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회장님…… 이수아 씨를 찾은 것 같습니다.”순간.도윤의 손에서 작은 인형이 바닥으로 떨어졌다.탁.그러나 그는 그 소리조차 듣지 못했다.5년 동안 멈춰 있던 그의 세상이.그 한마디에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아르고스 박정훈 실장의 목소리는 5년 동안 단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말을 전했다.“회장님…… 이수아 씨를 찾은 것 같습니다.”도윤은 순간 숨 쉬는 것조차 잊었다.“……뭐라고…..?”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박 실장, 지금 뭐라고 했나?”수화기 너머로 박정훈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회장님께서 찾으시는 이수아 씨 찾았습니다. 제가 직접 만나 확인했습니다.”도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수아라고?”“네, 회장님.”“정말…… 수아 맞나?”도윤의 손이 떨렸다.그는 휴대전화를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확실해?”“사진은?”도윤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네. 지금 보내드리겠습니다.”“당장 보내.”전화를 끊은 도윤은 휴대전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화면을 연 순간, 도윤은 숨을 멈췄다.햇살이 환하게 내리쬐는 아담한 꽃집 안. 연한 베이지색 앞치마를 두른 여자가 손님을 향해 눈부시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태하그룹 유럽 법인 본사.“이번 계약으로 태하그룹은 유럽 시장에서도 확실한 우위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대형 회의실 안에 묵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예상 수익률은?”도윤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유럽 법인장이 서둘러 자료를 넘겼다.“향후 3년간 평균 18퍼센트 이상을 예상하고 있습니다.”도윤은 고개를 들었다.“예상이라는 말로는 부족합니다.”“시장 상황이 변했을 때의 대응 방안은요?”“그 부분은 현재 검토 중입니다.”“검토 중인 계획을 가지고 최종 보고를 하셨습니까?”법인장의 얼굴이 굳어졌다.회의 테이블 양쪽으로 유럽 법인 임원들과 현지 협력사 대표들이 앉아 있었다.그들의 시선은 모두 테이블 상석에 앉아 있는 한 남자에게 향해 있었다.“다시 준비하세요.”“네, 회장님.”“내일 오전까지 수정된 계획을 보고받겠습니다.”회의는 그렇게 끝났다.임원들이 하나둘 회의실을 빠져나갔다.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김민철 실장이 도윤에게 다가왔다.“회장님.”“오늘 일정은 여기까지입니다.”도윤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민철은 잠시 망설였다.“회장님, 오늘 저녁에는 좀 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도윤이 고개를 들었다.“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아닙니다. 다만…&he
서울 강남 아르고스의 대표실.박정훈 실장은 책상 위에 쌓인 서류들을 하나씩 넘기고 있었다.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조사 보고서였다.그리고 이름조차 낯선 작은 지방 도시들까지.지난 5년 동안 박정훈이 사람을 보내지 않은 지역은 거의 없었다.그가 찾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이수아.태하그룹 차도윤 회장이 5년 동안 단 하루도 잊지 못한 여자.처음 의뢰를 받았을 때만 해도 박정훈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 몰랐다.박 실장은 그동안 전국의 수많은 제보와 사진을 받아왔다. 수아와 눈매가 조금이라도 닮았다 싶으면 인력을 보내 확인했지만, 결과는 항상 똑같았다.아니었다.이번에도 창원에서 올라온 사진을 넘겨받을 때까지만 해도 박 실장의 기대감은 별로 없었다. 늘 그렇듯 이번에도 아니겠지 하는 심정으로 사진 파일을 열었다.하지만 사진을 들여다보던 박 실장의 눈이 순간적으로 튀어나올 듯 커졌다.“……!”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도윤이 직접 건네주었던 수아의 옛 사진과, 5년 전 기억을 더듬어 머릿속에 각인해 둔 그녀의 이목구비를 번갈아 가며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작은 꽃집 앞에 서 있는 여자였다.긴 검은 머리를 하나로 묶고 연한 베이지색 앞치마를 두른 모습이었다.그녀는 꽃다발을 들고 누군가에게 환하게 웃고 있었다.박정훈의 손가락이 멈췄다.“……어?”그는 화면을 다시 바라봤다.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설마…….’박정훈은 사진을 확대했다.
‘봄날의 정원’하얀색 나무 간판 아래로 연분홍빛 장미와 노란 프리지아가 놓여 있었다.꽃집의 커다란 유리창에는 아침 햇살이 반짝였고, 문 앞의 작은 화분들에는 밤새 맺힌 이슬이 아직 남아 있었다.희수는 꽃집 문을 열고 들어서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아, 좋다.”은은한 꽃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그녀는 가방을 내려놓고 앞치마를 둘렀다.연한 베이지색 앞치마에는 작은 꽃무늬가 수놓아져 있었다.희수는 긴 머리를 하나로 묶고 소매를 걷어 올렸다.그리고 가장 먼저 꽃들의 상태를 살폈다.“우리 장미들, 밤새 잘 있었어?”혼잣말을 하며 시든 잎을 떼어내고 물을 갈아주었다.오늘 새벽 꽃시장에서 가져온 수국은 유난히 싱싱했다.희수는 연한 하늘색 수국 한 송이를 들어 올렸다.“정말 예쁘다.”그녀는 꽃을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희수는 꽃들을 정리한 뒤 가게 앞에 작은 입간판을 세웠다.오늘도 당신의 하루에 꽃이 피기를.그녀가 직접 적은 문구였다.희수는 입간판을 바라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좋아. 오늘도 시작해 볼까?”꽃집 바로 옆 카페에서는 강민수가 커피 머신 앞에 서 있었다.그는 컵을 들고 카페 문을 나섰다.키가 크고 어깨가 넓은 민수는 동네에서도 제법 눈에 띄는 남자였다.몇 달 전 카페를 열었을
“희수 씨!”꽃집 문을 잠그려던 희수가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어머, 하준 씨!”김하준이었다.짙은 남색 셔츠에 베이지색 바지를 입은 하준이 한 손에 자동차 열쇠를 든 채 그녀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하준은 수아가 병원에서 퇴원하던 그날, 첫눈에 반한 이후로 지난 5년 동안 단 한 번도 그녀의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수아가 병원에 진료하러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시간에 맞춰 기다렸고, 입덧으로 고생하며 아무것도 먹지 못할 때는 그녀가 그나마 넘길 수 있는 과일을 찾아내 손에 쥐어주곤 했다.심지어 우진이가 태어나던 날에도, 하준은 남편처럼 병원 복도를 서성이며 정숙의 곁을 지켰다. 우진에게는 생부보다 더 다정한 ‘아빠 같은 삼촌’이 되어 주며 함께 뒹굴고 웃었다.수아에게 하준은 고마움을 넘어 평생을 다해도 갚지 못할 은인이자 가족이었다. 하지만 그 고마움이 사랑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오늘도 늦게 끝나셨네요.”“네. 내일 아침에 나갈 꽃바구니 주문이 많아서요.”희수는 마지막으로 꽃집 안을 확인한 뒤 문을 잠갔다.“하준 씨는요? 오늘 병원에 계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방금 끝났어요.”하준은 자연스럽게 희수의 손에 들린 가방을 받아 들었다.“이리 주세요.”“괜찮아요. 무겁지도 않은데.”“압니다. 그래도 제가 들고 싶어서요.”희수는 피식 웃었다.하준은 여전히 그녀의 웃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그는 속마음을 감춘 채 미소를 지었다.&ld
“엄마! 엄마아!”작은 골목길에 아이의 맑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노란색 유치원 버스가 멈춰 서자, 작은 가방을 멘 남자아이가 버스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왔다.“우진아, 천천히!”인솔 선생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는 꽃집 앞에 서 있는 여자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었다.“엄마!”“우리 우진이 왔어?”희수는 두 팔을 벌렸다.아이는 작은 운동화가 벗겨질 듯 달려와 엄마의 품에 안겼다.“엄마, 나 오늘 엄청 잘했어요!”“그래? 우리 우진이가 뭘 그렇게 잘했을까?”희수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자 우진은 기다렸다는 듯 가방을 열었다.“잠깐만요! 엄마한테 보여줄 거 있어요!”작은 손이 가방 안을 한참 뒤적였다.그러더니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넣어 두었던 도화지 한 장을 꺼냈다.“짜잔!”우진이 두 손으로 그림을 펼쳐 보였다.“엄마, 이것 봐요! 제가 그렸어요!”희수는 허리를 숙여 우진의 눈높이를 맞추었다.우진의 손에 들린 스케치북에는 삐뚤빼뚤한 동그라미 안에 제법 눈, 코, 입의 형태를 갖춘 사람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이거 엄마 선물이에요.”희수는 그림을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어머나! 이게 누구야?”우진의 두 눈이 반짝였다.“엄마잖아요!”“정말? 이 예쁜 사람이 엄마야?”&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