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안은 백성을 자식처럼 아껴, 백성들이 재난을 당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다.그는 이 약쟁이 대군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내고 싶었다.그와 동시에, 초왕비는 초왕을 걱정하여 다시 구도안을 찾아왔다.“구 선생, 전하께서 이원성 대옥에 갇히신 지 벌써 한 달여가 지났네. 이제 또 그 이원성이 약쟁이들에게 점령당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내 몹시 걱정이 되네.”“혹시 자네가 전하를 구해올 방법은 없겠는가?”구도안 역시 자신을 보호하기도 벅찬 상황이었다.그는 책만 읽는 선비로, 칼춤이나 창술을 할 줄 몰랐으니 어찌 사람을 구할 능력이 있겠는가.하지만 한 가지 매우 신경 쓰이는 일이 있었다.“왕비마마, 약쟁이 대군이 정말로 이원성을 점령했습니까? 이 소식이 사실입니까?”초왕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물론 사실이네.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이렇게 급하게 자네를 찾아오지도 않았겠지. 들으니 그 약쟁이들은 성정이 매우 사납다더군. 사람을 보면 물어뜯고, 한 번 물리기라도 하면 그 사람도 약쟁이가 된다고 들었네.”“하물며 전하가 그런 일을 당하면… 정말 상상하기도 싫네.”구도안이 생각하는 것은 황제가 무사하신지 여부였다.그는 황제의 안위가 더 중요했다.“왕비마마, 저 역시 방법이 없습니다만, 선한 사람에게는 하늘이 도우실 것입니다.”이 말을 마치고, 그는 작별 인사를 올렸다.초왕비는 그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며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쾅! 그녀는 화풀이하듯 찻잔을 집어던졌다.“쓸모없는 놈! 긴급한 순간에 하나도 믿을 놈이 없어!”말이 끝나자마자 연아가 들어왔다.이 사람은 초왕 소막이 가장 총애하는 첩으로, 유난히 영리했다.연아는 찻잔 조각들을 피해 걸어와 초왕비 앞에서 예를 올렸다.“왕비마마, 너무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첩이 보기에는, 정말로 약쟁이들이 성을 공격했다면 대옥 안이 오히려 비교적 안전할 것입니다.”초왕비가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그게 무슨 뜻이냐?”연아가 천천히 말했다.“첩이 들으니, 그 약쟁이들은 사실 정
서태상이 봉구안에게서 온 서신을 받은 시점은 벌써 이틀 뒤였다.서신에는 즉시 성문을 모두 닫으라는 명령이 담겨 있었다.“오라버니, 무슨 일이에요?”동생 서소현이 그의 굳어진 얼굴을 보고 불안하게 물었다. 혹시 표국에 무슨 사고라도 난 건 아닐까, 걱정이 앞섰다. 결혼을 앞둔 그녀는 오라버니의 권유로 요즘 집에 머물며 조용히 혼례 준비만 하고 있었다.하지만 만약 표국에 일이 생겼다면, 누구보다도 그녀가 가장 먼저 나설 터였다.“오라버니, 제발 말 좀 해주세요!”서소현이 다급히 물었지만, 서태상은 대답 대신 문밖으로 나가 사람을 찾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어서 나를 따라 군수 대인을 뵈러 가자!”서태상의 뒷모습을 본 서소현은 뒤따르려 했다. 그러나 그가 문 앞에서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엄숙하게 당부했다.“집에 꼭 있거라. 절대 나가지 말고. 내가 돌아올 동안 네 형수와 조카를 잘 부탁하마.”서소현의 눈에 걱정이 가득 어렸다.“도대체 무슨 일인데요? 왜 이리 심각하세요?”하지만 서태상은 더 이상 자세히 말하지 않고, 급히 떠날 채비를 했다.그는 한 시라도 빨리 군수를 만나러 가 성문을 닫는 명령을 올릴 수 있도록 보고해야 했다.“말로 다 설명할 시간이 없다. 아무튼 절대로 밖에 나가선 안 된다. 무슨 일이 생기든 문 꼭 걸어 잠그고 버텨야 해. 알겠느냐?”당부를 마친 서태상은 곧장 말에 올라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군수부에 도착했다.“성문을 닫자고? 폐하의 명이 맞느냐?”군수는 여전히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서태상이 그저 백성 출신일 뿐이라고 여겼던 그에겐, 황제의 명령을 미리 알 수 있다는 것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그러자 서태상이 품 속에서 영패를 꺼내 들었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이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군수는 그 영패를 보자 얼굴빛이 싹 바뀌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는 믿기지 않는 듯 중얼거렸다.“아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폐하의 명이 있다면 당연히 자신에게 직접 전서를 보내야 할 텐데
약쟁이들이 퍼져나가는 속도는 상상을 훨씬 뛰어넘었다.봉구안의 차분한 지시 아래, 호위들은 모두 역관 안으로 물러나 문을 안쪽에서 단단히 잠그고, 탁자와 의자로 뒤를 막아 괴력을 지닌 약쟁이들이 문을 부수지 못하도록 했다.불행 중 다행으로 역관에는 지하창고가 있어, 그곳의 양식으로 한동안은 버틸 수 있었다.그럼에도 봉구안은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그녀가 소욱과 의논했다.“뒤에서 이 약쟁이들을 조종하는 자는 아마도 폐하를 죽이려는 자일 것입니다.”“따라서 이 역관도 안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만에 하나를 대비해 땅굴을 파야 합니다. 하나는 탈출용으로, 다른 하나는 몸을 숨길 곳으로 말입니다.”소욱이 그녀의 방법에 동의했다.현재 인력으로는 단시간에 성 밖으로 나가는 땅굴을 파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시도해볼 만했다.소무가 소욱 곁에서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았다.그가 불만을 토했다.“사형, 사부님께서 큰 재앙이 있을 것을 알고 계셨다면 왜 다른 사형들도 함께 하산시키지 않으셨을까요!”이제야 그는 사람이 많으면 일하기 좋다는 말을 제대로 이해했다.땅굴 파는 일은 서둘러야 했다.소욱이 막 명령을 내리려던 순간, 봉구안이 한 장의 도면을 꺼냈다. 언뜻 보기에는 지도 같았다.그녀가 그 도면을 탁자 위에 펼치며 말했다.“비록 인력이 부족하지만, 운이 좋다면 바로 '거미줄'에 닿을 수 있을 것입니다.”거미줄이라는 말에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소욱이 즉시 물었다.“이곳에도 '거미줄'이 설치되어 있느냐?”봉구안이 고개를 끄덕거렸다.“네.”“북상 순시 전에 담대연을 만났습니다. 이 도면은 그가 그린 것입니다.”소욱이 벌떡 말했다.“언제 담대연을 만났느냐? 어찌 난 모르는 것이냐?”그의 표정은 마치 무언가를 의심하는 듯했다.소무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사형, 지금이 언제인데 그런 걸 따지십니까? 마마 말씀을 우선 들어보세요!”봉구안도 소욱을 나무랐다.“맞습니다. 지금은 정사를 논하고 있으니
역관 밖의 상황은 매우 급박하게 돌아갔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황제와 황후의 안전이었다. 진한길은 즉시 두 손을 모아 예를 올리며 말했다.“폐하, 마마, 부디 안으로 드십시오!”소욱은 눈을 가늘게 뜨고 집중한 채, 보고하러 온 호위에게 물었다.“자세히 말해 보아라. 그 기이한 행동을 보이는 자들이 몇이며, 관청에서는 진압을 시도했느냐?”호위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폐하, 바깥은 인파로 들끓고 있사오나, 아직 관군은 보이지 않았습니다.”봉구안은 진한길에게 지시했다.“진한길, 소무와 함께 폐하를 먼저 안으로 모셔라.”그녀의 눈에는 차가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 소욱은 불안한 표정으로 그녀의 팔을 움켜잡았다.“구안아, 너 지금 무엇을 하려느냐?”봉구안은 그의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팔을 빼며 차분히 말했다.“나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잠시 지붕 위에 올라가 상황을 살펴보려 합니다.”가만히 앉아 죽음을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상황을 직접 확인하고, 탈출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소욱은 그녀가 걱정되어 못마땅한 듯 말했다.“나도 함께 가겠다.”하지만 봉구안의 눈빛은 단호했다. 타협 따위는 없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폐하, 지금은 폐하께서 움직이실 때가 아닙니다. 지금은 그 누구보다 냉정해지셔야 합니다.”소욱이 더 말하기도 전에, 봉구안은 몸을 솟구쳐 지붕 위로 날아올랐다. 오백도 즉시 뒤를 따랐다. 그는 봉구안의 직속 호위였다.소무가 다가와 소욱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사형, 어서 안으로 들어가세요. 폐하가 무사하셔야 사부님도 안심하실 테니까요. 사부님께서도 그러셨잖아요. 이번 재앙은 사형을 겨냥한 것이라고.”소욱은 손가락을 굳게 오므리며 주먹을 쥐었다. 그러고는 봉구안의 말에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은 봉구안의 안위와 역참 밖 백성들의 안전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다.지붕 위에서 봉구안과 오백은 민첩하게 올라섰다. 그들은 지붕의 한쪽에 몸을 낮추고 아래를 살폈다. 곧, 두 사람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현장
관원들은 장공주부에 도착하자마자, 장공주가 말한 위치를 따라 신속히 수색을 벌였고 곧바로 그 명부를 찾아냈다.명부에는 수많은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각 표국마다 맡은 책임자의 이름이 정확히 기록돼 있었고, 임원표국의 책임자란에 적힌 이름은 바로 '서진'이었다.관원들은 장공주 저택의 하인들을 불러 서진이라는 인물을 물었다. 그곳엔 기억하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예전에 장공주가 총애하던 남첩 중 한 명으로, 당시 특별히 공주의 사랑을 받았던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모습을 감추었는데, 그가 표국 책임자로 발령되었다는 것은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천옥. 서진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장공주는 단번에 그 얼굴을 떠올렸다. 미모가 뛰어나 이름처럼 성별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고, 머리도 비상해 장공주의 표국 운영을 도맡아 많은 이익을 남겨줬던 인물이었다. 지금 남제 전역에 세워진 수많은 표국도 사실 서진의 제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그녀는 어느 날 새로운 남첩을 들이게 되었고, 서진을 저택 밖으로 내보내며 바깥에서 재물을 벌어오게 하였다. 그 후로 그는 단 한 번도 공주부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번 사건이 불거지지 않았다면, 그녀도 서진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공주마마께선 서진이란 자의 가문이나 배경을 알고 계십니까?”관원이 물었다.장공주는 수많은 남첩을 거느려왔지만, 절대 멍청하게 아무나 받아들이진 않았다. 신분이 불분명하거나 출처가 의심스러운 자는 절대 가까이두지 않았다. 그들은 집안 배경이 출중한 자들이 대부분이었다.서진을 처음 들인 것이 오래전이라 세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당시 자신이 직접 신원을 조사했던 것을 생각하면 문제가 없었던 인물임이 분명했다.하지만 관원들 입장에선 당혹스러웠다. 출생지도, 부모의 이름도 알 수 없는 자라니, 수사가 난관에 부딪혔다.장공주는 그런 사정 따윈 신경 쓰지 않았다.“이제 날 풀어줘도 될 듯한데?”하루도 더 이 천옥에 있고 싶지 않았다.그러자 관원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네 말은, 임원표국이 적국과 내통했다는 것이냐?”장공주 소기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관원의 목소리는 무표정하고 냉랭했다.“그렇습니다.”그 확언이 떨어지자, 소기는 바로 받아쳤다.“그렇다면 그 임원표국은 내 소유가 아니다!”“……”관원의 얼굴이 굳었다.“공주마마께선, 그저 아니라 하신다고 해서 모든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이미 증거는 확보돼 있습니다. 증거 없이 공주마마를 천옥까지 모셔올 저희가 아니란 소립니다.”“그러니 경솔히 말하지 마시고, 신중히 입을 여시지요. 이곳에서의 형벌은 결코 가볍지 않으니 말입니다.”천옥, 이곳은 고문이 일상인 장소였다.하지만 장공주는 물러서지 않았다.“이 일은 나와는 무관하다. 내 명의로 운영되는 표국이 여럿 있긴 하나, 결단코 적국과 연루된 곳은 없다.”그녀는 그저 자신의 목숨이 아까워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지금의 그녀는 남제의 공주였다.원하면 뭐든 가질 수 있는 신분에서, 어찌 어리석게도 그런 짓을 하겠는가?왕자들이 반란이라도 일으키면 황위라도 노릴 수 있지만, 공주의 신분인 자신이 얻을 건 아무것도 없었다.만약 여기가 서여국이었다면 모를까. 이곳 남제에선 그녀가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었다.관원은 그녀의 부정적인 답변을 들은 후 사람을 불렀다.물증과 인증을 가져오기 위함이었다. 소기는 이 상황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관원을 바라보았다.‘증거라니, 대체 무엇이?’그때, 붉은 옷자락을 휘날리는 인물이 방으로 들어섰다.피라도 머금은 듯한 그 기세에, 그녀의 눈썹이 꿈틀였다. 낯선 얼굴이었다.“공주 마마!”“신은 강림이라 합니다.”“임원표국의 내통 정황은 바로 신이 밝혀낸 바입니다!”강림은 어깨를 으쓱이며, 누구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듯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소기는 마음속으로 그 이름을 되뇌었다.‘강림… 들어본 적 없는데.’그러나 곧 들이밀어진 인장, 장부, 통신 내역을 보는 순간, 그녀의 표정이 단숨에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