀는 기둥을 짚은 손에 힘을 주었다.회임 사실을 적었던 서찰.그의 이름으로 내려온 수상한 탕약.복통으로 쓰러졌을 때조차 의녀를 부르지 못하게 막았던 명령.그리고 지금, 아이를 직접 처리하겠다는 도겸의 말까지.서령은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의심을 애써 부정하려 했다.도겸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자신이 얼마나 그를 사랑하는지, 그가 자신을 얼마나 아껴 주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런데도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왕은 한 여인의 남편이기 전에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었다.조정이 흔들리고 왕권이 위태로워진다면 그가 끝까지 자신과 아이를 선택해 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서령은 아랫배를 감쌌다.아직 태동조차 느껴지지 않는 작은
잠시 뒤 편전에 들어온 제조는 희원궁에 약을 올렸으나 서령이 거절했다는 말부터 꺼냈다.“내가 약을 올리라고 명한 적이 있느냐?”도겸의 목소리가 낮아지자 제조는 고개를 깊이 숙였다.“전하께서 희원궁 마마의 몸을 보하도록 하라 분부하셨기에…….”“나는 진맥을 다시 하라고 하였다. 누가 내 명을 처방으로 바꾸었느냐?”제조는 입술을 달싹였으나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도겸은 탁자 위에 놓인 장계를 밀어 놓았다.“희원궁에 올린 처방전과 진료 기록을 모두 가져오라. 내가 직접 살펴보겠다.”제조가 물러난 뒤에도 도겸은 쉽게 자리에 앉지 못했다.그때 편전 밖에서 내관 하나가 조심스럽게 들어왔다.“전하, 중궁전에서 급히 올린 보고가 있사옵니다.”도겸은 내관이 내민 봉투를 받아 펼쳤다.그 안에는 최 의녀가 희원궁에서 진맥한 결과를 간략히 정리한 보고가 들어 있었다. 아직 정식으로 내의원 기록방에 올려지지 않은 내용이었다.도겸은 첫 줄을 읽다가 움직임을 멈췄다.‘희원궁 한씨, 태기 확인.’한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도겸은 보고서를 다시 읽었다.서령이 아이를 가졌다고 했다.자신의 아이였다.그는 무심코 손을 뻗어 보고서의 가장자리를 눌렀다. 가슴속에서 기쁨이 밀려왔지만 곧이어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그런데 왜 서령은 자신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며칠 전부터 그녀가 무엇인가를 말하려다 그만두던 모습이 떠올랐다.도겸은 보고서를 접었다.“이 사실을 누가 알고 있느냐?”내관은 중궁전에서 먼저 확인한 것으로 안다고 대답했다.도겸의 표정이 굳었다.서령의 회임을 정작 자신보다 중궁전이 먼저 알고 있었다.더구나 서령은 그사이 수상한 약을 받았고 복통까지 겪었다.도겸은 보고서를 소매 안에 넣었다.“희원궁의 회임에 관한 일은 당분간 밖으로 알리지 말라. 내의원에서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못하게 하라.”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중궁전으로 가겠다.”서령을 찾아가기 전에 누가 진맥 기록을 중궁전에 넘겼고 자신의 이름으로 약을 올리게 했는지부터
“최 의녀를 불러오너라. 그리고 차를 가져온 궁녀는 잠시 안채에 머물게 하여라. 함부로 추궁하지 말고, 다른 사람이 그 아이에게 말을 걸지 못하도록만 해.”난희는 곧장 문을 열고 나갔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온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다.“마마, 문밖에서 사람을 내보내지 못하게 합니다. 중궁전의 허가가 없으면 희원궁 사람은 나갈 수 없다고 하옵니다.”서령은 잠시 눈을 감았다.다시 통증이 밀려왔다.그녀는 침상 끝을 붙잡고 몸을 일으켰다.난희가 황급히 다가와 부축했다.“마마,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이대로 기다릴 수는 없어. 문까지 가자꾸나.”서령은 한 손으로 아랫배를 감싼 채 난희의 부축을 받아 정문으로 향했다.문 앞의 내관들은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도 선뜻 길을 열지 못했다.“내 몸이 좋지 않아 의녀를 불러야 한다. 문을 열어라.”내관이 중궁전의 명을 입에 올리자 서령은 문설주를 짚고 잠시 숨을 골랐다.“네가 명을 받았다면 누가 언제 내렸는지 말하거라.”내관이 머뭇거리자 서령은 난희에게 손짓했다.“이 사람의 이름과 지금 시각을 적어 두어라. 내가 치료를 요청했으나 출입을 막았다는 사실도 함께 남기고.”내관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마마, 소인은 그저 명을 따를 뿐이옵니다.”“알고 있다. 그러니 네게 책임을 묻기 전에 명령을 내린 사람부터 확인하려는 것이다.”서령은 차가운 문설주에 손을 얹은 채 내관을 바라보았다.“지금 문을 열지 않으면 중궁전에 직접 사람을 보내 치료를 요청하겠다. 그 과정도 모두 기록할 것이다.”내관은 옆 사람과 시선을 주고받았다.잠시 뒤 굳게 닫혔던 문이 열렸다.난희가 급히 최 의녀를 부르러 달려가는 동안 서령은 문설주에 기대어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바깥 공기가 차가웠다.그녀는 아랫배를 감싼 손에 힘을 주었다.아직 태동조차 느낄 수 없는 작은 아이였다.그런데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 벌써 이렇게 많은 문을 열어야 했다.최 의녀가 도착했을 때 서령은 침상에 기대어 있었다.이마
그녀는 곧장 중궁전에 올릴 글을 적었다. 출입을 제한하는 명을 따르겠으나, 병환이 있는 후궁의 진료와 약재 반입이 늦어지지 않도록 담당자를 정해 달라는 내용이었다.난희가 글을 읽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중궁전의 명에 이의를 제기하시려는 것이옵니까?”서령은 완성한 글을 접어 봉투에 넣었다.“명을 따르기 위해 필요한 절차를 묻는 것이다. 치료가 늦어진다면 그 이유도 남겨 두어야 하니까.”난희는 봉투를 받아 들었다.서령은 닫힌 창호를 바라보았다.희원궁의 문은 막혔다.그러나 누군가 문을 막았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몸과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길 수는 없었다.최 의녀가 다시 찾아온 것은 오후가 한참 지난 뒤였다.중궁전에 먼저 들렀다가 온 그녀는 얼굴이 유난히 창백했다.서령은 난희에게 차를 내오게 한 뒤 최 의녀의 표정을 살폈다. 최 의녀는 찻잔에 손도 대지 못한 채 무릎 위에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중궁전에서 회임 여부를 알아오라 하셨겠지.”서령의 말에 최 의녀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그러나 서령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소매를 걷어 손목을 내밀었다.최 의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손가락을 얹었다.방 안에는 숯이 타는 소리만 들렸다.한참 뒤 최 의녀가 손을 거두었다.“마마, 회임하신 것이 분명하옵니다.”난희는 두 손으로 입을 가렸다.서령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다시 확인받으니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감정이 밀려왔다.도겸의 아이였다.아직 아무런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는 작은 생명이 자신의 몸 안에서 자라고 있었다.서령은 아랫배에 손을 얹었다가 이내 최 의녀를 바라보았다.“오늘 진맥한 내용은 있는 그대로 기록해 두거라. 다만 기록을 누구에게 넘겼는지도 반드시 남겨 두었으면 한다.”최 의녀가 고개를 숙였다.“전하께는 내가 직접 말씀드릴 시간을 청하고 싶다. 그전까지 기록이 함부로 돌아다니지 않도록 해 다오.”최 의녀는 잠시 망설였지만 거짓으로 보고하라는 뜻이 아니라는 서령의 설명을 듣고 조심
난희가 서찰의 봉인이 훼손된 사실을 발견한 것은 그날 오전이었다.그녀는 최 의녀가 오기 전에 서찰을 가져오려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옷함 맨 아래에 넣어 둔 겨울 저고리를 들추자 접힌 봉투가 모습을 드러냈다.난희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봉투를 집어 들었다.그러나 손끝에 닿은 밀랍의 감촉이 이상했다.작은 꽃무늬가 반쯤 뭉개져 있었고, 봉투 가장자리에는 날카로운 물건으로 들어 올린 듯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난희는 서찰을 품에 안고 서령에게 달려갔다.“마마…….”서령은 난희의 표정을 보자마자 손을 내밀었다.봉투를 받아 든 그녀는 먼저 봉인을 살폈다. 밀랍은 분명 누군가의 손을 탔고, 종이를 접은 방향도 어젯밤과 조금 달라져 있었다.서령은 서찰을 펼쳐 자신이 쓴 글이 그대로 있는지 확인했다.회임 사실이 적힌 문장 위로 시선이 머물렀다.누군가 이 글을 읽었다.그 생각이 들자 등줄기를 따라 서늘한 기운이 흘렀다.“어젯밤 네 방에 누가 들어왔느냐?”난희는 울음을 참으며 기억을 더듬었다.저녁 이후에는 아무도 들이지 않았지만, 새벽에 세숫물을 가져온 궁녀가 있었다고 했다. 사흘 전부터 일을 맡게 된 소옥이라는 아이였다.서령은 서찰을 다시 접었다.“그 아이가 누구의 명으로 일을 맡게 되었는지 알아보거라. 하지만 지금 당장 불러 추궁하지는 말고.”난희가 입술을 깨물었다.“소인이 잘못하였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서찰을…….”서령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네가 잘못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 작정하고 손을 댔다면 옷함을 아무리 깊이 감추어도 찾아냈을 것이다.”서령은 잠시 생각한 뒤 서찰을 비단 주머니에 넣었다.“앞으로는 이 서찰을 찾지 못한 것으로 하자. 누가 묻더라도 잃어버렸다고만 하거라. 무엇이 적혀 있었는지는 절대 말하지 말고.”난희는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서찰을 읽은 사람이 있다면 우리가 얼마나 당황하는지 살피려 할 것이다. 그 사람이 다시 움직일 때까지 기다려 보자.”서령은 비단 주머니의 끈을 단단히 묶었다.회임 사실을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떠올리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도겸은 서령이 약재를 고르다 손끝을 다쳤을 때에도 직접 연고를 발라 주던 사람이었다. 향을 만들다 밤이 깊어지면 그만 쉬라고 타이르면서도, 정작 그녀가 일을 마칠 때까지 곁을 떠나지 않았다.왕이라는 자리를 내려놓을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희원궁에서만큼은 다정한 남자로 있어 주었다.서령은 그런 도겸을 사랑했다.그러나 왕의 사랑과 왕의 선택이 언제나 같을 수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지난봄 아이를 잃은 후궁도 처음에는 도겸의 기쁨을 받았다. 회임 소식이 알려진 뒤 궁 안에서는 원자가 태어날지도 모른다는 말이 돌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여인은 아이를 잃었다.당시 서령은 그저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이제는 달랐다.왕의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한 여인에게 기쁨이면서도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일이 될 수 있었다.“마마, 아직도 주무시지 않으셨습니까?”난희가 따뜻한 물을 가져왔다.서령은 먹물이 마른 서찰을 접어 봉투에 넣었다.“전하께 올릴 글을 쓰고 있었다.”난희의 얼굴에 조심스러운 미소가 번졌다.“드디어 회임 사실을 말씀드리시려는 것이옵니까?”서령은 봉투 위에 밀랍을 떨어뜨렸다. 작은 꽃무늬가 새겨진 인장을 눌렀다가 천천히 떼어 내자 반듯한 문양이 남았다.“내일 최 의녀에게 다시 확인받고 나면 전하께 올리려 한다. 그때까지 네가 보관해 다오.”난희는 두 손으로 서찰을 받아 품에 넣었다.서령은 그녀가 물러나기 전에 다시 불렀다.“그리고 내일부터 희원궁에 들어오는 약재와 음식은 모두 기록하자. 가져온 사람과 시각을 적고, 처방전이 있다면 반드시 남겨 두어라.”난희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조금 사라졌다.서령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이 작게 울렸다.“지난봄 아이를 잃은 후궁을 기억하느냐?”난희는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진료를 맡았던 의관과 시중들던 궁녀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아라. 다만 드러내 놓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