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가짜 결혼, 진짜 신분: Chapter 1 - Chapter 10

100 Chapters

제1화

결혼 2년 차인 어느 날, 강지현은 서랍을 정리하다 실수로 혼인신고서를 찢어버렸다.재발급받으려고 구청에 가서 직원에게 말했더니 직원이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고객님, 시스템에 조회가 안 되는데요. 고객님 혼인 등록 정보가 없습니다.”“네? 그럴 리가요. 저 이제 결혼한 지 2년이나 됐는데요?”강지현이 찢어진 혼인신고서를 내밀었다.이에 직원도 인내심 있게 세 번이나 더 확인했지만 결국 컴퓨터 화면을 그녀 쪽으로 돌렸다.“정말 등록 정보가 없어요. 그리고 이 도장도 비뚤었네요... 아마도 위조된 혼인신고서 같아요.”강지현은 넋이 나간 채로 구청을 나섰다. 별안간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안녕하세요, 강지현 씨. 저는 강지현 씨 아버님의 위임 변호사 안범수입니다. 재산 상속 관련 서류에 서명하셔야 하는데 권성 로펌으로 와주실 수 있을까요?”웬 사기 전화라 생각하며 이제 막 끊으려는데 상대가 불쑥 이렇게 말했다.“강지현 씨 어머님 성함이 강서영 맞으시죠? 20년 전에 강지현 씨를 해원 보육원 앞에 두고 가셨는데 조사 결과 강지현 씨가 전 해원시 갑부 주승호 씨의 유일한 혈육으로 확인되었습니다.”그녀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가 곧장 로펌으로 향했다.그리고 그곳에서 변호사에게 평생 들을 수 없을 것 같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강지현의 친아버지인 주승호는 재벌 총수인데 지난달에 세상을 떠났다. 주식, 부동산, 회사를 합쳐 자산이 수십조 원에 달했고 강지현은 그의 유일한 딸이라고 했다.머릿속이 윙윙거릴 때, 변호사가 대뜸 질문을 건넸다.“강지현 씨 혼인 관계는 어떻게 되시죠?”그 순간 남편 이도운의 얼굴이 떠올랐다.가방 안에 찢어진 가짜 혼인신고서를 생각하면서 그녀는 펜을 꽉 잡았다.“일단 두 시간만 기다려 주세요. 먼저 가서 확인해야 할 일이 있거든요.”로펌에서 나온 그녀는 곧장 남편 회사로 향했다.이도운의 사무실 문이 살짝 열려 있어 이제 막 들어가려는데 안에서 성숙하고 매혹적인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도운아, 우리 결혼한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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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강지현은 미처 반응하지 못한 채 얼굴에 주스 세례를 당하고 말았다.이 광경을 본 가정부들이 재빨리 달려와서 닦아주었다.“이윤후!”이도운까지 버럭 화를 내니 아이는 겁을 먹고 위층으로 줄행랑을 쳤다.이도운이 쫓아가려 하자 옆에 있던 백하린이 얼른 그를 말렸다.“그만해, 도운아. 윤후 아직 어린애라 너무 무섭게 굴면 안 돼. 내가 가서 볼게.”이어서 옷을 닦고 있는 강지현을 힐끗 쳐다보며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였지만 끝내 말하지 않았다.이도운은 그제야 강지현에게 주의를 돌렸다.“괜찮아? 이리 봐봐?”강지현이 옷을 다 닦은 그때 이 남자가 얼굴을 만지려 손을 내밀었다.“더러워. 저리 비켜!”그녀의 입에서 본능적으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하지만 이도운은 그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더럽긴. 네가 더럽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항상 걱정만 했지. 윤후가 이렇게 말썽부릴 줄 알았다면 애초에 네게 맡기고 직접 키우게 하는 게 아닌데...”강지현의 입가에 조롱 섞인 미소가 번졌다.“그러게. 친엄마가 키웠더라면 나보다 훨씬 잘 키웠을 텐데 아쉽게도 죽어버렸다지? 난 친엄마가 아니라서 애 하나 잘 키우지 못하나 봐.”이도운은 흠칫 놀라더니 안색이 돌연 굳어졌다.“얘가 지금 뭐라는 거야? 윤후는 우리가 입양했어. 윤후한테 엄마는 오직 너뿐이라고.”말을 마친 남자는 애정 가득한 눈길로 강지현을 쳐다보며 머리까지 살짝 쓰다듬었다.예상치 못한 그의 스킨쉽에 괴로움이 머리끝까지 치솟았다.방에 돌아온 그녀는 곧장 욕실에 가서 샤워했다.이도운도 곧바로 그녀를 따라 들어왔다. 백하린을 집에 들이는 것에 대해 상의해야 하니까.말이 상의지, 답은 이미 정해졌고 그녀에겐 결정권조차 없었다.그 둘이야말로 찐 부부였고 강지현은 가짜 아내이니까.“지금은 회사가 상장을 앞둔 중요한 시기야. 윤후도 한창 사람 손 탈 때고 회사는 네가 없으면 돌아가질 않아. 교수님은 이제 육아 전문가셔. 아까 너도 봤잖아. 윤후가 교수님 말씀을 제법 잘 듣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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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강지현이 이제 막 차에 타려 하자 이도운도 표정을 가다듬고 함께 가려 했다.이 시간이면 두 사람은 늘 함께 회사로 출근했다.“비서한테 데려다 달라고 해. 난 부동산 중개인이랑 집 보러 가기로 했어.”이도운의 두 눈에 놀라움이 스쳤다.“오늘 회사에 중요한 회의가 있는데...”“이 집은 경쟁이 치열해서 오늘 안 가면 팔릴지도 몰라.”강지현은 그의 말을 가차 없이 잘랐다.“너 항상 그랬잖아.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으니까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고.”그녀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 입가와 눈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이도운은 왠지 모르게 등골이 오싹했다.그는 곧장 입꼬리를 씩 올렸다.“알았어. 그럼 나도 오늘 회사 안 가. 우리 함께 집 보러 가자.”“아니, 그럴 필요 없어.”강지현이 더 환하게 웃더니 몸을 돌려 그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콕 찔렀다.“나 혼자 고르고 싶어서 그래. 다 고르면 너한테 보여줄게.”그녀는 이도운의 속셈을 너무 잘 안다. 자신과 함께해주긴커녕 감시하기 위해서겠지.이도운의 수작으로 부부 공동명의로 집을 사게 되면 그 집은 결국 그와 백하린의 소유가 된다.강지현의 유혹적인 말투에 갑자기 흥분한 이도운은 그녀의 손목을 자연스럽게 잡아끌었다.“나한테 서프라이즈 해주려고?”“응.”강지현의 표정이 살짝 굳어지더니 곧바로 손을 뺐다.“알았어. 그렇게 해, 그럼.”이도운은 낮게 말하면서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감쌌다.피할 곳조차 없던지라 강지현은 역겨움을 참으며 스킨십을 받아들였다.그녀가 차를 몰고 떠나자 이도운의 입에 걸렸던 미소도 싹 사라졌다.단지 착각일까? 강지현이 뭔가 달라진 기분이었다.아니면 그녀가 원래 예민한 사람이라 백하린을 질투하는 걸까?이도운은 이유 모를 짜증이 밀려와 넥타이를 잡아당겼다.강지현 때문에 이런 고민을 해서는 안 되었다.그녀가 아무리 좋고 자신에게 진심이라 해도 그는 하나밖에 없는 아내 백하린을 사랑할 테니까.한 시간 후, 강지현은 거대한 통유리창 앞에 서서 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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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주씨 저택으로요?”강지현이 다시 물었다.“네. 앞으로는 그곳이 아가씨의 집입니다.”그녀는 한동안 입을 꾹 다물었다. 주승호는 그녀의 친아버지였고 수십조 원의 유산을 물려받았다. 주씨 가문으로 돌아가는 건 시간문제였기에 피할 수도 없었고 피할 이유도 없었다.강지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다.“알았어요. 제집이라면 당연히 직접 가서 봐야죠.”닥칠 일은 언젠가는 닥칠 것이다.가는 길에 유정재는 주씨 가문의 현재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지금 이 가문에서 경영하는 사업이 아주 많았다. 자산의 대부분을 주승호가 소유했고 소부분을 주승호의 아버지 주호석과 형 주병찬이 가지고 있었다.이제 주승호의 모든 유산은 강지현에게 넘어갔다. 이는 강지현이 주상 그룹의 최대 주주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주호석은 현재 해외에서 요양 중이라 주승호의 아내인 엄경미가 대신하여 주씨 가문을 관리하고 있었고 회사는 양아들인 주단우가 책임지고 있었다.한 시간 후 롤스로이스 리무진 한 대가 주씨 가문의 본가로 들어섰다.300평이 넘는 넓은 별장 단지는 위엄이 넘치고 웅장했다. 단지 입구에서 본관까지 차로 10분 넘게 걸렸다.건물이 일반적인 고급 별장보다도 훨씬 화려했고 발밑의 벽돌마저 엄청난 값어치를 자랑했다.강지현은 이렇게 화려한 집은 처음이었다. 긴장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를 썼다.유정재는 그녀를 본관의 응접실로 안내했다. 가정부가 커다랗고 두꺼운 대문을 열자 통유리창 앞에 귀티가 나면서도 우아한 여자가 서 있었다.여자의 옆에 가정부 두 명이 서 있었고 소파에는 깔끔한 양복 차림의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그녀는 강지현을 몇 초간 훑어보다가 가까이 다가왔다.유정재는 눈앞의 여자가 바로 주승호의 아내 엄경미라고 낮게 소개했다.한편 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는 주승호와 엄경미의 양아들이자 강지현의 명의상 오빠 주단우였다.엄경미가 고개를 들자 유정재는 일행과 함께 물러났다. 순식간에 넓은 응접실에 강지현과 엄경미 모자만 남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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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차가 멈춘 후 주병찬이 문을 열고 다시 한번 말했다.“타. 가면서 얘기해.”강지현은 몇 초간 망설이다 결국 차에 올랐다.주병찬에게서 오늘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국내 최고 재벌인 김씨 가문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김씨 가문은 금융, 과학기술, 에너지 등 핵심 분야에 사업을 펼치고 있고 전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하여 ‘나라에 버금가는 부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현재 김씨 가문의 후계자인 김태하는 28살이라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혼자만의 능력으로 가문의 사업을 새로운 정상으로 끌어올렸고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젊은 경영자로 인정받고 있다.어젯밤 주호석은 김씨 가문의 연락을 받았다. 주씨 가문과 사돈을 맺고 싶다고 제안했고 그들이 선택한 정략결혼 상대가 바로 강지현이었다.주병찬은 강지현에게 김씨 가문과 인연을 맺고 싶어 하는 재벌이 셀 수 없이 많으며 주씨 가문 역시 그중 하나라고 했다.그도 김씨 가문 어르신의 지시를 받고 강지현을 찾아온 것이었다.“김씨 가문이 주씨 가문보다 더 대단하단 말인가요?”강지현은 주병찬의 장황한 설명이 듣기 싫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에 주병찬이 답했다.“클래스가 달라. 굳이 비교하자면 주씨 가문은 해원시 갑부이고 해원의 상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김씨 가문은 레벨이 달라. 국내에서 김씨 가문에게 감히 함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없거든.”“그럼 김태하라는 그분은... 어떤 분인가요?”강지현이 또 물었다.“김태하가 국제적으로는 유명하지만, 국내에서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아주 신비로운 인물이야. 나도 직접 만나본 적은 없지만, 소문에 따르면...”주병찬이 코를 어루만졌다. 정략결혼 때문에 그녀를 찾아왔으니 무엇이든 잘 생각하고 말해야 했다.“소문에 따르면요?”“조금 까다로운 사람이라 하더라고.”주병찬이 솔직하게 말하긴 했지만, 이 정도면 매우 완곡하게 표현했다.김태하가 조금만 까다로웠더라면 김씨 가문의 문지방이 진작 닳아 없어졌을 것이다.“어떻게 까다로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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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강지현이 몇 걸음 떼지도 않아 차 안에서 한 남자가 내리더니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다.상대는 바로 지난번 그녀에게 명함을 건넸던 사람이었다. 다만 오늘은 제복 대신 평범한 검은색 정장을 입고 선글라스를 꼈는데 훨씬 친근한 분위기를 풍겼다.강지현은 웃으며 차에 올라탔다.아무래도 일부러 그녀를 데리러 온 듯 차 안에는 오직 그들 두 사람뿐이었다.“실례지만 누구...”“저는 대표님 개인 비서 최동윤입니다.”그녀가 입을 열자마자 최동윤은 바로 그 뜻을 알아듣고 대답했다.“최동윤 씨 대표님은 왜 저를 정략결혼 상대로 선택하셨대요? 우린 서로 일면식도 없을 텐데...”강지현이 조심스럽게 떠보자 최동윤이 입꼬리를 올렸다.“그건 대표님 사생활이라 저는 잘 모릅니다. 다만 대표님이 최근에 귀국하셔서 강지현 씨와 모르는 사이인 건 맞을 거예요.”“그럼...”강지현은 잠깐 생각하다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대표님 외모는 어때요?”이 정도로 신비주의자라면 설마 엄청 못생겨서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는 게 아닐까?비록 정략결혼 상대일 뿐이지만 만약 상대가 너무 못생겼다면 강지현도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그녀의 질문에 최동윤이 웃음을 터뜨렸다.김태하의 옆에서 수년간 일하면서 그의 외모를 걱정하는 여자는 그녀가 처음이었다.하지만 최동윤은 이내 다시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전 대표님의 외모에 대해 평가할 자격이 없어요. 이따가 직접 만나보시면 알게 되실 겁니다.”아무래도 못생겼나 보다. 강지현도 그만 기대를 접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차가 화려한 양옥집으로 들어섰다.도심이었지만 다소 외진 곳이라 프라이버시가 꽤 잘 돼 있었다.최동윤은 그녀에게 이곳이 회원제로 운영되는 유명한 프라이빗 레스토랑이고 오늘 식사 자리를 위해 김태하가 레스토랑 전체를 대관했다고 했다.강지현이 식당 안으로 들어선 후, 최동윤은 입구를 지키던 경호원들과 함께 물러났고 직원이 그녀를 조용한 룸으로 안내했다.“김태하 씨?”룸 안에서 화려한 샹들리에가 눈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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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응? 뭐가?”이도운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백하린을 품에 안으며 얼음도 녹아내릴 것만 같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너희 집에서 우리를 떼어놓으려고 하면 어떡해? 나랑 윤후가 평생 명분도 못 얻으면 어떡해? 나중에 내가 늙으면 넌 또 마음 변하는 거 아니야?”백하린이 시선을 늘어뜨리더니 점점 울먹이기 시작했다.“그럴 일 없어.”이도운은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엄지손가락으로 눈물을 자상하게 닦아주었다.“말했지. 평생 널 지켜준다고. 아무도 우리 사이 못 막아. 내가 마음 변할 리는 더더욱 없고.”“도운아...”백하린은 감격에 겨워 두 눈을 지그시 감더니 남자의 입술을 탐했다.회사가 상장을 앞둔 시점이지만 이도운은 그녀의 요구대로 집에 들였다.하지만 이 남자는 2년 사이 많이 변해버렸다.예전처럼 그녀에게 열정적이지 않았고 심지어 그녀의 앞에서 강지현을 의식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났다.백하린은 자주 불안해하고 또 아주 예민했다. 이도운을 아무리 믿어도 밀려오는 불안감은 어쩔 수가 없었다.여자의 뜨거운 키스에 이도운은 몸에 열기가 후끈 달아올라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목덜미를 잡았다. 두 사람은 곧장 안방으로 들어가 뜨거운 밤을 보냈다.하지만 찰나의 순간, 이도운의 머릿속에 강지현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중요한 순간에 그가 불쑥 움직임을 멈췄다.“왜 그래...”깜짝 놀란 백하린이 급히 팔을 붙잡았지만 남자는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 곧게 욕실로 들어가 몸의 열기를 식혔다.머릿속이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강지현의 얼굴이 떠오른 순간 흥미가 완전히 식어버렸다.하지만 이런 속마음을 백하린에게 말해선 안 되었다.“배탈 난 것 같아. 갑자기 속이 너무 안 좋네.”욕실에서 나온 후, 그는 다시 백하린을 껴안고 키스하며 연신 사과했다.그녀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요 이틀 이도운이 순종적이었던 것을 되새기며 더는 뭐라 하지 않았다.다음 날 아침 일찍 이도운은 회사로 달려갔다.가는 길에 전화를 받았는데 어렵게 계약하기로 한 몇몇 협력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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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야, 너...”문수정은 말문이 턱 막혀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평소 과묵하고 순종적이던 강지현이 갑자기 왜 이렇게 말발이 늘어난 걸까?게다가 이도운과 회사까지 들먹이며 오히려 문수정을 억지 부리는 사람으로 몰아가고 있었다.“어머님, 아가씨가 먹고 싶은 가게가 생각나면 저한테 다시 알려주세요. 일이 바빠서 이만 끊을게요.”그러고는 전화를 툭 끊어버렸다.뚜뚜 소리에 문수정은 너무도 화가 나 숨이 다 막힐 지경이었다.“이년이... 감히 내 전화를 끊어?”그녀는 분을 삭이지 못해 휴대폰까지 던져버릴 뻔했다.그런 엄마의 모습에 이민지가 의아해하며 물었다.“강지현 안 온대요?”“이게 다 도운이가 너무 오냐오냐해서 그래. 애도 못 낳는 주제에 출신도 볼품없는 게 우리 집안에 시집온 것만으로 감지덕지해야지! 은혜도 모르고 감히 나한테 개겨?”문수정은 욕설을 퍼부으면서 가슴을 두드렸다. 지금은 체면 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한편 이민지는 진작 예상한 듯 눈을 희번덕거렸다.“그러게 내가 뭐랬어요. 강지현 걔 평소에 얌전한 척 연기한 거라니까요. 오빠 같은 이익 지상주의가 걔처럼 별 볼 일 없는 여자랑 결혼한 것만 봐도 모르겠어요? 그년 절대 보통내기가 아니에요. 그런데 걱정하진 말아요. 강지현 다스릴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이민지가 야유를 날리더니 직접 강지현에게 전화를 걸었다.평소 그녀를 부려 먹기를 좋아하면서도 겉으로는 퍽이나 사이가 좋은 척했다. 게다가 이민지의 남편 진태웅이 이경 그룹에서 부장직을 맡고 있어 업무상 강지현과 의견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다.이민지는 강지현을 만만한 상대로 여겼다. 제아무리 오늘 문수정에게 개겼다 해도 어디까지나 이도운 때문일 것이라 확신했다.집에서 이도운은 동생인 이민지를 끔찍이도 아꼈다. 그녀가 입만 열면 강지현은 아무리 싫어도 와야 할 것이다.그때 가서 강지현에게 잡도리 좀 하고 엄마 대신 분풀이를 해줄 생각이었다.전화가 한참 울리고 나서야 연결되었다. 이민지는 강지현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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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아가씨, 산후조리 중에 화내지 말아요. 몸 상할라.”태연한 강지현과 달리 이민지는 노발대발했다.“언니! 지금 우리 오빠 회사를 방패로 삼으면서 게으름 피울 생각이에요? 언니는 우리 이씨 가문의 며느리예요. 와서 밥 지으라는 건 기회를 주는 거라고요. 지금 그 일자리도 우리 집안에서 해준 걸 잊으면 안 되죠...”“어머, 아가씨가 얘기 안 했으면 깜빡할 뻔했네요. 서방님 이번 달 실적이 많이 떨어진 것 같던데요?”강지현의 말투는 여전히 담담했지만, 그 말에 이민지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요즘 들어 진태웅은 계속 야근했고 죽상이 되어 집에 들어오곤 했다.실적이 많이 떨어져 회사가 도와줘도 예전 같지 않았다.“지금 그 말 무슨 뜻이에요?”“서방님이 아가씨한테 얘기했는지 모르겠는데 사실 서방님의 실적 중 절반이 내가 소개한 거예요. 그런데 요즘은 내가 너무 바빠서 서방님이 찾아와도 도와줄 시간이 없었어요.”이 말을 들은 이민지는 또 한 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문득 진태웅이 요즘 들어 강지현을 자주 언급하던 게 생각났다. 그녀가 너무 바빠 얼굴 본 지도 오래됐으니 시간이 되면 집에 한 번 부르라고 했다.이민지가 강지현을 싫어하는 이유 중 절반이 남편이 강지현의 칭찬을 아끼지 않아서였다.그도 그럴 것이 강지현은 외모가 예쁘장하여 남자들을 홀리기 쉬웠다.“새언니, 그게 무슨 헛소리예요? 태웅 씨 얼마나 능력 좋은데. 누구 소개 안 받아도 충분히 실적 올릴 수 있거든요...”“아가씨, 서방님이 스트레스가 많아서 아가씨한테 많은 걸 숨기는 것 같아요. 확인하고 싶으면 서방님한테 물어봐요. 어차피 서방님의 고객들 대부분이 내 지인이라 부인하지 못할 거예요.”강지현의 몇 마디 말에 이민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지금 이민지의 가정불화를 암시하고 있고 진태웅이 그녀에게 숨기는 게 있다는 뜻이 분명했다.“아가씨가 산후조리 때문에 힘들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오늘 회사 프로젝트를 반드시 따내야 해서요. 이 건이 성사된다면 서방님의 실적도 조금은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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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강지현의 인맥과 자원이 워낙 화려한지라 진태웅은 굳이 그녀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이민지가 이토록 화를 내니 진태웅은 바로 정색하며 강지현은 좋은 사람이고 내조를 잘하는 아내와 결혼한 이도운이 부럽다고까지 했다.제대로 긁힌 이민지는 남편의 게임기와 그가 소중하게 여기는 CD들을 모조리 부숴버렸다.“왜 그랬어 민지야... 남자들이 자존심을 얼마나 중히 여기는데. 뭣 하러 강지현 때문에 진 서방한테 그렇게까지 화를 내?”문수정은 미간을 찌푸린 채 이민지의 손등을 토닥였다. 딸이 안쓰럽기도 하고 이 일이 너무 한심하고 화가 났다.강지현은 이씨 가문에 도움을 주지 못할망정 갈등까지 빚게 하다니. 그야말로 재앙 덩어리가 따로 없었다.“아무래도 태웅 씨가 강지현한테 홀린 것 같아요. 두 사람 그렇고 그런 사이일지 누가 알겠어요! 안 돼, 지금 당장 강지현한테 찾아가야겠어요!”이민지는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밀었다. 하지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눈앞이 캄캄해지고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민지야!”저녁 무렵, 이도운이 백하린과 식사를 마친 그때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당장 이민지네 집으로 오라는 명령이었다.이도운이 눈살을 찌푸리자 백하린이 불안해하며 물었다.“왜 그래, 도운아?”“몰라. 민지가 쓰러진 것 같은데 엄마가 지금 당장 오래.”문수정이 이렇게 강하게 명령한 경우는 아주 드물었다. 이민지가 걱정됐던 이도운은 백하린과 이윤후를 집에 데려다준 후 서둘러 달려갔다.아니나 다를까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이민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엄마, 무슨 일이에요? 민지야, 괜찮아?”이도운은 미간을 찌푸렸다가 이민지가 침대에 멀쩡하게 누워 있는 걸 보고 나서야 조금 안심했다.의사가 진찰해보니 이민지가 갑자기 쓰러진 이유는 저혈당에 갑자기 흥분한 탓이라고 했다. 의사는 그녀에게 기와 혈을 보충하는 약을 처방한 후 자리를 떠났다.가정부들을 모두 내보내고 문을 닫고 나서야 문수정은 조금 전 일어난 일을 이도운에게 일일이 얘기했다.물론 그녀의 입을 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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