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정루아는 한마디 대꾸도 없이, 그저 거칠게 숨만 몰아쉬었다.정석주가 채찍을 툭 던지며 싸늘하게 명령했다.“얘 데리고 병원으로 가.”경호원들이 다가와 그녀를 일으켜 세우더니 밖으로 끌고 나갔다.정루아는 버둥거릴 힘조차 없었다. 미세한 움직임에도 등에서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차량 뒷좌석에 짐짝처럼 처박혔을 때, 그녀의 정신은 이미 아득하게 흐려져 있었다.한편, 정루아를 은밀히 동행하며 지키고 있던 구태윤의 경호원들은 이 참혹한 광경을 목격하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그중 한 사람이 떨리는 손으로 황급히 구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찌르는 병원.정석주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병상에는 정시연이 누워 있었고, 그 곁에는 임혜숙이 앉아 사과를 깎고 있었다.“아빠? 이 늦은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그를 발견한 정시연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정석주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루아 데리고 사과하러 왔다.”정시연은 흠칫 놀라며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아니에요, 아빠. 루아가 뭐 고의로 그랬겠어요? 전 정말 괜찮...”하지만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경호원들에게 질질 끌려 들어오는 정루아를 발견했다.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켰다.“루아야...!”“세상에나!”깜짝 놀란 임혜숙이 비명을 질렀다.손에 들고 있던 사과가 바닥으로 툭 떨어져 데구르르 굴러갔다.그녀는 허둥지둥 달려가 정루아를 부축하고 안절부절못하며 살폈다.“이게 무슨 난리야...”곧이어 정루아의 등에 난 상처를 발견하고는 고개를 들어 정석주를 바라보았다.어느덧 목소리마저 떨리고 있었다.“당신, 당신이 루아를 때렸어?”정석주는 굳은 얼굴로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말을 안 들으니 매운맛을 좀 보여준 거지.”임혜숙의 얼굴이 고통과 슬픔으로 일그러졌다.“아무리 그래도 애한테 손을 대면 어떡해! 조곤조곤 타이르면 될 일을.”그리고 안쓰러운 표정으로 물었다.“루아야, 많이 아프지? 엄마가 당장 의사 불러올게.”“가지 마.”
정루아는 무표정하게 문을 열었다. 눈빛은 극도로 경계심이 가득했다.현관 너머로 벌어진 연극을 그녀는 안에서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동시에 깊은 무력감도 밀려왔다.결국 자신이 이 집안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찰조차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경찰이 말했다.“아버님이 걱정돼서 찾아오신 모양인데, 굳이 신고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요.”정루아는 입을 꾹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사람을 저렇게 떼거리로 몰고 오는데, 저를 해코지하려는 줄 알았죠.”“그게 무슨 헛소리야! 다 널 걱정하고 지켜주려고 데려온 사람들인데. 루아야, 그만 고집 피우고 아빠 좀 들어가게 해줘. 통 연락도 안 닿고, 아빠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정석주는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이어갔다.정루아의 시선이 경찰을 향했다.“전 이 사람을 집안에 들이고 싶지 않아요.”“정루아!”정석주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어졌다.하지만 집안싸움에 경찰이 개입하기란 한계가 있었다.결국 하나같이 곤란한 기색을 비치며 먼저 자리를 떴다.정루아는 다시 문을 닫으려 했지만, 눈치 빠른 경호원이 재빨리 문짝을 움켜쥐며 그녀를 제지했다.그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고, 눈동자에는 짙은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정석주는 서늘한 눈빛으로 쏘아보며 말했다.“남을 다치게 해놓고, 유치장에서 하룻밤 묵었다고 다 해결된 줄 아느냐? 정루아, 넌 아직 언니한테 사과도 안 했어.”정루아는 이를 악물었다.그럼 그렇지, 부모가 자신을 찾아올 때면 항상 정시연 문제뿐이었다.밀려오는 피로감에 그녀가 지친 듯 내뱉었다.“우리 유전자 검사나 한번 해봐요.”“아직도 헛소리야!”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정석주는 뒤에 있던 경호원에게 손을 뻗었다.“채찍 가져와!”그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온 모양이었다.정루아는 연신 뒷걸음질 쳤다.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고, 목소리는 씁쓸함이 묻어났다.“내 몸에 손대지 마요! 소시연 밀친 적 없으니까.”“아직도 말대꾸냐? 언니는
한층 어두워진 잘생긴 얼굴을 보니 정루아는 기분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그녀가 물었다.“나 이제 가도 되지?”구태윤은 가늘고 긴 눈매로 그녀를 그윽하게 바라보았다.“안 돼.”하지만 정루아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향해 걸어갔다.굳이 제 몸을 고생시키고 싶지도 않았고, 배를 채운 이상 이곳에 더 머무를 이유도 없었다.경호원이 가로막았지만, 그녀는 앞만 보고 직진했다.금방이라도 부딪힐 듯 아슬아슬한 거리에 경호원이 기겁하며 손을 내렸다.그냥 막는 것과 신체 접촉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만약 사모님의 손가락 하나라도 건드렸다간, 제 손목이 무사하지 못할 터였다.정루아는 빠른 걸음으로 별장을 나섰다.경호원의 시선이 거실 안에 있는 남자를 향했다.구태윤은 그녀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계속 감시해. 들키지 않게.”“네, 알겠습니다.”...아무도 따라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정루아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긴장을 풀었다.어느덧 밤이 깊어 가고, 화려한 불빛이 도시를 밝혔다.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무심코 휴대폰을 켰다가 업무 단톡방의 이름이 바뀐 것을 발견했다.프로젝트 매니저가 단톡방에 회사의 인수합병 소식을 올렸다.이제 보이스 랩은 구명 그룹 산하의 미디어 부서가 되어 있었다.정루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이번에는 또 무슨 꿍꿍이란 말인가? 멀쩡한 회사를 갑자기 인수하다니.그때, 정호에게서도 메시지가 도착했다.[회사는 인수되었지만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해야 합니다. 아직 녹음 분량이 절반이나 남았으니, 사직서 낼 생각은 꿈도 꾸지 마세요.]마치 그녀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한발 앞서 퇴사 생각을 잘라버린 것이다.정루아는 짤막하게 ‘네’라고 답장을 보낸 뒤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바로 그 순간, 초인종 소리가 울려 퍼졌다.의아한 마음에 인터폰 화면을 확인하자 문 앞에 서 있는 정석주가 눈에 들어왔다.여긴 왜 또 온 거지?쾅, 쾅!생각이 스치기 무섭게 현관문이 부
정루아가 대답했다.“응, 진욱 씨도 조심하고.”“알았어.”배진욱이 다정하게 말했다.바로 그때, 침실 문이 열리며 구태윤이 안으로 들어왔다.앞치마를 두른 채 심연 같은 눈동자로 그녀를 응시했다.“루아야, 깼으면 내려와서 밥 먹어.”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였지만, 휴대폰 너머로 똑똑히 들릴 만한 크기였다.배진욱이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다.“그럼 방해하지 않을게. 다음에 시간 나면 같이 밥 먹자.”“응.”정루아는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그리고 구태윤을 무시한 채 침대에서 내려와 욕실로 향했다.갈아입을 옷까지 챙겨 드는 모습에 구태윤도 딱히 붙잡지 않았다.샤워를 마치고 나니 한결 개운해진 기분이었다.1층으로 내려가자 이미 식탁 위에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구태윤은 거실 소파에 앉아 휴대폰으로 한창 답장을 보내는 중이었다.정루아는 그를 힐긋 쳐다보고는 곧장 현관문 쪽으로 걸어갔다.“루아야.”그대로 지나치려는 그녀를 보자, 구태윤이 나지막이 이름을 불러 세웠다.정루아는 들은 체도 않고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문을 열자마자 입구를 가로막고 선 경호원들을 마주쳤다.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이게 무슨 짓이야?”정루아는 고개를 홱 돌렸다. 물기 어린 눈동자가 분노로 이글이글 타올랐다.구태윤이 덤덤하게 말했다.“너랑 밥 같이 먹으려고. 날 본체만체해도 좋으니까, 밥은 먹고 가.”정루아의 손이 힘이 불끈 들어갔다.그녀가 나가버릴 것을 진작에 예상하고 경호원들을 대기시켜 둔 게 분명했다.‘치사한 놈!’때마침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제 몸을 상해가면서까지 고집 부릴 생각은 없었다.그녀는 식탁으로 걸어가 자리를 잡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그제야 싸늘하게 식었던 구태윤의 표정이 조금은 누그러졌다.설령 억지로 곁에 붙잡아 둔 것에 불과할지라도 상관없었다.정루아는 시선을 내리깐 채 무표정한 얼굴로 식사에만 열중했다.구태윤은 그녀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가슴 한구석에서 정체 모를 씁쓸함과 시린 통증이 밀려들었다.예전에는
정루아의 목소리는 한결 차분해졌고, 어조 또한 단호했다.구태윤은 저도 모르게 팔을 단단히 조이며 그녀를 품에 가두었다.기어코 이혼해서, 어떻게든 그를 벗어나겠다는 건가.가슴 속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불길이 치밀었다.그녀의 얼굴을 쏘아보던 시선이 이윽고 입술에 닿았다.안정을 찾은 듯 무심한 표정이었지만, 핏기 없는 입술은 평소와 달리 생기를 잃었다.그는 돌연 고개를 숙여 창백한 입술을 삼켰다.정루아의 동공이 문득 커졌다. 손을 뻗어 그를 밀쳐내려 했지만, 입맞춤은 점점 더 집요해졌다.입술을 머금고 탐하다가, 그녀가 놀라 숨을 들이켜는 틈을 타서 잽싸게 파고들었다.신경을 마비시킬 듯한 감각 속에서 숨결과 달콤한 온기를 남김없이 빼앗았다.두 사람의 호흡이 점점 거칠어졌다.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를 놓아준 구태윤이 붉고 탐스러운 입술을 내려다보았다.그제야 들끓던 분노가 아주 조금 가라앉는 기분이었다.정루아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빨개진 눈시울로 손을 치켜들었다.하지만 따귀를 날리기 전에 손목이 덥석 붙잡혀 아래로 향했다.“나, 너랑 이혼 안 해.”구태윤은 그녀의 옆에 누워 코끝으로 뺨을 다정하게 문질렀다.“기억하지? 우리 평생 같이 살겠다고 약속했던 거.”정루아는 눈을 감았다. 속눈썹이 걷잡을 수 없이 떨렸다.심장이 욱신거렸고, 꽉 막힌 듯 답답한 느낌에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어젯밤에도 제대로 자지 못한 데다 오늘 이런 일까지 겪었으니, 팽팽하던 긴장이 풀리자마자 피로가 해일처럼 밀려들었다.그녀는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구태윤은 고른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먹물처럼 짙은 눈동자에는 애틋하고 깊은 집착이 서려 있었다.그는 눈앞의 여자를 묵묵히 바라보았다.이윽고 침대 옆 협탁을 열어 정교한 붉은 벨벳 상자 하나를 꺼냈다.그리고 뚜껑을 열어 안에서 반지를 집어 들고 그녀의 손을 조심스레 맞잡고 약지에 끼워주었다.다름 아닌 결혼반지였다.안쪽에는 서로의 이름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다.대체 이걸 어떻게 팔 생각을 했을까
“이미 눈치챘던 거 아니야? 나 계속 너 미행하고 있었는데.”구태윤의 깊고 어두운 눈동자가 담담하게 정루아를 응시했다.어차피 무슨 말을 하든 그녀는 믿지 않을 터였다.그렇다면 차라리 미행한 걸로 믿게 두는 편이 나았다.“당신...”정루아의 고운 미간이 찌푸려지며 맑은 눈동자에 분노가 스쳤다.하지만 방금 전 자신을 구해준 일이 떠올라 차마 화를 터뜨릴 수는 없었다.결국 울컥하는 마음에 휴대폰을 꺼내 택시를 불렀다.절대 정수원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무언의 시위였다.바로 그 순간, 눈앞으로 쑥 끼어든 손 하나가 그녀의 휴대폰을 낚아챘다.“이리 내놔!”정루아가 매섭게 그를 쏘아보았다.구태윤은 휴대폰을 제 주머니에 쑤셔 넣더니, 곧장 조수석 문을 열고 허리를 굽혀 그녀를 번쩍 안아 올렸다.품에 안긴 정루아가 버둥거렸다.“이것 놓으라고!”찰싹!구태윤이 그녀의 엉덩이를 가볍게 때리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경고했다.“정루아, 나 지금 화 많이 참는 중이야. 더 이상 자극하지 마.”기어코 배진욱을 따라 밥을 먹으러 가더니, 결국 이 사달을 냈다.이게 저 여자가 원했던 선택의 결과라니.정루아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이... 미친놈아! 당장 내려놔!”구태윤은 아예 그녀를 어깨 위로 들쳐멨다. 그래야 더는 발버둥 치지 못할 테니까.거실을 성큼성큼 가로질러 곧장 2층으로 향한 그는 정루아를 푹신한 침대 위로 내던졌다.매트리스 반동에 정루아의 몸이 꿀렁거렸다.그녀는 곧바로 몸을 뒤집어 일어나 문 쪽을 향해 뛰쳐나가려 했다.하지만 구태윤이 가느다란 발목을 움켜쥐며 아래로 잡아끌었다. 그리고 몸을 숙여 그녀를 침대 위로 짓눌렀다.“어디 가게? 아직도 그 새끼한테 미련 남았어?”뜨거운 숨결이 귓가에 닿았다.거대한 체구가 그녀를 완전히 덮쳐 옴짝달싹도 못 하게 만들었다.“이거 놓으라고! 내가 어디를 가든 당신이 무슨 상관인데? 당신이랑 같은 곳에만 안 있으면 돼!”정루아는 붉어진 눈시울로 계속 버둥거렸다.구태윤의 미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