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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가짜 가족.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7-24 16:00:48

처음 아빠를 본 감상은 ‘늙었다’였다.

엄마는 미혼모로 학생 때 나를 가지고 집에서 쫓겨났다. 미성년자 혼자 나이를 속이며 아르바이트하며 애를 키우는 것이 쉽지 않을 때였다. 하지만 엄마는 악착같이 해냈고, 그런 엄마를 알아본 아빠는 엄마와 사랑에 빠졌다.

⁠엄마와 아빠는 7살 차이가 났다. 실질적으로 결혼을 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함께 살았다. 어린 마음에 갑자기 생긴 아빠는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엄마는 어째서 이런 아저씨와 함께 살기로 한 건지 어린 마음에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첫 만남부터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 그 어렸던 나도 이유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아빠는 다정했고 멋졌다. 어쩌면 새아빠가 아닌 엄마가 숨겨둔 나의 진짜 아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를 딸처럼 아꼈다. 그리고 한 번도 아빠의 애정을 받아본 적 없던 나는 그것이 기뻤다.

다른 애들이 하던 목마도 비행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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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GAPE : 우리는 그랬다   17. 우리는 뭐야?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가면서, 모든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생체리듬은 깨지고, 지금 얼마나 지났는지 날은 얼마나 갔는지 시간을 인지할 수 없게 된다. 나 역시 겨우 얕은 물에 한 발짝 담근 수준이었지만, 일종의 예술을 하는 것이니 그런 생활을 하지 않을까 싶었지만…나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절대 그럴 수 없었다.⁠“별로야?”⁠우리 집에는 그 누구보다 바른생활 남자가 있었다.오늘은 스튜를 내놓고 나의 반응을 살피는 도진이의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집안에 바른 생활인이 있으면 여러모로 좋고 괴롭다. 밤을 새워 몰입했지만 밤을 새웠다고 말하게 된다면, 지금 저 곱게 잘 빚어진 얼굴이 구겨질 것이 분명했기에 최대한 티 내지 않았다.하지만 별개로 입맛이 없는 것은 사실이라, 힘없이 숟가락을 휘젓는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표정이 점점 딱딱하게 굳어갔다. 자기 요리가 문제라고 생각한 건지, 가는 눈을 뜨며 스튜를 맛보는 얼굴은 솔직히 볼만했다.⁠“너… 요즘 한가해?”⁠결국 참지 못하고, 며칠 동안 괴롭히던 궁금증을 내뱉었다.⁠“왜, 내가 집에 있는 게 불편해?”⁠가시가 돋친 말.⁠“아니… 요즘 바쁜 거 아니었어?”⁠괜히 주눅이 들어 말끝을 흐리자, 그럴 생각은 아니었던지 자신도 입을 꾹 닫고 건강한 맛이 나는 스튜를 먹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 넓은 집에, 이 침묵…. 익숙하지만 견디기 힘들다. 겨우 넘긴 스튜는 따뜻하기만 했지, 무슨 맛인지 알 수 없었다.⁠“누구랑 작업해?”“켁!”⁠이 침묵을 깨는 질문에, 차라리 침묵이 나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아무리 속

  • AGAPE : 우리는 그랬다   16. 약속.

    ⁠⁠고요한 카페 2층 구석 자리.주문했던 따뜻한 라테가 식을 때까지 꼼짝 않고, 노트북과 패드를 번갈아 만지며 깊은 고뇌에 빠져 있던 것은, 조금 멀리서부터 탁탁, 탁탁, 우당탕 소리와 함께 맞은편 자리에 착석한 홍시혁에 의해 와장창 깨졌다.이어폰을 빼고 찬찬히 훑은 홍시혁은, 머리가 바람에 의해 엉망이었고 목도리도 옷도 난리였다. 무엇보다 찬바람에 얼굴이 새빨개진 모습은 안쓰러울 정도라 라테를 건넸지만, 이미 식은 라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그리고 뛰어온 것인지 한참 숨을 고르다,⁠“진심?”⁠뱉은 첫마디가 저거다.⁠“그럼 널 왜 불렀겠어?”⁠퉁명스럽게 대꾸하자, 가는 눈을 뜨며 의심하면서도 내가 건넨 이어폰은 착실하게 새빨갛게 얼어 있는 귓구멍으로 향했다. 그리고 라테가 식는 줄도 모르고 집중한 결과물을 들려주자,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말도 없이 음악에 집중하는 건지, 아니면 별생각이 없는 건지 그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은 조금 부담스러워 괜히 패드로 시선을 옮겨 애꿎게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딴짓했다.⁠“그… 어때?”⁠아직 완성되지 않았지만, 끈질기게 연락이 오는 통에 일단, 이 미쳐 날뛰는 홍시를 진정시키는 목적으로 미완성된 싸비를 들려주자, 당사자는 역시 별말 없이 여전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짙은 아이홀에 잘 자리 잡은 쌍꺼풀과 긴 속눈썹, 여전한 눈동자와 콧대.하여간에 예나 지금이나 얼굴 하나는 잘났다니까.⁠“네 목소리랑… 어울릴 거 같아서.”“이거 뭐야?”⁠뭐냐니?노래를 만들어 달라고 그렇게 괴롭히지 않았나?순간 기억상실이라고 걸린 건가 싶어서 한껏 노려

  • AGAPE : 우리는 그랬다   15. 가짜 가족.

    ⁠⁠처음 아빠를 본 감상은 ‘늙었다’였다.엄마는 미혼모로 학생 때 나를 가지고 집에서 쫓겨났다. 미성년자 혼자 나이를 속이며 아르바이트하며 애를 키우는 것이 쉽지 않을 때였다. 하지만 엄마는 악착같이 해냈고, 그런 엄마를 알아본 아빠는 엄마와 사랑에 빠졌다.⁠엄마와 아빠는 7살 차이가 났다. 실질적으로 결혼을 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함께 살았다. 어린 마음에 갑자기 생긴 아빠는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엄마는 어째서 이런 아저씨와 함께 살기로 한 건지 어린 마음에 궁금하기도 했다.하지만 첫 만남부터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 그 어렸던 나도 이유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아빠는 다정했고 멋졌다. 어쩌면 새아빠가 아닌 엄마가 숨겨둔 나의 진짜 아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를 딸처럼 아꼈다. 그리고 한 번도 아빠의 애정을 받아본 적 없던 나는 그것이 기뻤다.다른 애들이 하던 목마도 비행기도 어부바도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딸처럼 대해준다고 한들, 나는 진짜 딸이 아니었다. 내가 그런 것을 부탁해도 괜찮을까 싶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아빠가 보란 듯이 나를 목에 태우며 산산조각 냈다.처음 느껴보는 공기, 높이, 감정.너무 기뻐서 눈물을 뚝뚝 흘리자, 아빠는 내가 무서워서 우는 줄 알고는 꼭 끌어안아 달랬다.⁠‘율아, 울면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안 줘.’‘도진이가… 산타는 없다고 했어요.’‘하… 그놈의 자식. 좋아. 오늘은 아빠랑 노는 날이니까, 산타 할아버지를 대신해서 선물을 사주지!’‘정말?!’‘당연하지. 귀한 공주님이 데이트를 신청해 줬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그냥, 너무너무 좋았다. 아빠가 생겨서 너무 기뻤다.⁠‘엄마, 엄마! 엄마는 아빠가 왜 좋아~?’‘아빠는

  • AGAPE : 우리는 그랬다   14. 나, 나의, 나만의… 우리의 아빠.

    ⁠⁠이 추운 날,바다에 다녀온 뒤, 환절기를 무시한 탓일까?감기로 고생하고 이제 겨우 돌아다닐 수 있을 때쯤, 반강제로 영웅이의 손에 이끌려 아빠가 있는 요양원에 도착했다.좋은 자연환경과 달리 이질적인 고급 건물, 그 안으로 모자를 푹 눌러쓰고 손가락을 가만두지 못했다. 한참을 말썽이라 죄인이 된 것처럼 숨을 꾹 참고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던 영웅이의 뒤를 따라 고급스러운 방으로 들어서자, 아빠는 굉장히 기쁜 얼굴을 하고서는 이름을 부르며 양팔을 벌렸다.⁠“은율아!”⁠그리고 그 옆에는 이미 와있던 도진이가 앉아 있었다.⁠“이야, 우리 딸! 이게 얼마 만이야!? 자주 좀 와!”⁠영웅이가 팔꿈치로 나를 툭툭 쳤다. 몸이 중심을 잃고 허우적거리는 나의 손을 잡은 주름진 손은 ‘잡았다’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는 것에 눈가가 찌릿찌릿했다.⁠“아, 아빠!”⁠참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아빠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그토록 그리웠던 온기와 손길이 나의 머리와 등을 쓰다듬으며 꼭 끌어안아 주는 것이, 나의 온갖 불안한 마음을 아빠의 냄새가 진정시켰다.⁠“아버지, 약은 제대로 드시고 있죠?”“거참, 잔소리는…. 먹고 있어. 그보다 영웅이는 갈수록 인물이 훤~해지네? 엄마는 잘 계셔?”“당연하죠! 안 그래도, 상태 잘 확인하고 오라는 명을 받들었다고요!”⁠진정된 몸은 다시 열이 오르기 시작했는지, 점점 뜨거워지는 나의 몸에 아빠가 슬쩍 이마에 손을 올리며 인상을 찌푸렸다.⁠“감기 기운이 있네. 약은 먹었어? 너희, 누나 관리 똑바로 안 해?”“아니… 그게 어쩔 수 없었달까… 약은 먹었고….”

  • AGAPE : 우리는 그랬다   13. 시끄러워, 시끄럽다고.

    ⁠⁠<홍시혁>⁠“… 형, 너 요즘 자주 나간다?”“기분 전환하러.”“사고 안 친다고 약속한 거 안 잊었지.”“벌써 몇 번째 말하지? 지겹지도 않냐?”“지겨운 건 네가 사고 치는 거지.”⁠동생인 홍지혁은 뭐 움직이기만 하면 사고 치지 말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괜히 진절머리가 나 창문을 괜히 쓱 열고는 찬바람에 머리를 식히고는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너 요즘 자주 멍하다?”“너 요즘 건방지다? 또 처맞아야지 정신 차리지?”⁠짜증을 잔뜩 담아 말하자, 처맞기는 싫은지 커피를 홀짝이며 고개를 홱 돌렸다.⁠“야, 홍지혁.”“왜. 뭐.”“나….”“뭐.”“…… 율이… 은율이 만났어.”“쿠헥! 뭐!?”⁠나의 말에 놀란 건지, 사레가 걸려 커피를 소파와 테이블에 다 쏟아내 버리는 못난 동생의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혀를 차며 걸레를 얼굴에 던져버리자, 받을 생각도 못 하고 여전히 콜록거리기 여념 없었다.⁠“지, 진짜!?”“그럼, 가짜냐?”“… 누, 누나 잘 지내고 있어? 아니, 애초에 아는 척을 해!?”⁠걸레로 대충 테이블을 닦으며 묻는 말에 ‘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모습이 잘 지내고 있는 모습으로 보이지도 않았고, 아는 척도 내가 먼저 했다.그 당황한 표정은 아직도 생생하다.⁠“와… 인사는 해줘? 뭐라고 안 해?”“어.”“와… 대박.”⁠놀랍다는 듯이 이마를 ‘탁’ 치는 소리는 경쾌하기 그지없

  • AGAPE : 우리는 그랬다   12. 아이돌 홍 시 혁.

    ⁠⁠그렇게 며칠이 더 지나고 이제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혼자가 익숙해졌고 편해졌다. 원래 그랬던 것처럼 온전한 나의 시간을 되찾은 것이었다.⁠익숙하게 피아노 건반을 누르며 멜로디를 따고 있을 때, 코가 뻥 뚫리는 시원한 향과 함께 시끄럽게 문이 쾅 열리는 것에 추락할 뻔한 심장을 부여잡고 문을 봤다. 이번에는 머리를 조금 더 밝은 금발로 물들인 양아치가 한껏 들뜬 표정으로 손까지 흔들며 느끼하게 인사했다. 그 표정이 모옵시 재수가 없었던 터라, 무시하자 양아치는 의아한 표정으로 내 옆에 앉아 나를 빤히 바라봤다.⁠‘뭐지? 오랜만에 봐서 다시 거리 두는 건가?’‘… 말 걸지 마.’‘왜? 나 칭찬 들어서 고맙다고 인사하러 온 건데?’‘난 네가 필요할 때만 아는 척하는 애야?’‘엥? 무슨 소리야? 나 일주일 만에 온 건데?’⁠짜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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