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부옥이 갑자기 남제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자, 서왕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며칠 전 자신이 돌아가자고 했을 땐, 남강을 버릴 수 없다며 단호히 거절했던 그녀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왜?그녀의 감정이 너무 격해진 탓이었을까. 서왕이 이유를 묻기도 전에, 완부옥의 양수가 터졌다.양수가 터졌다는 건, 곧 출산이 시작된다는 신호였다.완부옥 역시 이렇게 갑작스럽게 일이 터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처음 겪는 상황에 서왕은 순식간에 허둥지둥했다. 그는 곧 완부옥을 안아 들고 방 안으로 뛰어들며 외쳤다.“어서 산파를 불러와라!”마당에 있던 유화를 비롯한 호위들의 얼굴에 기쁨이 번졌다. ‘드디어, 왕비가 해산하시는구나!’그들은 정신없이 달려가 산파를 불러왔다.산파가 도착하기 전까지 서왕은 방 안에서 완부옥 곁을 지켰다.서왕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미리 숙련된 하녀 몇 명을 준비시켜 두고 있었다. 그들은 즉시 뜨거운 물을 데우고, 가위와 천 등 필요한 물품들을 분주히 챙겼다.완부옥은 배를 부여잡고 극심한 고통에 신음소리를 냈다. 그녀는 서왕의 손을 꽉 잡고, 그 손을 입에 물고 악물었다.서왕은 아픔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 손으로 그녀의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었다.“괜찮아, 곧 산파가 도착할 거야… 괜찮을 거야…”그 말은 마치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한 주문 같았다.지금 완부옥의 모습은 서왕조차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고, 얼굴은 일그러졌으며, 혈색조차 무섭도록 창백했다.그녀를… 잃고 싶지 않았다.여인이 아이를 낳는 고통은, 그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일 터였다.이미 정신이 반쯤 나가버린 상태였기에, 완부옥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그때였다. 찰싹!서왕의 뺨에 손바닥이 힘껏 날아들었다.그제야 그는 정신을 차렸다.핏줄이 도드라질 만큼 분노한 완부옥이 그를 향해 외쳤다.“궁으로 가십시오! 그리고 폐하께… 폐하께 말씀드려주세요! 자고가… 남제에 있다고! 사람을 보내 찾으라고요
“내통자가 있다고?!”남강왕은 그 말에 즉각 격한 반응을 보였다.생각해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심성의 실력이 어떤지 남강왕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고왕까지 포함해서 말이다.내통자가 없었다면, 약쟁이단이 고왕의 존재를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또, 어떻게 고왕과 숙주를 분리하는 방법까지 알아낼 수 있었겠는가?“이 일은 반드시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남강왕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그런 배신자는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고왕을 잃는다면 남강의 독장은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잠시 후, 완부옥은 궁을 떠났다. 바깥에는 서왕이 기다리고 있었다.서왕의 눈빛에는 깊은 걱정이 담겨 있었다. 곧 출산을 앞둔 그녀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을 더는 보고 있을 수 없었다.“남제로 돌아가자.” 서왕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고통에 시달렸던 완부옥이었지만, 지금 그녀의 눈빛은 오히려 더욱 단단하고 맑게 빛나고 있었다.“이런 상황에 제가 남강을 떠날 수는 없어요. 폐하께서 성문을 닫으라 명하셨으니, 어차피 나갈 수도 없고요.”서왕은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남강을 외면하자는 게 아니다. 그저… 우리 아이부터 생각하자는 거지. 날짜를 계산하면 네 출산도 머지않았다. 무사히 아이부터 낳고, 그다음에 다시…”그러나 완부옥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안 돼요. 이 일은 이미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더 늦기 전에 막지 않으면 남강은 물론, 남제까지 위험해질 수 있어요. 아이는… 나중에 또 가질 수 있어요.”그녀의 눈빛엔 흔들림이 없었다.아이는 포기할 수 있었다. 저울의 다른 쪽엔 남강 전체가 걸려 있었으니까.서왕은 그녀의 선택을 이해하면서도, 입으로 직접 ‘아이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답답하게 조여왔다.그토록 기다려온 아이였다. 그런데 왜 이토록 고난과 재앙 속에 있어야만 하는가.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자신이라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그럴 수밖에 없겠지.”서왕은 조용히
완부옥은 사부 심성의 손을 꽉 붙잡았다.“사부님, 어서 말씀해 주세요. 대체 무엇을 알고 계신가요? 왜 저를 이 일에 끼지 못하게 하시는 거예요?”심성은 간신히 입을 뗐다.“그들은… 고왕을 모고로 삼고, 자고를 연성했다. 그 자고에 약쟁이의 독을 결합시켜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기고 있어. 곧, 세상 사람들이 전부 약쟁이가 되고 말 거야… 넌 막을 수 없다, 부옥아…”그 말을 들은 완부옥은 등골이 오싹해지며 소름이 끼쳤다.“그럴 수가!”“그 약쟁이단 놈들, 당장이라도 천 벌을 받아 마땅한 자들이군요!”“도대체 뭘 노리는 거죠? 남강 전체를 지배하려는 겁니까?”심성의 시선이 점점 흐려졌다. 그녀는 허공을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아마도… 천하의 백성 모두를 지배하려는 게겠지…”그토록 큰 야망을 품었다면, 남강 하나로 만족할 리 없었다.완부옥은 더 묻고 싶었지만, 심성의 의식은 이미 흐려져 있었다.심성의 시선은 완부옥을 지나 먼 곳을 향했고, 마지막 말을 힘겹게 내뱉었다.“부옥아… 꼭 살아야 한다. 그래야… 내가 네 어머니 볼 면목이 있어…”그 말을 끝으로 심성은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사부님!”이토록 갑작스럽게 사부가 세상을 떠날 줄은 완부옥도 예상하지 못했다.그녀는 넋이 나간 듯 심성의 축 늘어진 팔을 바라보다, 이내 눈이 벌겋게 충혈됐다.“사부님…!!”그 절규소리는 바깥에 있던 서왕의 귀에 닿았다.그는 놀란 마음으로 문을 밀고 들어왔다.그녀는 배가 불러 힘겹게 무릎 꿇은 상태였다. 침상 곁에 앉아 숨을 몰아쉬는 완부옥을 보자, 서왕은 가슴이 무너지는 듯해 서둘러 그녀를 부축했다.그제야 심성이 죽은 것 같다는 걸 알아챘다.서왕은 즉시 의원을 불렀다.의원이 코끝을 살피고 맥을 짚은 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솔직히 말해 서왕은 심성에게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오히려 완부옥에게 고왕의 자리를 강요했던 그녀가 못마땅했던 적도 있었다. 그녀가 죽었다 해도, 애석함은 잠시일 뿐 마음이 크게 흔들리진 않았다.하지만 완부옥은
서왕을 보자, 완부옥의 흔들리던 마음은 단번에 평온을 되찾았다.오랜만의 재회라고 해서 반가움이 북받친 것도 아니었다.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오직 사부와 동문들에 대한 걱정뿐이었다.“사람들을 우선 구해주세요!”완부옥은 눈물이 맺힌 눈으로 절박하게 외쳤다.서왕은 완부옥만을 눈에 담고 있다가, 그제야 주변의 참혹한 상황을 인지했다. 그는 그녀를 조심스레 품에 안고, 곧바로 동행한 병사들에게 명령했다.“어서 부상자부터 구해라!”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정예병들은 이미 구조 작업에 돌입한 상태였다.정예군 수령 왕효가 조심스레 조언했다.“전하, 왕비마마를 먼저 안전한 곳으로 옮기시지요. 이곳은 아직도 위험합니다.”유화 역시 이곳에 머무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해, 빠르게 완부옥을 호위해 약쟁이 소굴에서 빠져나왔다.그 순간까지 버티고 있던 완부옥은 구원군의 모습을 보자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서왕은 그녀를 근처 여관으로 데리고 가 하인에게 뜨거운 물부터 끓이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자칫 그녀가 다치진 않을까 조심스러웠다.이미 만삭에 가까운 그녀의 배를 보고 그는 더욱 안절부절못했다.“어디 다친 데는 없느냐? 괜찮느냐?”그는 그녀의 몸을 꼼꼼히 살펴보다가, 팔에 난 상처 하나를 발견하곤 서둘러 붕대를 감아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한지 몇 번이나 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완부옥은 그런 서왕의 꾀죄죄한 모습을 보고 입을 삐죽였다.“살아있는 사람한테 꼭 장례라도 치른 듯한 표정을 지으시네요? 먼저 먹을 것부터 좀 주세요. 굶겨 죽이려고요?”그녀의 목소리에는 은근한 원망이 배어 있었다. 자기 몸이 뼈만 앙상하게 남은 것도 못 봤단 말인가?그제야 정신을 차린 서왕은 부리나케 하인에게 음식을 준비하라고 했다.완부옥의 실종은 그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간 그는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고 그녀를 찾는 데만 몰두해왔던 것이다.한 시진쯤 지나자 따끈한 음식이 한상 가득 차려졌다.서왕은 그녀를 침대에서 일으켜 세우고, 직접
구도안은 백성을 자식처럼 아껴, 백성들이 재난을 당하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다.그는 이 약쟁이 대군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내고 싶었다.그와 동시에, 초왕비는 초왕을 걱정하여 다시 구도안을 찾아왔다.“구 선생, 전하께서 이원성 대옥에 갇히신 지 벌써 한 달여가 지났네. 이제 또 그 이원성이 약쟁이들에게 점령당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내 몹시 걱정이 되네.”“혹시 자네가 전하를 구해올 방법은 없겠는가?”구도안 역시 자신을 보호하기도 벅찬 상황이었다.그는 책만 읽는 선비로, 칼춤이나 창술을 할 줄 몰랐으니 어찌 사람을 구할 능력이 있겠는가.하지만 한 가지 매우 신경 쓰이는 일이 있었다.“왕비마마, 약쟁이 대군이 정말로 이원성을 점령했습니까? 이 소식이 사실입니까?”초왕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물론 사실이네.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이렇게 급하게 자네를 찾아오지도 않았겠지. 들으니 그 약쟁이들은 성정이 매우 사납다더군. 사람을 보면 물어뜯고, 한 번 물리기라도 하면 그 사람도 약쟁이가 된다고 들었네.”“하물며 전하가 그런 일을 당하면… 정말 상상하기도 싫네.”구도안이 생각하는 것은 황제가 무사하신지 여부였다.그는 황제의 안위가 더 중요했다.“왕비마마, 저 역시 방법이 없습니다만, 선한 사람에게는 하늘이 도우실 것입니다.”이 말을 마치고, 그는 작별 인사를 올렸다.초왕비는 그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며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쾅! 그녀는 화풀이하듯 찻잔을 집어던졌다.“쓸모없는 놈! 긴급한 순간에 하나도 믿을 놈이 없어!”말이 끝나자마자 연아가 들어왔다.이 사람은 초왕 소막이 가장 총애하는 첩으로, 유난히 영리했다.연아는 찻잔 조각들을 피해 걸어와 초왕비 앞에서 예를 올렸다.“왕비마마, 너무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첩이 보기에는, 정말로 약쟁이들이 성을 공격했다면 대옥 안이 오히려 비교적 안전할 것입니다.”초왕비가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그게 무슨 뜻이냐?”연아가 천천히 말했다.“첩이 들으니, 그 약쟁이들은 사실 정
서태상이 봉구안에게서 온 서신을 받은 시점은 벌써 이틀 뒤였다.서신에는 즉시 성문을 모두 닫으라는 명령이 담겨 있었다.“오라버니, 무슨 일이에요?”동생 서소현이 그의 굳어진 얼굴을 보고 불안하게 물었다. 혹시 표국에 무슨 사고라도 난 건 아닐까, 걱정이 앞섰다. 결혼을 앞둔 그녀는 오라버니의 권유로 요즘 집에 머물며 조용히 혼례 준비만 하고 있었다.하지만 만약 표국에 일이 생겼다면, 누구보다도 그녀가 가장 먼저 나설 터였다.“오라버니, 제발 말 좀 해주세요!”서소현이 다급히 물었지만, 서태상은 대답 대신 문밖으로 나가 사람을 찾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어서 나를 따라 군수 대인을 뵈러 가자!”서태상의 뒷모습을 본 서소현은 뒤따르려 했다. 그러나 그가 문 앞에서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엄숙하게 당부했다.“집에 꼭 있거라. 절대 나가지 말고. 내가 돌아올 동안 네 형수와 조카를 잘 부탁하마.”서소현의 눈에 걱정이 가득 어렸다.“도대체 무슨 일인데요? 왜 이리 심각하세요?”하지만 서태상은 더 이상 자세히 말하지 않고, 급히 떠날 채비를 했다.그는 한 시라도 빨리 군수를 만나러 가 성문을 닫는 명령을 올릴 수 있도록 보고해야 했다.“말로 다 설명할 시간이 없다. 아무튼 절대로 밖에 나가선 안 된다. 무슨 일이 생기든 문 꼭 걸어 잠그고 버텨야 해. 알겠느냐?”당부를 마친 서태상은 곧장 말에 올라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군수부에 도착했다.“성문을 닫자고? 폐하의 명이 맞느냐?”군수는 여전히 느긋하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서태상이 그저 백성 출신일 뿐이라고 여겼던 그에겐, 황제의 명령을 미리 알 수 있다는 것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았다.그러자 서태상이 품 속에서 영패를 꺼내 들었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이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군수는 그 영패를 보자 얼굴빛이 싹 바뀌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는 믿기지 않는 듯 중얼거렸다.“아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폐하의 명이 있다면 당연히 자신에게 직접 전서를 보내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