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스로이스가 호텔 정문 앞에 미끄러지듯 멈춰 섰다.
도어맨이 달려가 차 문을 열려 하자 천우진이 버럭 소리쳤다.
“비켜, 길 막지 말고 뒤로 가 있어.”
도어맨은 움찔하며 몇 걸음 물러섰다.
천우진은 입가에 웃음을 띠고 허리를 깊숙이 굽힌 채 차 문을 열었다.
“도련님, 내리시... 어?”
웃음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차 안에 앉아 있던 건 소민현이 아니라 화려하게 치장한 낯선 중년 부인이었다. 진한 화장에 보석이 번쩍였고, 나이는 마흔 중반쯤 돼 보였다.
중년 부인은 핸드백에서 빨간 지폐 한 장을 꺼내 천우진의 코앞에 내밀었다.
“수고했어.”
천우진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파래졌다. 중년 부인이 그를 호텔 직원으로 착각한 모양이었기 때문이다.
“모자라?”
부인은 그가 반응이 없자 다시 지갑을 뒤졌다. 이번에는 두툼한 지폐 뭉치를 꺼내 그의 얼굴 쪽으로 던졌다.
“이 정도면 되겠지?”
‘참나, 웃기네.’
소민현의 차에서 내린 손님이 아니었으면 천우진은 주먹부터 날렸을 것이다. 참고 또 참으며 막 입을 떼려는데, 부인이 그를 힘껏 밀쳤다.
“좋은 개는 길 안 막아. 비켜!”
‘이게 어디서 개 취급이야!’
천우진의 인내심은 바닥을 쳤다. 그가 막 폭발하려는데, 등 뒤에서 가늘고 서늘한 음성이 울렸다.
“천우진 씨.”
뒤돌아보니 회색 도포를 입은 노인이 서 있었다. 소민현이 데리고 다니는 하인이었다.
천우진은 잽싸게 달려가 허리를 숙였다.
“어르신, 왜 혼자 오셨어요? 소민현 도련님은요?”
“우리 도련님은 청혼 선물 최종 점검 중이십니다. 곧 오실 거예요.”
노인의 얼굴에는 거만한 기색이 어린 채였다.
“안쪽 준비는 다 됐겠죠?”
“네, 도련님 말씀대로 전부 마쳤어요. 성훈이 형이랑 제가 세세하게 손봤으니 만족하실 거예요.”
“물론 그래야죠.”
천우진이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중년 부인을 가리켰다.
“어르신, 근데 저분은 누구세요? 저분은... 왜 도련님 차에 타고 계셨던 건가요?”
“해정 전씨 가문의 전희원이에요.”
‘전씨 가문?’
천우진은 해정 대가들에는 밝지 않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