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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5화

작가: 은지아
하정훈이 눈을 떴을 때, 침실은 텅 비어 있었고 송남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였다. 그의 품속에 희미하게 남은 그녀만의 매혹적인 향기와 방안을 가득 메운 지워지지 않는 정사의 흔적만이 어젯밤의 일을 증명할 뿐이었다.

하정훈은 미간을 깊게 구기며 온 방을 샅샅이 뒤졌지만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란에게 그녀가 아침 일찍 서둘러 떠났다는 말을 듣고 나서 가슴 졸이던 마음이 놓이는 순간, 그 현실이 발등을 찍었다.

‘그렇게, 급하게 가야 했나? 그럼 어젯밤은 뭐지?’

하정훈은 심란한 마음에 휴대폰을 들고 송남지에게 물음표 하나를 보냈다.

그쪽에서는 꽤 빨리 답장이 왔다.

[미안해요, 어젯밤 제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혹시 실례되는 행동을 했다면 마음에 담아두지 말아요...]

하정훈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미란이 갓 짜낸 과일 주스를 가져다준 것조차 그는 알아차리지 못한 채 송남지가 보낸 그 문장만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실례되는 행동? 어젯밤 그들의 그 뜨거웠던 시간이 송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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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밀 의료기기에 둘러싸인 박재용의 모습은 마치 기계에 갇힌 포로와도 같았다.안색은 대리석처럼 투명하게 창백했고 감긴 눈꺼풀 아래로 푸른 정맥이 선명히 드러났으며 한때 화폭 위를 자유롭게 누비던 손가락은 이제 모니터 배선 옆에 힘없이 놓인 채 손톱 끝에 연보랏빛 죽음의 그림자를 머금고 있었다.호흡 마스크 아래로 내뱉는 숨결은 두꺼운 시멘트벽에 가로막힌 듯 짧고 위태로웠고 고가의 심전도 모니터 위에 그려지는 곡선들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위태로워 보는 이의 심장을 조여왔다.송남지는 문 앞에 서서 잠시 굳어버렸다.그녀는 천천히 침대 곁으로 다가가 그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이 연약한 존재를 깨뜨릴까 두려워, 혹은 현실 같지 않은 차가운 온기에 닿을까 무서워 허공에서 손을 멈췄다.실내에는 기계의 단조로운 비프음만이 흐를 뿐이었고 그 거대한 정적 속에서 송남지는 소중한 무언가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그것은 지금 이 순간 조금씩 희미해져 가는 박재용의 심장 박동과도 같았다.박재용은 온 힘을 다해 미소를 지으며 활기찬 척해보려 했지만 눈가에 서린 깊은 쇠약함만은 도저히 감출 수 없었다.그는 짐짓 송남지를 놀리듯 농담을 던졌다.“설마 나한테 반한 거예요? 만 리 길을 마다치 않고 달려온 거 보니 좀 겁나네요. 내가 남지 씨한테 내일은 약속 못 합니다. 나조차 내가 내일까지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거든요.”송남지는 애써 기운을 내면서도 아주 조심스럽게 그의 팔을 툭 쳤다.“재용 씨, 지금 이 상황에서도 장난이 나오세요?”그 모습을 보던 박명규는 박재용이 분위기를 밝히려고 애쓰는 게 딱 평소의 자신 같다고 생각했다.박재용을 웃겨주려고 매일같이 실없는 소리를 해대던 그였으니까.하지만 이제 박명규는 알 것 같았다. 이런 농담은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낫다는 것을. 웃기기는커녕 도리어 상황을 더 비극적으로 만들 뿐이었다.박재용은 살짝 맞은 팔이 아픈 듯 인상을 쓰며 엄살을 피웠다.송남지는 순간 당황해 급히 손을 거두며 겁에 질린 눈으로 그를

  • 가면을 쓴 남편   제74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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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용은 터벅터벅 냉장고로 걸어가 캔 콜라 하나를 꺼내며 송남지에게 마시겠느냐는 눈짓을 보냈다.송남지는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난 그런 거 안 마셔요.”박재용은 아랑곳하지 않고 캔을 땄고 탄산이 터지는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송남지가 한숨 섞인 감탄을 내뱉었다.“재용 씨 한번 만나기가 정말 하늘의 별 따기네요.”냉장고에 몸을 기댄 박재용이 테라스 쪽 화판을 가리켰다.“어쩌겠어요, 밤에 영감이 더 잘 떠오르는걸. 그리고 어젯밤부터 관장님이 나를 찾아올 줄 알고 있었어요.”송남지는 의아한 듯 물었다.“내가 왜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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