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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Author: 윤소정
그녀의 손끝이 하얀 드레스의 얇은 망사를 스치자 할머니는 그녀를 거울 앞으로 살짝 돌려세우고 눈빛을 반짝였다.

“이거 봐, 핏이 얼마나 잘 어울려. 어깨선 딱 맞고, 허리만 조금 더 잡으면 완벽하겠네. 아, 지현아, 할머니 부탁 하나 들어줄 수 있을까?”

강지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할머니는 그녀 손을 토닥였다.

“우리 손주며느리가 네 체형이랑 비슷한데 성격이 좀 수줍어서 말이야. 우리 늙은이들은 요즘 애들 취향을 모르겠더라고. 네가 이 드레스들을 입어보고 어떤 게 더 어울리는지 좀 봐줄 수 있겠어?”

할아버지도 온화하게 거들었다.

“그래. 지현아, 우리 안목은 이미 시대에 뒤처졌어. 젊은 감각으로 좀 골라주면 손주가 싫어할 일도 없을 거야.”

강지현은 두 분의 기대 가득한 눈빛을 보고 부드럽게 대답했다.

“별말씀을요. 도움 될 수 있으면 좋죠. 그럼 제가 하나씩 입어보고 디테일도 같이 봐 드릴게요.”

드레스 여섯 벌을 다 갈아입고 나니 이마에 살짝 땀이 맺혔다.

“할머니, 앉아서 쉬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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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316화

    하원영은 그런 주시언이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이제 말해 봐.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말투는 평소보다 다급했고, 차갑다 못해 강압적으로 들렸다.강요받는 것을 질색하는 하원영은 아예 뒤돌아서 옆에 있는 소파에 누워버렸다.“신경 끄고 오빤 조용히 귀국이나 해요. 아버님이 오빠 걱정을 얼마나 하는지, 엄경미랑 손까지 잡으려고 하시더라니까? 내가 보기에 주단우나 엄경미 둘 다 보통내기 아니에요. 그러니까 괜히 엮이지 말고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게 상책이에요.”“아버지께 전화해 봐야겠어.”주시언이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조차 가지 않았다.하원영이 자신의 휴대폰을 내밀었다.“내 거 써요.”주시언은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그녀의 휴대폰을 챙겨 옆방으로 들어갔다.그 시각 주병찬은 주상 그룹에서 회의 중이었다.강지현이 자리를 비운 사이, 약품 심사 업무를 대행 중이던 그는 대표자 명의로 된 세무 보고서에 서명하려던 참이었다.일부 권한을 넘겨받긴 했으나 주병찬은 직감하고 있었다. 이 보고서에는 이미 엄경미 측의 수작이 뻗쳐 있다는 사실을.서류에 펜을 대는 순간 강지현은 반드시 막중한 책임을 떠안게 될 것이다.떠나기 전, 오직 자신만을 믿는다던 그녀의 눈빛이 잔상처럼 스쳤다.주병찬의 마음은 사뭇 착잡했다.하원영은 사흘만 기다리라고 당부했으나, 엄경미는 그보다 훨씬 영악하고 빨랐다.강지현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숨통을 조여오며 끝장을 보려 했다.주병찬은 손에 든 서류를 뚫어질 듯 응시하며 침묵을 지켰다.회의실 안에는 정적만이 감돌았고, 맞은편에 앉은 엄경미의 수하들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프로젝트 일정에 차질이 생겨선 안 됩니다. 어서 서명하시죠.”주병찬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만년필 뚜껑을 열던 찰나, 갑자기 휴대폰이 진동했다.화면에 뜬 ‘하원영’이라는 석 자에 그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이내 회의실 사람들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가볍게 손을 들어 보였다.“잠깐 전화 좀 받겠습니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발걸음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315화

    주시언은 고개를 숙여 하원영의 이마에서부터 눈동자까지 시선을 천천히 옮겼다.분명 예전과 다름없는 모습이었다.이렇게까지 가까이 마주한 건 아주 오랜만이었지만, 찰나의 순간 지난날의 모든 기억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선명하게 느껴졌다.가슴 속에서 수만 가지 감정이 소용돌이쳤다.홀린 듯 하원영을 바라보던 주시언은 이성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이내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조심스레 들어 올리더니 미간에 살포시 입을 맞췄다.예상치 못한 스킨십에 하원영은 그대로 굳어버렸다.그녀는 눈만 연신 깜빡이며 어리둥절하게 주시언을 바라보았다.이윽고 혼란스러웠던 눈동자가 생기를 되찾더니, 자연스레 그의 허리를 감싸 안고는 조용히 품에 기댔다.주시언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연기하는 순간조차 지독할 정도로 보수적이었다.하지만 이번만큼은 그가 보여준 가장 대담한 몸짓이었고, 그 작은 온기는 실제로 하원영의 마음속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켰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호텔에 도착했다.하원영은 방 안을 구석구석 살피며 몰래카메라나 도청 장치가 없는지 확인한 뒤 문을 잠갔다.“별일 없으면 내일 저녁쯤 귀국할 수 있을 거예요. 대신 그때까지는 계속... 약혼한 사이인 걸로 해야 해요.”하원영은 괜히 헛기침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막상 말을 내뱉고 나니, 왠지 자신이 주시언을 상대로 일부러 수작을 부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주시언은 그녀의 팔을 덥석 붙잡고 눈을 가늘게 떴다.“어떻게 된 건지 똑바로 말해.”“신경 꺼요. 어쨌든 M국 고위층이랑 협의는 끝났고, 그쪽에서도 내 요구 들어주기로 했으니까. 오빠랑 내 관계를 조금 속인 것뿐이니 여기서 약혼자 노릇만 좀 해줘요. 그거면 되니까.”“넌 뭘 내준 건데?”하원영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주시언의 미간이 구겨졌다.M국 고위층과 협상했다는 건 분명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오갔다는 뜻이었다.하지만 하원영에게 내놓을 만한 밑천이 어디 있단 말인가.주시언은 불안감이 엄습했다.“오빠가 상관할 바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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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313화

    지순옥은 강지현의 곁을 지키며 함께 밤을 지새우려 고집을 피웠다. 하지만 끈질긴 설득에 못 이겨, 결국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못내 발걸음을 돌렸다.그녀를 배웅하고 병실로 돌아온 강지현의 귀에 구석에서 통화 중인 은주희의 목소리가 흘러들었다.상대는 아마도 김무언인 듯했다.은주희는 울먹이며 상황을 전하다가도, 수화기 너머의 말에 기분이 상한 듯 침묵을 지켰다.“당신 친아들이에요!”그러더니 날 선 한마디를 내뱉고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강지현은 밖에서 잠시 기다리다가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은주희는 급히 고개를 돌려 표정을 가다듬고는 애써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럼 오늘 밤은 태하를 좀 부탁할게. 무슨 일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부르렴. 정 힘들면 들어가서 쉬어. 여기 사람 많으니까 무리하지 말고.”“네, 그럴게요.”강지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은주희를 가볍게 끌어안았다.“감사해요, 어머님.”은주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내 그 포옹에 담긴 진심을 알아차렸다.강지현은 지금 김태하를 대신해 고마움을 전하고 있었다.비록 김태하는 어린 시절 친어머니를 여의었지만, 은주희처럼 그를 아끼고 걱정해 주는 새어머니를 만났다.“고맙긴 뭐가 고마워, 우린 원래 한 가족인데. 지현아, 만약 태하가...”은주희는 김태하를 힐끗 쳐다보았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한 눈치였으나, 잠시 망설이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조금 전 전화로 김무언에게 김태하의 상태를 전했을 때, 그는 아들을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회복한 뒤에도 과연 미래 그룹을 이끌어갈 여력이 남아 있을지를 더 염려했다.외아들이 제 구실을 못 하게 될 경우를 대비해 일찍이 다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강지현 역시 은주희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챈 듯 입을 열기도 전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선수 쳤다.“태하가 어떤 모습이든, 전 그 사람 곁을 지킬 거예요.”“지현아, 넌 아직 젊잖니. 만약 태하가 정말 깨어나지 못한다면...”은주희는 눈시울이 붉어졌다.강지현의 말에 깊이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312화

    “그러니까... 강지현 씨가 여기 왔다는 말이에요?”서지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 김태하가 소식을 절대 함구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었다.김씨 가문 사람들조차 조금 전에서야 비보를 접했고, 분위기상 강지현에게 알린 것 같지도 않은데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달려온 걸까.최동윤의 표정은 차분하고도 단호했다.“네, 맞습니다. 지금 안에 계시니 서지아 씨는 이만 돌아가 주시죠.”서지아의 눈동자에 쓸쓸함이 스쳤다.그녀는 입술만 달싹였을 뿐,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손에는 김태하를 위해 준비한 보양식이 들려 있었다.오늘 그가 깨어나기를, 그리고 눈을 뜬 순간 가장 먼저 자신과 마주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챙겨온 것이었다.하지만 강지현이 나타난 이상, 실낱같은 바람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서지아가 상실감을 안고 막 자리를 뜨려던 찰나, 병실 문이 열렸다.“서지아 씨.”밖의 기척을 들은 강지현이 걸어 나왔다.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서지아는 왠지 모를 죄책감에 휩싸여 황급히 눈길을 피했다.“강지현 씨, 태하 상태가 많이 안 좋아요. 고생스럽겠지만 잘 좀 돌봐주세요.”말을 마치고는 고개를 숙인 채 손에 들고 있던 것을 앞으로 내밀었다.최동윤은 혹여 강지현의 기분이 상할까 싶어 얼른 가로막으려 했지만, 정작 그녀는 아무런 내색 없이 묵묵히 건네받았다.“서지아 씨 마음은 남편 대신해서 제가 잘 받을게요.”다만 예우를 차릴 기분이 아닌지라 입꼬리만 살짝 끌어 올렸을 뿐, 그 어디에도 웃음기는 없었다.“그리고 남편 돌보는 건 아내인 제 몫이니까 서지아 씨는 이제 신경 안 쓰셔도 돼요.”서지아는 이 말이 자신을 향한 경고라는 것을 알았지만, 지금은 맞대응할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이내 열린 문틈 사이로 김태하를 애틋하게 바라보고는 아무 말 없이 발길을 돌렸다.서지아가 떠나자 최동윤이 서둘러 강지현의 손에 든 것을 건네받으려 했다.“지현 씨, 이건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강지현도 굳이 말리지 않았다.음식은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고,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3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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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17화

    하지만 사진을 채 불러오지 못했는데 벨 소리가 울렸다.백하린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이도운이 전화를 받자마자 흐느끼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왜 그래? 무슨 일 있어?”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에 목소리가 저절로 다급해졌다.하지만 그가 무슨 일이냐고 몇 번이고 물어도 백하린은 울기만 할 뿐 아무 대답이 없었다.이도운은 속절없이 계속 물었다.“어디야 지금? 집에 있어? 내가 지금 갈까?”그런데 대답 대신 들려온 건 통화 종료음이었다.이도운은 조급한 나머지 술자리도 내팽개치고 비서에게 몇 마디 당부한 후 거래처 사람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89화

    “아, 네...”“감사합니다. 김 대표님.”다들 궁금함이 가득했지만 김태하의 기세에 감히 묻지 못했다.강지현은 잠시 망설이다 조용히 말했다.“태하 씨, 아까 서지아 씨 상태가 좀 심각해 보였는데 정말 안 따라가 보셔도 괜찮겠어요?”주시언에게 들은 적 있었다.서지아는 이름 있는 학자 집안 출신으로, 평소 절제와 예의를 중시하는 사람이었다고. 그런 사람이 공개석상에서 저렇게 무너질 정도면 정말 많이 힘들었던 게 분명했다.김태하의 말투가 조금 누그러졌다.“오늘은 우리 약혼식이에요. 오늘의 주인공은 지현 씨고요. 최동윤이 안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70화

    백하린이 이도운에게 선물 받은 명품 가방을 메고 한 손에는 프로젝트 자료를, 다른 한 손에는 커피를 든 채 안내 직원을 따라 걸어오고 있었다.그녀 역시 투자 유치를 위해 온 것이었다.강지현을 본 백하린이 걸음이 멈추더니 눈빛이 순식간에 복잡해졌다.지난 며칠 동안 강지현이 이경 그룹을 내팽개치고 사라진 통에 이도운은 머리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고 회사도 난리가 났다. 심지어 이씨 가문 사람들까지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뭘 하고 있나 했더니 여기서 개인 프로젝트를 하고 있었어? 이경 그룹의 지원 없이 정말 맨손으로 성공할 수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제66화

    김태하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자 중얼거리면서 대답했다.김태하는 조금 전 그녀가 그의 가슴에 꼭 달라붙어 있던 것을 떠올리며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자는 거 아니었어요?”“아까는 정말 너무 피곤해서 눈도 못 떴어요... 하지만 태하 씨가 온 건 알고 있었어요.”강지현이 고개를 들었지만 눈은 여전히 제대로 뜨지 못했고 입꼬리만 살짝 올렸다.“태하 씨가 왜 여기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태하 씨만 있다면 아무도 절 함부로 괴롭히지 못 할 거잖아요... 그냥 좀 쉬고 싶었어요...”알코올 때문에 강지현은 더 이상 논리적인 사고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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