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스타가 내 월세를 대신 냅니다

톱스타가 내 월세를 대신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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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onha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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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를 내기 위해 자극적인 연예계 추적 영상을 편집하는 서지안. 그녀가 일하는 채널의 최대 목표는 8개월째 행방이 묘연한 톱스타 남시헌을 찾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지안의 고시원 방 창문으로 낯선 남자가 들어온다. 모자를 벗은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지안은 자신이 편집하던 영상 속 얼굴과 눈앞의 얼굴을 번갈아 본다. “당신 제보하면 현상금이 오천만 원이에요.” “그 채널에 가짜 제보를 흘리면 매달 오백씩 주지.” 월세 때문에 시작된 거래. 지안은 시헌의 위치를 숨기기 위해 직접 거짓 추적 영상을 만든다. 하지만 시헌은 자신의 인생을 무너뜨린 사람이 지안이 근무하는 채널 내부에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서로를 이용하던 두 사람은 어느 순간 상대를 지키기 위해 가장 위험한 거짓말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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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 1화. 벽이 무너진 밤

# 1화. 벽이 무너진 밤

비가 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서지안은 이어폰 한쪽을 빼고 천장을 올려다봤다. 누렇게 번진 물자국 한가운데서 작은 물방울이 맺히더니, 정확히 노트북 키보드 위로 떨어졌다.

툭.

“아, 진짜.”

지안은 노트북을 끌어당기고 빈 컵을 천장 아래에 내려놓았다. 컵 안으로 두 번째 물방울이 떨어졌다.

월세 삼십팔만 원.

관리비 오만 원.

햇빛은 하루에 두 시간도 들지 않고, 비가 오면 천장에서 물이 샜다. 그런데도 집주인은 이번 달부터 관리비를 만 원 올렸다. 옥상 수도관을 교체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정작 교체됐다는 수도관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노트북 화면에는 검은 모자를 눌러쓴 남자의 뒷모습이 멈춰 있었다.

[잠적 243일째, 남시헌 부산 밀항설]

방금 전까지 지안이 편집하던 영상의 제목이었다.

“밀항을 했으면 외국으로 가지, 왜 부산에서 맴돌아.”

혼잣말을 흘리며 재생 버튼을 눌렀다.

흔들리는 휴대전화 화면 속 남자가 항구 근처를 빠르게 지나갔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다는 것 말고는 확인되는 것이 없었다. 얼굴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영상 제공자는 남시헌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남자가 입은 검은 패딩이 두 달 전 남시헌의 공항 사진 속 제품과 똑같다는 이유였다.

지안은 화면을 확대했다.

소매 끝에 박힌 로고가 흐릿하게 깨졌다.

편집 프로그램 옆에 띄운 쇼핑몰 검색창에는 같은 패딩이 칠만 장 넘게 판매됐다는 정보가 나와 있었다.

남시헌일 가능성보다 동네에서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마주칠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래도 채널 대표 강태준은 영상을 오늘 안으로 올리라고 했다.

남시헌일 가능성이 낮다는 지안의 메시지에는 답이 없었다. 대신 십 분 전, 수정 요청만 도착했다.

[얼굴 안 보여도 상관없어. 긴장감 있게 만들어.]

[중간에 심장 박동 효과음 넣고.]

[마지막엔 일본행 화물선 사진 붙여. 시청자들이 알아서 연결할 거야.]

지안은 한동안 메시지를 바라보다가 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진실은 원본 영상 안에 있었지만, 조회 수는 늘 그 바깥에서 만들어졌다.

항구의 파도 소리를 줄이고 낮은 심장 박동음을 넣었다. 남자의 발걸음이 빨라지는 부분에는 화면 흔들림을 추가했다. 그가 단순히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마지막 장면에 일본행 화물선 사진을 붙이려던 순간, 휴대전화가 울렸다.

[태림하우스 임대인]

지안은 받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밀린 월세 두 달분을 언제 입금할 거냐는 전화였다.

지난주에는 금요일까지 기다려준다고 했다. 오늘이 그 금요일이었다.

통장 잔액은 삼만 이천사백 원.

방금 편집 중인 영상의 대금은 이십오만 원.

그 돈을 받아도 밀린 월세에는 한참 부족했다.

지안은 휴대전화를 엎어놓았다. 벨소리는 끊겼다가 바로 다시 울렸다.

“사람이 일을 하고 있으면 돈이 들어와야 할 거 아니야.”

이번에는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천장 아래 놓아둔 컵에서는 일정한 간격으로 물방울이 떨어졌다. 밖에서는 바람에 밀린 빗물이 창문을 두드렸다.

좁은 옥탑방 안이 축축한 냄새로 가득 찼다.

지안은 영상의 마지막에 자막을 넣었다.

[남시헌은 정말 해외로 도피한 것일까?]

검은 화면 위로 흰 글자가 천천히 떠올랐다.

전 국민이 남시헌의 행방을 궁금해했다.

한때 시청률 30퍼센트를 넘긴 드라마의 주연 배우. 광고만 열두 개를 찍었던 남자. 촬영장 스태프 폭행과 약물 투약 의혹이 동시에 터진 날, 소속사와 연락을 끊고 사라진 사람.

그가 사라진 뒤 세상에는 수백 명의 남시헌이 나타났다.

제주도 횟집에서 봤다는 사람.

강원도 산속 펜션에 숨어 있다는 사람.

중국으로 밀항했다는 사람.

심지어 얼굴을 바꾸고 동남아에서 살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채널 <사라진 별>은 그런 제보만으로 구독자 이백팔십만 명을 모았다.

최근에는 남시헌의 현재 위치를 입증하는 제보에 오천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공지했다.

덕분에 지안에게 들어오는 작업도 늘었다.

월세는 여전히 밀렸지만.

렌더링 버튼을 누른 지안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화면 구석에서 숫자가 천천히 올라갔다.

7퍼센트.

9퍼센트.

11퍼센트.

그때였다.

쿵.

벽 안쪽에서 무거운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지안은 고개를 돌렸다.

침대 머리맡과 맞닿은 벽이었다. 바로 너머는 옥상 수도실이었다. 오래전부터 사용하지 않는 곳이라 집주인은 자물쇠까지 걸어두었다고 했다.

쿵.

다시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벽에 세워둔 액자가 흔들렸다.

지안은 이어폰을 완전히 빼냈다.

“고양이인가.”

옥상으로 올라오는 길고양이가 가끔 쓰레기봉투를 헤집기는 했다. 하지만 자물쇠가 채워진 수도실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지안은 침대에서 일어나 벽 쪽으로 다가갔다.

장판 아래로 미세한 진동이 전해졌다.

누군가 벽 반대편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누구 있어요?”

대답은 없었다.

대신 낮고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지안은 숨을 멈췄다.

벽이 얇긴 했지만 옆집의 생활 소음이 들리는 정도는 아니었다. 귀를 가까이 대자 숨소리는 더 분명해졌다.

사람이었다.

그것도 벽 바로 너머에 서 있었다.

지안은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신고 화면을 열어둔 채 현관으로 향했다.

집주인이 수도실을 창고로 불법 임대한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노숙자가 숨어든 것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지안 혼자 확인할 일은 아니었다.

현관문 손잡이를 잡는 순간, 번개가 창밖을 하얗게 밝혔다.

곧이어 천둥이 터졌다.

콰앙!

옥탑방 전체가 흔들렸다.

“뭐야!”

지안이 본능적으로 몸을 낮췄다.

침대 쪽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벽지가 부풀어 오르더니, 젖은 석고 조각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수도실과 맞닿은 벽 한가운데가 무너져 내렸다.

희뿌연 먼지가 방 안을 덮었다.

지안은 입을 막고 기침했다. 노트북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책상 위에 그대로 있었다.

침대는 벽에서 떨어진 잔해에 절반쯤 묻혔다.

“미쳤어. 진짜 미쳤어.”

지안은 떨리는 손으로 휴대전화 카메라를 켰다.

증거부터 남겨야 했다.

집주인이 벽을 무너뜨린 것도 세입자 책임이라고 우길 인간이라는 걸 지안은 잘 알고 있었다.

무너진 벽과 젖은 침대, 바닥에 흩어진 석고 조각을 차례로 찍었다.

그러다 화면 안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벽 너머는 텅 빈 수도실이어야 했다.

그런데 낡은 간이침대가 있었다.

바닥에는 생수병과 통조림이 쌓여 있었고, 작은 접이식 책상 위에는 노트북과 휴대전화 여러 대가 놓여 있었다. 창문에는 빛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검은 천이 덧대어져 있었다.

사람이 살고 있었다.

지안은 천천히 휴대전화를 내렸다.

어둠 속에서 검은 형체가 움직였다.

큰 키의 남자가 무너진 벽 앞에 서 있었다.

검은 후드와 모자, 얼굴의 절반을 가린 마스크.

그의 손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벽이 무너질 때 다친 것인지 손등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남자는 지안을 보자마자 한 걸음 다가왔다.

“오지 마요.”

지안은 휴대전화를 들어 올렸다.

“이미 신고 화면 열었어요.”

남자의 시선이 휴대전화에 닿았다.

그가 다시 움직였다.

지안은 곧장 신고 버튼을 누르려 했다.

하지만 남자가 더 빨랐다.

긴 팔이 뻗어와 지안의 손목을 붙잡았다. 휴대전화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소리 내지 마.”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지안은 반대편 손으로 그의 얼굴을 밀어냈다. 손끝에 걸린 마스크 끈이 끊어졌다.

검은 마스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번개가 다시 한번 창문을 밝혔다.

남자의 얼굴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젖은 검은 머리카락 아래로 깊게 팬 눈매. 잠을 자지 못한 사람처럼 짙은 그늘이 드리워진 얼굴. 입술 아래에 희미하게 남은 상처.

지안은 분명 그 얼굴을 알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수십 번 확대하고, 자르고, 색을 보정했던 얼굴이었다.

노트북 화면에서는 렌더링을 마친 영상이 자동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잠적 243일째, 남시헌 부산 밀항설]

영상 속 남자의 사진과 눈앞의 얼굴이 동시에 시야에 들어왔다.

전 국민이 찾고 있는 남시헌이 지안의 무너진 벽 너머에 서 있었다.

남시헌은 지안의 손목을 놓지 않은 채 낮게 물었다.

“신고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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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벽을 넘지 말 것“그 선은 내일부터 정하죠.”남시헌이 너무도 당연하게 말했다.서지안은 컵라면을 든 채 그를 올려다봤다.“내일부터요?”“지금은 아직 오늘이니까.”“그런 식으로 계약서를 해석하면 사기꾼이에요.”“계약서에 시작 시간이 적혀 있지 않습니다.”시헌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컵라면에 꽂혀 있었다.지안은 일부러 컵을 등 뒤로 숨겼다.“그래도 안 팔아요.”“오만 원입니다.”“컵라면 하나에 오만 원을 내는 사람한테는 더 못 팔죠. 나중에 가격 올려서 협박할 것 같으니까.”“이미 당신에게 오백칠십육만 원을 보냈습니다.”“그건 항목이 다르다니까요.”“밥 한 끼도 포함되지 않은 금액이었습니까?”“정확하네요.”시헌은 잠시 말이 없었다.한때 광고 한 편에 수억 원을 받았다는 남자가 컵라면 하나를 앞에 두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지안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왜 웃습니까?”“아니, 그냥.”“말해요.”“생각보다 처량해서.”시헌의 눈매가 서늘해졌다.“누가?”“당신이요.”“나는 오만 원을 제시했습니다.”“그래서 더 처량해요.”지안은 컵라면 뚜껑을 열었다. 김이 희미하게 올라왔다.면은 이미 적당히 익어 있었다.그녀가 젓가락을 들자 시헌이 아주 미세하게 침을 삼켰다.지안은 그 모습을 보고 결국 컵라면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젓가락 하나 더 가져와요.”“반씩 먹자는 겁니까?”“싫으면 수도실로 돌아가고.”시헌은 싱크대 앞으로 가 서랍을 열었다.첫 번째 서랍에는 고지서와 건전지, 고장 난 라이터가 뒤섞여 있었다. 두 번째에는 비닐봉지와 케이블이 있었고, 세 번째에서야 일회용 젓가락이 나왔다.“대체 주방용품은 어디 있습니까?”“있긴 있잖아요.”“이건 주방이 아니라 창고 같은데.”“말 많으면 안 줘요.”시헌은 입을 다물고 맞은편에 앉았다.접이식 식탁은 두 사람이 마주 앉기에도 비좁았다. 무릎이 닿을 듯 가까워 지안이 의자를 뒤로 빼자 벽에 등이 닿았다.더 물러날 곳도 없었다.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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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화. 새벽 세 시의 인기척
# 7화. 새벽 세 시의 인기척“내가 뭘 먹는지 어떻게 알았어요?”벽 너머에서 대답이 늦었다.서지안은 냉장고 문을 연 채 기다렸다.우유와 샌드위치, 작은 팩에 든 방울토마토까지. 전부 지안이 편의점에서 자주 사던 것들이었다. 컵라면도 여러 종류 중 하필이면 늘 고르던 매운맛이었다.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정확했다.“남시헌 씨.”“들립니다.”“대답은요?”“한 달 동안 옆에 살았습니다.”“벽 너머에서 내가 먹는 것까지 봤다고요?”“본 게 아니라 들었죠.”지안의 눈썹이 구겨졌다.“컵라면 종류도 소리로 구분해요?”“매번 같은 걸 사 오니까.”“그걸 어떻게 알아요?”또다시 침묵이었다.지안은 냉장고 문을 닫고 무너진 벽 앞으로 갔다. 행거에 걸린 이불을 걷어내자 수도실 안에 앉아 있던 시헌과 눈이 마주쳤다.그는 낡은 간이침대 위에서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 표정은 태연했지만 화면은 꺼져 있었다.“일부러 보고 있었죠?”“옥상 입구가 이쪽에서 보입니다.”“그러니까 내가 들어올 때마다 지켜봤다는 거잖아요.”“누가 올라오는지 확인한 겁니다.”“내 편의점 봉투까지 확인하면서?”시헌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지안은 양팔을 끼고 그를 노려봤다.“계약서에 감시 금지 조항도 넣어야겠네.”“감시가 아니라 경계입니다.”“당하는 사람 입장에선 똑같아요.”“다음부터는 안 보죠.”“이미 다 봐놓고?”시헌이 희미하게 한숨을 내쉬었다.“음식이 싫으면 버려요.”“버리라는 게 문제가 아니잖아요.”“그러면 돈을 보내요.”“그것도 문제가 아니고.”지안은 말하다 멈췄다.문제가 뭔지 자신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허락 없이 자신을 지켜봤다는 것이 불쾌했다. 그런데 그 관찰 끝에 냉장고를 채워둔 행동은 이상하게 마음을 건드렸다.그녀가 무엇을 먹는지 알아챈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그것도 혼자 살기 시작한 뒤 처음이었다.지안은 괜한 감정을 잘라내듯 이불을 다시 내렸다.“다음부터는 묻고 사요.”“알겠습니다.”“내 방에도 들어오지 말고.”“배송 기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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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화. 집주인이 올라왔다
# 8화. 집주인이 올라왔다아침 여덟 시가 조금 넘었을 때였다.서지안은 얼굴 위로 떨어진 햇빛에 눈을 떴다.커튼 틈으로 들어온 빛이 정확히 베개 끝에 걸려 있었다. 이 집에 햇빛이 드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길어야 두 시간. 날이 흐리면 그것조차 없었다.지안은 이불 속에서 몸을 뒤척이다 멈췄다.벽 너머가 보였다.지난밤 내리지 않은 이불 뒤로 수도실 안쪽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남시헌은 간이침대에 기대 잠들어 있었다. 긴 다리는 바닥까지 내려와 있었고, 고개는 벽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불편한 자세였지만 숨은 고르게 이어졌다.새벽 세 시의 남자와는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지안은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 조용히 침대에서 내려왔다.이불을 내릴까 고민하던 순간, 시헌이 눈을 떴다.정확히 지안을 바라보는 눈이었다.“언제부터 깨어 있었어요?”“방금.”목소리가 잠겨 있었다.“거짓말.”“왜 거짓말입니까?”“자는 사람처럼 숨 쉬고 있었잖아요.”“자는 척한 적 없습니다.”“그럼 내가 구경할 때까지 가만히 있었던 거예요?”시헌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지안은 뒤늦게 자신이 한 말을 알아차렸다.“구경한 건 아니고.”“봤다는 건 인정하는군.”“벽이 열려 있으니까 보인 거죠.”“닫지 말라고 한 건 나지만, 계속 보라고 하진 않았습니다.”새벽에 자신의 상태를 들킨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평소의 뻔뻔한 말투였다.지안은 이불을 잡아당겼다.“그럼 이제 닫을게요.”천이 반쯤 내려왔을 때 벨소리가 울렸다.현관문 옆의 낡은 초인종이었다.지안과 시헌이 동시에 굳었다.띵동.이번에는 길게 눌렀다.곧이어 문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서지안 씨! 안에 있지?”집주인이었다.지안은 휴대전화를 확인했다.부재중 전화 세 통.아침부터 진동으로 해둔 탓에 전혀 듣지 못했다.“왜 왔지?”“당신이 알지 내가 압니까?”시헌이 자리에서 일어섰다.지안은 행거 위의 이불을 완전히 내리며 낮게 말했다.“숨어 있어요.”“어디에?”“수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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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화. 내 남자친구라고 했어요
# 9화. 내 남자친구라고 했어요소문은 점심도 되기 전에 건물 전체를 돌았다.서지안이 옥탑방 창문을 열었을 때 아래층 아주머니 둘이 빨래를 널다 말고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한 명은 지안을 보고 웃었고, 다른 한 명은 대놓고 옥탑 안쪽을 살폈다.“지안 씨.”“네.”“남자친구 왔다며?”최명숙이 퍼뜨린 게 분명했다.지안은 창틀을 붙잡은 채 억지로 웃었다.“잠깐 들른 거예요.”“아프다던데?”“감기요.”“키가 엄청 크다며. 무슨 일 해?”“그냥 회사 다녀요.”벽 너머에서 낮은 헛기침이 들렸다.지안은 미간을 구겼다.지금 웃은 거야?아주머니는 목소리를 낮추기는커녕 한층 신이 나서 물었다.“둘이 결혼할 사이야?”“아니요.”지안은 단호하게 대답했다.“전혀 아니에요.”“아니긴. 월세까지 대신 내줬다는데.”“그건...”말끝이 막혔다.밀린 월세를 대신 내준 사람은 맞았다.그 이유가 연애가 아니라 은신 계약이라는 사실만 빼면, 최명숙이 퍼뜨린 내용은 전부 사실이었다.“요즘 세상에 그런 남자가 어디 있어. 잘 잡아.”“잡을 생각 없어요.”“다 그렇게 말해.”아주머니들은 자기들끼리 웃으며 다시 빨래를 널기 시작했다.지안은 창문을 닫았다.돌아서자 무너진 벽 앞에 기대 선 남시헌이 보였다. 수도실에 있어야 할 남자가 허락도 없이 상체를 내밀고 있었다.“방금 뭐라고 했어요?”지안이 물었다.“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웃었잖아요.”“안 웃었습니다.”“내가 귀가 없어요?”시헌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부분이 인상적이긴 했습니다.”“당신이랑 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죠.”“나는 하자고 한 적 없는데.”“그러니까 혼자 의미 부여하지 말라고요.”지안은 행거에 걸린 이불을 잡아 내렸다.시헌의 얼굴이 천천히 가려졌다.“벽 넘지 말랬죠?”“상체만 넘었습니다.”“상체는 몸 아니에요?”“소리가 들려서 확인했을 뿐입니다.”“이제 아래층 아주머니들까지 감시하게요?”이불 너머에서 시헌의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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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화. 카메라를 두려워하는 배우
# 10화. 카메라를 두려워하는 배우카메라 플래시가 터진 순간, 남시헌의 얼굴에서 모든 감정이 사라졌다.그는 눈을 가린 채 뒤로 물러났다.등이 벽에 부딪혔다.숨을 들이마시려 했지만 목이 막힌 사람처럼 가슴만 크게 들썩였다. 손끝이 떨렸고, 초점이 흐트러진 눈은 박해솔도 서지안도 보지 못했다.지안은 그 증상을 알고 있었다.새벽 세 시, 수도실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모습과 같았다.“해솔아, 휴대전화 내려.”“뭐?”“지금 당장.”지안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갈라졌다.해솔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휴대전화를 내렸다. 사진을 찍으려던 것은 아니었다. 화면을 켜다가 자동 설정된 플래시가 터진 것뿐이었다.하지만 시헌에게는 이유가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시헌 씨.”지안은 그에게 다가갔다.시헌이 손을 내저었다.“오지 마.”말은 분명했지만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여기 내 방이에요.”“불 꺼.”“이미 어두워요.”“카메라부터...”“없어요.”지안은 해솔의 손에서 휴대전화를 빼앗아 침대 위에 던졌다.작은 기기가 이불 위로 튕겼다가 멈췄다.“봐요. 아무도 안 찍어요.”시헌은 여전히 벽을 짚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손등의 힘줄이 도드라질 만큼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해솔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지안아, 이 사람 왜 이래?”“공황 발작.”“병원 불러야 하는 거 아니야?”“지금은 사람 많아지면 더 안 좋아.”지안은 시헌을 향해 손바닥을 보였다.“만지지 않을게요. 그냥 여기 있을게요.”그의 호흡은 점점 더 빨라졌다.시헌이 마른 숨을 뱉었다.“문 닫아.”지안은 곧장 현관문부터 닫았다. 안전고리까지 걸고, 창문에 드리운 커튼도 완전히 쳤다.스탠드 불빛이 얼굴에 닿지 않도록 벽 쪽으로 돌렸다.방 안이 어둑해졌다.“해솔아.”지안이 친구를 돌아봤다.“잠깐만 밖에 있어줄래?”해솔의 눈이 가늘어졌다.“너 혼자 괜찮겠어?”“응.”“정말?”“괜찮아.”해솔은 시헌과 지안을 번갈아 봤다.의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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