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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Author: 고요
더는 들을 수 없었던 하아란이 휴대폰을 꺼버렸다. 눈물이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나랑 있으면서 마음이 편안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구나.’

하아란이 눈물을 닦아냈다. 이 녹음 파일을 누가 보낸 건지 알 수 없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아랫배를 어루만졌다.

‘성태건의 아이를 낳아선 안 돼. 아이도 해결해야겠어.’

그러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하아란?”

“선배, 내일 아침 선배네 병원에서 수술 좀 할 수 있을까요?”

“무슨 수술? 내가 교수님께 연락해볼게.”

“낙태 수술요.”

성태건이 어젯밤 늦게 집을 나간 후 하아란에게 메시지 한 통을 보냈다.

[아란아, 나 오늘 집에 못 들어갈 것 같아. 술을 너무 많이 마셨어. 내일 아침에 바로 회사로 출근할게. 내일 저녁에 집에서 보자.]

회사로 출근하겠다던 그가 하아란이 낙태 수술을 하러 온 이 병원에 오늘 버젓이 나타났다.

성태건이 임다빈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산부인과 병동 복도에 서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진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북적거렸고 그 인파 속에서 성태건이 임다빈을 구석으로 감싸 안으며 지켜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유난스럽게 감싸고도는 모습이 예전에 하아란을 지켜주던 모습과 똑같았다.

임다빈이 고개를 들어 성태건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나 괜찮아, 태건아. 여기 다 임산부들뿐이라 긴장할 거 없어.”

성태건의 낮게 깔린 목소리에 억누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개인 병원으로 가자는데도 기어이 종합 병원에 오겠다더니. 여기가 뭐가 좋다고.”

임다빈의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

“난 그저 도우미의 딸이야. 평범한 사람이라 너나 하아란 씨랑 비교할 수가 없어. 여긴 비용도 덜 들거든. 네가 돈을 함부로 막 쓰는 게 싫어.”

성태건의 준수한 얼굴에 안타까움이 가득 배어 있었다.

“아란이는 늘 내게 세상에서 제일 비싸고 단 하나뿐인 것들만 요구해. 걔 가방 하나가 너의 10년 치 월급과 맞먹을걸? 아란이는 너처럼 철이 들지 않았어.”

그러면서 임다빈을 품에 안고 그녀의 머리에 입을 맞추었다.

한편 트렌치코트 차림에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하아란이 온몸이 뻣뻣하게 굳은 채 그들을 등지고 서 있었다.

‘철이 안 들었다고? 웃겨서 원.’

성태건이 결혼 전날에 그의 명의로 된 명성 그룹 지분을 전부 하아란에게 양도했었다. 그때 이렇게 말했었다.

“아란아, 난 너한테 세상에서 제일 비싸고 제일 좋은 신상만 사줄 거야. 내 공주님은 언제나 대접받고 살아야 하니까.”

그리고 이런 말도 들었다.

“용원 저택은 우리 부모님이 지내시던 곳이야. 앞으로는 그곳에서 지내며 태교에만 전념해. 지난번에 진가 경매에서 낙찰받았던 그린 다이아몬드 있잖아. 반지 만들려고 맡겨뒀어. 전에 못 해준 결혼반지야.”

하아란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두 눈에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라 시야가 흐려졌다.

그린 다이아몬드를 진가 경매에서 샀다고 했다.

예전에 그 다이아몬드에 얽힌 전설을 성태건에게 알려준 사람이 바로 하아란이었다. 그린 다이아몬드가 유일함을 뜻한다는 말을 듣고 성태건에게 사달라고 졸랐었다.

“이번에 내가 고른 가방을 아란 씨가 마음에 들어 할까?”

“당연히 들어 하지. 우리 다빈이가 세 시간이나 정성껏 고른 건데. 고생 많았어.”

임다빈이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더니 안쓰러운 말투로 말했다.

“어찌 됐든 아란 씨가 내 아이의 양엄마가 될 사람이니까 잘 보이도록 노력할게. 걱정하지 마.”

그 말에 성태건이 더욱 마음 아파했다.

“다빈아, 아이를 아란이한테 보내주겠다고 해서 정말 고마워. 아란이 호적에 올려야만 이 아이가 명성 그룹의 후계자로 당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어. 내 것도 전부 아이한테 줄 수 있고.”

이 기가 막힌 대화가 하아란의 귀에 들어왔다.

‘그러니까 성태건이 임다빈을 임신시킨 게 내가 아이를 미치도록 원해서 그랬다는 거야? 그것 때문에 바람을 피웠다고?’

하아란이 수술실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수술복으로 갈아입던 그때 그녀의 휴대폰이 울렸다. 성태건의 전화인 걸 보고 바로 받았다.

“아란아, 일어났어? 아직도 화난 거야? 내가 장미꽃 준비했어. 이따가 별장으로 배달 갈 거야. 네가 제일 좋아하는 빵도 보냈어. 정 아이를 원하면 내가 보육원 쪽에 알아볼게. 갓난아기 찾아서 입양하자. 길어야 1년이면 될 거야. 꼭 엄마 되게 해줄게.”

“그래. 아이는 이제 필요 없어.”

‘친자식도 지울 생각인데 네가 다른 여자랑 낳은 아이를 키우라고? 불가능해, 그건.’

성태건의 말투가 마침내 조금 부드러워졌다.

“넌 나의 유일한 보물이야. 사흘 뒤가 우리 결혼 7주년 기념일이잖아. 서프라이즈 선물 준비할게.”

하아란이 미련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녀 역시 성태건을 위해 준비한 서프라이즈 선물이 있었다.

그녀가 차디찬 수술대 위에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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