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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화

Penulis: 레몬완자
온종일 송진초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제소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안채 안을 이리저리 서성이며 초조함을 달랬다. 그러다 해가 뉘엿해질 무렵, 제소가 돌아왔다.

“변방의 지도에 관한 사건은 오늘 새벽에 갑자기 퍼진 것으로 육 대감께서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닌지라 잡아들인 자들을 국문했습니다. 그중 몇 놈이 부인께서 점포를 급히 처분하라 지시했다고 자백했고요.”

송진초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들이 자백했다고요?”

“그렇습니다.”

송진초는 품 안에 간직했던 왕세자의 옥패를 떠올렸다.

제소는 말을 이었다.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오니 조만간 부인께 죄를 물을 듯합니다.”

얼마 뒤, 육 대감은 조씨 부인을 불러들여 종일 추궁하였고 조씨는 모함을 받은 것이라며 흑심을 품은 자의 꾐에 넘어가 가산을 헐값에 팔아넘겼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변방 지도에 관해 일절 모른다며 부인했다.

조씨를 다시 마주한 것은 한밤중이었다.

“진초야, 네 아비가 변방 지도에 관해 네게 무슨 말을 남긴 적이 없느냐?”

송진초는 고개를 저었다.

조씨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송진초를 바라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송진초의 눈빛이었다.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조씨는 결국 자리를 떴다.

며칠이 지나자, 의주에선 조씨 부인이 가문의 명에 따라 송가의 가산을 헐값에 팔아넘겼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소문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조씨 부인은 견디지 못하고 송진초를 불러 솔직히 털어놓았다.

“진초야, 이번 일은 조가와는 무관하다. 그때 팔아넘긴 백만 은냥은 내 도로 너에게 주겠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내가 큰 실수를 한 것 같구나.”

“어머니, 무슨 뜻인가요?”

내심 기뻤지만 그녀는 티를 내지 않고 어리둥절한 얼굴로 태연하게 물었다.

“혹, 송가와 연을 끊으시려는 겁니까?”

조씨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럴 리가 있겠느냐. 진초야, 이 재산은 본래 네 것이다. 내 어찌 그 돈을 차지하겠느냐.”

그녀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 조씨는 결국 백만 은냥을 찾아 그녀에게 돌려주었다.

조씨 부인은 서운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송진초에게 그 돈을 건넸다.

“어머니, 안심하세요. 제가 대감께 어머니와 조씨 가문은 탐욕을 품은 적 없다고 해명할 게요.”

조씨는 은냥을 껴안은 송진초의 모습을 보며 이를 악물고 고개를 돌렸다

“어서 가서 해명하거라. 험한 소문으로 조가의 명예가 더럽혀지기 전에.”

“네.”

송진초는 지체 없이 관아로 향했다.

육 대감은 그녀가 은냥을 돌려받았다는 사실을 듣고 관련 이들의 서명 증서와 자백서를 내주었다.

“아씨께서 소신까지 속일 줄은 몰랐습니다.”

육 대감이 못마땅한 듯 말했다.

그녀는 눈을 껌뻑이며 미소를 지었다.

“이번 일을 교훈 삼아 한성에 갔을 때 조씨가 송가의 가산에 관여하지 못할 명분이 필요했을 테지요.

육 대감은 뒤늦게 알아차렸다. 이번 일은 정식으로 상부에 보고될 것이고 기록에 남을 것이다. 조씨가 한성으로 돌아간 뒤에도 이 사안에 관해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육 대감께 인사를 올렸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온데 변방 지도에 관한 일은…”

육 대감이 미간을 찌푸렸다.

“변방 지도는 운목재에 있던 서화 속에 섞여 있었지만, 3년 전에 이미 발각되어 저지되었고 실제로 피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께서 누군가에게 누명을 쓴 게로구나.’

육 대감은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 일은 소신이 진실을 밝혀내겠습니다. 아씨는 이 일에서 손을 떼고 자중하시지요.”

관아에서 나온 그녀는 육 대감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집으로 향했다.

“아씨, 조심하십시오!”

정신을 딴 곳에 둔 채 걷고 있는 그녀의 팔을 방 유모가 황급히 잡아당겼다.

마차 한 대가 질풍같이 지나갔고 눈 섞인 진창물이 그녀의 옷깃을 더럽혔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마차의 문양을 살폈다.

마차에는 조씨 가문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조가에서 사람을 보냈구나.”

“아씨.”

“이만 돌아가자꾸나.”

버선과 신발이 다 젖어버린 탓에 발끝이 얼어붙는 듯했다. 그녀는 황급히 마차에 올랐다.

과연 조가의 마차는 송가의 종택 앞에 세워져 있었다.

방으로 들어간 그녀는 새 신으로 갈아신었고 곧이어 몸종이 다가왔다.

“아씨, 부인께서 뵙자 하십니다.”

“곧 가겠다고 전해라.”

손난로를 꼭 껴안은 그녀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조씨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며 앉아 있었다.

“진초야, 네 외조모께서 며칠 전에 넘어지셨는데 병환이 위중하시다는구나. 당장 떠날 채비를 하거라.”

“이리 갑작스레요?”

그녀가 의아한 듯 물었다.

“눈이 와서 길이 늦어질 것 같구나. 서둘러 짐을 꾸리거라.”

다급해 보이는 조씨의 얼굴을 보아 거짓말 같지 않았다.

그녀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서둘러 짐을 챙기는 송진초를 바라보는 조씨의 눈빛에 살기가 스쳐 지나갔다.

떠나기 전에 송진초는 제소를 불러 당부했다.

“제가 떠나면 송가의 가산을 팔아넘기는 것처럼 꾸미고 아재도 피신해 있으세요.”

그녀는 조씨가 자신이 없는 틈을 타 그녀의 충신들을 정리할까 두려웠다.

제소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쇤네, 아씨 혼자 한성에 보내는 것이 마음이 놓이질 않습니다.”

“아재가 의주에 남아 있기에 안심하고 떠날 수 있어요. 한성은 언젠간 정면으로 부딪쳐야 할 곳입니다.”

그녀는 취주의 입을 빌려 조가에 송 대감이 남긴 재산 중에 광산이 몇 개 있는 사실을 알렸다. 조가는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을 것이고 광산을 손에 넣기 전까진, 그녀를 섣불리 해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결심했다.

이번 기회에 조가는 물론, 기 국공부까지 지옥으로 끌고 들어가겠다고.

아무도 도망치지 못할 것이다.

점심이 되어서야, 그들 일행은 한성으로 떠났다.

한동안 모습을 감추었던 송연이도 얼굴을 드러내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송진초의 곁에서 시중을 들었다.

“다시는 이런 소란을 만들지 않을 테니, 그간 함께 자랐던 정을 생각해 이번 일은 부디 용서해 줘.”

송연이는 눈을 깜빡이며 그녀를 쳐다보았고 송진초가 대꾸하기도 전에 조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곤장 스무 대로 그 일은 끝났다. 추후에 그 일에 관해선 아무도 언급하지 말아라. 우리 진초도 그리 속 좁은 사람은 아니니 걱정 말거라.”

송진초가 살포시 웃으며 말했다.

“전 이미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습니다.”

마차는 쉼 없이 열흘을 달려 한성에 당도했다.

소식을 전해 들은 조가에는 일찍부터 문 앞에 많은 사람들이 나와 맞이하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몸종 하나가 허리를 굽혀 조씨에게 인사를 올렸다.

“마님 돌아오셨군요. 노부인께서 마님을 얼마나 그리워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송연이를 쳐다보았다.

“아씨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얼굴도 많이 야위셨네요.”

송연이는 자기도 모르게 송진초의 안색을 살폈다.

송연이가 뭐라 설명하려 하자 조씨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뭘 멍하니 있느냐? 어서 들어가거라.”

연신 고개를 끄덕인 송연이는 송진초를 바라보며 해명했다.

“마님께서 정신이 혼미하셔서 사람을 착각한 것 같구나. 내가 알아서 설명할 테니 조금만 더 참아줘.”

송진초가 뭐라 말하기 전에 몸종이 먼저 입을 열었다.

“두 분께서 노부인을 뵈러 가시니 외인은 이만 쇤네를 따라 손님방으로 가시지요.”

대놓고 그녀를 외인이라 칭하는 몸종이다.

방 유모가 한마디 하려고 하자, 송진초가 막아섰다.

“유모.”

한성에서 그녀의 신분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송가의 가산이 그녀의 손에 있다는 것이다.

송연이는 그저 명목상 송가 아씨일 뿐이다.

조가에서 그녀를 인정하지 않는다 해서 그녀의 신분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송진초는 말없이 몸종을 따라 대청으로 향했다.

바로 그때, 누군가의 형체가 보였다.

“도련님, 아씨께서 마님과 함께 노부인을 뵈러 가셨습니다.”

고개를 돌려 남자를 마주한 그녀는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자기도 모르게 두 손을 꽉 쥐었다.

한때, 그녀의 정혼자였던 기여안이었다.

송진초를 발견한 기여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놀라움과 혐오스러움이 공존했다.

“저 여인이 왜 여기에 있는 것이냐?”

이번 생에는 그를 마주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기여안은 그녀를 알고 있는 눈치였다.

게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전생과 똑 닮아있었다.

‘설마 저 자도 나처럼 환생한 것인가?’

“마님과 아씨께서 데려오신 분입니다. 쇤네도 모릅니다.”

몸종의 말에 기여안이 눈썹을 높이 치켜올렸다.

“연이 낭자는 마음이 너무 여려서 탈이구나. 아무나 집에 들이다니, 보고만 있어도 역겹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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