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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오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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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ls by 바다오렌지

기다려, 늑대

기다려, 늑대

"너 나만 보면 꼬리 흔들잖아?" ⁠ 그 말에 설태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하이담 없이는 조금 이상해진다는 걸. ⁠ 처음 만났을 때는 최악이었다. 나를 애인이라 착각한 남자는, 내 눈앞에서 늑대로 변했고. ⁠ 그날 이후, 성질 더러운 늑대 한 마리가 자꾸만 내 곁을 맴돌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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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55. 지키고 싶어.
⁠⁠"아직, 아무것도 보고 된 건 없어.""확실해?""확실해. 영감이 얼마나 유별난지 알잖아."⁠확답하는 말을 듣고도 안심되지 않았다. 어젯밤 이미 취한 상태로 맥주를 마시던 하이담은 해롱해롱한 상태로 온갖 말을 했다. 그 와중에 왜 늑대라고 정정하지 않았는지 따위의 말을 하다, 설이현은 왜 사자냐는 물음에 알딸딸하게 올라오던 술기운이 모조리 달아났다.설이현에게 지금 상황을 알렸단 소리다.그런데 그 설이현은 아직 본가에 알리지 않았다는 소리인데, 도무지 그 꿍꿍이를 예측할 수 없어 속이 탔다.⁠"누님의 태도는 변했어?"⁠초조함이 잔뜩 드러나는 표정에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슬쩍 묻자, 초조함은 멍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궁금했다. 지금 설태하는 인정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분명 설민재의 눈에는 이 설태하, 그 하이담을 신뢰하고 의지하고 있는… 아니, 어쩌면 애정까지 느끼고 있을지 모른다.과거, 설태하가 좋다고 늘 설태하의 편에 서겠다고 한 그 여자는 설이현을 만난 이후, 기억을 잃고 설이현을 좋아하게 됐다고 설태하에게 설렘을 가득 안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때 설태하의 표정과 달리 대답 대신 살짝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아, 또 깜빡할 뻔.""뭐.""돌아왔어.""뭐가.""뭐겠냐?"⁠또 말을 빙빙 돌려 하는 설민재를 보고 강하게 혀를 찼다.⁠"…… 만났어.""뭐?! 벌써? 빠른데!?""누굴 말하는 건데?""엥? 당연히….""작은아버지 말이야."⁠설민재의 말
Last Updated: 2026-10-15
Chapter: 54. 큰일이다.
⁠⁠"이담아, 표정이 왜 그래?""머리가 복잡해서…?""권 주임 말하는 거야? 걱정하지 마. 차근차근 준비 중이니까.""엉…? 무, 뭘 준비한다는 건데?""비밀이야."⁠싱긋 웃는 얼굴에 가시가 잔뜩 오른 것처럼 보여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설이현을 만났다는 것… 그 설이현을 만난 이후 돌아온 집 앞에서 설태하를 만난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옆에 설태하가 있었다. 그 사이의 일이 기억나지 않아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차라리 벌거벗어 있었더라면 변신한 상태로 잠들었었다고 생각이라도 할 수 있었지만, 너무나도 평온한 사람의 모습이었다.하이담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자, 커피를 마시던 연하늘의 표정에는 걱정이 드리웠다.⁠"… 정말로 무슨 일 있어?"⁠휴가를 다녀온 이후, 그렇다고 할 거리는 없었는 것 같은데… 연하늘이 결국 테이블에 머리를 파묻은 하이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자, 그 부드러운 손길과 걱정에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목소리를 뱉었다.⁠"…… 설태하랑 거리감이 너무…….""응?"⁠그리고 나온 말은 뜻밖이었지만, 이해는 됐다. 당황한 하이담의 표정과 달리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이는 연하늘의 모습에 되레 당황했다.⁠"그걸 이제 느낀 거야?""… 이제?""난 둘이 처음 봤을 때부터 엄청 가까워 보이던데~? 질투 날만큼.""진짜?""응, 그래서 철이 오빠랑 석이 오빠도 계속 주시했잖아.""그랬…나…?"⁠정말 생각지도 못했다는 듯이 퍽 골치가 아파 보이는 모습이 오히려
Last Updated: 2026-10-14
Chapter: 53. 기다렸어?
⁠⁠'저렇게 웃는 거 처음 보네.'⁠입가를 가리며 소리 내 웃는 설이현은 한참 더 웃더니, 심플하고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이 집에 어울리는 단정하고 정갈한 모습을 하고는 턱을 괴고 하이담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음…?"⁠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하이담이 먼저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자, 설이현이 자리에 일어서 뚜벅뚜벅 걸어 하이담의 앞으로 향했다. 갑작스러운 설이현의 행동에 이제야 당황한 듯한 표정을 하는 하이담의 표정은 흥미로웠다.어쩌면 지루한 자신의 일생을 재밌게 해줄 장난감이 하나 더 늘어난 순간이 아닌가? 싶었다.⁠"이현아?"⁠하이담의 앞으로 온 설이현은 비릿하게 미소를 흘리더니 그가 입고 있던 값비싼 옷이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지고 어느새 조명으로 인한 건지 붉은빛을 띠는 갈기를 내보이며 고고하게 자리에 앉았다.⁠"그리고 보니 떠오르는 게 있네."⁠⁠* * *⁠⁠밤 11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다.설이현을 만나러 간다던 하이담은 여태 연락도 되지 않고 어디에서 만나는지 알지도 못해 찾아갈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쌍둥이에게 연락하기도 뭐한 입장이라 괜히 초조하게 손톱을 뜯으며 하이담의 오피스텔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자기 모습이 너무 우스웠다.어쩌면 오늘 이후, 하이담은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설이현의 사람이 되어 나타날지도 모른다. 평소처럼 웃어주지 않고 자신을 피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 바보 같은 얼굴이 보고 싶어 몇 시간 동안 이렇게 죽치고 기다리는 자신이 너무 바보 같아 머리를 벅벅 긁으며 발을 굴렀다.⁠
Last Updated: 2026-10-13
Chapter: 52. 해보자는 거냐.
⁠⁠설이현의 눈빛은 마치 맹수가 바라보는 것 같은 섬뜩함이 느껴졌다.⁠"틀린 말은 아니야. 나는 그 녀석이 왜 나를 싫어하는지 몰라. 알고 싶은 생각도 없고. 다만… 그 행동으로 내게 재미를 준다면 사양할 것 없지.""태하도 태하지만, 너도 꽤 뒤틀려 있잖아?""그렇게 느껴지나?"⁠지금 동생을 '장난감'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실언한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말을 해놓고 본인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저 얼굴은 가식일지 진심일지 슬슬 헷갈리기 시작했다.⁠"너희 부모님은 형제가 그렇게 싸우는데, 뭐라 안 해? 그런 집이면 엄격하지 않아?"⁠그 말에 반쯤 불구인 체 숨만 쉬고 있는 아버지와 그렇기에 더욱 자신에게 집착하는 어머니를 떠올리고는 픽 웃었다.⁠"그런가, 두 분 다 허물뿐이라.""엥?""게다가 반쪽짜리에 굳이 시간 낭비할 이유도 없고.""반쪽짜리?""아아, 말하지 않았나? 그 녀석은 아버지와 외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외자야. 반쪽만 같은 피가 흐른다고 할까.""그런 거 신경 쓰는 타입이야?"⁠악의 없는 물음에 잠시 고민하듯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대답했다.평소에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는 의문이었다.⁠"반쪽짜리가 순혈처럼 행세하면… 그래, 거슬리기는 하겠네."⁠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하는 설이현의 모습이 그저 안타까웠다. 하이담이 아는 설태하는 그것은 으스대는 것이 아닌, 인정받고 싶은 발버둥일 텐데, 그걸 그 형인 설이현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집안의 모든 사람도 별반 차이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Last Updated: 2026-10-12
Chapter: 51. 갈증.
⁠⁠"진짜 바보냐고. 나를 그냥 개새끼로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야?"⁠어느새 자신을 끌어안고 놓지 않은 채 잠든 하이담을 보며 잘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자연스레 이불을 덮어주는 순간에도 자신을 놓지 않았고, 그것은 오묘했다. 바로 곁에서 바라보는 하이담은 이렇게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가 싶으면서도 자신의 입장을 생각하면 무언가 다른 감정이 생기는 이상하다고 느껴져 고개를 휘휘 저었다.그럼에도 자신은 어째서 이 얼토당토않은 부탁을 들어주고 있는지, 이 손을 대체 왜 뿌리칠 수 없는지.⁠"분명 설이현의 약점으로 이용할 생각이었는데."⁠그랬는데, 막상 설이현을 만난다고 하니 그것이 왜 이렇게 싫고 불안한지.⁠"짜증 나."⁠이런 모습이 아니더라도 안아줄 수 있는데.⁠⁠* * *⁠⁠"으아아아~"⁠하이담이 눈을 뜨자, 설태하는 이미 돌아간 건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집 안 정리도 대충 하고 나간 모습에 웃음이 나오는 것을 꾹 참으며 따뜻한 물을 틀어 샤워했다.⁠"이 정도면 우렁각시 수준인데."⁠그리고는 평소에는 잘 하지 않던 드라이도 화장도 더 꼼꼼하게 하며 나갈 옷을 몇 번이고 갈아입고는 거울을 보고 입꼬리를 손가락으로 올려보았다.⁠'살아 돌아 올 수는 있겠지?'⁠설태하에게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사실 불안했다.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니 피할 수 없다. 게다가 최고의 힐링도 했고, 의기투합도 했으니… 괜히 설이현에게 말리지
Last Updated: 2026-10-11
Chapter: 50. 힘을 줘.
⁠⁠확실히, 본가에서도 하이석이 가르쳐 주는 것을 연우주와 달리 금방 따라 하고는 했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손재주도 있어 보였고 뭐든 금방 배우는 타입으로 보이긴 했다. 설이현과 다른 결로 천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두 눈에 보이는 광경은 놀라울 따름이었다.대뜸 손을 이끌고 간 곳은 집 근처 작은 마트였고, 대충 이것저것 집어넣더니 익숙하게 음식을 뚝딱 만들어 낸 것에 놀라 입을 떡 벌리자, 빨리 먹으라며 툴툴거리면서도 쑥스러워하는 모습은 자신이 아는 설태하가 분명히 맞는데, 괜히 평소와 조금 다른 느낌이 들어 심장을 꾹꾹 눌렀다.⁠"완전 맛있어!"⁠그 말에 만족한 듯 표정이 한결 밝아지는 것에 더욱.⁠"그보다 오늘, 같이 저녁 먹으려고 부른 건 아니었는데.""뭐? 그럼?""할 이야기가 있어서.""뭔데? 밥 먹으면서 하면 되지.""네가 밥이 넘어갈까 해서."⁠평소의 하이담답지 않게 조금 무겁게 말하는 모습에 설태하의 심장이 강하게 요동쳤다. 쥔 젓가락의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혹시 저 입에서 이제 이런 식으로 만나는 것은 관두자고, 평범하게 지내고 싶다고… 그런 말이 나올까? 지레 겁을 먹은 것이다.'말하지 마!'라고 말하고 싶은데 강하게 심장이 울리는 소리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나, 이번 주말에 설이현 만나.""………… 어? 뭐??"⁠실제로 나온 말은 더 충격이었다.⁠"… 둘이? 그놈을 왜!?""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던데… 나도 잘 몰라. 그래서 물어보려고.""뭘?""설이현― 지금 상황 알아?""……
Last Updated: 2026-10-10
별은 대답하지 않는다

별은 대답하지 않는다

세상은 그를 악마라 불렀다. 그녀만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서로를 구원이라 믿은 두 사람은, 끝내 가장 잔인한 선택 앞에 선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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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부. 붉은 빛과 황금 빛 - 09
⁠ “아… 아…?”⁠소년은 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보였다. 소녀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다가가자, 소년은 본능적으로 나를 밀치며 가까이 다가오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성이 아닌 본능으로 보였다. 지금 소년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베가?”⁠소녀의 몸, 정확히 심장 부근이 소녀의 눈동자와 같은 금빛으로 빛이 났다. 강한 눈부심에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눈을 찌푸리며 소녀에게 초점을 맞추자, 소녀의 뺨 위로 붉은 피가 떨어졌다.아니, 피가 아닌 소년의 눈에서 떨어진 눈물이었다.⁠“거짓말. 야, 장난치지 마.”⁠소녀의 몸에서 나온 금빛은 소년의 손가락을 타고 소년의 몸을 물들였다. 소년은 그 순간에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허탈한 표정을 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평소 소년이 가지고 다니던 총이 떨어져 있었다.⁠“베가… 가지 마.”⁠소년은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보채는 것처럼 어느새 금발 머리로 변한 소녀의 시신을 끌어안고 울었다.⁠“나를 두고 가지 마.”⁠소녀는 정말로 잔인했다. 소년이 처음으로 불쌍해 보였다. 지금 저 모습을 정말로 ‘악마’라고 할 수 있을까?⁠“나를 혼자 두지 마….”⁠붉은 눈물이 쉼 없이 뚝뚝 떨어졌다. 한참 동안, 뚝뚝 떨어졌다. 그동안, 소년은 내가 알던 소년이 아닌 어느새 인간의 형태를 점점 잃어 가는 건지 왼쪽 날개뼈에서 나온 검은 날개는 소녀의 시체를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카인.”
Last Updated: 2026-08-23
Chapter: 3부. 붉은 빛과 황금 빛 - 08
⁠⁠ “너, 내가 헛소리 그만하라고 했지?”⁠소년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했지만, 표정은 핏기 없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 때문인지, 소년의 붉은 눈동자가 유난히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 붉게 타오르는 빛은 자신의 앞에 있는 금빛을 모조리 태울 것만 같았다.⁠“나는 네가 밖의 세상에서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평범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어.” “뭐? 너… 지금 나를 내쫓겠다는 의미냐?”⁠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표정과 행동은 그렇지 않았다.⁠“내가 있으면 그럴 수가 없잖아.” “웃기지 마! 그게 무슨 헛소린데!? 둘이서 여태 잘 지냈잖아! 너야말로 지금 내가 필요 없다고 말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잖아!”⁠소녀는 힘없이 미소 지으며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소년을 안쓰럽게 바라봤다.⁠“애썼어. 누구보다도 나를 위해 애썼어. 그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야. 하지만… 그런 너를 내가 묶고 있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고.” “시끄러워! 헛바람이 들렸네! 또 이상한 책 보고 잔 거지? 돌아가. 일단은 집으로 돌아가서….” “나는 분명히 기억해.”⁠소녀는 잠깐 시선을 주며 곤란한 표정을 하면서도 말했다.⁠“처음 나를 봤을 때, 나를 구해주겠다고 했지?” “뭐…?” “카인, 너와 내가 어떻게 만나게 된 것 같아?” “기억이 흐릿하지? 그럴 거야. 내가 아직 어렸을 적, 제단에 쓰러져 있는 널 발견한 거야. 왜 이곳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넌, 그렇게 내게 왔어.”⁠머릿속이 쪼개질 듯 아파졌다. 지금 나는 외부인이다. 저 두 사람의 세
Last Updated: 2026-08-22
Chapter: 3부. 붉은 빛과 황금 빛 - 07
⁠⁠ “느낌이 좋지 않아. 빨리 베가를 찾아야 된다고!”⁠그저 하는 말은 아닌 듯했다. 소녀의 방으로 향하던 발걸음은 서둘러 소년의 뒤를 따랐다.⁠“베가! 베가!! 대답하라고!!”⁠초조한 소년을 보니 얼마 전 일도 있고 하니, 갑자기 어디선가 쓰러진 건가 싶은 생각에 마음이 달았다. 하지만 이미 저택 주위를 다 돌아본 소년이 발견하지 못했다면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건데…. 문득 등골을 타고 내려가는 감각과 함께 머릿속에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던 낡은 제단이 떠올랐다.⁠“제단! 제단으로 가!” “제단?”⁠소년은 금시초문인 얼굴을 했다. 그 모습에 마른세수하며 헛웃음을 쳤다. 이 와중에 소녀는 소년에게 제단을 알려주지도 않았다니. 정말이지 눈물겨운 애정이다.⁠⁠***⁠⁠소년은 입술을 깨물면서도 자신이 모르는 곳을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여간 수상한지 나를 힐끔힐끔 바라보면서도 발걸음은 거침없이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 역시 서둘러 거친 줄기를 가르며 제단에 도착하자, 우거진 이끼들이 지독한 냄새를 뿜고 있었다. 안으로 다급하게 들어오자, 역시나 소녀는 이곳에 있었다. 제단 한 가운데 낡아서 부서지기 일보 직전인 동상을 멍하니 바라보며.⁠“베가! 너 여기서 뭐 하는 거야!?”⁠소년이 거칠게 소녀의 어깨를 잡아당기자, 소녀는 속절없이 소년의 의도대로 움직였다.⁠“… 카인, 이곳이 뭐 하는 곳인지 알아?” “뭐? 그딴 거 알 바냐! 얼른 돌아가,
Last Updated: 2026-08-21
Chapter: 3부. 붉은 빛과 황금 빛 - 06
⁠⁠“아가씨?”⁠대낮에 소녀의 문을 거칠게 툭툭 치자, 소녀는 역시 잠들지 않았는지, 조금은 지쳐 보이는 얼굴로 문을 열었다.⁠“이야기 좀 하지?” “싫다면요?”⁠대답 대신 어깨를 으쓱이자, 소녀는 대화를 피할 생각은 없는지 안으로 들어오라 손짓했다.넓은 공간에 단 하나밖에 없는 침대, 그리고 침대 위에 엉망으로 쌓여 있는 책더미.⁠“어제 일은 정말 드문 일이에요. 애초에 신부님이 카인에게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억울한데,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 애가 갑자기 들이닥친 거라고.” “카인이요?” “너희의 세상에서 빠져 달라는군. 조용히 살겠다고.”⁠소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곧 사랑스럽게 미소 지었다.소년의 그 말이 퍽 기쁜가 보다.⁠“평범한 인간은 악마를 죽인다고 표현하지 않아.” “네?” “악마를 죽인다는 표현은… 소년이 처음 썼지.”⁠창밖을 바라보며 잠시 숨을 멈추고 침묵을 유지했다.⁠“아가씨, 진짜 악마 맞아?”⁠소녀는 말뜻을 이해한 건지, 못한 건지 표정이 오묘하게 구겨졌다.⁠“아니, 매개체는 맞겠지. 내가 묻고 싶은 건… 네 속에 그 악마가 봉인되어 있냐는 거야.” “… 있겠죠.” “어릴 때 폭주한 것도, 아가씨 맞아?”⁠소녀는 그 말에 이마를 짚으며 깊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소년의 중얼거리는 말이 신경 쓰였다. 마치 그 중얼거림은 소녀가 아닌 자신이 모두를 죽였다고 말하고 있었다.
Last Updated: 2026-08-20
Chapter: 3부. 붉은 빛과 황금 빛 - 05
⁠⁠잠을 들 수 없었다. 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소녀는 어느새 다가온 소년과 아무렇지 않게 까르르 웃으며 장난을 쳤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년은 분명 우리 사이의 기묘한 분위기를 분명 눈치챘지만, 역시 아는 척하지 않았다. 낡은 리볼버를 만지며 어느새 새벽이 된 정원을 바라보다 손에 쥔 담배도 두 동강을 냈다.똑똑이 시간에 내 방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단 한 사람이다. 들어오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소년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조심스레 문을 닫고 한참을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땅에 처박고 있었다.⁠“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돌아가.” “뭐?” “당신의 세상으로 돌아가, 돌아가요. 신부님.”⁠고개를 겨우 든 소년의 두 눈은 부릅뜨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눈시울이 붉어져 붉은 눈동자가 더욱 핏빛을 돌며 빛이 났다.⁠“나랑, 베가는… 여기서… 원래대로 없던 사람들처럼 살 테니까…. 그냥, 그냥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가. 돌아가요.”⁠소녀는 참 잔인했다. 이런 소년을 두고 그런 악랄한 계획을 꾸미고 있다니.⁠“우리 쥐 죽은 듯이 살게. 내가 베가를 잘 감시할 테니까. 혹여나 악마가 폭주한다고 해도 내가 죽일 테니까…!!” “죽일 수는 있고?” “있어. 죽일 수 있어.”⁠소년의 눈은 강렬하게 불타고 있었다. 제 나름대로 생각하고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인 듯했다. 소녀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소년은 결국 둘만의 세상에 들어온 나를 내보내는 결심을 했다. 하지만 나는 악마를 퇴치하는 신부. 악마를 보고 그냥 돌아갈 수 없었다. 소녀가 악마의 매개체인 이상 나는 분명 확실
Last Updated: 2026-08-19
Chapter: 3부. 붉은 빛과 황금 빛 - 04
⁠⁠멱살을 움켜쥔 소년의 손아귀에서 힘이 점점 빠져나갔다.⁠“그리고 이건 내 예감인데, 자신이 죽고 난 이후… 너를 내게 맡기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뭐라고…?” “아가씨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나?”⁠소년은 대답이 없었다.⁠“모르는 척한 거지?”⁠일부로 자극했다. 소녀와 달리 소년은 자극하는 대로 반응이 오니까.⁠“그, 그럴 리…!!” “충분해. 애초에 하나뿐인 가족이 늘 자신을 죽일 준비를 하고 있다면, 아가씨의 처지도 이해는 돼.” “그런 게…! 그딴 게 아니라고!!”⁠소년은 분노했다.이번에는 내게 한 방 먹일 기세로 주먹을 뻗었다.물론 그 주먹은 막판에 힘이 빠져 내 손바닥으로 향했지만 말이다.고개를 푹 숙인 소년은 말도 안 된다고 중얼거리면서도 그 눈은 어느 정도 외면했던 사실을 마주한 것 같이 흔들렸다.⁠“그래서 나는 이 일에 대해 너와 아가씨와 함께 이야기하고 싶다.” “그딴 걸 왜…!? 당신은 정말로 베가를 죽일 생각이야!?” “아가씨 안에 악마가 있다고 한 건, 처음 만난 순간 총을 겨눴던 건 너야.” “그건…!!” “그러면 묻지, 넌 아가씨 속에서 악마가 나온다면 아가씨를 망설임 없이 죽일 수 있나?”⁠그 말에 소년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래, 이 행동에 확신했다. 죽일 수 있도록 노력은 했다. 하지만 소년은 소녀를 죽일 수 없다.⁠“그럼, 당신은!! 베가는 당신을 잘 따랐는데, 그렇게 쉽게
Last Updated: 2026-08-18
아빠의 여자친구

아빠의 여자친구

전쟁이 끝난 지 15년. 죽었던 병기 이시안이 깨어났다. 그리고 눈앞에는, 사랑했던 남자의 아들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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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47. 찌질해. (1)
*****⁠⁠⁠"나, 죽어. 죽는다. 진짜 죽는다?""다쳤습니까?""… 아파서 죽는 게 아니야. 피곤해서 죽을 거 같다는 소리야. 바보 김정우!!!"⁠정안용이 김정우의 등에 올라타자, 김정우가 아무렇지 않게 짐짝을 옮기듯 들자 편안함에 만족하면서도 정말로 피곤함이 몰려와 눈을 슬쩍 감았다.⁠"앞으로 얼마나 더 남았지.""그래도 오늘은 좀 나은 편이었잖습니까.""이게 말이야, 전부 다 공주님 때문이야. 왜 와서는….""솔직히 말하자면… 전 편해서 좋았습니다.""그야 시안이의 레이더가 발딱 섰으니까. 나에게도 그래 줬으면 좋겠는데~""그렇습니까.""하여튼, 시안이도 보는 눈이…."⁠정안용이 괜히 김정우의 옷을 물어 뜯으며 성을 냈지만, 김정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걸음을 재촉했다.⁠"그거 누님의 소중한 사람이어서 그런 거 아닙니까?""허어얼~? 김정우가 그런 말을 하다니!? 누가 그래!? 공주님이 그렇게 떠들든!?""아뇨? 리더가 그렇게 말했습니다.""으으으… 리더는 쓸데없는 말만 하고 다니고… 우리도 시안이에게 특별하고 소중해!""아, 안녕하세요. 박도윤 씨."⁠정안용을 짊어지고 본부로 도착하자, 그곳에는 부상자를 막 치료하고 나온 박도윤이 있었고, 박도윤을 보고 인사한 김정우를 보며 주위를 살피다 김정우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 시안이는……?""먼저 본부로 복귀 하셨….""그래, 잘 물었네!"⁠김정우가 대답하기도 전에 정안용이 냅다 물었다.
Last Updated: 2026-10-15
Chapter: 46. 약속.
⁠⁠⁠최윤수에게 추천받은 야경이 좋은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시간을 축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데이트인 줄 알았는데 갑작스럽게 박시온은 왜 끼게 됐는지 당사자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목을 살살 녹이는 소프트아이스크림을 퍼먹으며 불꽃이 반짝이며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공연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힐끔 바라본 곳에 정안용은 내일 헤어지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으며 불편한 팔을 핑계로 나름대로 알차게 이시안을 부려 먹고 있었다.그런데, 갑자기 왜 혼자 자신의 쪽으로 온 건지 이해할 수 없어 괜히 몸이 움츠러들었다.⁠"…… 왜요?"⁠부드러운 머릿결이 바람과 함께 날리며 정안용이 일생일대에 제일 싫어하고 부러워하던 남자를 쏙 빼다 박은 박시온을 바라보며 한숨 섞인 말을 잔잔히 뱉었다. 음악 소리보다 작고 낮은 목소리지만 그 어떤 소리보다 박시온의 귀에 쏙 박혀 들렸다.⁠"나는 역시 박도윤이 싫어.""그걸 제게 말해도….""그래서 너도 싫어.""…… 저도 정안용 씨가 좋지는 않은데요….""쯧, 말이나 못 하면… 얼굴도 똑같이 생겨 놓고는."⁠갑자기 웬 시비인지.정안용의 말에 짜증이 가득 담긴 얼굴로 바라보자, 정안용은 방금까지의 불만인 표정이 아닌 그 어느 때보다 담담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박시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표정은 다른 의미로 무서웠고 긴장됐다.⁠"갑자기….""나나 시안이는… 네 나이 때 이미 병기였고, 네 아빠는 이미 의료병이었어.""…… 네?""게다가 너는 사내잖아.""………?""남자 대 남자로 약속해 줘. 이시안… 쓸데없는 짓 못 하게. 무사히 데
Last Updated: 2026-10-14
Chapter: 45. 얼굴 공격.
⁠⁠⁠정안용이어울리지 않게 다리를 떨며 차가 담긴 잔에서 모락모락 나는 연기를 대충 후 불고는 서류를 보며 말을 아끼는 주 학을 빤히 바라봤다. 그 성격을 알기에 주 학이 숨을 살짝 들이 쉬고 읽던 서류를 덮었다.⁠"죄송해요. 급한 서류라.""그래, 빨리 이야기 해 봐."⁠기다렸다는 듯이 덥석 무는 모습은 자신이 잘 아는 성격 급한정안용이맞았다.⁠"어디서부터 알고 싶은 거죠?""너, 어떻게 시안이랑 알게 된 거야? 아니지… 위치상 얼굴을 종종 봤긴 했을 테니… 친해졌을…… 그게 더 이상한데!?"⁠아무래도이시안과주 학의 관계부터 의문인 듯했다.⁠"처음 제대로 말문을 튼 건, 함정에 빠졌을 때죠.""함정?""그쪽도 어림짐작했을 테지만… 이쪽 부대가내부 분열로소란스러울 때였어요. 함정의 위치는 족제비 거점의 근처.""…… 아니, 너 용케 살았네?""당시에는 죽을 뻔했고요.시안이에게작전을 모조리 알려주고 도움받아살아서 나왔어요. 보고한 작전에는 거짓이 없고, 족제비를 습격하기 위해 만든비밀 거점까지모조리 알려 주고 난 이후, '신뢰'받았다면 납득 되나요?"⁠주 학의 말은 우습게도 정말로이시안이기에납득이 가능한 말이었다.정안용이헛웃음을 치며 입을 가렸다.하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믿기에는 의심스러웠다. 온전히 납득하기에는 군데군데 뚫려 의심됐다.⁠"주 학, 위치 말 해."⁠문이
Last Updated: 2026-10-13
Chapter: 44. 의문.
⁠⁠⁠"저, 그, 그럼…!이시안씨, 검사 받을 동안 쇼핑해도괜…찮을까요?"⁠저번에 미처 둘러보지 못한 곳이 떠올라 한 말이지만, 타이밍을 잘못 잡았다. 그 말이 나오자마자주학을따라나서던이시안이몸을 돌려 박시온에 향했다.⁠"그럼 같이 가.""이시안씨는 검사 받아요.""됐어. 그 정도 아냐."⁠그리고 그런이시안의행동은 정말로 이해되지 않았다.한지훈도 그렇고서윤재도그렇고이시안도그렇고, 어째서 이 셋은 박시온을 꽁꽁 싸매기만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은 결국 화가 되어 나왔다.⁠"아니! 정말로!! 왜 자신은 돌보지도 않고, 내게 집착해요!!! 나도 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요!!! 그리고 저도 혼자서쇼핑 정도할 수 있는 나이라고요!! 어린애가 아니라고!!!""………!""진짜!!! 싫어!!! 당신도 한지훈도서윤재도다 싫어!!! 다필요 없어!!! 혼자 갈 거야!!!"⁠박시온이 거칠게이시안을밀치며 밖으로 나가버렸고, 박시온의 첫 반항에이시안이놀란 듯 입을 살짝 벌리고 멍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정안용이벌떡 일어나 소리쳤다.⁠"저, 저, 저말하는 싸가지봐!! 어찌 아빠를 저리 쏙 빼닮았지!?"⁠갑작스러운 일에정안용이박시온에게 소리
Last Updated: 2026-10-12
Chapter: 43. 이해관계.
⁠⁠⁠"묻겠는데, 여태 시안이랑 다니면서 이상한 거 없었어?""이상한 거요?""갑자기 이상한 짓을 하거나….""뭐, 문짝을 뜯거나 경찰을 죽이려고 했거나 기차를박살 내려고했거나…?""아니, 그건 평소의이시안인데?""그럼?"⁠박시온의 미간이 찌푸려졌다.⁠"아프다거나, 몸에 이상이 생기거나….""'병기'가요?"⁠박시온이 가볍게 받아친 말에정안용이쓰게 웃으며 대꾸했다.⁠"그래, 그럼 됐다.""…… 무슨 의미예요?""박시온, 너는 계속 그렇게이시안을'병기' 취급하라고."⁠정안용의말뜻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확실한 건, 지금 저 말에 악의가 들어있다는 것이었다.⁠"그게이시안을위해서니까.""어째서요?""괜히 정 줬다가,미련 남게하지 마.""무슨…….""어차피 너는 아빠와 엄마 만나면 거기서 같이하하 호호지낼 거잖아?"⁠정안용의말에 박시온이 말문이 막혔다.⁠"거기에시안이가괜한 미련 가지게 하지 말라고.""괜한 미련이 뭐요…. 이왕이면 다 같이… 잘 지내는 것도….""허, 미쳤지, 미쳤어? 어린애라서 그런가? 아닌데, 박도윤은 어린애도 영악해 빠졌었는데. 아니, 이것도영악
Last Updated: 2026-10-11
Chapter: 42. 몸살. (2)
⁠⁠⁠"원래 어린애는 잘 아프잖아? 아마…?"⁠외부의 상처 말고는 아파 본 적 없는 정안용이 고개를 갸웃대며 되묻듯이 새파랗게 질린 이시안을 바라보며 말했다.⁠"다정이도 맨날 까딱하면 열이 나서, 형이랑 형수가 새파랗게 질렸다가 새하얗게 질렸다가 막 그랬어.""왜 아픈 건데?""글쎄?"⁠이시안의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정안용은 대답하지 못했다.그것은 정안용도 궁금했다.다행히 역 안에서 약을 먹고 진정 중인 박시온의 열은 꽤 많이 내렸다.⁠"햇빛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 거 아냐?""그래?"⁠그럴싸한 이유였다.⁠"밤에 움직여야 하나?""그것도 좋네. 그런데 시안아, 밤에는 기차가 없어.""아냐, 있어. 저번에 탔어.""아니, 여기는 없어."⁠정안용의 말에 이시안이 인상을 구겼다.그러자, 정안용은 억울하다는 듯이 가슴을 콩콩 치더니 손가락으로 열차시간표를 가리켰다.⁠"찬찬히 읽어보고 오세요. 이시안 씨."⁠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착실히 확인하러 가는 이시안을 보며 정안용이 피식 웃음을 뱉었다. 세상에 적응해 나가는 이시안의 모습이 생각 외로 귀여웠다. 그리고 자신의 어깨에 기대 잠든 박시온은 하나도 귀엽지 않았다.자신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없었다면 이시안이 어떤 짓을 했을지 상상도 되지 않아 여러모로 끔찍했다. 어쩌면 그런 스트레스로 박시온은 참다 참다 몸살이 난 것일지도 모른다.⁠"내 말이 맞지?"⁠
Last Updated: 2026-10-10
AGAPE : 우리는 그랬다

AGAPE : 우리는 그랬다

사랑은 늘, 가장 잔혹한 얼굴로 찾아온다. 서로 다른 상처를 지낸 세 사람. 애증과 우정, 희생과 용서가 교차하는 끝에서 그들은 비로소 자신들만의 사랑을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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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81. 우리는 그랬다.
⁠⁠"도진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니까. 아빠라고 불러. 아빠.""왜에! 엄마도 그렇게 부르잖아.""안돼, 엄마랑 달라. 너는 아빠라고 불러야 해.""치사해! 아빠아아! 엄마 나빠아!"⁠아직 정신이 멍해 품에 안겨 오는 작은 너를 어찌 해주지도 못하고 본능적으로 등을 토닥이자, 나를 찌릿하고 쳐다보는 눈길에 그대로 행동이 멈춰버렸다. 결국 너는 작은 너의 등을 떠밀어 내보내고, 문을 닫고는 나에게 다가와 나의 이마에 손을 올려 한없이 익숙한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의 상태를 살폈다.⁠"아."⁠분명 꿈일 텐데….차가운 손길에 이마의 열이 식는 느낌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다급하게 그 손을 잡자, 그 행동이 의아한 건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보는 시선에 그 손을 당겨 끌어안았다.그래, 이제야 안도했다.너의 향, 너의 온기 그 무엇 하나 다를 것 없이 내가 아는 너였다.⁠"응? 얘가 왜 이러지? 왜 그래? 아직도 아파?"⁠그 말에 대답도 못 하고 그 어리둥절한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보기도 하고 그 손을 강하게 잡기도 했다. 그제야 안도감에 눈물이 뚝뚝 떨어뜨리자, 너는 기겁하며 놀라 제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었다.⁠"뭐야~! 왜 울어? 이상하다? 열은 많이 내린 거 같은데…. 안 좋은 꿈이라도 꿨어?""… 응, 그건 꿈이야.""무슨 꿈을 꿨는데 우는 거야? 울지 마! 밖에 애도 있는데!""…… 네가 없어지는 꿈.""나는 이렇게 네 곁에 있는데?""응…."⁠울컥했다.조금 강하게 끌어안고 한참 동안 숨을 고르자, 그런 나를 영 이상한
Last Updated: 2026-10-03
Chapter: 80. 사랑을 했다.
⁠⁠윤시준이 눈을 반짝이며 입꼬리를 올렸다.⁠"어? 방금 메시지… 우리 홍시의 얼굴을 거절한 여자는 어디에 사는 누구입니까? 하긴… 이 녀석 얼굴 밖에 없죠?""야, 윤시준 그게 무슨 소리냐?""어, 그리고 또 왔어요. ‘지금 첫사랑을 생각하면 어떠신가요?’ 라는 질문이 있는데… 뭐, 어때요?""그걸 왜 굳이 제게? 자정의 요정도 대답 좀 하시죠?""아니 뭐~ 지금 반짝이들이 내가 눈에 들어오겠어요?"⁠⁠정말이지 저 능구렁이 같은 녀석.홍시혁이 혀를 강하게 차면서도 눈은 이미 생각에 잠겼다.누구를 생각하고 있는지, 윤시준은 알 수 있었다.⁠"그냥, 뭐 보고 싶죠. 잘 지내는지… 행복한지. 제가 노래하는 거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이번 신곡도 좋으니까~""아하하, 은근슬쩍 영업까지 하네? 오, 메시지들이 폭주하기 시작했어요. 홍시혁 나를 사랑해 줘… 부터… 여러분, 후회할지도 몰라요. 이 녀석 겉만 멀쩡한 남자인 건 알죠?""너만 하겠냐?""아, 노래 추천해 주세요도 있네요. 자, 홍시혁 씨. 온 김에 하나 해주세요.""아, 이번 앨범 수록곡 3번 트랙에 'Arrivederci'라는 노래가 있는데… 제가 가장 애정하는 노래고 작곡도 했다고요~? 한번 들어… 오, 역시 PD님, 센스 넘치신다니까? 지금 흘러나오는 이 노래입니다.""그럼 노래 듣고 다시 만나요."⁠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순식간에 고요해진 부스 안에서 윤시준은 한창 놀릴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괜찮냐는 눈빛을 하며 내게 생수를 건넸다. 그리고 곧 손짓하는 화면을 바라보자, 한창 검색어 순위가 나의 이름과 윤시준의 이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것을
Last Updated: 2026-10-02
Chapter: 79. 혼자 두지 마.
⁠⁠그날 이후로 나와 함께 멈춘 집은 네가 만들어 준 노래만… 너의 노래만 흘러나왔다. 변함없는 네 목소리가 겨우 나를 움직이게 했다.벌써 몇 번이나 영웅이가 왔다 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얼핏 다른 사람들의 얼굴도 본 것 같은데…. 잘 기억나지 않았다.⁠아아, 아버지. 혹시 저 벌을 받는 걸까요? 나 때문에 그렇게 된 걸까요? 어째서… 왜… 은율이를 지켜주지 않았어요?⁠ 우리 이제 막 행복한 참이었는데…. 우리는 해서는 안 될 사랑을 한 게 아닌데. 그냥 입장만 다를 뿐이지, 평범하게 사랑했는데. 그게 뭐가 그렇게 잘못된 거라고 이렇게 벌을 주는 거지? ⁠ 심장이 푹푹 찢기는 고통에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가슴을 몇 번이나 두드려도 이 압박감은 해방되지 않았다. '멈춘다'라는 개념이 없는 듯 눈물은 그저 쉴 새 없이 흘러내렸고, 이제는 닦는 것조차 지쳐서 할 수가 없었다.⁠"나, 아파. 너무 아파."⁠빨리 돌아와 줘. 너는 언제나 내가 아픈 것을 싫어했잖아.⁠"보고 싶단 말이야."⁠몇 번이나 소리쳤지만 금방이라도 달려 올 것 같은 너는 오지 않았다. 고요한 집에는 너의 목소리만 울렸고 그 소리만이 나의 귀에 꽂혀 주위의 소음을 차단했다.⁠'나는 평생, 네 곁에 있을 거야. 이제 네가 싫다고 해도… 내가 있을 거야.'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잖아.' '새삼 그렇다는 거지. 이제 정말로 돌이킬 수 없어. 난 분명 참으려고 했는데… 네가 터뜨린 거야. 책임져! 이도진!' '어떻게 책임질까? 말해 봐.' '으음… 일단은 사랑한다고 말해줘.'⁠제법 뻔뻔해진 모습
Last Updated: 2026-10-01
Chapter: 78. 혐오스러워.
⁠⁠⁠평소 나의 사진은 시도 때도 없이 찍으면서 본인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나의 폰에는 사진이 거의 없었다. 그것이 조금 짜증 나서 사진을 찍으려 하자 질색하는 표정을 하길래 그 녀석이 찍어 줄 때는 잘 있으면서 내가 찍으려고 하니 거부한다고 툴툴거리자, 그제야 어설프게 포즈를 취해 보이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내게 어리광이 너무 는 것 아니냐고 투덜거렸지만, 이러한 행세를 보면 그만둘 수가 없었다.⁠'음, 도진아. 역시 사진은 홍시혁이 더 잘 찍는 거 같아.'⁠장난스러운 말에 조금 울컥해 동영상으로 사진 찍는 영상을 한참이나 보고 있는 나를 빤히 보더니 왜 그렇게 귀엽냐고 나를 끌어안는 모습에 괜히 동생 취급하는 듯해 울컥했지만 그래도 즐거웠고 행복했다.이런, 사소하고 평범한 날들이 꿈같을 정도로… 눈물이 날 정도로 행복했다. ⁠ 한시라도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눈을 뜨고 감기 직전까지 서로의 시야에 있으며 타인의 시선은 단 하나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이렇게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었다. 그간 함께 행복하지 못한 시간 그 이상으로 행복한 지금, 이 순간을 조금 더 빠르게 가져오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왜 진작에 나는 이런 선택을 하지 못한 건지 정말이지 과거의 이도진은 한심하고 멍청했다.그랬기에 나는 과거 나의 영상이나 사진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크… 멋지다. 멋져.'⁠하지만 그런 나의 모습을 너무나도 반짝이는 눈으로 헤벌쭉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너를 보면 그래도 조금, 아주 조금은 용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이도진 씨, 집중하세요.' '집중하고 있어.' '아니. 나 말고 영화… 지금이 하이라이트라니까?!'
Last Updated: 2026-09-30
Chapter: 77. 이제 알아.
⁠⁠⁠그 전화의 주인은 당연하게도 율이가 아니었다. 나도 나지만 이도진도 역시 제대로 사는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항상 깔끔하고 반듯하던 그 얼굴은 생기가 없고 푸석푸석하면서 몰골이었다. 율이가 좋아하던 그 멀끔한 얼굴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 모습을 보니 가라앉은 듯했던 마음이 다시 활활 타올랐다. 율이의 피를 뒤집어쓰고 살아남은 이 가증스러운 남자를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나는 동시에 이 모습을 보며 아파할 율이가 생각나 울컥했다.⁠"너, 그런 꼴로 있다고 속상해할 율이 생각 안 해!?"⁠한참의 침묵에 겨우 뱉은 말은 더 큰 화를 만들어서 해서는 안 될 말까지 뱉고 말았다.⁠"차라리!! 차라리, 네가 죽었으면 좋았을걸!!!"⁠한껏 기세 좋게 뱉은 것 치고는 마음이 쓰렸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어 입술이 찢길 정도로 힘을 주어 깨물었다. 그리고 이도진도 평소처럼 나의 말을 맞받아치지 않고 허탈하게 웃으며 동조했다.⁠"… 그러게."⁠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멍하니 있던 이도진은 내게 익숙한 USB를 던지고 그대로 나가버렸다.⁠⁠***⁠⁠집으로 돌아오자 홍지혁이 엉망이 된 집 안을 익숙하게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밥을 차려 놓고 억지로 입안에 넣어주었지만,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아 그대로 뱉었지만, 평소와 달리 아무런 말도 없었고 화내지 않았다.⁠"얼음에 미끄러진 트럭이 갑자기 덮친 거래."⁠알고 있다. 아마 분명 먼저 발견했을 네가 먼저 이도진을 구했겠지. 이게 '참 너답다'고 생각한 나도 반쯤은 미쳐 있는
Last Updated: 2026-09-29
Chapter: 76. 정말 다행이야.
⁠⁠⁠"꺄아아악-!!!"⁠그런데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언젠가 느껴 본 고통이 다시 몸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당황함과 놀란 표정을 한 네게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그때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유, 율아! 정신 차려!"⁠차가워진 몸에는 온전히 너의 온기가 느껴져 아픈데도 기분은 좋았다. 너의 목소리가 더 듣고 싶은데 감지 않으려는 눈도 점점 무거워져 견딜 수가 없었다.⁠아아, 나는 죽는 건가? 결국 너를 포기하지 못하고 손에 쥔 벌을 받는 걸까? 그렇다면 다행이야. 그 벌을 내가 받아서. 정말 진심이야. 나는 늘 네가 아픈 것은 싫으니까, 차라리 내가 아픈 것이 나으니까. 잠시나마 너를 독차지할 수 있어서… 사랑할 수 있어서 기뻤어. 나는 괜찮아. 나만큼 과분하고 행복한 사랑을 받은 여자는 없을 거야. 그러니까, 제발 울지 마. 나는 너의 그런 모습이 죽는 것보다 싫어.⁠⁠***⁠⁠<홍시혁>⁠사실 다시 만난 순간부터 짐작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내게 잠시 흔들렸던 너는 두 번 다시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걸. 그때가 나의 최초이자 마지막 기회였다는 것을. 하지만 그래도 좋아서, 그대로 미련이 넘쳐서 놓지 못한 쪽은 나였다. 네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무슨 생각으로 나를 만나는 건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네게 집중하고 싶었다.이도진에게 조금 달라진 듯한 행동도 사실은 너의 어리광일지도 모르지만 그저 '기회'이지 않을까 하고 혼자 자위한 꼴이다. 그래도 나는 네가 행복하면 미련하지만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정말로 마지막에 봤을 때 너는 행복해
Last Updated: 202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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