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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화

last update Petsa ng paglalathala: 2026-08-15 23:08:17

​회사에서의 차갑고 서늘한 긴장감을 모두 내려놓고, 그저 걷고, 웃고, 사소한 대화를 나누는 평범한 연인들의 주말.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도현의 서늘한 결재판 너머로 제 마음을 죽인 채 바라만 보아야 했던 소율에게, 지금 이 순간들은 마치 기적과도 같이 달콤하고 비현실적인 축복이었다.

​그런데, 몽마르트르 언덕의 중턱쯤을 지날 무렵이었다.

​맑았던 파리의 하늘 위로 갑작스럽게 먹구름이 짙게 몰려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차가운 돌풍이 골목길을 휩쓸고 지나갔다.

​"어… 하늘이 왜 이러지?"

​소율이 불안한 듯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툭, 투둑.

​빗방울이 몇 방울 떨어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하늘 구멍이 뚫린 것처럼 억수 같은 장대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변덕스럽기로 유명한 파리의 기습적인 폭우였다.

​"꺄악!"

"우와아아-!"

​언덕을 거닐던 수많은 관광객들이 비명을 지르며 비를 피하기 위해 처마 밑이나 상점 안으로 다급하게 뛰어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쏟아진 굵은 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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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일간의 계약 연애   73화

    ​"당신은 이미 자격을 증명했으니까. 한국에서 내 밑을 3년이나 버텼고, 파리에 와서는 4억 유로짜리 벨에포크 계약을 따냈어. 내가 폭주할 때는 멱살을 잡아서라도 멈춰 세웠고, 회장님마저 수치와 논리로 설득했지."​도현의 입가에 자랑스러운 미소가 깊게 번졌다.​"태성그룹 안주인 자리에 당신보다 완벽한 사람이 있으면 데려와 보라 그래. 내가 직접 기안서부터 검토해 줄 테니까."​"또 일을 그런 식으로 비유하죠?"​소율이 웃으며 도현의 가슴을 가볍게 밀었다.​하지만 도현은 놓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소율의 허리를 더욱 깊이 끌어안아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완전히 없애버렸다.​"그런데 한 가지는 정정해야겠어."​"뭘요?"​"회장님이 당신을 태성가의 안주인으로 먼저 낙점한 건 기쁘지만, 아직 가장 중요한 절차가 남았잖아."​도현의 짙은 눈동자가 소율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을 향해 천천히 내려갔다.​아직 아무것도 끼워져 있지 않은 가느다란 손가락.​그의 시선에 담긴 뜨거운 의미를 알아차린 소율의 뺨이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도현 씨…."​"브로치는 회장님 방식의 승인이고."​도현이 소율의 왼손을 들어 올려 네 번째 손가락 마디에 아주 천천히 입술을 눌렀다.​"내 방식의 계약은 내가 직접 준비할 거야."​낮고 그윽한 목소리가 손끝을 타고 소율의 심장까지 스며들었다.​"이번에는 14일짜리도 아니고, 누가 갑이고 을인지 따지는 웃기지도 않는 계약도 아니야. 당신이 도망칠 기한도, 내가 놓아줄 만료일도 없는 완벽한 종신 계약으로."​소율의 눈가에 남아있던 물기가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였다.​"그 계약, 조건이 너무 독한 것 같은데요."​"당연하지. 계약 당사자가 차도현인데 허술할 리가 없잖아."​도현이 오만하게 웃으며 소율의 턱을 부드럽게 감싸 올렸다.​"조건은 평생 내 곁에 있을 것. 대가는 내가 가진 모든 사랑. 계약 기간은 무제한. 중도 해지는 절대 불가능."​"아직 정식으로 제안한 것도 아닌데 벌써 조항부터 정해요?"​

  • 14일간의 계약 연애   72화

    ​소율은 걱정으로 일그러진 도현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두 손을 들어 그의 뺨을 감쌌다.​"아무 일도 없었어요. 회장님께서 저한테 헤어지라고 하신 것도 아니고,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하신 것도 아니에요."​"그럼 왜 나한테까지 숨기고…."​"그건 이게 도현 씨를 사이에 둔 협상이 아니라, 회장님과 제가 직접 나눠야 할 이야기였기 때문이에요."​소율이 옅게 웃으며 몸을 살짝 뒤로 물렸다.​그제야 도현의 시선이 소율의 왼쪽 옷깃으로 향했다.​베이지색 재킷 위에서 타오르듯 빛나는 붉은 루비 브로치.​그것을 알아본 순간, 도현의 몸이 돌처럼 굳어버렸다.​"이건…."​태성가에서 태어나 자란 도현이 그 브로치를 모를 리 없었다.​어린 시절부터 이혜민 회장이 중요한 이사회나 그룹의 명운이 걸린 행사 때마다 반드시 착용하던 물건. 태성가의 실질적인 안주인에게만 전해진다는, 그 어떤 지분 증서보다 상징적인 가문의 증표였다.​"회장님. 설마…."​도현이 믿을 수 없다는 듯 할머니를 바라보았다.​이 회장은 지팡이 손잡이에 두 손을 포갠 채 못마땅한 눈으로 도현을 게슴츠레 쏘아보았다.​"쯧쯧, 그래. 네놈이 파리 시내를 뒤집어엎으며 찾아다니려한 그 여자에게 내가 직접 건넸다. 이제 속이 시원하냐?"​"정말… 소율이를 태성가의 사람으로 받아들이신 겁니까?"​"어제부터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느냐. 소율이 네 옆에 설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는 이미 충분히 봤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너 같은 놈에게 과분할 정도로 훌륭하더구나."​도현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렸다.​이 회장은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그러니 앞으로 소율이가 너를 버리고 도망갈까 봐 파리 한복판을 미친놈처럼 헤집고 다니지 마라. 그 아이가 달아난다면 네가 부족해서 달아나는 것이니, 그때는 이 할미도 네 편을 들어줄 생각이 없다."​"소율이가 절 버릴 일은 없습니다."​도현이 즉시 단호하게 받아쳤다. 조금 전까지 두려움에 질려 있던 남자가, 루비 브로치 하나를 확인하자마자 다시

  • 14일간의 계약 연애   71화

    ​"받을 수 없습니다, 회장님."​소율은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저와 도현 씨는 아직 약혼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런 귀한 물건을 받을 자격은…."​"자격을 판단하는 사람은 너냐, 나냐?"​회장의 한마디가 소율의 말을 단칼에 잘랐다.​"반지를 건네고 무릎을 꿇는 건 도현이가 알아서 할 일이다. 그놈 몫까지 내가 빼앗을 생각은 없어. 하지만 이 브로치의 주인을 정하는 것은 지금까지 이걸 지켜온 내 몫이다. 그리고 후엔 너의 몫이 되겠지."​이 회장은 케이스에서 브로치를 꺼내 소율 쪽으로 내밀었다.​"나는 네게 차도현의 아내가 되라고 명령하는 게 아니다. 도현이가 무너질 때 붙들어주고, 그놈이 오만함에 눈이 멀면 멱살을 잡아서라도 멈춰 세우며, 태성이라는 이름이 잘못된 길로 가면 가장 먼저 아니라고 말할 사람이 되어달라는 게야."​회장의 서늘했던 눈빛에 처음으로 깊은 온기가 스며들었다.​"그 고집불통 손주의 목줄을 쥐고도 권력에 취하지 않을 사람. 제 실력으로 도현이 옆에 서고도 필요할 때는 그놈의 품에 기대 쉴 줄 아는 사람. 내가 지켜본 바로는, 그런 사람은 너밖에 없더구나."​소율의 눈가에 투명한 물기가 차올랐다.​3년 동안 도현을 홀로 바라보던 시절에는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순간이었다.​그의 연인이 되는 것만으로도 감히 욕심이라 여겼다. 14일의 계약이 끝나면 모든 마음을 정리한 채 파리로 도망치듯 떠나려 했다.​그런데 이제 도현은 자신의 전부를 걸고 사랑을 고백했고, 태성그룹의 절대 권력자는 가문의 미래와 책임을 상징하는 보석을 소율의 손에 직접 맡기려 하고 있었다.​"내 손주를 부탁하마, 소율아."​회장이 처음으로 직함도 성도 떼어낸 채, 소율의 이름을 따뜻하게 불렀다.​그 한마디에 소율의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이 기어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소율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 회장을 향해 깊고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네, 회장님."​떨리지만 분명한 음성이었다.​"도현 씨가

  • 14일간의 계약 연애   70화

    ​창밖으로 지나가는 차량의 소음과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가느다란 김만이 두 사람 사이를 천천히 흘렀다.​이 회장은 소율의 얼굴을 오랫동안 응시했다.​도현의 품에 기대어 편한 길만 찾는지, 태성가의 이름과 권력을 탐내는지, 아니면 제 힘으로 도현의 옆자리에 설 수 있는 사람인지.​소율은 매번 회장의 예상을 뛰어넘었다.​악성 루머가 퍼졌을 때는 도현의 권력 뒤에 숨지 않고 실력으로 4억 유로 규모의 벨에포크 계약을 성사시켰다. 파리 지사 감찰을 명분으로 들이닥친 회장 앞에서는 3분기 매출 성장률과 물류 병목 감소 수치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쏟아냈다.​그리고 지금은 차도현의 맹목적인 사랑을 누리면서도, 그를 필요할 때 멈춰 세우고 함께 책임지겠다고 말하고 있었다.​그것은 재벌가의 이름을 얻고 싶어 하는 사람의 대답이 아니었다.​한 사람의 삶과 미래를 온전히 함께 짊어질 준비가 된 사람의 대답이었다.​이 회장의 음성이 낮게 가라앉았다.​"태성그룹의 안주인이 된다는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좋은 옷을 입고 행사장에 서서 웃거나, 후계자의 아이를 낳아 대를 잇는 자리라고 생각하느냐?"​"아닙니다."​소율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수만 명의 임직원과 그 가족의 삶이 연결된 이름을 함께 짊어지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도현 씨가 후계자라는 이유만으로 그 무게에 짓눌리지 않도록 곁에서 붙들어주되, 사적인 감정 때문에 잘못된 판단을 내린다면 가장 먼저 반대할 수 있어야 하는 자리이기도 하고요."​"만약 나와 도현이의 판단이 충돌한다면?"​"누가 더 높은 자리에 있는지가 아니라, 어느 선택이 태성과 사람들에게 옳은지를 따져보겠습니다."​"그래도 답이 나지 않는다면?"​"제가 책임질 수 있는 선택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서 도망치지 않겠습니다."​소율의 답은 짧았지만 단단했다.​회장의 입가가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웃음인지, 감탄인지 쉽게 분간할 수 없는 작은 변화였다.​"건방지고 당돌하구나. 겨우 기획팀장 자리에 앉은 아이가 태성의 수

  • 14일간의 계약 연애   69화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거 맞아?"​도현이 의심 어린 눈으로 소율을 내려다보았다.​"네. 걱정하지 마요. 대신 저 오후에 잠깐 외출 좀 할게요. 지사 직원한테 전달받을 자료가 있어요."​"내가 데려다줄게."​"됐어요. 도현 씨는 어젯밤 회장님 신경 쓰느라 제대로 못 잤잖아요. 쉬고 있어요. 금방 다녀올 테니까."​소율은 그의 의심을 눌러버리듯 까치발을 들고 도현의 뺨에 짧게 입을 맞췄다.​그러나 소율이 몸을 돌린 뒤에도, 도현의 깊은 눈동자에서는 의심스러운 빛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오후 1시, 샹젤리제 거리.​개선문을 향해 곧게 뻗은 가로수길 위로 화창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명품 부티크와 유서 깊은 레스토랑이 늘어선 거리 한복판, 일반 관광객의 출입이 제한된 최고급 살롱 카페의 2층 프라이빗 룸.​소율이 묵직한 원목 문을 열고 들어서자, 창가 상석에 앉아있던 이혜민 회장이 천천히 찻잔을 내려놓았다.​회장의 뒤편에는 김 비서실장조차 보이지 않았다.​백금 지팡이 하나만이 의자 옆에 가지런히 세워져 있을 뿐이었다.​"시간은 정확히 지켰구나."​"부르셨습니까, 회장님."​소율은 문을 닫고 들어와 깍듯하게 허리를 숙였다.​"앉거라. 귀국 비행기까지 시간이 많지 않으니 쓸데없는 인사치레는 생략하자꾸나."​소율이 맞은편 의자에 앉자, 회장의 예리한 시선이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훑었다.​펜트하우스에서 보여주었던 옅은 유쾌함은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태성그룹을 수십 년간 이끌어온 냉철한 제왕의 눈빛만이 고요하게 빛나고 있었다.​"도현이에게는 말하지 않았겠지?"​"회장님께서 혼자 오라 하셨으니 따랐습니다."​"잘했다. 그놈이 알았다면 이 카페 벽이라도 부수고 따라 들어왔을 테니."​회장이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찼다.​"내 손주지만 요즘 하는 꼴을 보면 기가 막혀. 본부장이라는 놈이 제 여자 손목이 조금 아프다고 무릎까지 꿇고 주무르질 않나, 제 손으로 과일을 깎아 입에 넣어주질 않나. 네가 아주 단단히 홀려놓았더구나."​"

  • 14일간의 계약 연애   68화

    ​펜트하우스의 전용 엘리베이터 문이 완전히 닫히고도 한참이 지나도록, 한소율은 그 자리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아래층을 향해 내려가는 층수 표시등이 하나씩 줄어들었다. 마침내 숫자가 1에서 멈추자, 그제야 소율의 굳어 있던 어깨에서 힘이 스르르 빠져나갔다.​"가셨네요…."​안도와 아쉬움이 뒤섞인 작은 중얼거림이었다.​불과 하루 전만 해도 이혜민 회장은 파리 지사 감찰을 명분 삼아 펜트하우스의 도어록을 뚫고 들이닥쳤다. 소율이 태성그룹의 유럽 사업을 책임질 자격이 있는지, 그리고 차도현이라는 제멋대로인 손주를 곁에서 감당할 수 있는지 샅샅이 확인하겠다며 게스트룸에 짐까지 풀었다.​하지만 회장은 하룻밤 만에 예정된 체류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떠나기 직전에는 소율의 어깨를 직접 두드리며 분명히 말했다.​‘내 손주 녀석이 고집도 세고 유난스러운 놈이다만, 앞으로도 잘 길들여서 사람 구실 하게 만들어 주거라.’​그것은 깐깐한 태성그룹 실권자가 내린 사실상의 가족 승인이나 다름없었다.​"이제 마음 놓였지?"​등 뒤에서 나른한 음성이 떨어졌다.​소율이 돌아보기도 전에 차도현의 단단한 팔이 허리를 휘감았다. 도현은 소율을 제 품으로 바짝 끌어당기더니, 그녀의 어깨에 턱을 얹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회장님이 직접 허락했어. 더는 누구도 당신한테 자격이 있느니 없느니 떠들지 못해. 그러니까 오늘은 회사 생각도, 회장님 눈치도 전부 그만 보고 나랑 쉬어. 주말이잖아."​"누가 들으면 제가 회장님 눈치만 보느라 벌벌 떤 줄 알겠어요."​"어젯밤에 세 번이나 자다 깨서 게스트룸 쪽 확인한 사람이 누군데."​"그건 회장님께서 불편하신 건 없는지 살펴보려고 한 거죠."​"알았어. 우리 한 팀장님은 겁먹은 게 아니라 완벽한 내조를 한 겁니다요."​도현이 능글맞게 웃으며 소율의 귓바퀴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따뜻한 숨결이 닿자 소율의 어깨가 간지러운 듯 움찔했다.​"그리고 회장님한테 임무도 부여받았지. 남은 평생 동안 날 길들여야 하는 막중한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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