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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Autor: 윤소정
강지현이 몇 걸음 떼지도 않아 차 안에서 한 남자가 내리더니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다.

상대는 바로 지난번 그녀에게 명함을 건넸던 사람이었다. 다만 오늘은 제복 대신 평범한 검은색 정장을 입고 선글라스를 꼈는데 훨씬 친근한 분위기를 풍겼다.

강지현은 웃으며 차에 올라탔다.

아무래도 일부러 그녀를 데리러 온 듯 차 안에는 오직 그들 두 사람뿐이었다.

“실례지만 누구...”

“저는 대표님 개인 비서 최동윤입니다.”

그녀가 입을 열자마자 최동윤은 바로 그 뜻을 알아듣고 대답했다.

“최동윤 씨 대표님은 왜 저를 정략결혼 상대로 선택하셨대요? 우린 서로 일면식도 없을 텐데...”

강지현이 조심스럽게 떠보자 최동윤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건 대표님 사생활이라 저는 잘 모릅니다. 다만 대표님이 최근에 귀국하셔서 강지현 씨와 모르는 사이인 건 맞을 거예요.”

“그럼...”

강지현은 잠깐 생각하다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대표님 외모는 어때요?”

이 정도로 신비주의자라면 설마 엄청 못생겨서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는 게 아닐까?

비록 정략결혼 상대일 뿐이지만 만약 상대가 너무 못생겼다면 강지현도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그녀의 질문에 최동윤이 웃음을 터뜨렸다.

김태하의 옆에서 수년간 일하면서 그의 외모를 걱정하는 여자는 그녀가 처음이었다.

하지만 최동윤은 이내 다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전 대표님의 외모에 대해 평가할 자격이 없어요. 이따가 직접 만나보시면 알게 되실 겁니다.”

아무래도 못생겼나 보다. 강지현도 그만 기대를 접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 화려한 양옥집으로 들어섰다.

도심이었지만 다소 외진 곳이라 프라이버시가 꽤 잘 돼 있었다.

최동윤은 그녀에게 이곳이 회원제로 운영되는 유명한 프라이빗 레스토랑이고 오늘 식사 자리를 위해 김태하가 레스토랑 전체를 대관했다고 했다.

강지현이 식당 안으로 들어선 후, 최동윤은 입구를 지키던 경호원들과 함께 물러났고 직원이 그녀를 조용한 룸으로 안내했다.

“김태하 씨?”

룸 안에서 화려한 샹들리에가 눈부시게 빛나며 한 남자의 등을 환히 비췄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부르자마자 강렬한 인상을 주는 얼굴과 마주했다.

깊고 날카로운 눈매, 오뚝한 코, 조각처럼 정교한 입술이 한눈에 들어왔다.

강지현이 넋을 놓고 멍하니 있던 그때,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네. 제가 김태하예요. 앉으세요, 강지현 씨.”

“아... 네.”

그녀는 재빨리 시선을 거두었다. 우아함을 신경 쓸 겨를이라곤 전혀 없었다.

‘뭐야? 전혀 못생기지 않았잖아!’

“왜요? 제가 못생겼나요?”

강지현이 고개를 푹 숙이고 쳐다보지 못하자 김태하가 물었다.

그는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강한 압박감을 풍겼다.

그의 질문에 강지현이 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요. 못생기지 않으셨어요. 정말 잘생기셨고 완전 훈남이세요.”

여태껏 봐온 남자 중에 역대급 비주얼이었다.

학교 킹카인 이도운은 연예인 뺨치는 외모라 현실에서는 아주 보기 드문 미남이다.

수년간 이도운을 봐온 강지현이기에 웬만한 남자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김태하는 말 그대로 언나더 레벨이었다.

완벽한 이목구비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칭찬 고마워요.”

김태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하게 말했다.

“강지현 씨도 미인이세요. 드레스가 정말 잘 어울리시네요.”

“보내주신 선물 감사드려요.”

강지현은 환하게 웃으며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예상했던 것처럼 그렇게 까다로운 사람은 아닌 듯했다.

“그건 선물이라고 할 수도 없죠. 지현 씨가 좋아한다면 앞으로도 자주 선물할게요.”

그의 예의 바른 말투가 참으로 듣기 편했다.

하지만 강한 거리감과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눈 후 김태하가 음식을 내오라고 손짓했다.

이곳의 음식은 전부 코스 요리였는데 매우 정교했고 한 접시당 한입에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맛 또한 아주 특별하면서도 식감이 풍부하고 맛있었다.

하지만 음식이 오르는 속도가 너무 느려 강지현은 배가 차지 않았다.

기나긴 식사 시간 동안 김태하는 그녀와 눈만 마주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직은 서먹한 사이라 음식이 있어도 어색함을 면하진 못했다.

김태하가 사람에 대한 요구가 엄격하다는 주병찬이 말이 떠올라 그가 말하지 않는 한 강지현도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다.

메인 요리가 끝나고 디저트가 나오기 시작해서야 김태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음식은 입에 맞으세요?”

“네, 맛있네요.”

강지현은 디저트를 입가에 가져다 댔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평가가 너무 수준 낮다는 생각에 귓불이 살짝 빨개졌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 덧붙였다.

“김태하 씨가 고른 요리들 모두 특별했고 맛도 아주 풍부했어요.”

김태하가 고개를 숙이고 있어 표정을 볼 수 없었다.

‘내 평가가 전문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나?’

하지만 강지현은 미식가가 아니었고 이런 고급 레스토랑에 자주 오는 것도 아니었으니 어휘력이 당연히 제한적이었다.

“지현 씨 입맛에 맞지 않는다면 다음에는 다른 식당으로 바꾸도록 하죠. 지현 씨가 정해요.”

“아니에요. 전 여기가 맛있어요...”

강지현은 급히 손사래를 쳤다가 평가하는 듯한 그의 시선에 또 이렇게 말했다.

“여기 음식 맛있어요. 다만 이런 고급 레스토랑에 자주 오지 않고 또 김태하 씨를 처음 만나는 자리라 긴장해서 그래요. 다음에 좀 더 편안한 환경에서 만난다면 대화도 많이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녀는 결국 본인의 생각을 다 얘기했다.

어차피 정략결혼일 뿐 진짜 연애하는 것도 아니니 그녀의 감정이 가장 중요했다.

“알겠어요.”

김태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제가 말수가 적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런 것 같네요.”

강지현이 웃어 보였다.

이에 남자도 긴장이 풀린 듯 크고 단단한 몸을 뒤로 기댔다. 검은색 셔츠가 살짝 구겨지면서 그의 훤칠한 몸매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냈다.

“어르신께 전해 들었는데 정략결혼에 대해 이미 동의하셨다고요?”

“네.”

강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집안이 좀 전통적인 집안이라 약혼부터 결혼, 혼인 신고까지 모든 절차를 빠짐없이 거쳐야 해요. 제가 요즘 좀 바빠서 지현 씨 며칠만 더 기다려 주셔야 할 것 같아요. 너무 서두르고 싶지 않거든요. 뭐 물론 다른 요구사항이 있다면 제게 말씀하셔도 돼요.”

“괜찮아요. 김태하 씨가 정해주시는 대로 따를게요.”

“알겠어요.”

강지현의 시원시원한 대답에 김태하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이 늦었네요. 그럼 오늘은 이쯤에서...”

“김태하 씨도 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을 텐데 왜 저랑 결혼하기로 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저는 지현 씨의 자산이나 주씨 가문에 관심이 전혀 없어요. 단지 결혼할 나이가 되었고 주씨 가문은 확실히 좋은 선택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김태하는 그녀의 속마음을 단번에 꿰뚫어 본 듯했다.

사실 그녀는 김태하가 자신을 선택한 게 수십조 원의 유산과 관련 있을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오기 전에 강지현도 자료를 찾아보았는데 김씨 가문의 자산 역시 엄청났고 권력도 막강했다. 수많은 기업 거물들이 친분을 맺고 싶어도 맺을 수 없는 존재이기에 단지 이익만을 바라볼 리는 없었다.

“집에서 결혼하라고 재촉하나요?”

“그렇다고 할 수 있죠. 저는 제 아내가 순종적이었으면 좋겠어요.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 협조해주는 그런 아내요.”

강지현은 그의 말뜻을 바로 이해했다.

애초에 이도운이 그녀에게 대시한 이유도 바로 말을 잘 듣고 통제하기 쉬운 여자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결국 의지할 곳 없는 고아였으니까.

강지현은 차분한 눈길로 김태하를 쳐다보며 말했다.

“저는 주상 그룹의 상속 1순위이고 주씨 가문은 해원시에서 뿌리 깊은 가문입니다. 만약 김태하 씨 집안에서 사업 확장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제가 가장 좋은 조력자일 거예요. 그리고 전 이제 막 주씨 가문으로 돌아간 터라 홀로 싸우다가 잡아먹힐 수가 있어 김태하 씨의 힘이 필요해요.”

“우리가 결혼하면 김씨 가문에 이득을 더해줄 것이고 저한테는 발판을 다질 힘을 줄 수가 있죠. 각자 필요한 걸 얻는 것이야말로 페어플레이 아니겠어요?”

김태하는 말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동의했다.

남자는 시간이 귀하다 보니 레스토랑을 나서자마자 누군가 다가와 그에게 공항으로 가야 한다고 알렸다.

눈치 빠른 강지현은 그에게 택시 타고 갈 테니 데려다줄 필요가 없다고 했다.

김태하는 매너를 지키며 그녀를 차에 태워 보낸 후에야 돌아섰다.

가는 길에 강지현은 주병찬의 전화를 받았다.

두 사람이 오늘 저녁에 만나는 걸 알고 상황을 물으려 전화한 것이었다.

그녀는 분위기가 나름 괜찮았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김태하에게서 풍기는 압도적인 카리스마 때문에 옆에 있으면 다소 부담스럽다는 것이었다.

깊은 밤, 강지현이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휴대폰 화면이 줄곧 밝게 켜져 있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이도운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지현아, 이 늦은 시각에 왜 아직도 안 돌아와? 무슨 일 생겼어? 전화는 왜 안 받는 건데?”

강지현은 전화를 들기만 할 뿐 그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

지금 그녀의 시선은 통유리창 밖의 야경에 사로잡혀 있었고 속으로 자신의 안목을 감탄했다.

“지현아?”

이도운의 다급해진 목소리를 듣고서야 강지현은 정신을 차렸다.

“아, 오늘 거래처를 만났는데 좀 멀리 와서 호텔에 묵었어.”

자신이 이사한 사실을 알고 있을 거로 여겼지만 남자의 말을 듣고 보니 백하린만 신경 쓴 나머지 아직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이에 강지현도 아무렇게나 핑계를 둘러댔다.

“호텔에서 편히 잘 수 있겠어? 내가 그냥 데리러 갈까? 주소 보내줘 봐.”

이도운은 안도하는 듯하면서도 목소리에 걱정이 더욱 짙어졌다.

“괜찮아. 오늘 너무 피곤해서 움직이고 싶지 않아. 시간도 늦었는데 이만 쉬어야겠어.”

그도 더는 강요할 수 없었다.

“알았어. 그럼 내일 회사에서 봐.”

“응.”

강지현이 대충 대답하고 전화를 끊으려는데 이도운이 다시 그녀를 불렀다.

“여보, 너무 보고 싶다. 여보는 나 안 보고 싶어?”

“...”

한동안 침묵이 흐르자 이도운이 계속 말을 이었다.

“지현아.”

“잠들 뻔했어... 너무 졸려...”

그녀는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며 졸린 척했다.

이에 이도운이 아쉬움을 달래며 말했다.

“알았어. 얼른 자. 이만 끊을게.”

“응.”

대답을 마친 강지현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전화를 끊었다.

“...”

뚜뚜 소리에 이도운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텅 빈 듯했다.

지난 몇 년 동안 강지현에게 달콤한 말을 하고 다정하게 대하는 것에 익숙해졌지만 단 한 번도 진심으로 감정적인 동요를 느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요즘 어찌 된 영문인지 자꾸만 그녀에게 묘한 애착을 느끼고 있었다.

“도운아, 나 사랑해?”

이도운이 멍하니 있던 그때, 가느다란 팔이 뒤에서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다름 아닌 백하린이었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이도운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그는 씩 웃으며 백하린의 손을 잡았다.

“그걸 꼭 물어야 알아? 자기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자야. 자기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하긴, 백하린은 정말 그가 뼛속 깊이 사랑하는 여자였다.

16살 때, 그녀가 목숨을 구해줬고 그때부터 큰 결심을 내렸다. 평생토록 이 여자를 지켜주고 백년해로하겠다고 다짐했었지...

“그런데 나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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Último capítulo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30화

    또한, 누구의 체면도 안중에 두지 않았고 여자들에게도 관심이 없었다.하여 결혼 적령기가 되었음에도 아무도 김씨 가문의 어른들에게 뭐라 하지 못했다.이런 인물이 강지현에게 자리를 빼앗겼는데도 문제 삼기는커녕 오히려 상냥하게 해결책을 묻다니!김태하의 시선에 강지현은 순간 부담이 커졌지만 심호흡한 뒤 조용히 말을 이어갔다.“이미 벌어진 일을 이해하고 실수를 더 나은 조치로 해결하는 거죠.”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면서 널찍한 테이블을 둘러보았다.“여기 공간이 충분해서 의자 하나 더 추가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겁니다. 주최 측에서는 제 옆에 이와 동일한 규격의 자리를 마련해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주상 그룹의 체면도 지킬 수 있고 김태하 씨의 도량도 돋보일 것이며 주최 측의 위기 대처 능력과 성의 또한 보여줄 수 있지요.”“저한테 강제적으로 자리를 옮기게 해서 세 당사자 간의 갈등과 어색함을 야기하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겠어요?”강지현의 말이 끝난 순간 연회장이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뭇사람들은 그녀의 침착하면서도 기지가 넘치는 발언에 크게 놀랐다.누가 그녀를 별 보잘것없는 사생아라고 했는가? 그 누구보다 논리적이고 영특한 상속녀인 것을!강지현이 몇 마디 말로 상황을 순식간에 해결하자 하지유는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주시언이 어느새 연회장으로 돌아와 있었다. 모두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빛나는 여동생을 보면서 그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한편 강지현을 빤히 쳐다보던 김태하의 입가에 미소가 새어 나오더니 이내 주최 측 관계자에게 말했다.“강지현 씨 말대로 하세요.”차분한 말투에서 도통 그의 기분을 짐작하기 어려웠다.하지만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주최 측은 한시름을 놓았다.“네, 알겠습니다.”직원이 곧바로 의자를 가져왔다.작은 에피소드가 막을 내리고 만찬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강지현은 여전히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긴 했지만 더 이상 그녀를 질의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왜 드시지 않고 저만 보세요?”김태하가 낮은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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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하원영은 강지현을 도울 생각까지는 없었다. 다만 화장실에서 하지유가 다른 사람과 나누는 대화를 엿들었는데 그녀의 뜻대로 되는 걸 원치 않았을 뿐이다.게다가 강지현은 주시언의 동생이었다.주시언은 어젯밤 강지현을 엄청 감싸고 돌았다. 꼭 마치 그녀가 강지현에게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경계하는 것처럼 말이다.“하원영 씨의 호의는 고맙지만... 그래도 저는 이 자리에 앉고 싶어요.”강지현은 몸을 돌리고 비어있는 좌석에 그대로 앉았다.“강지현 씨, 누가 거기 앉으라고 했어요? 시골 촌뜨기도 아니고 예의라는 걸 전혀 모르시네요.”하지유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더는 체면 따위 신경 쓸 겨를 없이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강지현에게 쏘아붙였다.“확실히 잘 모르겠네요. 이런 만찬이 처음이거든요.”강지현은 당황하지 않고 웃으면서 하지유의 말을 받아쳤다.그 순간 하지유는 말문이 턱 막혔다.그녀가 당당하게 모른다고 인정하니 되레 반격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하지만 여기 오는 길에 주최 측과 주씨 가문에서 모두 말씀해주셨어요. 해원시 최고 재벌로서 꼭 상석, 그러니까 맨 앞자리에 앉아야 한다고요. 안 그러면 제 면을 깎는 거라고 하던데?”“이쪽이 상석이고 이름표가 없잖아요. 마침 저도 이름표를 찾지 못했고요. 그래서 이 자리가 주최 측에서 저를 위해 비워둔 자리이지 않을까 싶네요.”강지현의 말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사실 주씨 가문이라면 충분히 그녀에게 이런 용기를 북돋아 줄 수 있었다. 사람들은 주씨 가문으로 돌아온 아가씨에 대해 인상이 꽤 깊었다.주변 손님들도 강지현의 말에 하나둘 동조하기 시작했고 어떤 이는 직접 나서서 그녀를 두둔하기까지 했다.“이름표가 없으니 강지현 씨가 앉으시죠.”“강지현 씨 말씀이 맞아요. 그 정도 신분이라면 당연히 그 자리에 앉으셔야죠.”하지유의 안색이 점점 더 일그러졌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옆에서 웃고 떠들던 친구들이 이제는 찍소리도 못했다.강지현이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니라는 걸 직감한 듯 괜히 엮여 곤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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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지현은 처음으로 이런 거대한 규모의 행사에서 연설을 맡았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긴장감을 떨치기가 어려웠다.“저 여자 누구예요? 주상 그룹 대표면 주단우 씨나 사모님이 나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어머, 모르셨나 보네! 저 여자 주승호 씨 사생아래요. 듣기로 수십조 원의 재산을 물려받았다던데.”“주씨 가문에 사람이 없대요? 저 여자가 비즈니스가 뭔지는 알고 감히 연설한대요?”“듣자 하니 주씨 가문이 지금 난리도 아니라던데. 상업의 상자도 모르는 사람이 가문의 상속녀가 되었으니. 주씨 가문도 이제 나락이네요...”“어쩜 저렇게 화려하게 치장했는지. 무슨 패션쇼인 줄 아나 봐요...”...어딘가에서부터 들려오는 수군거림에 강지현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그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더 켜졌다.마이크를 잡고 어찌할 바를 모르던 그때, 한 줄기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상대는 바로 주시언이었다.그가 먼저 박수를 치자 주변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따라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서서히 들려오는 박수 소리에 강지현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그녀는 곧바로 자세를 바로잡고 앞에 놓인 프롬프터를 쳐다봤는데 화면이 텅 비어있었다!이건 분명 누군가 손을 써서 강지현을 망신 주려는 수작이었다.무대 아래의 박수가 잦아든 후,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고 망설임 없이 유창한 외국어로 연설을 시작했다.정확한 발음과 진지한 목소리에 의논 소리가 금세 잦아들었다.그녀를 난처하게 만들려 했던 사람은 강지현이 금융을 전공했다는 사실을 아마 몰랐을 것이다.금융을 전공하려면 외국어는 필수였다. 그녀는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뿐만 아니라 즉흥 연설 능력도 뛰어났다.대학교 시절 강지현은 매년 영어 즉흥 연설 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는데 대부분 내용이 상업 분석에 관한 것이었다. 이런 류의 발표는 원고 없이도 얼마든지 흥미롭게 할 수 있었다.앞서 연설했던 자들은 통역사와 동행했지만, 강지현이 단상에 오른 후 통역사는 강제로 휴식을 취했다.그런 그녀의 모습에 주시언도 마침내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25화

    김태하가 한마디 할 때마다 현장은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강지현마저 저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전문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정말 매력적이었다.분명 차갑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풍기며 조각상처럼 단상에 서 있었지만, 강지현은 그에게서 진한 남자의 매력을 느꼈다.생중계를 다 보고 나서 강지현은 김태하의 성격이 차가운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이렇게 뛰어난 사람에게 사교활동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연애가 무슨 필요가 있을까? 사람들이 알아서 추앙할 텐데.메시지 알림이 더는 울리지 않았다.강지현은 마침내 졸음이 쏟아져 이불을 뒤집어쓰고 꿈나라에 들었다.다음 날 만찬이 반쯤 진행되었을 때 주병찬은 급한 일이 있다며 먼저 자리를 떴다.주시언 역시 바쁜 사람이었다. 업무 전화가 끊임없이 오는가 하면 또 누군가 찾아와 인사를 건넸다.반면 강지현은 주상 그룹의 상속녀임에도 불구하고 주병찬과 주시언의 옆에 있을 때만 사람들이 명함을 건네거나 예의상 가벼운 인사를 건넸다.그녀는 만찬에 참석한 사람들이 상업계의 거물들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주씨 가문을 존중한다고 해도 그건 주승호와 주씨 가문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지, 갑자기 나타난 사생아 강지현에 대한 존중이 아니었다.그녀를 안 좋게 보는 시선이 대다수였다.주병찬도 그녀에게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라고 미리 말해주었다.여기 있는 사람들은 엄경미와 주단우를 더 인정했다. 강지현은 주승호의 재산을 제대로 관리할 능력이 못 돼서 조만간 주씨 가문의 자산과 권력 모두 엄경미와 주단우에게 넘어갈 것으로 여겼다.하여 지금 당장 엄경미와 주단우에게 등 돌리지 않고 일단 강지현과 거리를 두고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었다.강지현도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그저 주상 그룹을 대표하여 형식적으로 참석했을 뿐이니까. 다만 수십조 원의 자산을 손에 쥐었기에 그녀는 결코 주눅들 수 없었다.강지현은 주상 그룹을 대표하는 연설문을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다.주병찬이 사람을 찾아 연설문을 작성했고 그녀가 여러 번 다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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