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入도윤이 정훈의 입에 물려있던 재갈을 거칠게 풀어냈다.
"...설마."
이정훈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너."
도윤은 웃었다.
"기억은 하시네요."
그러나 금새 웃음기를 지우고 조용히 물었다.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누구 지시였습니까."
"..."
"김성철 사건."
"..."
"누가 덮으라고 했습니까."
이정훈은 이를 악물었다.
"난 모른다."
도윤이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모른다."
"그래."
"그럼 당신이 출세한 이유도 모르겠네요."
순간.
이정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도윤은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경장에서 경감까지."
"참 빠르더군요."
"..."
"사람 하나 죽이고 받은 대가치고는."
“...”
도윤은 정훈의 앞에 사진 하나를 내려놓았다.
활짝 웃고 있는 아이와 그 옆의 아이를 사랑스럽게 내려다보는 여자.
이정훈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가 입술까지 새파래졌다. 그의 동공이 지진이 난 듯 떨리기 시작했다.
"제발..."
"그 애들은 건드리지 마."
도윤은 잠시 사진을 바라보다가 낮게 웃었다.
"걱정 마십시오."
"난 당신이랑 다릅니다."
그리고 사진을 손가락으로 툭 건드린다.
"다만."
"당신 가족들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정훈의 눈이 흔들린다.
"무, 무슨..."
"당신이 어떤 인간인지."
"당신 아들."
"경찰 준비한다면서요."
순간 이정훈이 굳는다.
"..."
"아버지처럼 훌륭한 경찰이 되고 싶다고 했다던데."
“그만..그만해. 난 정말 몰라.”
도윤은 말없이 그를 내려다보았다.
정훈이 천천히 눈을 감으며 말했다.
"...우리가 결정한 게 아니었어."
"...위에서 내려온 일이었다."
도윤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누구."
이정훈이 입술이 파들파들 떨리다 천천히 열렸다.
다음 날 아침.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조직범죄수사팀.
서하는 전날 정리한 자료를 다시 펼쳐보고 있었다.
15년 전 회계사 김성철 사망 사건.
그리고 최준혁.
그리고 이정훈.
분명 뭔가 있다. 둘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제 뭔가 실마리가 잡힐 것 같았다.
그때.
쾅, 하고 사무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경위님!"
김민석이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얼굴.
서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이정훈 경감..."
민석이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겨우 말을 이었다.
"죽었습니다."
순간.
사무실 공기가 얼어붙었다.
"...뭐?"
"오늘 새벽."
"한강공원 인근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답니다."
서하의 손에서 펜이 떨어졌다.
툭.
팀장의 표정도 순식간에 굳었다.
서하는 믿을 수 없어 망연히 혼잣말을 읊조렸다.
“이게 대체...”
“정신 차려. 현장으로 가자.”
팀장은 멍하니 서있는 서하의 어깨를 툭치며 먼저 옷을 챙겨 나갔다.
서하도 팀장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뒤를 따랐다.
한강공원 인근.
폴리스 라인이 길게 둘러쳐져 있었다.
주변에는 이미 과학수사대와 형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차에서 내린 서하는 곧장 현장 안으로 들어갔다.
"어디 있습니까."
감식반 직원이 말없이 강변 쪽을 가리켰다.
파란 천이 덮여 있었다.
서하는 천천히 다가갔다.
천이 들춰졌다.
"..."
이정훈이었다.
불과 어제.
본청에서 커피를 마시며 태연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남자.
그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 있었다.
서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인은?"
옆에 있던 감식반 직원이 대답했다.
"현재로선 타살 가능성이 높습니다."
"외상은?"
"크게 눈에 띄는 건 없습니다."
"..."
"다만."
감식반 직원이 이정훈의 손목을 가리켰다.
"양손과 발목에서 결박 흔적이 확인됐습니다."
"..."
"사망 전에 누군가에게 묶여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서하의 눈빛이 흔들렸다.
감금.
협박.
머릿속에서 단어들이 빠르게 이어졌다.
서하는 직감했다.
누군가가 이정훈의 입을 막으려 했다.
혹은, 무언가를 알아내려 했거나.
그렇다면.
그 사람이 알아낸 건 무엇일까.
서하는 천천히 시신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불과 어제.
이 남자는 자신 앞에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 만에 죽었다.
너무 빠르다.
마치 누군가가 수사를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현장 정리를 마치고 서로 돌아온 뒤에도 서하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있었다.
15년 전 회계사 김성철 사망 사건.
최준혁.
이정훈.
연결고리가 하나씩 드러나는가 싶더니.
그때마다 누군가가 흔적을 지워버린다.
하지만 이제 와서 왜?
15년이나 지난 사건이다.
이미 자살로 종결된 사건.
그 사건에 관심을 가질 사람이 누가 있다고.
그때.
옆자리에서 김민석이 끙 하는 소리를 냈다.
"왜."
"아니..."
민석이 파일을 몇 장 뒤적였다.
"이상해서요."
"뭐가."
"15년 전 사건 말입니다."
민석이 서류를 내밀었다.
"이 부분."
"당시 담당 수사팀에서 DNA 감식을 요청했습니다."
"...DNA?"
"예."
서하는 곧바로 서류를 받아들었다.
현장 증거물 감식 요청서.
분명히 존재했다.
그런데 그 아래 적힌 문구를 보는 순간 눈살이 찌푸려졌다.
[감식 불필요]
"..."
민석도 미간을 찌푸렸다.
"거절됐네요."
"누가?"
"검찰."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서하는 서류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당시 결론은 자살.
하지만 그 결론이 나오기 전에 이미 경찰은 DNA 감식을 요청했었다.
즉, 수사팀도 처음부터 자살이라고 확신하지는 못했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감식은 진행되지 않았다.
그리고 사건은 그대로 종결됐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민석이 낮게 말했다.
"당시 자살인지 타살인지 확실하지도 않았는데."
"..."
"왜 DNA 감식을 막았을까요."
서하는 대답하지 못했다.
민석의 말은 계속됐다.
"더 이상한 건 따로 있습니다."
그가 다른 서류를 꺼냈다.
"시신 화장."
"..."
"사망 직후 굉장히 빠르게 진행됐습니다."
서하의 눈빛이 흔들렸다.
"유족 요청?"
"기록상으로는 그렇습니다."
민석이 고개를 저었다.
"근데 보통 이렇게 논란이 있는 사건이면 추가 확인 끝날 때까지 미루는 경우도 많잖아요."
"..."
"DNA도 안 하고."
"추가 감식도 안 하고."
"시신도 빨리 화장됐고."
민석이 조용히 말했다.
"이거 누가 너무 서둘러 덮은 것 같은데요."
"...맞아."
서하가 천천히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그때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순간 그녀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뿐이지."
민석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조용히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
"그럼 지금 하면 되잖습니까."
"..."
"그때는 신입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잖아요."
서하는 고개를 들었다.
민석이 씩 웃었다.
"이제 경위님이 해결 못 하는 사건이 어딨다고요."
"아직 안 늦었습니다."
서하는 한동안 말없이 사건철을 바라보았다.
15년 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신입 경찰.
그리고 지금.
광역수사단 조직범죄수사팀 형사.
그 사이에 많은 것이 변했다.
하지만 진실은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최준혁.
이정훈.
회계사 김성철 사망 사건.
이제 더 이상 우연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서하는 천천히 사건철을 덮었다.
"...끝까지 간다."
민석이 피식 웃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 날 새벽,
도윤은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잠든 줄 알았던 서하가 뒤척였다.
"...어디 가?"
도윤의 움직임이 순간 멈췄다.
"...깼어?"
낮게 웃으며 이불을 다시 끌어올려 주었다.
"잠이 안 와서."
"금방 들어올게."
다시 누우려던 서하는 잠시 멈춰서 나가려던 그를 바라보았다.
희미한 어둠 속,
평소와 다른 검은 셔츠.
평소엔 차지 않는 손목 시계.
깔끔하게 쓸어넘긴 머리.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상했다.
왜인지 모르게.
가슴 한쪽이 불편했다.
"...어제도 나갔어?"
도윤의 손이 멈췄다.
아주 잠깐.
정말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
"...갑자기 그건 왜?"
서하가 눈을 가늘게 떴다.
"대답해."
"..."
"어제도 나갔냐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도윤의 표정이 천천히 굳었다.
"...설마."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
"나 의심하는 거야?"
“이 번호...전부 겹쳐.”서하는 통화 내역을 보며 중얼거렸다.시점이 너무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가족들을 만난 사람이 있었어...”그녀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분명해.""이 번호 주인이 가족들을 만났어."서하는 다시 통화 내역을 확인했다.이정훈의 아내, 그리고 아들.전부 한 번씩 통화했을 뿐이지만 분명 겹치고 있었다. 우연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이상했다. 통화 시점도, 통화 상대도."...통화 이후에 장례를 서둘렀고.""...그래서 이사까지 갔다."서하는 천천히 의자에 몸을 기댔다.이정훈 가족들은 무언가를 알고 있다.아니, 정확히는 누군가에게서 무언가를 들었다.그 이후부터 모든 것이 바뀌었다.“민석아.”김민석이 서하의 부름에 곧장 몸을 일으켰다."예, 경위님?““이 번호, 좀 알아봐봐.”서하가 민석에게 통화 목록 자료를 내밀었다.“이 번호요? 뭔가 찾으셨어요?”“아직은. 근데, 뭔가 있는건 맞는 것 같아. 타이밍이 너무 절묘해.”민석은 통화 목록을 내려다보다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그러네요. 이정훈 가족들이랑 다 한 번씩 통화한 기록이 있어요.""사건 이후라 그냥 넘어갔는데..."민석이 자료를 다시 훑었다."응."서하가 통화 내역을 손가락으로 짚었다.“거기다 통화 시점이 장례 전날이랑 이사 전날이야. 뭔가 이상하지 않아?”"..."“만약, 이정훈 가족들이 누군가를 만났고 그 사람이 가족들을 침묵하게 만들었다면..."민석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럼.""이 사람부터 찾아야겠네요."서하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응.""이 번호. 이번 사건의 시작일 수도 있어."잠시 후,민석이 복잡한 표정으로 서하에게 다가왔다.“알아봤어?”"네. 번호 조회는 해봤는데 등록 정보가 안 나옵니다.""명의도 확인 안 되고요.""대포폰 같습니다."서하는 민석의 말에 예상했다는 듯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역시.”민석은 의아한 듯 서하를 바라보았다."예상하셨습니까?""응.""보
도윤은 잠든 서하를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하지만 끝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그저 그녀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며 조용히 생각했다.『내가 처음 널 만난 날,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처음에는 그저 지켜보기만 하려고 했는데.』『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내 세상에는 너밖에 남지 않았어.』도윤의 시선이 천천히 서하의 얼굴을 훑었다.마치 잃어버릴까 두려운 사람을 눈에 담아두려는 것처럼.『그래서 더 두려워.』『언젠가 네가 모든 진실을 알게 되는 날.』『그때도...』잠시 생각이 멈췄다.도윤은 느리게 눈을 감았다.그리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물었다.『넌 내 이름을 불러줄까.』한참을 그렇게 잠든 서하를 바라보던 도윤은 그녀를 가볍게 안아들고 침대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서하의 이마에 살며시 입을 맞추고 일어나 불을 끄고 방을 나섰다.철컥.어두운 집을 뒤로 하고 현관문이 닫혔다.짙게 선팅된 검은 세단 안,도윤은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집에서 보였던 부드러운 표정은 어디에도 없었다. 차 안에는 무거운 정적만이 흘렀다. 운전석에서 도윤의 눈치를 살피며 부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이정훈 가족들 이주 완료까지 확인했습니다.”“현재도 감시 중입니다.”도윤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창문 너머 스쳐 지나가는 야경만 바라보다가 짧게 입을 열었다.“계속 지켜봐.”부하가 고개를 숙였다.“예.”도윤의 시선이 백미러를 향했다. 차가운 눈빛이 잠시 부하를 스쳤다.“접촉하는 사람은 전부 보고해.”“알겠습니다.”다시 도윤의 시선이 무심하게 창밖을 향했다.“검찰 쪽은.”부하가 곧바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예?”“그 검사.”“움직임 있나?”“최근 들어 연락을 자주 돌리고 있습니다.”“예전 인맥들도 접촉하는 것 같습니다.”도윤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그래?”“우리 제안에 대한 답은.”부하가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아직 확답은 없습니다.”“다만…”"자료를 더 요
전날 오후.서하가 이정훈의 가족들을 찾아가 진실을 묻던 순간에도, 도윤은 그 곳에 있었다. 빌라 앞 주차장에 세워진 검은 세단 안, 도윤은 서하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그리고 그녀의 문 앞에서 이정훈의 가족들이 굳은 얼굴로 그녀를 밀어내듯 문을 닫는 것도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 서하가 힘없이 돌아서는 것을 보며 도윤의 눈동자도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녀의 그런 뒷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원인을 만든 사람이 자신이라는 사실 역시.서하의 차가 골목을 빠져나가는 것을 한참 동안 바라본 뒤에야, 도윤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땅거미가 질 무렵, 작은 이삿짐 트럭 한 대가 빌라 앞에 도착했다. 이정훈의 가족들은 가방 몇 개를 들고 건물에서 나와 서둘러 싣기 시작했다. 그 모든 과정을 도윤은 짙게 선팅된 창문 너머로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트럭이 조용히 빌라 주차장을 빠져나갔다."..."그의 손끝이 천천히 움직였다.운전석에 앉아 백미러로 눈치를 살피던 부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따라붙을까요?"도윤은 잠시 침묵했다."..."천천히 입을 열었다. 낮은 목소리로 지시했다."당분간.""계속 지켜봐."부하가 고개를 숙였다."예."도윤은 창문에 기대어 조용히 눈을 감았다.그들이 어떤 선택을 했든 혹은 앞으로 어떤 마음을 먹게 되든, 지금은 아직 안심할 수 없었다.철컥.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하지만 소리가 들린 곳은 서하의 옆이었다. 서하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밤중에 왜이렇게 시끄럽게 해요?”문을 열고 나온 중년의 여자가 말했다. 이웃집 여자였다.“무슨 일이에요?”이웃집 여자는 서하를 경계하듯 훑어보며 물었다.“...죄송합니다.”“그 집 사람들 찾아왔어요?”“아, 네. 볼 일이 좀..”“듣기론, 어제 집 내놨다던데.”여자가 집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네?”서하가 순간 벙찐 얼굴로 되물었다.“이사를..갔다구요?”“그렇다던데. 나도 얼굴도 못보고 부동산에 전해들었어요.”서
서하가 도윤의 눈을 바라보며 나직이 물었다.“혹시 요즘..무슨 일 있어?”도윤은 그녀의 걱정스러운 말투에 잠시 눈빛이 흔들렸다.“...”“아니, 요즘 뭔가...달라진 것 같아서.”도윤이 가까스로 입꼬리를 올렸다. 목소리가 갈라져 나올 것 같았다.“아니. 아무 일도 없어.”“..그래?”서하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힘든 일 있는 건 아닌가 해서.”“내가 요즘 사건 때문에 너무 신경을 못 쓴 것 같기도 하고.”여전히 도윤을 향한 눈빛을 거두지 않은 채로 말했다.“그래서 무슨 일 있는데 나한테 말 못 하는 건 아닌가...걱정돼서 물어봤어.”도윤은 희미하게 웃어보였다.“무슨 일 있으면 말할게.”“걱정 말고..당신은 일에 집중해.”일부러 가볍게 한마디를 덧붙였다.“난 우리집 가장 열심히 내조해야지.”서하가 그제야 안심이 된 듯 웃어보였다.“가장은 무슨.”“그럼 아냐?”“...푸흐, 맞긴 하지.”“거봐.”도윤은 웃으며 그녀를 안았다. 손가락이 부드럽게 머리카락 사이를 헤집고 지나갔다. 품 안에서 서하가 안심한 듯 그의 어깨에 기대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도윤의 눈빛은 천천히 가라앉았다. 품에 안긴 그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도윤에게 안심이 되기보다 오히려 심장을 아프게 찔렀다.다음날,조직범죄수사팀 본부는 조용했다. 이정훈 사건이 덮인 이후로 침울한 분위기가 사무실 안을 채웠다. 팀원들의 표정에도 피곤함이 묻어났다. 서하는 분위기를 환기하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짝, 하고 쳤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팀장도 모니터에서 잠시 시선을 떼고 서하를 바라보았다.“다들 왜이렇게 죽상이야?”팀원들은 저들끼리 눈치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사건 끝났어?”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우리가 쫓는 놈들은 아직 안 잡혔잖아.”서하는 책상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탁 짚었다.“그럼 끝난 거 아니야.”서하의 단호한 목소리에 김민석이 고개를 들었다.“한 눈 파는 사이에 그 놈들은 멀어진다. 정신 똑
"...미안해."서하는 조금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도윤이 먼저 사과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아냐.""...""그냥."서하가 작게 웃었다."내가 너에 대해 모르는 게 생기는 게 싫어서 그랬어.""...""별 뜻은 없었어."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녀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 그래서 더 미안했다. 서하가 모르는 김도윤은 너무 많았다. 그녀가 사랑하는 남편은 도윤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그녀에게 보여주는 모습만큼은 진심이었지만, 그녀가 보지 못하는 부분 또한 그의 일부였다. 그의 과거와 그녀가 평생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자신.도윤은 잠시 아픈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서하야.""...?""당신한텐."잠시 말이 끊겼다."다 말할게.""...""꼭."서하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웃었다."뭘 또 그렇게 진지하게 말해."도윤도 따라 웃었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식사가 끝난 뒤, 서하는 일찍 잠에 들었다.잠든 서하의 머리카락을 손끝으로 쓸어내리며 그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지금은 아니더라도.''언젠가는.''전부 다 말해줄게, 서하야.'그는 그렇게 다짐하며 그녀를 품에 안았다.다음날.서하는 이정훈의 유가족들을 찾아가보기로 했다. 직접 가서 들어야 했다. 어째서 아직 진실이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서둘러 장례를 치르기로 결정한 거냐고. 가족이면서, 그런 선택을 하게 된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서하는 유가족들의 집 현관문 앞에서 심호흡을 한 번 한 후에 초인종을 눌렀다.안에서 “누구세요.”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조금 열렸다. 문틈으로 중년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이정훈의 부인인 듯 했다.서하는 경찰 신분증을 꺼내 보였다.“잠시 이정훈 씨 관련해서 여쭤볼게 있어 왔습니다.”하지만 신분증을 보자마자 여자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서하는 순간적으로 이상함을 느꼈다. 경찰 와이프가 경찰 신분증을 보고 저렇게까지 얼굴을 굳힌다는건 분명 무언가 있다는 강력한 직감이 들
다음 날 아침.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조직범죄수사팀.서하는 출근하자마자 책상 위에 펼쳐진 서류철에는 시선을 주지 않고 머리를 짚은 채, 먼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어젯밤 만났던 남자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그런 쓸데없는 얘기는 하지 말라더군요.""이정훈이라는 경찰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김민석이 커피를 내려오며 물었다."어제 만난 사람 말대로라면..""...응.""이거 뭔가 큰 게 숨겨진 냄새가 나는데요."서하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정훈은 단순히 사건을 맡았던 형사가 아니었다.누군가의 입을 막고 사건을 덮는 데 직접 관여한 사람이 된다.서하는 천천히 사건철을 내려다보았다."...그래서 살해당한건가.""근데 이상하지 않습니까?"민석이 사건철을 휙휙 넘기며 말했다."응?""만약 그 사람이 진술했다면,"민석이 낡은 서류 하나를 꺼냈다. 서류를 살짝 흔들며 말했다."기록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근데 없습니다."그 말에 서하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없다고?”“예, 없어요. 다 뒤져봤는데.”“누락된 건 아니고?”“아뇨.”민석이 고개를 저었다."누락이면 흔적이라도 남는데.""...""아예 없는 것 같습니다."민석이 서류를 다시 자리에 놓으며 책상을 짚었다.“당시 수사팀 감식 요청도 거절하고.”“진술서 자체도 남아있질 않고.”“...”서하와 민석은 눈을 마주쳤다."경위님.""응.""이건 경찰 선에서 끝난 게 아닌 것 같습니다."“그래. 그런 것 같네.”서울지방검찰청.차에서 내린 서하는 검찰청 건물을 올려다봤다.그 때, 검은 세단 한 대가 천천히 정문 앞으로 지나갔다. 무심코 시선을 돌리자, 그 뒷자석에 앉은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순간 서하의 걸음이 멈췄다. 짙게 선팅된 창문 너머로도 옆모습이 아주 잠깐이었지만 스치듯 보였다. 너무 익숙한 실루엣이었다.“경위님, 왜 그러십니까?”민석의 목소리에 서하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