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월세를 내기 위해 자극적인 연예계 추적 영상을 편집하는 서지안. 그녀가 일하는 채널의 최대 목표는 8개월째 행방이 묘연한 톱스타 남시헌을 찾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지안의 고시원 방 창문으로 낯선 남자가 들어온다. 모자를 벗은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지안은 자신이 편집하던 영상 속 얼굴과 눈앞의 얼굴을 번갈아 본다. “당신 제보하면 현상금이 오천만 원이에요.” “그 채널에 가짜 제보를 흘리면 매달 오백씩 주지.” 월세 때문에 시작된 거래. 지안은 시헌의 위치를 숨기기 위해 직접 거짓 추적 영상을 만든다. 하지만 시헌은 자신의 인생을 무너뜨린 사람이 지안이 근무하는 채널 내부에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서로를 이용하던 두 사람은 어느 순간 상대를 지키기 위해 가장 위험한 거짓말을 시작한다.
View More# 1화. 벽이 무너진 밤
비가 지붕을 때리는 소리가 점점 거칠어졌다.
서지안은 이어폰 한쪽을 빼고 천장을 올려다봤다. 누렇게 번진 물자국 한가운데서 작은 물방울이 맺히더니, 정확히 노트북 키보드 위로 떨어졌다.
툭.
“아, 진짜.”
지안은 노트북을 끌어당기고 빈 컵을 천장 아래에 내려놓았다. 컵 안으로 두 번째 물방울이 떨어졌다.
월세 삼십팔만 원.
관리비 오만 원.
햇빛은 하루에 두 시간도 들지 않고, 비가 오면 천장에서 물이 샜다. 그런데도 집주인은 이번 달부터 관리비를 만 원 올렸다. 옥상 수도관을 교체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정작 교체됐다는 수도관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노트북 화면에는 검은 모자를 눌러쓴 남자의 뒷모습이 멈춰 있었다.
[잠적 243일째, 남시헌 부산 밀항설]
방금 전까지 지안이 편집하던 영상의 제목이었다.
“밀항을 했으면 외국으로 가지, 왜 부산에서 맴돌아.”
혼잣말을 흘리며 재생 버튼을 눌렀다.
흔들리는 휴대전화 화면 속 남자가 항구 근처를 빠르게 지나갔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다는 것 말고는 확인되는 것이 없었다. 얼굴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도 영상 제공자는 남시헌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남자가 입은 검은 패딩이 두 달 전 남시헌의 공항 사진 속 제품과 똑같다는 이유였다.
지안은 화면을 확대했다.
소매 끝에 박힌 로고가 흐릿하게 깨졌다.
편집 프로그램 옆에 띄운 쇼핑몰 검색창에는 같은 패딩이 칠만 장 넘게 판매됐다는 정보가 나와 있었다.
남시헌일 가능성보다 동네에서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마주칠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래도 채널 대표 강태준은 영상을 오늘 안으로 올리라고 했다.
남시헌일 가능성이 낮다는 지안의 메시지에는 답이 없었다. 대신 십 분 전, 수정 요청만 도착했다.
[얼굴 안 보여도 상관없어. 긴장감 있게 만들어.]
[중간에 심장 박동 효과음 넣고.]
[마지막엔 일본행 화물선 사진 붙여. 시청자들이 알아서 연결할 거야.]
지안은 한동안 메시지를 바라보다가 다시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진실은 원본 영상 안에 있었지만, 조회 수는 늘 그 바깥에서 만들어졌다.
항구의 파도 소리를 줄이고 낮은 심장 박동음을 넣었다. 남자의 발걸음이 빨라지는 부분에는 화면 흔들림을 추가했다. 그가 단순히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마지막 장면에 일본행 화물선 사진을 붙이려던 순간, 휴대전화가 울렸다.
[태림하우스 임대인]
지안은 받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밀린 월세 두 달분을 언제 입금할 거냐는 전화였다.
지난주에는 금요일까지 기다려준다고 했다. 오늘이 그 금요일이었다.
통장 잔액은 삼만 이천사백 원.
방금 편집 중인 영상의 대금은 이십오만 원.
그 돈을 받아도 밀린 월세에는 한참 부족했다.
지안은 휴대전화를 엎어놓았다. 벨소리는 끊겼다가 바로 다시 울렸다.
“사람이 일을 하고 있으면 돈이 들어와야 할 거 아니야.”
이번에는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천장 아래 놓아둔 컵에서는 일정한 간격으로 물방울이 떨어졌다. 밖에서는 바람에 밀린 빗물이 창문을 두드렸다.
좁은 옥탑방 안이 축축한 냄새로 가득 찼다.
지안은 영상의 마지막에 자막을 넣었다.
[남시헌은 정말 해외로 도피한 것일까?]
검은 화면 위로 흰 글자가 천천히 떠올랐다.
전 국민이 남시헌의 행방을 궁금해했다.
한때 시청률 30퍼센트를 넘긴 드라마의 주연 배우. 광고만 열두 개를 찍었던 남자. 촬영장 스태프 폭행과 약물 투약 의혹이 동시에 터진 날, 소속사와 연락을 끊고 사라진 사람.
그가 사라진 뒤 세상에는 수백 명의 남시헌이 나타났다.
제주도 횟집에서 봤다는 사람.
강원도 산속 펜션에 숨어 있다는 사람.
중국으로 밀항했다는 사람.
심지어 얼굴을 바꾸고 동남아에서 살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채널 <사라진 별>은 그런 제보만으로 구독자 이백팔십만 명을 모았다.
최근에는 남시헌의 현재 위치를 입증하는 제보에 오천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공지했다.
덕분에 지안에게 들어오는 작업도 늘었다.
월세는 여전히 밀렸지만.
렌더링 버튼을 누른 지안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화면 구석에서 숫자가 천천히 올라갔다.
7퍼센트.
9퍼센트.
11퍼센트.
그때였다.
쿵.
벽 안쪽에서 무거운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지안은 고개를 돌렸다.
침대 머리맡과 맞닿은 벽이었다. 바로 너머는 옥상 수도실이었다. 오래전부터 사용하지 않는 곳이라 집주인은 자물쇠까지 걸어두었다고 했다.
쿵.
다시 소리가 났다.
이번에는 벽에 세워둔 액자가 흔들렸다.
지안은 이어폰을 완전히 빼냈다.
“고양이인가.”
옥상으로 올라오는 길고양이가 가끔 쓰레기봉투를 헤집기는 했다. 하지만 자물쇠가 채워진 수도실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지안은 침대에서 일어나 벽 쪽으로 다가갔다.
장판 아래로 미세한 진동이 전해졌다.
누군가 벽 반대편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누구 있어요?”
대답은 없었다.
대신 낮고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지안은 숨을 멈췄다.
벽이 얇긴 했지만 옆집의 생활 소음이 들리는 정도는 아니었다. 귀를 가까이 대자 숨소리는 더 분명해졌다.
사람이었다.
그것도 벽 바로 너머에 서 있었다.
지안은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신고 화면을 열어둔 채 현관으로 향했다.
집주인이 수도실을 창고로 불법 임대한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노숙자가 숨어든 것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지안 혼자 확인할 일은 아니었다.
현관문 손잡이를 잡는 순간, 번개가 창밖을 하얗게 밝혔다.
곧이어 천둥이 터졌다.
콰앙!
옥탑방 전체가 흔들렸다.
“뭐야!”
지안이 본능적으로 몸을 낮췄다.
침대 쪽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벽지가 부풀어 오르더니, 젖은 석고 조각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수도실과 맞닿은 벽 한가운데가 무너져 내렸다.
희뿌연 먼지가 방 안을 덮었다.
지안은 입을 막고 기침했다. 노트북부터 확인했다. 다행히 책상 위에 그대로 있었다.
침대는 벽에서 떨어진 잔해에 절반쯤 묻혔다.
“미쳤어. 진짜 미쳤어.”
지안은 떨리는 손으로 휴대전화 카메라를 켰다.
증거부터 남겨야 했다.
집주인이 벽을 무너뜨린 것도 세입자 책임이라고 우길 인간이라는 걸 지안은 잘 알고 있었다.
무너진 벽과 젖은 침대, 바닥에 흩어진 석고 조각을 차례로 찍었다.
그러다 화면 안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벽 너머는 텅 빈 수도실이어야 했다.
그런데 낡은 간이침대가 있었다.
바닥에는 생수병과 통조림이 쌓여 있었고, 작은 접이식 책상 위에는 노트북과 휴대전화 여러 대가 놓여 있었다. 창문에는 빛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검은 천이 덧대어져 있었다.
사람이 살고 있었다.
지안은 천천히 휴대전화를 내렸다.
어둠 속에서 검은 형체가 움직였다.
큰 키의 남자가 무너진 벽 앞에 서 있었다.
검은 후드와 모자, 얼굴의 절반을 가린 마스크.
그의 손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벽이 무너질 때 다친 것인지 손등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남자는 지안을 보자마자 한 걸음 다가왔다.
“오지 마요.”
지안은 휴대전화를 들어 올렸다.
“이미 신고 화면 열었어요.”
남자의 시선이 휴대전화에 닿았다.
그가 다시 움직였다.
지안은 곧장 신고 버튼을 누르려 했다.
하지만 남자가 더 빨랐다.
긴 팔이 뻗어와 지안의 손목을 붙잡았다. 휴대전화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소리 내지 마.”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지안은 반대편 손으로 그의 얼굴을 밀어냈다. 손끝에 걸린 마스크 끈이 끊어졌다.
검은 마스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번개가 다시 한번 창문을 밝혔다.
남자의 얼굴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젖은 검은 머리카락 아래로 깊게 팬 눈매. 잠을 자지 못한 사람처럼 짙은 그늘이 드리워진 얼굴. 입술 아래에 희미하게 남은 상처.
지안은 분명 그 얼굴을 알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수십 번 확대하고, 자르고, 색을 보정했던 얼굴이었다.
노트북 화면에서는 렌더링을 마친 영상이 자동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잠적 243일째, 남시헌 부산 밀항설]
영상 속 남자의 사진과 눈앞의 얼굴이 동시에 시야에 들어왔다.
전 국민이 찾고 있는 남시헌이 지안의 무너진 벽 너머에 서 있었다.
남시헌은 지안의 손목을 놓지 않은 채 낮게 물었다.
“신고할 겁니까?”
# 외전 5화. 오늘도 함께 살겠습니다 [외전완결]남시헌이 두 번째로 반지를 내민 것은 첫 번째 약속 반지를 맞춘 지 정확히 일 년 뒤였다.이번에는 상자를 몰래 두지 않았다.서지안이 편집을 마치고 작업실에서 나오자, 거실 식탁 위에 작은 케이크와 반지 상자를 올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집 안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촛불도 없었고 꽃잎도 뿌려져 있지 않았다.시헌은 촬영장에서 입고 돌아온 검은 티셔츠 차림이었고, 지안은 하루 종일 작업하느라 머리를 아무렇게나 묶고 있었다.“이게 뭐예요?”지안이 묻자 시헌은 소파에서 일어났다.“결혼해달라는 뜻입니다.”“바로 말하네요.”“이번에는 돌려 말하지 않기로 했습니다.”“상자도 안 숨기고요?”“숨기면 또 화낼 것 같아서.”“잘 배웠네요.”지안은 식탁 앞에 앉지 않았다.대신 시헌을 바라보며 물었다.“왜 오늘이에요?”시헌은 미리 준비한 답을 외우지 않았다.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오늘이 특별한 날은 아닙니다.”“그런데요?”“그래서 오늘 하고 싶었습니다.”그는 지안과 함께한 지난 일 년을 떠올렸다.남시헌의 복귀작은 개봉을 앞두고 있었다.지안의 채널 은 구독자 수보다 긴 영상으로 더 유명해졌다.정우현은 지팡이 없이 걸을 수 있게 됐고, 백윤서는 독립 제작사의 연극으로 돌아갔다.최민석은 재판을 기다리면서도 자신이 보관했던 자료를 수사기관에 모두 넘겼다.장기석과 강태준의 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밝혀야 할 일도 남아 있었다.그래도 두 사람의 일상은 계속됐다.아침마다 누가 먼저 일어났는지 확인하고.월세 이체 날짜가 되면 각자 절반씩 보내고.시헌이 촬영 때문에 집을 비울 때면 돌아올 시간을 알리고.지안이 밤새 편집하다 소파에서 잠들면 시헌이 담요를 덮어줬다.싸운 날도 있었다.시헌이 지안의 악성 댓글을 몰래 신고하다 들킨 날.지안이 몸살을 숨긴 채 사흘 동안 작업하다 쓰러진 날.남시헌의 해외 촬영 제안을 지안이
# 외전 4화. 결혼은 합의부터서지안은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상자를 발견하고도 바로 열지 않았다.아침 일곱 시 십 분.남시헌은 이미 촬영장으로 출발한 뒤였다.머리맡에는 출발 시간을 알리는 메시지가 남아 있었고, 냉장고 안에는 그가 만든 샌드위치가 들어 있었다.그런데 작업실 책상 위에 놓인 상자에 관해서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짙은 남색 상자.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크기.리본도 없고 메모도 없었다.지안은 문 앞에 서서 한동안 상자를 바라봤다.반지 상자와 비슷했다.너무 비슷해서 손을 대기 어려웠다.며칠 전 공개 연애 인터뷰에서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시헌은 중요한 발표는 지안과 먼저 합의하겠다고 답했다.그날 집에 돌아온 뒤에도 결혼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는 않았다.지안 역시 묻지 않았다.말하지 않는 것이 거절은 아니었다.그렇다고 동의도 아니었다.그런데 상자가 나타났다.지안은 휴대전화를 들었다.[책상 위에 있는 상자 뭐예요?]촬영 중인지 답장은 오지 않았다.지안은 상자를 열지 않은 채 노트북을 켰다.오늘은 의 새로운 인터뷰를 촬영하는 날이었다.정우현이 직접 출연하겠다고 했다.공식적으로 사망한 뒤 다른 이름으로 병원에 감금됐던 팔 개월.남시헌을 배신했다는 누명을 쓴 시간.자신 대신 불탄 차량 안에 있었던 신원 미상의 피해자.우현은 수사기관에서 진술했지만 대중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남시헌을 통해 그의 상태를 짐작하는 기사만 쏟아졌다.그는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고 싶다고 했다.오전 열 시.정우현은 지팡이를 짚고 스튜디오로 들어왔다.해솔이 준비한 작은 공간이었다.배경은 흰 벽.의자 두 개.정면 카메라 한 대와 측면 카메라 한 대.우현은 카메라를 확인한 뒤 지안에게 물었다.“생방송은 아니죠?”“녹화예요.”“편집은?”“원하시는 부분만 자를게요.”“내가 멈추는 건 그대로 두고.”“네.”“울면?”“그것도 원하는 대로요.”우현은 의자에 앉았다.“시헌이 방송에서는 다
# 외전 3화. 카메라 밖의 사람남시헌의 복귀작 첫 촬영은 오전 여섯 시부터 시작됐다.서지안이 눈을 떴을 때 침대 옆자리는 이미 비어 있었다.이번에는 놀라지 않았다.머리맡에 놓인 휴대전화에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오전 4시 50분에 촬영장으로 출발했습니다.][주방에 아침을 두었습니다.][달걀은 중불로 익혔습니다.]지안은 마지막 문장을 확인하고 웃었다.주방 식탁에는 모양이 조금 찌그러진 달걀 프라이와 식빵이 놓여 있었다.검게 탄 부분은 없었다.노른자도 터지지 않았다.접시 옆에는 작은 메모가 붙어 있었다.[먹기 전에 사진을 보내주면 다음에도 같은 방식으로 만들겠습니다.]지안은 접시를 촬영해 시헌에게 보냈다.[합격.]곧바로 답장은 오지 않았다.촬영이 시작된 모양이었다.지안은 혼자 아침을 먹은 뒤 작업실로 들어갔다.의 세 번째 영상 편집이 남아 있었다.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은 세림엔터테인먼트에서 칠 년 동안 연습생으로 지냈던 여자였다.그녀는 얼굴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목소리도 일부 변조해달라고 부탁했다.다만 자신의 침묵만큼은 자르지 말아달라고 했다.질문을 받고 대답하기까지 이십칠 초.말을 하려다 멈춘 시간 십사 초.울음을 참으려고 고개를 숙였던 일 분 가까운 공백.예전의 지안이었다면 모두 잘라냈을 장면이었다.시청자가 지루해할 테니까.영상의 흐름이 끊길 테니까.그러나 이번에는 그대로 두었다.말하지 못하는 시간 역시 그 사람의 이야기였다.오전 열한 시가 넘었을 때 남시헌에게서 메시지가 왔다.[오전 촬영 종료.][달걀은 괜찮았습니까?]지안은 편집 프로그램을 잠시 멈췄다.[괜찮았어요.][촬영은요?]한동안 답장이 없었다.읽음 표시만 남았다.지안은 먼저 전화하지 않았다.대답을 기다렸다.약 오 분 뒤 메시지가 도착했다.[오후 촬영에 호텔 장면이 있습니다.]지안의 손이 멈췄다.대본을 읽으며 알고 있던 장면이었다.주인공이 고향을 떠나기 전 오래된 여관에 머무는 장면.호텔 사건과
# 외전 2화. 공개 연애의 조건남시헌의 첫 복귀 인터뷰는 오후 세 시였다.두 사람에게 남은 시간은 세 시간.서지안은 거실 바닥에 앉아 질문 목록을 펼쳤다.정우현이 보낸 예상 질문은 열두 개였다.복귀를 결심한 이유.호텔 사건 이후의 심경.정우현과 백윤서에 관한 질문.서지안에게 계획적으로 접근한 일에 대한 책임.그리고 마지막 항목.[현재 서지안 씨와 교제 중입니까?]지안은 그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이 질문이 나오면 뭐라고 할 거예요?”소파 대신 맞은편 상자에 앉은 시헌이 대답했다.“교제 중이라고 말하겠습니다.”“끝?”“더 설명해야 합니까?”“질문이 이어질 거잖아요.”지안은 다음 문장들을 읽었다.“언제부터 만났는지. 동거 중인지. 결혼 계획이 있는지. 서지안 씨가 복귀작에 영향을 미쳤는지.”“사실대로 답하면 됩니다.”“결혼 계획도요?”시헌의 시선이 잠시 멈췄다.“없습니까?”“지금 나한테 묻는 거예요?”“질문이 나올 수 있다면서요.”“그래서 오늘 결혼 계획까지 정하자고요?”“계획이 없다면 없다고 답하면 되고.”그는 지나치게 침착했다.지안은 눈을 가늘게 떴다.“있는 것 같은데.”“생각은 해봤습니다.”“언제요?”“이 집을 계약할 때.”“같이 산 지 며칠이나 됐다고.”“기간이 중요합니까?”“중요하죠.”“얼마나 지나야 생각해도 됩니까?”지안은 말문이 막혔다.남시헌에게 연애는 여전히 기준이 없는 영역이었다. 기준이 없으니 매번 자신에게 확인했고, 답이 없으면 정하려 했다.지안은 질문 목록으로 그의 팔을 가볍게 쳤다.“오늘 인터뷰에서 결혼 이야기는 하지 마요.”“왜요?”“내가 아직 대답 안 했으니까.”“그럼 질문이 나오면.”“계획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해요.”“정해지지 않은 이유도 말해야 합니까?”“그냥 웃고 넘어가요.”시헌의 얼굴이 미세하게 굳었다.“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한 적이 없습니다.”“배우잖아요. 웃는 것도 연기해요.”“당신과 관련된 질문에 연기하고 싶지 않습니다.”지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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