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나를 굶긴 남자가 나를 탐하기 시작했다: Chapter 31 - Chapter 34

34 Chapters

제031화. 보조라고 적어요

도희는 쿠션 끝을 만지작거렸다. 조금 전까지 울던 목소리가 또 떨릴까 봐 더 말하지 않았다. 태혁은 한동안 서 있다가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가 잠들 때까지 그곳에 있었지만, 도희는 그를 보느라 눈을 뜨고 있지는 않았다. *** 월요일 새벽 5시 정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펜트하우스는 무거운 침묵에 잠겨 있었다. 전날 밤 도희는 의사가 적어 준 주의사항 메모를 훈련 계획표 사이에 깊숙이 끼워 두었다. 무리한 무게는 절대 들지 않겠다고, 날이 밝으면 그의 면전에 대고 똑똑히 말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그 다짐을 미처 떠올리기도 전이었다. 쾅-! 육중한 침실 문이 무자비하게 열리며 새벽의 고요를 거칠게 찢었다. “으응…… 뭐야……?” 도희가 잠결에 침대 시트 속으로 파고들며 몸을 웅크린 순간, 온몸을 덮고 있던 푹신한 오리털 이불이 단숨에 뜯겨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서늘하게 벼려진 에어컨 냉기가 얇은 슬리브리스 차림의 맨살을 날카롭게 할퀴었다. 피부 위로 소름이 오소소 돋아나자 도희는 화들짝 놀라며 눈을 번쩍 떴다. 침대 머리맡, 어둠 속을 가르는 압도적인 인영. 강태혁이었다. 짙은 회색 트레이닝팬츠에 단단한 근육을 여과 없이 드러낸 타이즈 차림. 그는 가죽 리프팅 스트랩 끝을 제 억센 손목에 바짝 감아쥐며, 침대 위에 굳어 있는 도희를 서늘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기상 시간이다. 침대에서 기어 나와.”&nb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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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32화. 기록을 바꾸는 손

다시 무릎을 굽히는 순간 관절에서 맥없이 힘이 빠졌다. 태혁이 한 발 들이밀며 그녀의 팔을 단단히 낚아채 지탱해 주었다. 그의 흉곽에서 전해지는 거친 숨결이 도희의 뺨을 스쳤다. 도희는 더 버티지 않고 그대로 벤치에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더는 하지 않겠다고 고개를 완강하게 내저었다. 태혁은 말을 꺼내려다 끝내 시선을 돌려 기록판을 응시했다. 완료한 것은 고작 6회, 그중 3회는 그의 힘을 빌린 보조였다. 기록판 위의 잔인한 숫자 ‘300’은 그대로였다. 도희는 물병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그 오만한 숫자를 응시했다. 눈앞에 적혀 있다는 이유만으로 제 몸을 망가뜨려 가며 해내야 할 일은 결코 아니었다. 태혁이 다가와 도희를 일으켜 세우려 했다. 도희는 벤치 가죽 시트를 손톱이 하얗게 질리도록 쥐어짜며 버텼다. “조금만 앉아 있을게요.” 태혁은 곧바로 물러서지 않았다. 도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을 때, 태혁의 시선은 꺾인 무릎이 아닌 그녀의 붉어진 얼굴에 머물러 있었다. 지시 한마디면 결국 일어설 사람을 기다리는 듯한, 오만하고도 깊은 눈빛이었다. 도희는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보틀을 들어 물을 천천히 넘겼다. 목울대가 조용히 울렁거렸다. 침묵의 줄다리기 끝에, 태혁이 먼저 등을 돌려 기록판 쪽으로 돌아섰다. 계획된 숫자 아래, 실제 완료 횟수를 적어야 할 공란은 비어 있었다. 도희의 눈길이 그의 손가락 사이에 들린 유성 마커로 향했다. “아까 표시해달라고 했잖아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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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33화. 채권자 윤도희

단맛도 짠맛도 거세된 텁텁한 단백질 덩어리가 여린 혀끝에 내려앉았다. 간이 전무해 헛구역질이 일렁이려는 찰나, 태혁의 커다란 손이 턱 밑을 파고들었다. 그의 단단한 엄지와 검지가 도희의 턱관절을 지그시 감싸 쥐며 저작 속도를 통제했다. “30번 씹어라. 천천히.”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박자를 세듯 귓전을 울렸다. 도희는 그 리듬에 얽매인 채 턱을 움직여 살점을 부수었다. 씹을수록 생선 본연의 미세한 단맛이 침과 뒤섞여 은근하게 배어 나왔고, 거칠던 살점은 부드러워져 식도를 타고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갔다. 연이어 태혁은 찐 밤고구마를 한 입 크기로 쪼개어 도희의 입안 깊숙이 밀어 넣었다. 오랜 결핍 끝에 닿은 고구마의 달착지근한 온기. 혀끝을 감도는 단맛에 도희의 귓가와 뺨 위로 옅은 열감이 번져 올랐다. 식사가 절반쯤 비워졌을 무렵, 태혁이 슬랙스 주머니에서 두툼한 서류 봉투를 꺼내 식탁 위에 툭 얹었다. “읽어봐라.” 의아한 낯으로 봉투를 연 도희의 시선에 가장 먼저 닿은 것은 상단에 찍힌 선명한 법원의 붉은색 관인이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제51부 결정][사건: 접근금지 등 가처분][채권자: 윤도희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태강)][채무자: 이옥순, 윤민호] * 채무자들은 채권자의 주거지, 직장 및 펜트하우스 반경 100미터 이내로의 접근을 금한다.* 채권자의 의사에 반하여 전화, 문자, SNS, 제3자를 통한 일체의 연락을 금한다.* 위반 시 1회당 금 5,000,000원을 채권자에게 지급하라. 그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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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34화. 69의 벽

감금 열흘째, 수요일 오전 일곱 시. 펜트하우스 거실 중앙, 서늘한 대리석 플랫폼 위에 놓인 최고급 체성분 분석기 위로 푸른빛의 디지털 숫자가 어지럽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바싹 마른침이 메마른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도희는 폐부 깊숙이 숨을 가두었다. 지난 월요일, 돌연 훈련이 중단되며 진료 기록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후 운동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식판을 마주할 때마다 목덜미를 짓누른 건 다음 계측에 대한 지독한 강박이었다. 몸 상태를 살피던 의료진의 미온한 목소리보다 '70'이라는 잔인한 앞자리가 먼저 머릿속을 헤집었다. 차가운 금속 발판을 디딘 지금 이 순간조차도 그랬다. 삐비빅-! 신경질적인 전자음과 함께, 최종 계측 숫자가 화면 위로 굳게 고정되었다. [체중: 69.95kg][체지방률: 33.8% (기기 추정값·초기 비교 보류)][골격근량: 22.3kg (기기 추정값·재측정 필요)] “……어?” 순간 시야가 하얗게 탈색되었다. 헛것을 보았나 싶어 도희는 거칠게 눈가를 비빈 뒤 다시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곱씹어도 가장 앞자리의 숫자는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체중계 상판을 파고들 듯 발가락에 억센 힘을 주었다. 사소한 미동 하나에도 저 숫자가 야멸차게 70으로 튕겨 나갈까 봐, 얕은 숨조차 마음 놓고 뱉지 못했다. 선명하게 박힌 숫자 ‘69’. 기어이 앞자리가 무너져 내렸다. 화면 너머에서 폭식으로 일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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