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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이혼 합의서

Author: 연의 수정
그 말을 듣는 순간 민여진은 화상을 입은 손보다도 마음이 더 아파왔다.

울먹이는 문채연은 다정하게 달래주면서 다친 민여진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 게 박진성이었다.

민여진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박진성은 우는 여자를 싫어하는 게 아니란 걸.

그는 그저 우는 민여진을 유독 싫어할 뿐이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억울함에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난 민여진이 부어오른 손을 박진성에 들어 보였지만 그는 오히려 화를 내며 그녀의 상처를 매정하게 쳐냈다.

“그 손 안 치워?!”

민여진은 숨을 들이마시며 정신을 잃을 것만 같은 고통을 참아냈지만 박진성은 그걸 연기라고만 생각하며 치를 떨어댔다.

“어디서 변명이야, 너한테 물이 튄 걸 다행으로 알아야지. 만약 다친 게 채연이였다면 너도 무사하지 못했을 거야. 당장 나가!”

박진성의 말에 걸음을 옮기던 민여진은 그만 문채연의 득의양양한 표정을 봐버렸다.

“진성 씨, 그만 해요. 여진 씨도 진성 씨 사랑해서 그러는 거잖아요. 2년 동안 부부로 지내서 쌓인 정도 있을 텐데 나 때문에 싸우지 마요.”

“정?”

박진성은 코웃음을 치며 그녀의 말에 답했다.

“나랑 쟤 사이에 정 따위는 없어. 네가 깨어났으니까 쟨 이제 가야지. 본가에서 너랑 결혼하는 걸 반대하지만 않았어도 내가 쟤랑 결혼할 일은 없었어. 쟤가 박씨 집안 사모님 행세를 할 일은 더더욱 없었겠지.”

닫혀버린 문 때문에 뒤에 이어지는 말은 듣지 못했지만 이미 들은 말로도 민여진은 가슴이 아파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눈앞이 새까매질 정도로 어지러워 바닥에 쭈그려 앉은 채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겨우겨우 1층으로 내려온 그녀가 소파에 앉아있은 지 한참 지나자 마침내 박진성이 아래로 내려왔다.

“사인해.”

그런데 그와 함께 제 앞에 놓은 이혼 합의서에 민여진은 고개를 들어 조심스레 물었다.

“오늘은... 이혼 안 한다고 했잖아요.”

“안 하면 네가 계속 채연이 해치는 거 보고만 있을까? 빨리 사인하고 나가. 그래야 내가 채연이랑 다시 시작하지.”

짜증 가득한 투로 말하는 박진성에 민여진은 아직도 아파서 떨리는 손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도대체 누가 누굴 해친다는 건지.

하지만 이제 그 모든 건 중요하지 않았기에 민여진은 이혼 합의서를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말한 건 지키는 박진성이었기에 집 한 채와 현금 20억이 위자료로 되어있었는데 평생 양성으로 돌아오지 않는 게 그가 건 유일한 조건이었다.

“사인할게요. 그런데 나도 조건이 있어요.”

그걸 다 보고 난 민여진은 결의에 찬 표정으로 제 배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20억도, 집도 다 필요 없어요. 대신 이 아이만 무사히 낳게 해줘요. 그것만 약속하면 지금 바로 떠날게요.”

“넌 어떻게 이 와중에도 그렇게 헛된 꿈만 꿔?”

저를 혐오스럽다는 듯 바라보는 박진성에 민여진은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았다.

헛된 꿈을 꾸지 않으니까 모든 걸 마다하고 아이만 지키겠다는 건데 박진성은 죽었다 깨어나도 제 마음은 몰라줄 것 같았다.

“마음대로 생각해요.”

“합의서에 그 조항 추가해주면 바로 사인하고 20년 동안은 안 돌아올게요. 만약 당신이 내가 아이 낳는 걸 끝까지 방해한다면 나는 사인도 안 하고 본가에 가서 내가 문채연이 아니라는 사실도 다 폭로해버릴 거예요.”

민여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박진성은 그녀의 목을 조르며 분노를 표출했다.

“네가 감히 날 협박해?”

마지막까지 매정한 그게 가슴이 아려왔던 민여진은 눈을 감은 채 대꾸했다.

“그 정도로 내가 아이를 지키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아두라고요.”

“그래.”

박진성은 오물 덩어리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민여진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래, 네 아이는 건드리지 않을게. 단 네가 약속 안 지키면 나도 너랑 네 엄마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사인을 마친 박진성은 이혼 합의서를 민여진의 얼굴을 향해 던져버렸다.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줍다가 손이 아파온 민여진이 잠시 멈칫하자 박진성은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물었다.

“왜, 또 다른 핑계 대면서 사인 안 하려고?”

“아니에요.”

고개를 떨군 민여진은 강한 통증도 참아내며 빠르게 사인을 마쳤다.

사인하느라 올라온 손등에 가득 난 물집에 박진성은 아까 그녀가 했던 말이 진짜라는 걸 알아챘지만 다 본인이 자초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매정하게 민여진을 내쳤다.

“오늘 당장 짐 싸서 나가. 양 비서한테 비행기 타는 것까지 다 보라고 할 테니까 허튼수작 부리지 마.”

민여진은 고개를 끄덕이자 박진성은 바로 그걸 양경호에게 건네며 이혼절차를 밟으라고 지시했다.

이혼이 아주 절박해 보이는 그의 모습에 자신의 처지자 우스워 헛웃음을 흘리던 민여진은 방으로 올라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어차피 올 때도 박진성에 대한 마음 하나만을 품고 온 거라 짐이라고 해봤자 그녀가 가져갈 수 있는 물건은 얼마 없었다.

갈아입을 옷 두어 벌만 담은 캐리어를 끌고 문을 열던 그녀는 그제야 핸드폰을 수혈할 때 두고 왔다는 사실을 알아채고는 3층으로 향했다.

그런데 문을 열기도 전에 문채연의 방에서 그녀의 앙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도 진성 씨가 걔를 어떻게 찾았는지는 모르지. 그래도 2년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내가 6년 전에 성형한 사실도 들키는 거 아니야!”

문채연이 성형을 했었다는 말에 문을 열려던 민여진은 깜짝 놀라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그년부터 빨리 보내야지. 만약 진성 씨가 6년 전 자기를 불구덩이에서 구해준 게 내가 아니라 민여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난 끝장이야.”

“내 인생은 너무 힘들었어. 그래서 그때 진성 씨가 민여진의 손을 잡고 그 여자를 아내로 들이겠다고 할 때 나는 바로 성형을 결심했지. 내 얼굴까지 고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민여진한테 내 인생을 내어줄 순 없지. 돈을 받고 싶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민여진 치워. 그 여자 진성 씨 아이도 임신했으니까 이대로 양성을 떠나게 해선 안 돼.”

하나도 빠짐없이 알게 된 진실에 민여진은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지금껏 박진성이 6년 전 은혜를 잊어버리고 문채연에게 빠져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문채연이 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엄청 난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그녀는 지금에서야 알게 된 것이다.

엄청난 사실에 머리가 하얘진 민여진은 뒷걸음질을 치다가 실수로 난간에 부딪혀버렸다.

“누구야!”

그 인기척에 문을 열며 뛰쳐나오던 문채연은 문 앞에 서 있는 민여진을 보고 당황하더니 바로 입을 열었다.

“여진 씨, 방금 들은 거 그거 다 가짜에요, 그냥 친구랑 장난친 거니까 믿을 필요 없어요!”

하지만 민여진은 그녀의 말이 사실임을 알고 있었기에 문채연을 노려보며 떨리는 입술로 말했다.

“당신은 진성 씨를 진심으로 사랑한 게 아니라 그냥 돈이 탐나서 내 얼굴로 성형까지 하면서 진성 씨 옆에 붙어있은 거였어요? 6년 전 화재에서 진성 씨를 구해준 게 당신이라는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민여진은 그것도 모르고 자신이 대용품일 뿐이라고만 생각하면 2년 동안이나 갖은 수모를 참아왔던 것이다.

화를 내는 민여진에 당황한 문채연은 다급히 해명하기 시작했다.

“잘못들은 거리니까요. 나랑 진성 씨는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이에요.”

“당신이 직접 진성 씨한테 사실 고백해요.”

온몸의 피가 달아오는 것 같은 느낌에 민여진은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는데 그에 조급해진 문채연도 그녀를 따라 내려오다가 1층에 거의 도착할 때쯤에 힘을 주어 민여진을 밀어버렸다.

“아!”

중심을 잃은 민여진은 배를 감싸 안으며 아래로 굴러떨어지다가 바닥에 머리를 세게 박아버렸다.

눈앞이 새까매져 몸도 움직일 수 없었던 그녀는 눈을 부릅뜬 문채연이 우유 적적하게 걸어 내려오는 걸 가만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게 그냥 빈민 구역에 가만히 있을 것이지 왜 여기까지 와서 진성 씨 관심을 받으려고 애를 써요? 당신이 사실을 알린다고 해도 진성 씨가 믿을 것 같아요? 진성 씨 눈에 당신은 그냥 헛된 꿈만 꾸는 멍청한 여자일 뿐인데?”

그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정신을 잃은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바닥에 흐른 피가 이미 말라버린 뒤였다.

텅 빈 거실을 마주하고 있던 그녀는 몸에 힘도 없고 구역질도 났지만 아무 사실도 모른 채 문채연에게 속고 있는 박진성이 안타까워 힘을 내어 벽을 짚고 섰다.

박진성이 사랑하는 여자는 바로 자신이라고, 그냥 문채연한테 속은 거라고 알려줘야 했다.

그때 그 약속을 잊은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그저 속은 것 뿐이란 걸 안 민여진은 이 상황을 바꿀 수도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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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492화 임재윤을 믿어요

    진시우가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죄송해요. 갑자기 일이 좀 생겨서요.”의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식사도 제때 안 했던 것 같네요? 검사 결과 위장에도 문제가 심각합니다. 우린 이미 염증 난 상처를 다 치료했고요. 지금은 수액을 맞고 있으니 더 이상 이 사람을 이렇게 막 굴리게 두지 마세요. 저 몸 상태로는 무리하면 버틸 수 있을지 장담 못 해요.”“네, 알겠습니다...”의사가 다시 병실로 들어간 뒤, 진시우는 주머니에 있는 담배를 더듬다가 이내 자제하며 차가운 벽에 기대어 말했다.“임재윤은 요 며칠 전부 도시락 먹었어요. 그것도 다 식어서 차가운 도시락이요.”민여진의 동공이 움찔거렸다.“밥을 먹으려 하면 민여진 씨 소식이 들려와서 또 민여진 씨를 찾으러 뛰어다니고 정신 차리고 보면 식사 시간은 다 지나간 거죠. 그래서 그냥 찬 도시락을 꾸역꾸역 먹은 거예요. 혹시라도 민여진 씨를 다시 보기 전에 자기가 먼저 쓰러질까 봐 억지로 밥을 챙겨 먹은 거예요. 염증도 분명 오늘 하루만에 생긴 게 아니에요. 어쩌면 어제, 그저께, 아니면 민여진 씨가 실종된 그날부터였을지도 몰라요. 제가 임재윤의 형제인데도 임재윤은 그런 심한 통증을 참으면서 저한텐 한마디도 안 했어요. 제가 병원에 억지로 데려갈까 봐 참았던 거죠. 임재윤은 민여진 씨를 찾지 못하게 되는 게 가장 두려웠나 봐요.”진시우의 말은 지친 듯 절절했다.“민여진 씨, 임재윤은 민여진 씨를 위해서 목숨까지 내던진 사람이에요. 이렇게까지 해왔는데도 민여진 씨는 아직도 임재윤이 박진성이라고 믿고 싶은 거예요?”민여진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고 눈가가 어느새 촉촉이 젖었다.민여진도 사실 산에서 도망쳐 나와 숨어 지낸 그 시간 동안 얼마나 지독하게 괴로웠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진시우 씨, 저는 박진성을 죽도록 증오해요.”“알아요.”민여진은 크게 숨을 들이쉬며 말을 이었다.“그 사람은 제 모든 걸 망가뜨렸어요. 그러니 저는 평생 박진성을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만약 임재윤이 진짜 박진성이

  •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제491화 가만히 둘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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