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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첫 만남

Autor: 안나
last update Data de publicação: 2026-08-29 15:58:19

남쪽을 향해 달리는 고속버스 안.

수아는 차가운 차창에 관자놀이를 기대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버스는 깊은 어둠을 가르며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자꾸만 지나온 시간 속으로 되돌아갔다. 차창 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가로등 불빛이 눈꺼풀 위로 번질 때마다, 애써 묻어두려 했던 한 남자의 얼굴이 더욱 선명하게 떠올랐다.

차도윤.

그와 처음 마주쳤던 날도 지금처럼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그때의 수아는 알지 못했다.

그날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온 한 남자가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것이라는 사실을.

대학교 마지막 방학이었다.

수아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태하그룹 본사 옆에 자리한 작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대형 유리창 너머로 태하그룹의 거대한 본사 건물이 올려다보이는 곳이었다. 주변에는 고급 정장을 차려 입은 직장인들과 외국인 바이어들이 쉴 새 없이 오갔다.

수아에게 그 빌딩은 늘 자신과는 상관없는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다.

태어날 때부터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곳.

반대로 자신은 무엇 하나 스스로 얻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사람이었다.

고아원에서 자란 수아는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었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대학에 들어갔지만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었고, 낮에는 카페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야간 수업을 들었다. 피곤해서 책상 위에 엎드려 잠들 때도 많았지만, 언젠가는 작은 미술학원을 열어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겠다는 꿈이 있었다.

화려한 성공도, 많은 돈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힘으로 마련한 작은 공간에서 아이들과 웃으며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날도 수아는 그런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나왔습니다.”

수아가 주문한 음료를 손님에게 건네던 순간이었다.

카페 입구의 유리문이 천천히 열렸다.

딸랑.

맑은 종소리가 울렸지만, 이상하게도 카페 안의 공기는 순식간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수아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문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보았다.

큰 키.

군더더기 없이 단단한 체격.

완벽하게 재단된 짙은 색 슈트는 넓은 어깨와 곧은 몸선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옷차림과 차갑게 가라앉은 표정에서는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위압감이 흘러나왔다.

남자의 뒤로 비서로 보이는 젊은 남자와 중년의 외국인 손님들이 따라 들어왔다.

그러나 수아의 눈에는 다른 사람들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모든 시선은 가장 앞에 선 남자에게만 향했다.

차도윤.

태하그룹 회장의 장남이자 차기 후계자.

수아 역시 얼굴과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신문과 경제 잡지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었다. 젊은 나이에 태하그룹의 핵심 사업을 맡고 있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냉철한 경영자로 알려진 남자.

하지만 실제로 마주한 그는 사진보다 훨씬 더 압도적이었다.

잘생겼다는 단순한 말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곧고 진한 눈썹 아래 자리한 눈은 깊고 차가웠다. 오뚝한 콧날과 굳게 다문 입술에서는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는 부드러움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마치 이 공간의 모든 것을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통제하는 사람 같았다.

도윤의 시선이 카페 안을 천천히 훑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수아에게 멈췄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순간, 수아는 숨 쉬는 법을 잊었다.

서늘하고 날카로운 그의 눈빛이 그녀의 얼굴을 지나 목과 어깨로 천천히 내려앉았다. 단순히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었다.

마치 수아라는 사람의 겉모습뿐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두려움과 외로움까지 모두 들여다보려는 듯했다.

온몸이 굳었다.

손끝이 차갑게 식었고, 가슴은 이유도 없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시선을 돌릴 수 없었다.

세상의 모든 소음이 한순간 멀어진 것 같았다.

커피 머신이 돌아가는 소리도, 컵이 부딪치는 소리도, 손님들이 나누는 대화도 들리지 않았다.

수아에게는 오직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의 눈빛만 존재했다.

그 짧은 순간이 이상하리만큼 길게 느껴졌다.

“저기요.”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나서야 수아는 정신을 차렸다.

“아…… 죄송합니다.”

수아는 황급히 도윤에게서 시선을 떼었다.

그의 뒤에 서 있던 중년의 손님이 주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목소리가 떨렸다.

들키지 않으려 애썼지만 손끝까지 흔들리고 있었다.

주문을 확인하고 컵을 꺼내는 짧은 순간에도 수아는 자꾸만 도윤의 존재를 의식했다. 그가 어느 자리에 앉았는지, 여전히 자신을 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커피를 내리던 중 손에서 컵이 미끄러질 뻔했다.

“정신 차리자, 이수아.”

수아는 아무도 듣지 못하도록 작게 중얼거렸다.

겨우 음료를 완성해 손님에게 건넨 뒤, 수아는 조심스럽게 테라스 쪽을 바라보았다.

도윤은 유리창 가까이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앞에 앉은 사람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었지만, 도윤의 시선은 그들에게 온전히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수아를 보고 있었다.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눈빛이었다.

호기심인지, 경계인지, 혹은 단순한 무관심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 시선이 수아를 불편할 만큼 긴장시키고 있다는 것.

수아는 애써 그를 외면하며 설거지를 하고 테이블을 정리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다시 테라스 쪽을 바라보았을 때, 도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제야 수아는 자신도 모르게 참아왔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아…….”

긴장이 풀리자 다리에 힘이 빠질 것 같았다.

이상한 사람이었다.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을 뿐인데, 마치 오랫동안 거센 폭풍 속에 서 있었던 기분이었다.

수아는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서울에는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태하그룹의 후계자인 남자와 평범한 카페 아르바이트생인 자신이 다시 마주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저 잠시 스쳐 지나간 인연.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수아는 알지 못했다.

카페를 떠난 뒤에도 차 도윤의 머릿속에서 자신의 얼굴이 단 한 순간도 지워지지 않았다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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