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같은 날 밤 9시 10분, 관사 공용 세탁실과 201호.찰칵.도현이 201호로 들어와 세탁실 쪽 관리 문을 잠갔다. 건너오기 전에 복도 쪽 공용문이 닫혀 있고 세탁실에 다른 사람이 없는 것도 확인했다.소율은 잠옷 위에 가디건을 걸친 채 소파 옆에 서 있었다. 자기 방에서 씻고 온 도현도 넥타이 없이 편한 셔츠 차림이었다.그의 빈손을 본 소율이 웃었다."오늘은 노트북 안 가져오셨네요.""어제는 가져와서 후회했거든."전날에는 퇴근 직전까지 마친 수정안에 품평용 포장 사진과 샘플 확인 내역을 덧붙여야 했다. 관사에서도 둘이 노트북을 펴 놓고 마지막 자료를 맞췄다.소율은 일을 마친 뒤 남편의 볼에 입을 맞추며, 미팅이 끝나면 내일은 일찍 쉬자고 약속했었다. 어제 하다 만 질투 이야기도 그때 마저 하기로 했다.도현은 빈손을 들어 보였다."오늘은 일 안 해. 당신이 나 질투했다는 얘기만 들을 거야.""차 안에서도 그렇게 좋아하시더니, 또 듣고 싶어요?""응. 당신한테 직접."소율은 웃으며 다가갔다. 남편의 셔츠 앞자락을 가볍게 잡자 도현이 그녀를 내려다봤다."싫었어요. 다른 여자가 도현 씨한테 관심 있다고 하고, 둘이 저녁 먹자고 하는 거요.""응.""거절할 거라는 건 알았어요. 그래도 보고 있으니까 싫더라고요. 제 남편인데."도현의 입가가 천천히 풀렸다.소율이 눈을 가늘게 떴다."그렇게 좋으세요?""많이.""강 대표님 얘기할 때는 웃지도 못하게 하셨으면서.""그러니까 당신도 나 좀 놀려. 지금은 둘뿐이잖아."소율은 남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뻔뻔하게 웃는 얼굴을 더 보고 있으면 자기도 웃을 것 같아 먼저 입을 맞췄다.짧게 닿았다 떼려는데 도현이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소율은 조금 떨어진 채 그의 눈을 봤다."왜요?""그걸로 끝내려고?""더 해 달라는 말씀은 참 길게 하시네요."소율이 웃으며 셔츠를 당겼다. 도현은 기다렸다는 듯 몸을 숙였다.다시 입술이 닿자 소율의 손가락이 그의 어깨를 꼭 쥐었다. 허리를 받친 손이
같은 날 오후 1시 20분, 온담 품평회장 옆 상담실."28퍼센트에서 낮추는 건 검토하겠습니다. 대신 차 과장님이 운영 실무 연락을 맡아 주세요."세라의 말에 소율이 펜을 내려놓았다. 도현은 섣불리 답하지 않고 그녀를 기다렸다."물류와 비용 질문에는 차 과장님이 답변하실 거예요. 다만 저희 팀에서 누가 어떤 일을 맡을지는 제가 정하겠습니다."소율은 차분하게 말을 마친 뒤 해나의 명함도 앞으로 옮겼다."연락은 저희 세 사람과 온담 담당자가 함께 받는 방식으로 하죠. 차 과장님께 재고를 물으셔도 농가 확인은 윤 대리님이 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같이 알아야 빨리 답할 수 있어요.""저한테 바로 물어보시면 전화 한 번이면 끝날 일도 있어요."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돌고 돌아서 전달받으면 저도 같은 걸 다시 묻게 되더라고요. 출고 시간 놓친 다음에 연락받는 건 정말 곤란하고요."도현도 명함을 테이블에 놓았다."말씀하신 공동 연락 방식으로 진행하겠습니다. 한 차장님이 담당 업무를 정해 주시면 그 범위에서 답변드리겠습니다."세라는 펜을 멈추고 소율을 봤다.공동 연락이 합리적인 건 이해했다. 거기에 차 과장과 자신만 따로 연락하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 소율의 마음도 보였다. 오전에 명패를 옮기던 모습까지 떠올리자 이유가 더욱 분명해졌다.세라가 먼저 가볍게 웃었다."제가 차 과장님께 개인적으로 관심을 보인 게 신경 쓰이셨나 봐요."갑작스럽게 직접 묻는 말에 해나의 손이 멎었다. 소율은 펜을 다시 쥐지 않고 세라와 눈을 맞췄다."어제 배우자가 있다는 말씀을 들으셨죠. 앞으로 개인적인 제안은 하지 않으셨으면 해요.""네. 그 말씀은 어제 받아들였어요. 오늘 운영 담당을 요청한 건 업무 때문입니다.""그렇다면 일 이야기는 이 방식으로 정리하죠."소율이 세 사람의 연락처를 가리켰다.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사이가 궁금해졌지만 묻지는 않았다. 도현은 기혼자라고 밝혔고, 소율은 그에게 개인적인 제안을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여기서 더 파고
같은 날 오전 11시, 온담 품평회장 소비자 평가석.번호가 붙은 접시에 삶은 감자와 잘라 놓은 토마토, 조리한 미역이 나왔다. 생산지와 브랜드 이름은 모두 가려져 있었다.첫 접시를 받은 중년 여자가 감자를 한입 먹었다. 잠깐 씹어 보더니 소금 그릇으로 가던 손을 거뒀다."이건 그냥 먹어도 괜찮네. 우리 집에선 꼭 버터를 찾는데."옆에 앉은 남자는 다른 번호의 감자를 가리켰다."저는 이쪽이요. 샐러드에 넣을 거면 좀 단단한 게 좋아서.""아, 삶아 먹는 것만 생각했는데 그러네요."두 사람은 각자 고른 번호와 이유를 적었다. 소율은 멀찍이 서서 그 모습을 봤다. 취향이 갈리는 대목까지 알아야 어떤 상품으로 소개할지 정할 수 있었다.토마토를 먹던 여자가 안내 직원을 불렀다."끝나면 어디 건지 알려 주시는 거죠? 우리 애가 껍질 질기면 뱉는데, 이건 먹겠어요.""네. 평가가 끝난 뒤 공개하겠습니다.""그리고 큰 상자 말고 작은 것도 팔아 주시면 좋겠어요. 한 번에 많이 사면 결국 저 혼자 다 먹거든요."해나는 그 말을 바로 적었다. 생산자에게 전달할 메모였다. 맛있다는 칭찬 아래에 '소량 포장 요청'까지 큼지막하게 써넣었다.평가표를 모으고 번호를 공개할 시간이 되자 해나가 펜을 꼭 쥐었다.온담 직원이 화면에 품목별 결과를 띄웠다.해담의 세 품목은 모두 맛과 식감 항목에서 입점 기준을 넘었다. 감자와 토마토에는 구매 의향도 높게 나왔다.해나의 어깨가 확 내려갔다."하아... 다행이다."작게 중얼거린 말이었지만 소율에게는 들렸다. 소율도 웃으며 메모 위에 손을 얹었다."농가에 전할 말이 생겼네요.""네. 사장님이 전화 받자마자 점수부터 물으실 거예요. 사진 찍어 가도 되겠죠?"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만 오늘 20명의 평가가 전체 고객 반응을 보장하지는 않아요. 그 점도 같이 말씀해 주세요.""알겠습니다. 그래도 좋아하실 거예요. 적어도 맛없어서 못 판다는 말은 안 들어도 되니까요."해나는 평가표를 찍은 뒤 포장 비교용
다음 날인 화요일 오전 10시, 온담 공개 품평회장.한소율은 백세라의 옆자리에 놓인 명패부터 집어 들었다.[차 도윤 과장]그 옆에는 자신의 명패가 있었다. 긴 심사대의 좌석 순서는 백 이사, 차 과장, 한 차장, 윤 대리였다.소율은 두 명패의 위치를 바꿨다. 그리고 백세라 옆 의자를 빼 앉았다.드르륵.뒤따라오던 차도현이 바뀐 명패를 내려다봤다. 소율은 자기 옆자리에 자료를 놓으며 그를 봤다."차 과장님은 여기 앉으시면 돼요. 제가 계산 자료를 같이 봐야 해서요.""...네, 한 차장님."도현은 순순히 아내 옆에 앉았다. 명패를 옮긴 손끝에는 망설임이 없더니, 자신을 보는 눈은 평소보다 얌전했다.그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물 한 모금으로 눌렀다.해나는 마지막 자리에 샘플 목록을 내려놓다가 바뀐 배치를 알아챘다.'아, 오늘 품평회 피바람 불겠네. 시작 전부터 기선 제압 살벌하다...'백세라는 두 사람의 명패를 번갈아 봤다. 어제 운영 협의를 염두에 두고 잡아 둔 자리였다. 차 과장이 기혼자라는 걸 알기 전에 마련한 배치였지만, 소율이 왜 굳이 두 사람 자리를 바꿨는지는 알 것 같았다.세라는 자기 앞에 놓인 펜을 돌리며 웃었다."한 차장님이 제 옆에서 직접 말씀하시겠다는 거죠?""네. 오늘 결정할 게 많으니까요.""좋아요. 그럼 도망갈 틈은 없겠네요.""서로요."소율도 웃었다. 해나는 두 여자 사이에 오가는 미소를 보고 가방에서 물병을 하나 더 꺼냈다. 오늘도 목이 자주 마를 것 같았다.같은 날 오전 10시 10분, 온담 품평회장 심사대.앞쪽 소비자석에 평가단 20명이 모였다. 직원들이 빈 접시와 평가표를 나눠 주는 동안, 세라가 해담상품의 판매 자료를 소율 앞으로 돌렸다."수수료를 낮추려면 계속 팔릴 거라는 근거가 필요해요. 해담은 기존 재구매율이 낮습니다. 이번에 302상자를 파신 건 알지만, 그분들이 다시 살지는 아직 모르잖아요.""다시 주문하고 싶다는 연락은 들어왔어요. 이쪽을 봐 주세요."소율은 추가 주문 예약
"운영 자료 먼저 보자는 뜻이었대요. 저희 셋이 가서 다 확인하고 왔어요. 내일은 이 상자보다 상품이 더 중요하니까 그거부터 부탁드려요.""알았어. 윤 대리는 왜 이렇게 급해?""지금부터 급해야 내일 안 급하죠. 어서요, 어서."해나는 직원을 포장실 쪽으로 보내고 문 앞에서 짧게 숨을 내쉬었다.도현은 웃음을 감춘 채 자기 자리로 향했다. 소율은 그 뒷모습을 보다가 시계를 확인했다."차 과장님. 수정 협상안은 오늘 안에 제출해 주세요. 수수료별 손익, 반품 비용 부담, 독점 조항을 제외했을 때의 공급안까지요.""네. 준비하겠습니다."도현은 곧바로 노트북을 열었다. 소율도 더 말을 보태지 않고 자기 업무로 돌아갔다.질투가 난다고 해서 불필요한 일을 시킬 생각은 없었다. 내일 협상에서 사용할 자료였고, 오늘 두 사람이 함께 확인한 빈칸이었다.그걸 아는 도현도 손을 늦추지 않았다.오후 5시 32분.회의실 스크린에 수정안이 올라갔다. 도현은 수수료와 판매량이 달라질 때 손익이 어떻게 바뀌는지 보여 준 뒤, 협상에서 지켜야 할 기준을 짚었다.소율이 한 항목에 표시했다."이 비용은 온담이 부담한다고 확정된 게 아니죠?""네. 그래서 별도 협의로 표시했습니다. 이 항목이 저희 부담으로 바뀌면 허용 가능한 수수료도 내려갑니다.""그럼 이걸 우선 확인하죠. 내일 답을 받아야 숫자를 확정할 수 있겠네요."해나는 두 사람의 설명을 듣고 준비 목록 옆에 물음표를 붙였다. 현장 직원들도 각자 담당할 항목을 확인했다. 회의는 필요한 이야기만 마친 뒤 끝났다."내일 출발 시간은 단체방에 다시 올릴게요! 샘플은 포장실 냉장 구역에 따로 모아 주세요. 개인 물건이랑 섞이면 제가 못 찾아요!"해나가 직원들과 함께 나가며 마지막까지 당부했다.복도에서 멀어지는 발소리가 잦아들자 도현이 노트북을 닫았다. 소율은 수정안을 파일에 넣으며 그를 봤다."수고하셨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것보다 빨리 끝내셨네요.""내일 쓰실 자료니까요.""네. 이대로 준비할게요."소율
도현이 아내를 봤다. 소율은 계속 메모만 읽고 있었다.일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는 표정을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됐다. 세라의 저녁 제안이 신경 쓰였다는 말을 입 밖에 내는 것보다, 확인할 항목을 하나씩 묻는 편이 쉬웠다.도현은 그녀가 펼친 메모 끝을 가볍게 짚었다."업무 확인은 지사에 도착해서 계속하셔도 됩니다.""이동 중에 정리하면 시간이 절약되잖아요.""그렇군요."순순히 물러나는 대답이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은 전혀 다른 쪽으로 갔다."백 이사님은 제 자료를 높게 평가하신 것 같습니다. 직접 만나고 싶다는 말씀도 하시고요."운전석에서 해나의 손가락이 운전대를 톡 눌렀다.'그 말을 왜 지금 해요!'소율이 메모에서 눈을 들었다."자료만 평가하신 건 아닌 것 같던데요.""그러면 어떤 부분일까요?"도현은 정말 궁금하다는 듯 고개까지 기울였다. 소율은 남편의 눈에 걸린 장난기를 보고 입술을 눌렀다.뻔히 알아 놓고 자기 입으로 말하게 할 생각이었다.차를 세워 둘만 이야기할 수도 없고, 해나가 운전 중인 차 안에서 남편 팔을 붙잡고 따질 수도 없었다.소율은 대신 가운데 좌석 앞쪽으로 발을 조금 옮겼다. 도현이 그쪽으로 뻗어 둔 구두 앞코 위에 자기 구두를 얹은 뒤 천천히 힘을 줬다.꾹.도현의 말이 끊겼다. 아플 만큼 세게 밟지는 않았지만, 여기서 그만 놀리라는 뜻은 충분히 전해졌다.해나는 룸미러로 두 사람의 얼굴을 한 번 확인하고 오디오 음량을 올렸다.조용하던 차 안에 경쾌한 노래가 퍼졌다.'나한테는 안 들린다. 나는 도로만 본다. 도로가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아하하하!'도현은 구두를 빼지 않은 채 소율을 봤다."한 차장님. 제 구두는 왜 혼나는 겁니까?""주인이 자꾸 쓸데없는 말씀을 하시니까요.""말을 멈추면 풀어 주십니까?""일단 멈춰 보세요."소율은 결국 웃을 뻔한 입가를 메모로 가렸다. 도현이 그 틈을 보고 목소리를 조금 낮췄다."저녁 제안은 거절했습니다. 배우자가 있다고 말씀드렸고요.""알아요.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