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7화. 접근117화. 접근“그렇게 의심하고 있어. 그런데 내가 확인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 외도 증거가 없어. 오히려 이상한 건 따로 있어.”서단이 다음 사진을 띄웠다.맑은 비취색 옥에 붉은 산호 장식이 박힌 오래된 비녀였다.“결혼 삼십 주년 선물. 남편이 한 달쯤 전에 최민준 갤러리를 통해 구입해서 아내에게 줬어.”회의실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라졌다.단이 눈을 가늘게 떴다.“이상 행동이 시작된 것도 그 뒤인가?”“거의 일치합니다. 처음에는 남편 휴대전화를 검사하는 정도였는데 점점 심해졌어요. 위치 추적을 하고, 회사 직원들을 뒷조사하고, 남편과 이야기하는 여자마다 불륜 상대라고 의심하기 시작했죠. 결국 집에서 일하던 젊은 여성 직원들을 전부 해고했고, 며칠 전에는 한밤중에 소란 신고까지 들어갔습니다.”서연은 한동안 옥비녀의 사진을 바라봤다.“그럼 저게 맞을 가능성이 높겠네.”“가능성은 높아.”단이 차분하게 말을 받았다.“하지만 직접 보기 전에는 단정하지 마. 최민준이 관련되어 있다고 해서 인간이 저지르는 모든 일이 저주 때문인 것은 아니니까.”“알아요.”서연도 고개를 끄덕였다.사람의 의심과 질투까지 모두 귀신 탓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 어쩌면 비녀는 아무 죄가 없고, 이미 무너지고 있던 부부 사이에 우연히 들어온 물건일 수도 있었다.그래서 직접 봐야 했다.문제는 방법이었다.“그런데 저분이 우리한테 예약을 한 건 아니잖아. 어떻게 만나?”“그게 두 번째 문제야.”서단이 다른 자료를 띄웠다.“지금 최미자 여사는 거의 집 밖으로 안 나와. 남편도 못 들어가고 있고, 낯선 사람은 더더욱 안 만나. 그런데 최근 일주일 동안 몇 번이나 집에 들인 사람들이 있어.”“누구?”“무속인들하고 골동품상.”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단에게 향하자, 단이 눈썹을 들어 올렸다.“왜 나를 보지?”서연이 웃었다.“우리 전문 분야잖아요.”“무속인? 나는 타인의 운명에는 관심 없다.”“골동품이요. 왜 하필 무속인을 골라요?”단이 잠시 생각하다 고개
Last Updated: 2026-09-20
Chapter: 116화. 찾아가는 서비스116화. 찾아가는 서비스 서연은 대형 모니터 앞에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화면 한가운데 떠 있는 숫자는 며칠째 변함이 없었다.예약 0건.새로고침 버튼을 눌러봤지만 결과는 똑같았다.“이 정도면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는 거 아니에요? 예약이 한 건도 없어요. 한 건도. 우리가 하려는 일이 평범한 골동품 감정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요.”서연이 억울한 얼굴로 돌아보자 소파에 기대앉아 차를 마시던 단이 무심하게 대답했다.“아무래도 몸을 사리는 거겠지.”“이래서는 너무 수동적이에요.”서연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테이블 끝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던 서단이 고개를 들었다.“뭐가?”“우리가 하는 방식 말이야. 최민준은 계속 물건을 뿌리고 있는데 우리는 기다리고 있잖아.”“누나. 나 믿지?”“갑자기?”“손님이 안 오면 우리가 찾아가면 되잖아.”서연이 의아한 얼굴로 동생을 바라봤다.“그 많은 사람 중에서 누굴 찾아가?”서단이 그 질문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씩 웃더니 노트북을 조작했다. “드디어 물어보네.”“……너 뭐 했지?”“뭘 했을까?”“그 얼굴 알아. 어릴 때부터 뭔가 만들어놓고 칭찬받고 싶을 때 꼭 그 표정이었어.”“역시 누나는 못 속인다니까.”서단이 자리에서 일어나 노트북을 대형 모니터에 연결했다. 몇 번 키를 누르자 수십 개의 사진과 이름, 물건의 목록이 복잡한 선으로 연결된 화면이 나타났다.모두 하던일을 멈추고 화면에 집중했다.“지금까지 확보한 최민준 관련 자료입니다. MJ Gallery에서 직접 거래된 물건부터 페이퍼 컴퍼니를 거친 물건, 경매 기록 것까지 싹다 정리했습니다.”서연이 가까이 다가갔다.“그래 그 리스트에 있는 사람들의 연락을 기다리는 거잖아. 연락은 전혀없었고.”“에헤이 누님, 그냥 정리만 했으면 제가 이렇게 자랑스럽게 보여드리겠습니까?”서단이 키를 누르자 화면 한쪽에 여러 단어가 떠올랐다.이상행동, 환청, 환각, 악몽, 골동품, 귀신, 저주.......“최민준과 관련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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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15화. 까마귀115화. 까마귀천 년 동안 수없이 많은 도자기를 만들었지만 누군가와 웃고 떠들며 함께 만든 것은 없었다.그래서인지 서툰 흔적까지 그대로 남겨두고 싶었다.“……잘 말려야겠군.”단은 그릇을 가장 안전한 자리로 옮긴 뒤 공방 밖으로 나왔다.아무리 서연에게 허락한 공간이라 해도 이곳은 여전히 천 년 동안 자신의 시간과 비밀을 품고 있는 장소였다.조금 전에는 서연과 함께 나오느라 제대로 결계를 확인하지 못했으니 다시 단단히 잠가둘 생각이었다.까악.처마 너머 대나무 가지 위에 검은 까마귀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인 채 단을 바라보는 모습만 보면 흔한 새와 다를 것이 없었다.하지만 단의 시선이 가늘어지는 순간, 검은 깃털 사이에 숨어 있던 붉은 기운이 모습을 드러냈다.실핏줄처럼 가늘게 이어진 주술의 흔적.낯설지 않았다.익선동 카페의 거울 뒤에 숨어 있던 것과 같은 종류의 기운이었다.단의 얼굴에서 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여기까지 따라왔군.”까마귀의 시선은 공방을 향해 있었다.그 안에는 천 년 동안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자신의 작품들이 있었고, 오늘 처음으로 다른 사람과 함께 만든 그릇 하나가 놓여 있었다.서연의 손자국이 남은 그릇.단의 눈빛이 서늘하게 식었다.우우웅.그가 손을 들어 올리자 공방 주변의 공기가 낮게 떨렸다.보이지 않는 결계가 공방 전체를 감싸고, 그 위로 다시 한 겹의 막이 포개졌다. 천 년의 세월 동안 단이 쌓아온 신력이 공간을 빈틈없이 봉쇄하자 대숲의 공기마저 무겁게 가라앉았다.푸드득!까마귀가 날아올랐다.녀석은 대숲 위를 한 차례 선회하며 단을 내려다봤지만 단은 막지 않았다.오히려 가만히 서서 멀어지는 검은 점을 끝까지 바라봤다.저것이 최민준의 눈이라면 자신이 감시를 알아챘다는 사실까지 그대로 가져가게 둘 생각이었다.단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보고 가라.”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걸렸다.“어차피 네 것이 될 일은 없으니.”
Last Updated: 2026-09-19
Chapter: 114화. 놀다 보니114화. 놀다보니“괜찮아요. 정말 하나도 안 다쳤어요.”“그럼 됐어. 다음부터는 앞 좀 보고 뛰어. 내가 계속 따라다니면서 잡아줄 수도 없잖아.”말은 그렇게 했지만 조금 전 누구보다 다급하게 달려온 사람 역시 은랑이었다.서연은 그런 그가 귀여운지 웃으며 손을 들었다가 흙투성이가 된 손바닥을 보고 멈칫했다.“은랑 씨, 머리 한 번 쓰다듬어도 돼요?”은랑의 눈이 서연의 손으로 향했다.“……그 손으로?”“싫으시면 안 할게요.”은랑은 잠시 망설이다 서연 앞으로 고개를 살짝 숙였다.“……해도 돼.”“네?”“쓰다듬는 거. 나 그런 거 싫어하지 않아.”서연이 오히려 당황했다.“아니에요. 제가 말을 잘못했어요.”“왜? 해준다며. 흙 묻어도 금방 씻을 건데 뭐.”“어휴, 아니에요. 제가 감히 우주 대스타를 귀엽다고 생각했네요. 죄송합니다.”은랑은 아쉬운 듯 고개를 들면서도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그럼 다음에 꼭 해줘.”“네?”“흙 없을 때.”그 모습을 보고 있던 단의 미간이 조금씩 좁아졌다.루나 역시 서연 앞에 순순히 머리를 숙였던 은랑에게서 좀처럼 시선을 떼지 못했다.서연이 쓰다듬어준다는 말 한마디에 고개까지 숙이고, 거절당하고도 저렇게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 즐겁던 기분이 가라앉았다.‘……별게 다 신경 쓰이네.’그때 흙투성이가 된 서단이 끼어들었다.“그런데 우리 이 상태로 집에 들어가면 김 실장님이 진짜 화내실 것 같은데요. 특히 단 형 셔츠는 제가 봐도 좀 심각한데…….”모두가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그제야 자신들의 꼴이 눈에 들어왔다.은랑의 은빛 머리카락에는 흙이 묻었고, 서단의 양 볼에는 누가 그렸는지도 모를 줄무늬가 생겼다.루나조차 코끝과 이마에 진흙 자국을 달고 있었으며, 가장 깔끔을 떨던 단은 얼굴은 물론 셔츠까지 엉망이었다.마침 뒷문이 열렸다.김 실장이 마당으로 나오다 그대로 멈췄다.긴 침묵 끝에 그가 마당에 선 다섯 사람을 천천히 훑어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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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13화. 식구113화. 식구서단까지 소매를 걷어붙이면서 마당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은랑에게서 도망치던 서연이 서단을 피해 방향을 틀고, 서단은 누나를 잡으러 가다가 은랑과 부딪힐 뻔했다.단은 한쪽에 서서 팔짱을 낀 채 세 사람을 구경했고, 루나 역시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혀를 찼다.“아주 신이 났구나. 나이가 몇인데 흙이나 묻히고 뛰어다녀. 은랑, 너는 아이돌이라는 놈이 얼굴 관리도 안 하고 뭐 하는 짓이야?”“루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 웃고 있잖아.”“네 얼굴이 우스워서 그래.”그때 은랑을 피해 달려오던 서연이 루나 앞에서 갑자기 멈췄다.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루나가 불길한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서연아. 설마.”“루나 언니.”서연이 활짝 웃었다.“혼자 깨끗하시면 섭섭하잖아요. 우리 한 식구인데.”“서연아, 그 한 식구라는 말은 지금 쓰는 게 아니…….”쓱.루나의 코끝에 조그마한 흙점이 찍혔다.잠시 정적이 흘렀다.서연은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보다 슬그머니 뒷걸음질 쳤다.“……예쁘세요.”“그래?”“네. 아주 귀여우세요.”“그럼 나도 너 좀 예쁘게 만들어줄까?”루나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천천히 일어나자 서연의 얼굴이 굳었다.“언니, 설마 화나신 건 아니죠?”“화는 무슨. 네가 그렇게 재미있게 놀고 있는데 나만 빠지면 섭섭하잖아.”루나가 소매를 느긋하게 걷어 올렸다.“걱정하지 마. 신력 같은 건 안 쓸게. 맨손으로 공평하게 놀자.”“그 말이 더 무서운데요!”서연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이번에는 은랑과 서단에 루나까지 합류했다.세 사람이 몰려오자 서연은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가장 가까운 단의 등 뒤로 쏙 숨어버렸다.“단 씨! 좀 막아주세요!”“왜 내가?”“단 씨가 시작했잖아요! 제 얼굴에 흙만 안 묻혔어도 이런 일은 없었어요.”“그건 실수였다고 몇 번을 말하지?”“그러니까 책임지세요. 시작한 사람이 마무리도 해야죠.”단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지만 서연이 자신의 옷자락까지 붙잡고 등 뒤
Last Updated: 2026-09-19
Chapter: 112화. 웃음112화. 웃음야외 테이블에 턱을 괴고 앉아 있던 은랑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루나는 찻잔을 입가에 가져가다 말고 눈썹을 치켜올렸고, 옆에서 휴대전화를 보고 있던 서단까지 고개를 들었다.얼굴과 앞치마에 흙을 잔뜩 묻힌 서연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오고 있었다.그 뒤에서는 평소 옷에 먼지 하나 묻는 것도 싫어하던 단이 콧등에 흙점까지 찍은 채 그녀를 쫓아오고 있었다.세 사람의 시선이 단의 얼굴에 고정되었다.억지로 입꼬리만 올린 웃음도, 누군가를 비웃는 냉소도 아니었다. 숨이 찰 정도로 뛰면서도 얼굴에는 어린아이처럼 환한 웃음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은랑이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멍하니 중얼거렸다.“……도둑놈이 원래 저렇게 웃었나?”루나 역시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천 년을 함께했지만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도 저런 얼굴의 단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그때 단이 마침내 서연의 손목을 붙잡았다.“잡았다.”“놔요!”서연이 빠져나가려 몸을 틀자 단은 다른 손목까지 붙잡았다. 서로 밀고 당기던 두 사람의 몸이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고 나서야 서연도 둘 사이의 거리를 의식했다.조금 전까지 웃고 떠드느라 몰랐던 가쁜 숨소리가 가까이에서 뒤섞였다.서연의 손목을 잡은 단의 손에서도 어느새 힘이 느슨해졌지만 둘 중 누구도 먼저 떨어지지 않았다.단의 시선이 서연의 눈에 머물렀다.웃음기가 조금씩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다른 감정이 내려앉았다.서연도 말이 없어졌다.단의 시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흙투성이가 된 얼굴에서 유일하게 깨끗한 붉은 입술.서연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저기, 주인님.”익숙한 목소리가 분위기를 깨고 날아들었다.서연이 화들짝 고개를 돌리자 은랑이 팔짱을 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나는 주인님이 도자기 배우러 간 줄 알았거든? 그런데 왜 두 사람이 진흙 작품이 돼서 돌아온 거야?”루나가 느긋하게 차를 한 모금 마셨다.“흙을 온몸으로 이해하는 중인가 보지. 아주 열정적인 수업이네.”서단도 휴대전화를 들어 올렸다.“누나, 그
Last Updated: 2026-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