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혁은 대답 대신 냉장고의 전자 도어록을 해제했다. 삐빅거리는 경쾌한 비프음과 함께 문이 열리고, 정갈하게 손질된 식재료들이 하나둘 아일랜드 식탁 위로 늘어섰다. 미리 준비된 떡과 어묵, 그리고 무쇠 냄비를 바라보는 도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저 기분 내키는 대로 던져주는 보상이 아니었다. 십 년 넘게 극단적인 식단을 강박처럼 지켜온 남자가, 제 몫도 아닌 한 끼를 위해 주방에 서서 직접 칼을 쥐고 있다는 사실이 낯설면서도 기묘한 열기를 자아냈다.당일 새벽 전통 방앗간에서 갓 뽑아내 차진 윤기가 흐르는 100% 현미 쌀떡, 지리산 청정 지역에서 전통 방식으로 발효시킨 태양초 찹쌀 고추장, 설탕 대신 맑게 고아낸 천연 쌀조청, 통영산 디포리와 완도산 다시마를 넣고 네 시간 동안 은근하게 우려낸 맑고 깊은 황금빛 육수, 그리고 연육 함량 90% 이상의 도톰한 프리미엄 수제 부산 어묵.자극적인 화학조미료로 범벅된 시중 배달 음식과는 차원이 다른, 철저하게 계산되고 완벽하게 통제된 최상급의 재료들이었다.“이게…… 떡볶이 재료라고요?”“네 몫은 따로 계량했다. 어묵과 달걀까지 포함해서.”도희는 손가락 끝으로 쌀조청 병을 데굴 굴려 보았다.“설탕을 따로 안 넣었다고 안 단 건 아니네요.”태혁은 도희의 손끝이 닿은 병을 말없이 그러쥐더니, 정밀 전자저울 옆으로 밀어놓았다.단맛을 모르는 남자가 아니었다. 그 황홀한 미각의 쾌락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도희에게 내어줄 한 줌의 단맛마저 치밀하게 재고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이 어쩐지 가슴 밑바닥을 간질이며 얄밉도록 아찔하게 다가왔다.***정오를 앞두고, 태혁이 묵직한 무쇠 주물 냄비를 인덕션 위에 얹으며 스위치를 켰다.도마 위에 포개진 도톰한 어묵 위로 날 선 식도가 서늘하게 번뜩였다. 칼날이 닿기 직전, 도희가 반사적으로 손을 번쩍 들었다.“두 장이라고 했죠? 먼저 보여줘요. 잘게 썰고 나면 몇 조각이 제 몫인지 모르겠어요.”“무게는 같다.”“그건 대표님만 알잖아요.”도마 위로 칼날이 툭 내려앉았다
Last Updated : 2026-11-01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