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재벌그룹의 절대 권력자, 차갑고 오만한 회장. 그의 곁을 지키던 어린 비서는 누구보다 완벽했고, 누구보다 순종적이었다. 적어도 그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그에게 비서는 언제나 자신의 곁에 있어야 할 여자였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것은 짧은 사직서 한 장뿐. 처음으로 통제할 수 없는 여자를 만난 남자는 그녀를 찾기 위해 모든 것을 움직인다. “도망치면 내가 포기할 줄 알았어?” 그녀를 되찾으려는 집착은 점점 광기로 변하고, 감춰졌던 비밀과 위험한 사랑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도망쳐야만 하는 여자와 절대로 놓아줄 수 없는 남자. 두 사람의 잔혹하고도 치명적인 사랑이 시작된다.
View More“차 세워.”
차태건이 내뱉은 한마디에 달리던 세단이 급격히 속도를 줄였다. 오승재 실장이 안전벨트에 몸을 부딪치며 돌아보았지만, 태건은 이미 태블릿 화면에 얼굴을 가까이 댄 채였다.
“찾았다.”
그의 목소리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낮았다. 그러나 화면을 움켜쥔 손은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태블릿 속에는 청담동 호텔 연회장에서 촬영된 사진이 떠 있었다. 베이지색 정장을 입은 여자가 계약서에 서명하고 있었다. 귀 뒤로 넘긴 짧은 머리카락, 펜을 쥘 때 조금 굽어지는 검지, 상대의 말을 들을 때 한쪽 눈썹을 먼저 들어 올리는 버릇까지.
윤세린이었다.
그가 다섯 해 동안 찾아 헤매다 끝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여자였다.
태건은 화면을 확대했다. 여자가 웃었다. 사진에 소리가 있을 리 없는데도 그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숨을 들이마시자 가슴 안쪽이 날카롭게 저렸다.
살아 있었다.
다섯 해 전 마지막으로 본 얼굴보다 조금 성숙해졌을 뿐, 그녀는 분명 살아 있었다.
그가 달려갔던 영안실에서 흰 천을 들춰 보던 순간의 냉기가 아직도 손끝에 남아 있었다. 다행히 그 아래에 세린은 없었다. 낯선 나라의 거리에서 세린과 닮은 뒷모습을 붙잡았다가 사과했던 밤에도, 그녀는 거기 없었다. 끊어진 번호에 수천 번 전화를 걸고, 그녀의 생일마다 포장을 뜯지 않은 선물을 쌓아 두고, 비어 있는 침대의 한쪽을 바라보며 새벽을 맞아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저렇게 웃고 있었다.
태건은 사진 속 여자의 옆자리를 보았다. 젊은 남자가 그녀의 의자를 빼 주고 있었다. 세린은 자연스럽게 그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무언가를 말했다. 낯선 남자에게 허물없이 웃는 얼굴이 태건의 눈을 찔렀다.
“어디야.”
“로얄크라운 호텔입니다. 온결이라는 브랜드의 백화점 입점 계약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오승재는 다른 화면을 띄웠다. 법인 대표 윤세린. 회사 설립 삼 년. 제품 사진과 기사, 대표 인터뷰까지 차례로 나타났다.
“본인이 확실해?”
“확인했습니다. 현재도 본명을 쓰고 있습니다. 다만 이전 거주 기록은 아직 확인 중이고…….”
“호텔로 가.”
승재가 운전기사에게 행선지를 전했다. 태건은 이미 통화를 시작하고 있었다. 수행차량을 보내라는 지시를 내리다 잠시 말을 멈췄다. 화면 속 세린의 왼손을 확대했기 때문이었다.
반지가 없었다.
그제야 굳어 있던 턱이 조금 풀렸다. 하지만 곧 옆자리 남자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저 남자.”
“강지후 대표입니다. 온결의 초기 투자자이자 공동 사업 파트너로 알려져 있습니다.”
“언제부터?”
“최소 사 년 전부터 교류한 것으로 보입니다.”
태건은 태블릿을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자신이 세린의 흔적 하나 찾지 못해 밤마다 미쳐 가던 시간에, 저 남자는 그녀와 사 년을 보냈다. 세린이 무슨 음식을 좋아하게 됐는지, 잠들기 전에 어떤 표정을 짓는지, 울 때 누구를 찾는지 알 수도 있었다.
“승재야.”
“예, 회장님.”
“호텔 출입구부터 확인해. 경호원은 거리를 두고 대기시키고.”
태건은 잠시 말을 멈췄다. 화면 속 세린이 다른 남자에게 웃어 보이는 모습을 다시 확인하자 입술이 굳어졌다.
“그 여자가 다시 내 눈앞에서 사라지게 두지 마.”
오승재는 대답을 망설였다. 다섯 해 동안 태건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그 눈빛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다.
“회장님, 윤 대표님이 원하지 않으시면…….”
“원하지 않으면?”
태건이 고개를 들었다. 차창에 비친 그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또 보내라고?”
그는 다시 화면을 바라보았다. 사진 속 세린은 아무것도 모른 채 웃고 있었다.
“이번에는…… 눈앞에서 사라지게 둘 수 없어.”
그때 그의 휴대전화가 짧게 울렸다. 조사팀에서 보낸 첫 번째 자료였다.승재는 화면을 확인하다가 눈썹을 찌푸렸다.“회장님, 온결의 유통 계약과 관련해 확인된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태건이 고개를 돌렸다.“뭔데?”“오늘 윤 대표님이 체결하신 전국 백화점 입점 계약 말입니다. 계약 상대방의 유통 운영을 맡는 회사가 저희 그룹 계열사와 공동 사업 관계에 있습니다.”태건의 눈빛이 달라졌다.“정확히 어떤 관계지?”“현재 운영 협약을 맺고 있습니다. 다만 계약에 직접 관여할 권한이 있는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합니다.”태건은 승재에게 손을 내밀었다.“자료 줘 봐.”승재가 휴대전화를 건네자 태건은 화면을 천천히 훑었다. 세린이 지난 반년 동안 공들여 준비했다는 전국 백화점 입점 계약이었다.그녀가 오늘 그렇게 행복해했던 이유이자, 그토록 지키고 싶어 했던 새로운 출발이었다.태건은 계약 관련 회사의 이름을 확인한 뒤 승재를 바라보았다.“이 회사 대표가 누구지?”“정민유통의 박정민 대표입니다. 저희 계열사와 공동 물류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태건은 익숙한 이름을 확인하고 손가락을 멈췄다.“지난달에도 우리 쪽에 사업 확대를 요청했던 곳 아닌가?”“맞습니다. 다만 윤 대표님의 계약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태건은 휴대전화를 승재에게 돌려주었다.“내일 오전에 박 대표와 약속 잡아.”승재가 고개를 들었다.“직접 만나시겠다는 겁니까?”“확인할 게 있어.”“회장님, 온결이 이번 계약을 위해 얼마나 많은 자금을 투입했는지 아십니까? 입점 일정이 틀어지기만 해도 윤 대표님께는 상당한 손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태건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린이 호텔에서 계약서를 받아 들고 환하게 웃던 모습이 떠올랐다.그녀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알고 있었다.그런데 이제 그 기쁨을 지켜 줄 수도, 빼앗을 수도 있는 위치에 자신이 서 있을지 몰랐다.“계약을 깨라는 지시는 아직 안 했어.”“하지만…….”“우선 내가 어디까지
태건은 사진 속 지후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렸다.“그 남자가 세린이 곁에 계속 있을 수 있을지 알아봐. 내가 가진 힘으로 어디까지 무너뜨릴 수 있는지도.”승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그렇게 하시면 윤 대표님은 회장님을 평생 용서하지 않으실 겁니다.”태건의 손이 멈췄다.그는 한동안 사진을 내려다보았다. 세린이 자신을 향해 외치던 목소리가 다시 귓가에 울렸다.‘회장님은 저를 버린 분이에요.’‘제가 누구를 만나든 상관하실 자격 없습니다.’‘제 인생에서 다시 사라져 주세요.’태건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이미 용서하지 않고 있잖아.”승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오늘 그 눈을 봤어.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믿지 않고, 가까이 가기만 해도 겁부터 내더군.”태건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가 다시 열었다.“그런데도 그 남자한테는 웃었어. 내가 다섯 해 동안 한 번만 더 보고 싶었던 얼굴로.”태건은 사진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내가 뭘 더 잃을 수 있겠어?”승재는 그 말을 듣고 등골이 서늘해졌다.태건은 이미 세린의 사랑을 잃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미움이 더 깊어지는 것쯤은 감수할 수 있다고 믿는 듯했다.그러나 승재가 보기에 태건은 아직 가장 중요한 것을 모르고 있었다.사람은 사랑하지 않는 상대에게서 멀어질 수 있지만, 자신을 두려워하게 만든 사람에게서는 목숨을 걸고 도망치기도 한다는 사실을.태건은 의자에 앉아 사진 속 세린의 얼굴을 손끝으로 쓸었다.“내가 다섯 해 동안 잘못 생각했어.”승재가 조심스럽게 그를 바라보았다.“기다리면 돌아올 줄 알았지. 내가 얼마나 후회했는지 알게 되면, 언젠가는 한 번쯤 나를 만나 줄 거라고 생각했어.”태건은 낮게 웃었다.“그런데 아니더군. 그 여자는 나 없이도 잘 살 수 있어. 오늘 그걸 똑똑히 봤어.”그는 사진을 내려놓고 승재를 바라보았다.“그러니까 이제는 나 없이 살 수 없게 만들어야겠어.”승재의 얼굴이 굳어졌다.“회장님, 제발 다시 생각해 보십
승재는 순간 말을 잃었다.태건은 책상 위에 놓인 서류철을 옆으로 밀어 놓았다.“온결의 유통망, 투자 유치 내역, 은행 대출, 진행 중인 납품 계약까지 전부 조사해. 강지후가 관여한 부분도 빠짐없이 확인하고.”“윤 대표님이 끝까지 도움을 거절하시면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태건은 대답하지 않은 채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정원에는 아직도 세린이 도망치려 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급하게 달려 나가다 미끄러졌던 잔디밭과 경호원들이 가로막고 섰던 대문이 보였다.그녀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자신에게서 벗어나려 했는지 알고 있었다.그런데도 보내 줄 수 없었다.“거절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면 되겠지.”승재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회장님, 그건 윤 대표님을 돕는 게 아닙니다. 그분이 힘들게 쌓아 올린 모든 걸 무너뜨리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알아.”태건은 망설이지 않았다.그 짧은 대답에 승재는 오히려 더 큰 불안을 느꼈다.“알면서도 그러시겠다는 겁니까?”태건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낯설었다. 눈가에는 깊은 피로가 내려앉아 있었고, 관자놀이에는 희끗한 머리카락이 늘어 있었다.다섯 해라는 시간이 자신에게 남긴 흔적이었다.“오 실장, 내가 여기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 같아?”승재는 대답하지 못했다.“세린이는 그 남자한테 돌아가겠지. 내일도, 모레도, 앞으로 남은 평생도 나 없이 살 거야.”태건은 창틀을 짚은 손에 힘을 주었다.“나는 그걸 못 보겠어. 그 여자가 다른 남자 옆에서 웃는 걸 더는 못 견디겠다고.”승재는 태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다섯 해 동안 세린을 찾아 헤매던 태건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이 자신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사랑하는 여자를 잃은 남자의 후회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면 조금씩 나아질 거라고도 믿었다.하지만 태건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세린을 찾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욱 예민해졌고, 그녀와 닮은 여자를 보았다는 제보 하나에도 모든 일정을
태건은 책상 위에 놓인 사진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강지후의 곁에서 웃고 있는 세린의 얼굴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자신이 지난 다섯 해 동안 미친 듯이 찾아 헤매는 동안, 저 남자는 그녀의 곁에서 함께 웃고, 밥을 먹고, 평범한 일상을 나누었을 것이다.사진 속 세린은 낯설 만큼 편안해 보였다. 자신과 함께 있을 때는 늘 어딘가 불안한 얼굴이었다. 그때는 그 이유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였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결국 곁에 남을 거라고 믿었다.그런데 세린은 떠났고,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저런 얼굴로 웃고 있었다.태건은 사진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오 실장, 온결의 주요 거래처부터 전부 파악해.”승재가 고개를 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윤세린의 지난 행적을 조사하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이번에는 그녀가 어렵게 일으킨 회사였다.“온결에 투자를 검토하시려는 겁니까?”“투자는 무슨.”태건은 사진 속 지후의 얼굴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그 남자가 없었다면 세린은 자신에게 돌아왔을까. 적어도 오늘 밤처럼 다른 남자에게 의지하며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다.그렇게 생각하자 억눌렀던 분노가 다시 치밀었다.“온결이 지금 누구와 거래하고 있는지, 자금은 어디서 조달하는지 전부 확인해. 계약 하나가 끊어졌을 때 어디부터 문제가 생기는지도 알아보고.”승재의 표정이 굳어졌다. 단순히 회사의 경영 상태를 살펴보라는 지시가 아니었다. 태건은 세린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손에 쥐려 하고 있었다.“회장님, 윤 대표님이 이 사실을 아시면 지금보다 더 멀어지실 겁니다.”“멀어져?”태건이 낮게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에는 조금의 여유도 없었다.“오늘 봤잖아. 그 여자는 나한테서 도망칠 생각밖에 없어.”그는 사진을 뒤집어 놓고 의자에 몸을 기댔다.경찰관 앞에서 자신을 가리키던 세린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강제로 끌려왔다고 진술했다. 자신이 가까이 다가가자 겁에 질려 뒷걸음질 치던 모습도 생생했다.다섯 해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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