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ZER LOGIN철컥.
펜트하우스 현관문이 조용히 닫혔다. 그 작은 소리는 이상하리만큼 크게 들렸다. 마치 지난 3년의 시간이 그녀의 등 뒤에서 천천히 막을 내리는 소리 같았다. 이수아는 한동안 문 앞에 그대로 서 있었다. 손끝은 차갑게 식어 있었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돌아가. 아직 늦지 않았어. 마음속 어디선가 간절한 목소리가 그녀를 붙잡았다. 문을 다시 열면 언제나처럼 도윤의 향기가 가득한 집이 있었다. 그가 즐겨 마시던 위스키. 소파에 아무렇게나 벗어 놓은 재킷. 욕실 선반에 놓인 그의 면도기. 그리고 밤마다 자신을 품에 안아 주던 그의 체온까지. 모든 것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수아는 눈을 감았다. "...안 돼." 작게 중얼거리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한 번이라도 뒤돌아보면 다시는 떠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마치 세상과 단절되는 기분이었다. 청담동의 새벽은 고요했다. 화려한 도시의 불빛은 여전히 눈부셨지만, 오늘만큼은 그 빛조차 차갑게 느껴졌다. 수아는 검은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했다. 도윤과 함께 다니던 기사도. 경호원도. 비서 김민철도. 아무도 그녀를 봐서는 안 됐다. 오늘만큼은 반드시. 그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아야 했다. 지난 두 달. 수아는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살아왔다. 도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김유진 여사도. 최태수 기사도.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도록. 웃고. 먹고. 잠들고. 평소와 똑같이 살아왔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는 조금씩 자신의 흔적을 지워 나갔다. 휴대전화 번호를 정리했다. 은행 계좌도 하나씩 정리했다. 친구들과의 연락도 끊었다. 혹시라도 자신을 찾을 단서가 될 만한 것은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마치 세상에서 존재 자체를 지우는 사람처럼. 가장 힘들었던 것은 드레스룸 이었다. 수백 벌의 명품 드레스. 도윤이 해외 출장을 다녀올 때마다 선물했던 가방. 보석. 구두. 시계. 그 안에는 그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이게 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무심하게 건네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수아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는 열지 않을 드레스룸 문을 조용히 닫았다. 그녀는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다. 화려한 옷도. 값비싼 보석도. 그에게 받은 추억도. 모두 그 자리에 남겨 두었다. 단 하나. 낡은 위켄더백 하나만 손에 들었다. 그 안에는 지난 두 달 동안 몰래 처분한 보석과 명품으로 마련한 현금이 들어 있었다. 도윤이 그녀를 위해 사 주었던 것들이, 이제는 그의 아이를 지켜 줄 마지막 희망이 되었다. 운명이란 참으로 잔인했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새벽 다섯 시. 이른 시간이었지만 터미널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로 분주했다. 가족을 만나러 가는 사람. 출장을 떠나는 사람. 여행을 가는 연인.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 속에서, 수아만이 혼자였다. 도착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표를 끊는 손끝이 떨렸다. "한 장 주세요."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혼자 가세요?" "...네." 짧은 대답. 하지만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도 가슴을 후벼 팠다. 이제 정말 혼자였다. 버스가 출발했다. 서울의 화려한 불빛이 창밖으로 하나둘 멀어졌다. 청담동. 한강. 높은 빌딩들. 그리고 도윤이 있는 도시. 그 모든 것이 점점 작아졌다. 수아는 창문에 이마를 기대었다. 눈물이 말없이 흘러내렸다. 애써 참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도윤과 함께 했던 모든 시간의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보고 싶어요." 그녀는 아무도 들을 수 없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정말 많이..." 끝내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작게 떨리는 어깨를 감싸 안으며, 수아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배 위에 손을 올렸다. 아직은 누구도 알아차릴 수 없는 작은 생명. 하지만 그녀에게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전부였다. "...아가." 눈물이 배 위로 떨어졌다. "엄마가 꼭 지켜 줄게." "아빠는... 우리를 원하지 않을지도 몰라." "그래도 엄마는 널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우리... 둘이서 행복하게 살자." 버스는 어느새 서울의 경계를 벗어나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가로등 불빛이 마치 그녀의 지난 삶을 하나씩 지워 가는 것만 같았다. 이수아는 마지막으로 서울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 순간, 그녀는 더 이상 태하그룹 후계자의 숨겨진 여자가 아니었다. 한 아이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 한 명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버스는 묵묵히 남쪽을 향해 달렸다. 그리고 아무도 알지 못했다.같은 시각. 태하그룹 본사에서 몇 블록 떨어진 조용한 주차장. 김민철은 차 안에서 전화를 걸고 있었다. “접니다.” 전화기 너머로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입니다, 김 실장님.”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민철은 주변을 한번 확인했다. “여자 한 명을 보호해야 합니다.” “위험 상황이 있는 겁니까?” “가능성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요?” 민철은 휴대전화에 저장된 황치우의 사진을 확인했다. “최근 일정한 남자가 대상자의 직장과 집 주변에서 반복적으로 목격됐습니다.” “스토킹 가능성이 있다는 말씀이군요.” “아직 단정하지 마십시오.” 민철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확인하는 게 먼저입니다.” “알겠습니다.” “대상자의 일상에 개입하지 말고 주변만 확인하세요. 누가 접근하는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사람이 있는지.” “위험 상황에서는요?”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바로 개입하십시오.” “경찰 신고도 포함입니까?” “필요하면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민철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 “이 의뢰에 관한 기록은 최소한으로 남기십시오.” “그리고 보고는 저한테만 하세요.” 민철은 통화를 끊었다. 한동안 휴대전화를 내려다봤다. 자신도 알고 있었다. 도윤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평소의 그답지 않다는 것을. 차도윤은 사람에게 쉽게 관심을 갖는 남자가 아니었다.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사람까지 붙이는 남자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런데 이수아라는 여자에게는— 계속 예외가 생기고 있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수아가 시계를 확인했다. “수고하셨어요.” 치우가 연필을 내려놓았다. “다음 시간에도 선생님이죠?” “네. 일정 변경이 없으면요.” “변경하지 마세요.” 수아가 멈칫했다. 치우가 곧 웃었다. “제가 다른 선생님은 불편해서요.” “아…….”
“수아 선생님.” 미술실 문을 열자마자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수아가 걸음을 멈췄다. 황치우였다. 두 번째 개인 레슨. 수업 시작까지 아직 십 분이나 남았는데 치우는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일찍 오셨네요.” 수아가 밝게 인사하며 교재와 스케치북을 내려놓았다. “안녕하세요, 황치우 씨.” “안녕하세요.” 지난번과 조금 달랐다. 첫 수업 때만 해도 치우는 수아와 눈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질문을 하면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고, 수아가 바라보면 어색하게 시선을 피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오늘은 먼저 말을 걸었다. 표정도 한결 편안해 보였다. “지난번에 배운 거 연습해 오셨어요?” “네.” “정말요?” “선생님이 연습하라고 하셨잖아요.” 치우가 가방에서 스케치북을 꺼냈다. 수아가 받아 펼쳐봤다. 여러 방향으로 그어진 선과 원, 사각형이 빼곡했다. “우와.” 수아가 진심으로 놀랐다. “많이 하셨네요.” “잘한 겁니까?” “네. 생각보다 훨씬 많이 하셨어요.” 수아가 페이지를 넘겼다. “제가 이렇게까지 많이 하라고 한 건 아닌데.” “선생님한테 잘하고 싶어서요.” 수아의 손이 잠깐 멈췄다. “저한테요?” 치우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아…….” 그는 황급히 말을 고쳤다. “수업을 잘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아.” 수아가 웃었다. “제가 숙제 검사하는 무서운 선생님도 아닌데요.” “그래도요.” 치우가 수아를 힐끗 바라봤다. “선생님이 잘했다고 해주면…… 기분이 좋습니다.” 수아는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고 웃었다. “그럼 오늘도 많이 칭찬해드려야겠네요.” 그 순간— 치우의 눈빛이 묘하게 달라졌다. “정말요?” “네?” “저한테만요?” 수아가 잠깐 멈칫했다. “뭐가요?” “칭찬이요.” “…….” 수아는 어색하게 웃었다. “잘하시면 당연히 칭찬해드리죠.” 치우의 입가에 미소가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난 밤이었다. 태하그룹 지하주차장. 도윤은 평소처럼 대기하고 있던 기사에게 차 키를 받아 들었다. “오늘은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기사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전무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됐어.” “댁으로 가시는 게 아니십니까?” “개인 일정이 있어.” 짧은 대답이었다. 도윤은 더 이상의 설명 없이 운전석에 올라탔다. 차 문이 닫혔다. 잠시 후 검은 세단이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왔다. 기사를 물리고 직접 차를 모는 일 따위는 그의 인생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 수아라는 존재였다. 내비게이션 화면에는 낯선 주소 하나가 떠 있었다. 이수아의 집. 김민철에게 받은 주소였다. 차가 청담동을 벗어나 점점 서울의 오래된 주택가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화려한 고층 빌딩과 펜트하우스의 야경에 익숙한 도윤에게, 낡은 빌라와 빼곡하게 들어찬 주택들이 늘어선 이 서민 동네는 낯설다 못해 이질적인 공간이었다. 골목 어귀에 대형 세단을 세운 도윤은 네비게이션 화면과 주소지를 번갈아 확인하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오래된 다세대주택과 작은 빌라들이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오래된 담벼락 아래에는 분리수거 봉투가 쌓여 있었다. 골목은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큼 좁았다. 도윤은 미간을 찌푸렸다. “여기라고?” 내비게이션 주소를 다시 확인했다. 틀리지 않았다. 낡은 붉은 벽돌 건물 하나가 보였다. 3층짜리 다세대주택. 그리고 그 위에 작은 옥탑방이 붙어 있었다. 도윤의 시선이 멈췄다. 옥탑방. 김민철에게 받은 자료에 적혀 있던 호수와 일치했다. “저기인가.” 도윤은 한동안 건물을 올려다봤다. 씁쓸하면서도 짓누르는 듯한 분노가 가슴 바닥에서 끓어올랐다. 이 협소하고 남루한 공간에 그녀가
평소 같으면 씻고 과제를 했겠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혼자 있는 것이 싫었다.누군가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수아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연락처를 한참 내려갈 필요도 없었다.손가락이 익숙한 이름에서 멈췄다.지아.수아의 얼굴이 조금 부드러워졌다.유일한 친구.아니.친구라는 말로는 부족했다.수아에게 지아는 가족이었다.두 사람은 같은 고아원에서 자랐다.기쁜 날도,서러운 날도,누군가의 가족이 부러워 몰래 울었던 밤도 함께했다.성인이 되어 고아원을 나온 뒤에도 한동안 작은 방에서 서로 의지하며 살았다.그런 지아가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한다고 했던 날.수아는 누구보다 기뻐하면서도 많이 울었다.지아가 지방으로 내려가는 날에는 더했다.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가족마저 떠나는 것 같아서.하지만 이제 지아에게는 남편이 있었고, 사랑스러운 아들도 있었다.지아가 그토록 바라던—자신만의 가족이 생겼다.수아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신호가 두 번쯤 울렸을까.“여보세요?”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수아의 눈가가 괜히 뜨거워졌다.“지아야.”“어머, 이수아?”수아가 웃었다.“미안, 시간이 너무 늦었지!”“무슨 일 있어?”지아는 걱정부터 했다.“아니, 아무 일 없어.”“새로운 데 취직했다며? 미술학원은 어때?”그 질문에 수아의 표정이 환해졌다.“좋아.”“정말?”“응. 정말 좋아.”수아는 침대에 걸터앉았다.“아이들 가르치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어. 애들도 너무 예쁘고.”“너 원래 애들 좋아했잖아.”“그러니까.”수아가 조용히 웃었다.“나 졸업하면 너 있는 곳으로 갈게.”수아의 목소리가 조금 밝아졌다.“진짜?”지아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응.”“진짜 진짜?”“왜 두 번 물어봐.”“너 또 말만 하고 서울에 남을까 봐!”수아가 웃음을 터뜨렸다.“이번에는 진짜야.”“약속했다?”수아의 눈빛이 조금씩 꿈을
수아가 미술학원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선생님’이라는 호칭도 어색했고, 아이들 앞에 서서 무언가를 설명하는 것도 긴장됐다.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생각보다 훨씬 즐거웠다.“선생님!”“응?”“이거 봐주세요!”초등학교 2학년 여자아이가 스케치북을 번쩍 들고 수아에게 달려왔다.“어디 보자.”수아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쪼그려 앉았다.커다란 도화지에는 집 한 채와 나무, 그리고 손을 잡고 있는 세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우와, 예쁘다. 이건 누구야?”“엄마, 아빠, 저요.”“그럼 이건?”“우리 집이요!”아이가 자랑스럽게 대답했다.“나중에 진짜 이런 집에서 살 거예요. 마당에 강아지도 키울 거고요.”“그래?”“네! 선생님은 강아지 좋아해요?”“엄청 좋아하지.”“그럼 선생님도 그려줄까요?”수아가 웃음을 터뜨렸다.“선생님을?”“네!”아이는 빈 공간에 사람 하나를 더 그리기 시작했다.“여기가 선생님이에요.”“선생님이 너희 집에 살아?”“네. 선생님도 같이 살아요.”“그럼 선생님 방도 있어?”“당연하죠!”수아는 아이의 말에 환하게 웃었다.“고마워. 선생님 집까지 만들어줘서.”“하하.”수아의 웃음소리가 미술실 안에 퍼졌다.아이들과 있으면 좋았다.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쳐주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됐다.카페를 그만둔 뒤 처음 며칠 동안은 도윤의 얼굴이 자주 떠올랐다.아침 열 시가 가까워지면 괜히 시간을 확인하기도 했다.‘오늘도 카페에 갔을까?’그러다 스스로를 책망했다.자신이 그만둔 카페에 그가 오는지 안 오는지가 무슨 상관인가.시간이 조금씩 지나면 그에 대한 기억도 사라질 것이었다.차갑고 무뚝뚝한 얼굴.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던 깊은 눈.수아는 애써 그 얼굴을 마음 한구석으로 밀어냈다.‘잘한 거야.’카페를 그만둔 것
“여기입니다.”김민철이 태블릿을 도윤 앞으로 밀었다.화면에는 수아가 새로 일하기 시작한 미술학원의 정보가 떠 있었다.도윤은 말없이 화면을 내려다봤다.“집에서 버스로 약 20분 정도 거리입니다. 오전에는 성인 취미반과 개인 레슨, 오후에는 학생 수업을 맡고 있습니다.”“언제부터?”“지난주에 면접을 봤고 월요일부터 출근했습니다.”도윤의 눈빛이 가늘어졌다.도윤은 의자에 등을 기댔다.“주소는?”“확인했습니다.”민철이 다음 화면을 열었다.수아가 현재 살고 있는 주택의 옥탑방 주소였다.“학교와 카페에서 멀지 않은 곳입니다. 보증금과 월세는 본인이 부담하고 있고 특별한 문제는 없습니다.”도윤의 턱이 단단하게 굳었다.“그리고…….”민철이 잠시 머뭇거렸다.“뭐야?”“확인 과정에서 찍은 사진입니다.”몇 장의 사진이 화면에 나타났다.도윤의 손이 멈췄다.첫 번째 사진.미술학원 건물로 들어가는 수아였다.긴 머리를 하나로 묶고 한 손에는 가방을, 다른 손에는 커다란 스케치북을 들고 있었다.두 번째 사진에서는 아이와 함께 건물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허리를 조금 숙인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그리고 세 번째.미술학원 창문 너머로 수아가 보였다.앞치마를 두르고 아이의 그림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도윤의 시선이 그 사진에서 멈췄다.한참 동안.“…….”김민철은 말없이 기다렸다.도윤이 이렇게 오랫동안 사진 몇 장을 바라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김 비서.”“네.”“이 사진.”도윤이 무심한 척 물었다.“누가 찍었어?”“조사 담당 직원이 찍었습니다.”도윤의 표정이 굳었다.“남자야?”민철이 순간 대답을 멈췄다.“……네.”“다음부터 여자 직원 보내.”민철이 도윤을 바라봤다.“네?”도윤의 차가운 시선이 날아왔다.“두 번 말해야 하나?”“아닙니다.”“그리고 사진 원본 전부 삭제하라고 해.”“알겠습니다.”민철은 대답하면서도 묘한 표정을 감췄다.도윤은 다시 사진으로 시선을 돌렸다.자신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