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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불씨

Author: 도롱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14 20:24:42

다음 날 아침.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조직범죄수사팀.

서하는 출근하자마자 책상 위에 펼쳐진 서류철에는 시선을 주지 않고 머리를 짚은 채, 먼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젯밤 만났던 남자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그런 쓸데없는 얘기는 하지 말라더군요."

"이정훈이라는 경찰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김민석이 커피를 내려오며 물었다.

"어제 만난 사람 말대로라면.."

"...응."

"이거 뭔가 큰 게 숨겨진 냄새가 나는데요."

서하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정훈은 단순히 사건을 맡았던 형사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입을 막고 사건을 덮는 데 직접 관여한 사람이 된다.

서하는 천천히 사건철을 내려다보았다.

"...그래서 살해당한건가."

"근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민석이 사건철을 휙휙 넘기며 말했다.

"응?"

"만약 그 사람이 진술했다면,"

민석이 낡은 서류 하나를 꺼냈다. 서류를 살짝 흔들며 말했다.

"기록이 남아 있어야 합니다."

"..."

"근데 없습니다."

그 말에 서하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없다고?”

“예, 없어요. 다 뒤져봤는데.”

“누락된 건 아니고?”

“아뇨.”

민석이 고개를 저었다.

"누락이면 흔적이라도 남는데."

"..."

"아예 없는 것 같습니다."

민석이 서류를 다시 자리에 놓으며 책상을 짚었다.

“당시 수사팀 감식 요청도 거절하고.”

“진술서 자체도 남아있질 않고.”

“...”

서하와 민석은 눈을 마주쳤다.

"경위님."

"응."

"이건 경찰 선에서 끝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런 것 같네.”

서울지방검찰청.

차에서 내린 서하는 검찰청 건물을 올려다봤다.

그 때, 검은 세단 한 대가 천천히 정문 앞으로 지나갔다. 무심코 시선을 돌리자, 그 뒷자석에 앉은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

순간 서하의 걸음이 멈췄다. 짙게 선팅된 창문 너머로도 옆모습이 아주 잠깐이었지만 스치듯 보였다. 너무 익숙한 실루엣이었다.

“경위님, 왜 그러십니까?”

민석의 목소리에 서하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

말도 안되지. 서하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잘 못 봤나봐.”

“뭘요?”

“...아냐. 아무것도.”

멀어지는 세단을 뒤로 하고 검찰청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검사실 앞, 들어가려는 서하를 직원들이 막아섰다.

"약속 있으십니까?"

"경찰입니다."

"그래도 사전 일정이..."

"5분이면 됩니다."

"검사님 일정이 있어서—"

직원이 난감해하며 서하와 민석을 막아서고 있을 때였다. 검사실 문이 열리고 남자가 걸어나오다 그 장면을 발견했다. 천천히 다가와 물었다.

“무슨 일이야?”

직원이 난처한 표정으로 말한다.

“경찰이시랍니다...사건 관련해서 여쭤볼게 있으시다고..”

남자의 눈썹이 살짝 치켜올라갔다.

“사건?”

서하가 서둘러 끼어들어 말했다.

“15년 전 사건에 대해 몇 가지 여쭤볼게 있습니다.”

검사가 서하를 잠시 바라보았다.

“들어오시죠.”

서하와 민석은 그를 따라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책상에 기대앉아 둘을 내리깔며 팔짱을 끼고 물었다.

"15년 전 사건?"

“무슨 사건을 말하는겁니까.”

검사는 묻고 있었지만 이미 답을 아는 듯 해 보였다. 서하는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회계사 김성철 사건, 담당 검사셨던데요.“

검사의 눈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하지만 곧 아무렇지 않게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

"그 사건."

마치 이제야 기억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DNA 감식은 왜 반려하셨습니까?"

“기억 안납니다.”

"당시 타살 가능성도 배제되지 않았습니다."

검사는 책상 위 펜을 만지작거리며 웃었다.

"형사님."

"..."

"제가 15년 전에 처리한 사건이 몇 건인지 압니까?"

서하가 다시 무어라 말하려하자 검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한가합니까?"

검사는 비릿하게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이미 종결된 사건인데. 아직도 쓸데없이 파고 다니시는걸 보니."

김민석이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진술서가 사라졌습니다."

"..."

"DNA 감식도 취소됐고요."

"그래서요?"

"우연치고는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 순간, 검사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었다. 금세 표정을 지웠지만, 서하는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검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

"바쁘니까 이만 돌아가시죠."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검찰청 밖으로 나온 서하와 민석은 차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결국 아무것도 안나왔네요.”

“진짜 기억이 안나는건가...”

서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머릿속으로 방금 전의 장면을 되짚고 있었다. 미세하게 굳었던 검사의 얼굴. 흔들리던 동공.

"...아냐."

"분명 뭔가 있어."

민석이 서하를 쳐다보았다.

“예?”

서하는 검찰청 건물을 돌아보며 낮게 말했다.

"이정훈이 그랬던 것처럼."

"저 검사도 뭔가 숨기고 있어."

서하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다시 서울경찰청 조직범죄수사팀 본부로 돌아왔다.

서하는 다른 작은 단서라도 찾아보려 모니터 화면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멀리서 김민석이 큰소리로 서하를 부르며 달려왔다.

"경위님!"

"...?"

민석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큰일 났습니다."

"왜?"

"이정훈 경감."

"..."

"장례 치러졌답니다."

서하가 잠시 그대로 멈췄다.

"...뭐?"

"오늘 아침."

"발인까지 끝났답니다."

타살 가능성이 있는 사건이었다.

그런데 벌써 발인이라니.

"...말도 안 돼."

"팀장님 어디 계셔?"

"예?"

“팀장님이랑 얘기해봐야겠어.”

서하는 그대로 팀장실로 향했다. 노크도 없이 문을 벌컥 열자 박 팀장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팀장이 고개를 들었다.

“팀장님.”

“이정훈, 어떻게 된겁니까?”

“...”

“장례라니요. 아직 부검도...!”

박 팀장이 낮게 말했다.

“문 닫아.”

서하는 천천히 문을 닫았다. 팀장의 책상 앞까지 걸어갔다.

“나도 안다.”

“그런데요. 근데 왜...”

“유가족이 동의했다.”

“...!”

“위에서도 조용히 처리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어.”

"그래서 그냥 넘기셨습니까?"

팀장이 한숨 쉰다.

"윤 경위."

"..."

"세상이 네 뜻대로만 돌아가면 좋겠지."

팀장이 피곤한 얼굴로 두 눈을 문질렀다.

"나도 이상한 거 안다."

"근데 내가 안다고 바뀌는 게 있냐."

“...”

"위에서 결정한 일이야."

"..."

서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또다시, 15년 전과 같은 무력감이 온몸을 덮쳤다.

딸칵, 팀장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등 뒤로 들려왔다.

서하는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15년 전.

그리고 지금.

톱니바퀴처럼 상황이 반복되는 듯 했다.

또다시 누군가가 사건을 덮고 있었다.

또다시 자신은 아무것도 막지 못했다.

"..."

그때, 문득 어젯밤의 대화가 떠올랐다.

"어디 갔다 왔어?"

"..."

"장례식장."

"...아."

"누구?"

"아는 사람."

"오래 알고 지낸 사람."

서하의 걸음이 멈췄다.

"..."

아는 사람.

오래 알고 지낸 사람.

이상하게 그 말이 자꾸 귀에 맴돌았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도윤과 이정훈이 무슨 관계가 있다고.

게다가 김도윤은—

서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미쳤지."

요즘 사건 때문에 너무 예민해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날 저녁.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온 서하는 평소처럼 샤워를 하고 나왔다.

도윤은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고, 서하는 소파에 나른하게 기대 앉아 있었다.

TV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잠시 후, 도윤이 식탁에 음식을 내려놓았다.

"저녁 먹자."

"응."

"오늘은 일찍 왔네. 오랜만에 같이 저녁 먹는 것 같아."

"그러게."

서하가 작게 웃었다.

도윤이 의자를 끌어 앉았다.

"사건은 좀 잘돼가?"

"잘 모르겠어. 좀...복잡해."

서하가 의미 모를 미소를 지었다. 도윤의 시선이 잠시 그녀의 얼굴에 머물렀다가 이내 아무렇지 않게 숟가락을 들었다.

"그래도 밥은 먹으면서 해."

"안 그러면 또 쓰러진다."

서하가 피식 웃었다.

"잔소리는."

도윤은 옅은 미소를 띠고 그녀의 밥그릇에 반찬을 놓아주었다.

둘은 평소처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아주 평범한 저녁이었다.

그러다 문득, 서하가 젓가락질을 멈췄다.

"...도윤아."

"응?"

"근데 어제."

도윤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장례식장 갔다고 했잖아."

"..."

"누구였어?"

도윤의 움직임이 아주 잠깐 멈췄다. 금새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돌아온 도윤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왜?”

“생각해보니까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면..”

“나도 같이 갔어야 되는 거 아닌가 싶어서.”

도윤은 잠시 말이 없었다.

서하가 웃으며 말했다.

"괜히 신경 쓰이더라고."

도윤은 서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질문이 단순한 호기심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무언가를 눈치챈 것인지 도윤은 알 수 없었다.

“...신경 안써도 돼. 필요하면 내가 얘기할게.”

“그 말은 좀 서운하네.”

“그래도 내가 네 아내인데..”

도윤이 그 말에 잠시 멈칫했다.

"..."

그가 잠시 시선을 내렸다. 그녀를 속이고 싶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진실만큼은 아직 말해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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