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서 나를 사랑한다고?

이제 와서 나를 사랑한다고?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16
Par:  밤이불Mis à jour à l'instant
Langu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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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확실한 장치를 하나 마련해 뒀거든요.” 내 남편이 우스갯소리로 입에 올리는 ‘장치’는, 빛 한 번 제대로 보지 못한 채 떠나보낸 우리의 아이였다. 진실을 알게 된 날, 나는 비 내리는 거리로 뛰쳐나왔고 사고를 당했다. “지 딸 하나 제대로 못 챙기면서 무슨 회사를 키우겠냐고 난리 칠 게 뻔하잖아.” 역시 내가 살아 있는지보다 돈줄이 끊길까 봐 전전긍긍하는 남자였다. 그런데 남편에게 버림받은 그날, 내 인생에 위험한 남자가 끼어들었다. “이런 건 녹음을 해야지.” “그러니까 내가 도와준다고, 업보 청산.” 지긋지긋했던 결혼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이제야 내 인생을 살아 보려는데. “내 인생을 모조리 망쳐도 좋으니까, 제발 사라지지만 마.” 그런데 이제 와서 나를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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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itre 1

1. 변치 않는 사랑의 대가

“리시안셔스의 꽃말이 뭔지 알아요?”

그가 꽃잎을 조심스럽게 매만지며 물었다. 차강현은 꽃을 다루는 손길마저 다정한 남자였다.

흰 꽃잎 끝을 엄지로 가볍게 쓸어 내리는 손가락이 유난히 길고 곧았다. 값비싼 시계가 소매 아래로 미끄러져 나왔고, 손목을 따라 떨어진 햇빛이 은은하게 빛났다.

나는 꽃보다 그를 먼저 바라봤다.

“……변치 않는 사랑?”

“맞아요.”

풍성하게 겹친 흰 꽃잎 사이로 연한 분홍빛이 번져 있었다. 꽃다발을 감싼 아이보리색 포장지에는 얇은 리본이 매여 있었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꽃 한 송이도 대충 고르지 않았다는 게 느껴졌다.

그가 웃으며 꽃다발을 내밀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계절을 지나더라도,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는 웃었다. 앞으로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봄이 남아 있는지 세어 보는 사람처럼.

“사랑한다는 말을 꽃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요?”

그 말을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말은 변명도 되고 거짓말도 되지만, 꽃은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이잖아요.”

나는 꽃을 받아 들었다. 그가 내게 건넨 마음이 영원할 거라고 믿으면서.

“그럼 결혼 기념일마다 사 줘요.”

“…….”

“꽃이요. 다음 봄에도, 그다음 봄에도.”

조금 유치한 부탁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차강현 앞에서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계산하지 않고 마음껏 기대하고, 충만히 서로를 사랑하며 그렇게 오래 오래.

“약속할게요, 연우연 씨.”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다정했다.

“앞으로도 계속 사 줄게요. 질릴 때까지.”

“꽃이 질릴 리가 없잖아요.”

“그럼 내가 질릴 때까지.”

그의 손끝이 내 뺨을 가볍게 스쳤다.

“우리 오래 사랑해요.”

변치 않는 사랑을 약속했던 날의 꽃.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른 색의 꽃이 피었고, 거리의 나무들은 몇 번이고 잎을 틔웠다. 봄은 돌아왔고, 여름은 지나갔으며, 가을과 겨울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차강현은 더는 내게 꽃을 사 주지 않았다.

그가 내게 마지막으로 준 꽃은 결혼을 약속하던 날의 리시안셔스였다.

***

차강현은 자신이 했던 약속을 더는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굴었다.

식을 올리기 전에 앞서 뱃속에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우린 아이와 함께하는 미래를 상상했고, 우리가 어떤 부모가 될지 이야기했다. 차강현은 내 배에 손을 얹고 아직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아이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그래서 결혼식을 올린 뒤 얼마 되지 않아 아이를 잃었을 때, 나는 그 역시 나만큼 아플 거라고 믿었다. 우리가 함께 기다렸던 아이였으니까. 같은 슬픔을 나누고, 서로를 끌어안은 채 견뎌야 할 상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에게 아이는 사랑의 결실이 아니었다.

나와 결혼하기 위해 필요했던, 하나의 수단일 뿐이었다.

“도대체 왜 이래요!”

처음에는 슬픔을 감당하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 역시 아버지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우리에게 시간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아이를 잃은 뒤에도 나는 그를 이해하려 애썼다. 나만큼이나 아플 테니, 나를 위로할 여유조차 없을 거라고. 어쩌면 제 슬픔을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나에게 모진 말을 내뱉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견딜 만했다. 그가 달라진 이유를 상실에서 찾는 동안만큼은, 내가 사랑했던 남자가 여전히 존재한다고 믿을 수 있었으니까.

“사람 피곤하게 하지 말고 좀 조용히 해.”

차강현은 넥타이를 풀며 말했다. 며칠째 잠을 설친 사람처럼 피곤한 얼굴이었지만, 그 피로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적어도 아이를 잃은 슬픔은 아닌 듯했다.

“나도 힘들어요. 나만 힘든 거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가 무심하게 되물었다.

“내가 뭘 해 줘야 하는데?”

순간 말문이 막혔다.

무엇을 해 달라고 한 적은 없었다. 함께 슬퍼해 달라고, 나만 이 집에서 아이를 잃은 사람처럼 남겨 두지 말아 달라고. 고작 그 정도를 바랐을 뿐이었다.

“당신도 우리 아이…….”

“그 얘기 좀 그만해.”

강현이 말을 잘랐다.

“하나 더 만들어주면 그만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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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aires

권녁수
권녁수
신작 나왔다고 알림이 와서 들어와봤는데 시작부터 대박이네요 같이 달리겠습니다
2026-10-15 23:4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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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변치 않는 사랑의 대가
“리시안셔스의 꽃말이 뭔지 알아요?” 그가 꽃잎을 조심스럽게 매만지며 물었다. 차강현은 꽃을 다루는 손길마저 다정한 남자였다. 흰 꽃잎 끝을 엄지로 가볍게 쓸어 내리는 손가락이 유난히 길고 곧았다. 값비싼 시계가 소매 아래로 미끄러져 나왔고, 손목을 따라 떨어진 햇빛이 은은하게 빛났다. 나는 꽃보다 그를 먼저 바라봤다. “……변치 않는 사랑?” “맞아요.” 풍성하게 겹친 흰 꽃잎 사이로 연한 분홍빛이 번져 있었다. 꽃다발을 감싼 아이보리색 포장지에는 얇은 리본이 매여 있었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꽃 한 송이도 대충 고르지 않았다는 게 느껴졌다. 그가 웃으며 꽃다발을 내밀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계절을 지나더라도,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는 웃었다. 앞으로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봄이 남아 있는지 세어 보는 사람처럼. “사랑한다는 말을 꽃으로 대신할 수 있을까요?” 그 말을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말은 변명도 되고 거짓말도 되지만, 꽃은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이잖아요.” 나는 꽃을 받아 들었다. 그가 내게 건넨 마음이 영원할 거라고 믿으면서. “그럼 결혼 기념일마다 사 줘요.” “…….” “꽃이요. 다음 봄에도, 그다음 봄에도.” 조금 유치한 부탁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차강현 앞에서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계산하지 않고 마음껏 기대하고, 충만히 서로를 사랑하며 그렇게 오래 오래. “약속할게요, 연우연 씨.”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다정했다. “앞으로도 계속 사 줄게요. 질릴 때까지.” “꽃이 질릴 리가 없잖아요.” “그럼 내가 질릴 때까지.” 그의 손끝이 내 뺨을 가볍게 스쳤다. “우리 오래 사랑해요.” 변치 않는 사랑을 약속했던 날의 꽃. 계절이 바뀔 때마다 다른 색의 꽃이 피었고, 거리의 나무들은 몇 번이고 잎을 틔웠다. 봄은 돌아왔고, 여름은 지나갔으며, 가을과 겨울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차강현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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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랑한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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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업보 청산
“…….” 검색 결과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백도겸 대표, 투자회사 대표, 국내외 부동산 투자, 호텔 및 물류 사업. 기사마다 조금씩 표현은 달랐지만, 공통점은 분명했다. 그가 손을 댄 사업은 규모가 컸고, 그가 투자한 회사는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나는 첫 번째 기사를 눌렀다. 〈Verdant 백도겸 대표, 대규모 투자 유치로 업계 주목〉 두 번째 기사에는 그가 인수한 호텔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세 번째 기사에는 해외 물류 기업과의 협력 소식이 담겨 있었다. 한 사람의 이름을 검색했을 뿐인데,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쏟아졌다. “…….” 나는 사진 속 남자를 확대했다. 병실에서 마주쳤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ㅡ ‘이런 건 녹음을 해야지.‘ ㅡ ’당하고만 있을 반푼이로는 안 보이는데.‘ 처음에는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사고를 당해 정신도 제대로 차리지 못한 사람에게 할 말인가 싶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는 내가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 꽤 정확하게 짚어 냈다. 남편에게 배신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내. 그 사실을 들켰다는 걸 남편은 아직 모른다. “……백도겸.” 소리 내어 이름을 읽어 봤다. 그래서 차강현이 그토록 빌빌 기었구나 싶었다. 나는 다시 검색창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단어를 덧붙였다. [흥신소]. 검색 결과가 주르륵 나타났다. 사람 찾기, 외도 증거 수집, 개인 신원 조사, 기업 관련 조사. 지금 와서 생각하면 확인하고 싶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알아야 할 건 따로 있었다. 차강현의 뒤를 조사해 달라고 의뢰하면 어디까지 알아낼 수 있을까. 결혼 전부터 나를 이용할 생각이었는던 것, 투자 유치를 위해 내 이름을 어디까지 들먹였는지, 내가 모르는 사이에 벌인 일들까지 모조리 다 파헤칠 수 있을까. 다만 흥신소를 통해 얻어 낸 증거가 법정에서 어디까지 효력이 있을지가 미지수였다. 나는 검색창에 다시 시선을 고정했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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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남편의 친절에는 이유가 있다
백도겸이 일방적으로 약속을 정했다. ㅡ “VIP 병동 18층입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오른쪽 끝에 보안 데스크가 있을 겁니다. 거기서 제 이름을 대세요. 안쪽 전용 복도로 안내해 줄 겁니다.” ㅡ “복도 끝에 별도 상담실이 있습니다. 문에 적힌 번호는 1807호. 거기서 뵙죠.” 그때였다. 징징징. 손에 쥔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진동했다. “……!” 깜짝 놀라 화면을 내려다봤다. 부재중 전화 알림과 함께 문자가 연달아 떠 있었다. [매너콜] 고객님께서 통화 중이신 동안 강현 씨(010-XXXX-XXXX) 님의 전화가 왔습니다. (2건) 발신자 이름을 확인한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하필이면 지금. 나는 서둘러 통화 기록을 열었다. 화면에는 차강현의 부재중 전화 두 건이 덩그러니 떠 있었다. 나는 곧장 차강현의 이름을 눌렀다. 신호음이 한 번 울리는 동안에도 머릿속에서는 온갖 생각이 엉켜 들었다. ㅡ “여보세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심장이 한 번 더 내려앉았다.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를 내려고 애썼다. “강현 씨. 전화했었어요? 엄마한테 전화가 와서.” ㅡ “어, 우연아.” ㅡ “너 좋아하는 멜론 사러 왔는데, 유바리 멜론이 다 팔렸다네.” 너무 예상치 못한 부분이라 몇 번 눈을 깜빡였다. “……아. 그래요? 아쉽네.” ㅡ “백화점도 다 문을 닫은 시간이라, 다른 멜론이라도 괜찮아?” 나는 최대한 평소처럼 대답했다. “……응. 다른 것도 괜찮아요.” ㅡ “그럼 적당한 걸로 사 갈게.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하고.” “알았어요. 고마워요.” 전화를 끊자마자 입가에 걸려 있던 미소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유바리 멜론이라.” 참 다정하기도 하지. 아내가 좋아하는 과일 하나를 사려고 문 닫을 시간까지 발품을 파는 남편이라니. 누가 봤다면 감동할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몇 달 전이었다면 그랬을 테고. 하지만 이제는 안다.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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